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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위탁 정규직화 막는 ‘보이지 않는 선’

위탁 방법·계약 방식 제각각… 정부 나서고, 노동자 참여시켜야
등록 2019-08-22 11:17 수정 2020-05-03 04:29
서울 마포구의 환경미화원들이 생활폐기물을 청소차에 싣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서울 마포구의 환경미화원들이 생활폐기물을 청소차에 싣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2017년부터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사업은 1단계(중앙행정기관·공공기관·교육기관·지방공기업)와 2단계(자치단체 출연·출자 기관, 공공기관·지방공기업 자회사) 전환 작업이 마무리돼가고 있다. 현재는 마지막 3단계인 민간위탁기관의 정규직 전환이 추진 중이다. 이 3단계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의지 부족 등으로 정규직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_편집자

눈에 보이지 않아도 구분이 명확한 경우가 있다. 노동시장을 예로 들어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그렇다. 누가 정규직이고 누가 비정규직인지 눈으로 알아보긴 어려워도, 둘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쉽게 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선도 존재한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이 3년 뒤 정규직이 될 가능성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53.8%)의 절반도 안 된다고 하니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선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비교해 다양한 차별을 받고 있지만 정작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차별을 해소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실질적인 성과가 없을 때도 많았지만, 매번 국정과제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포함돼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7년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인 기간제와 파견·용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올해는 마지막 단계로 민간위탁의 정규직화를 시작했다. 기간제와 파견·용역 노동자의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와 한계는 이미 많이 알려졌기에, 이 글에서는 민간위탁의 정규직화와 관련된 쟁점과 과제를 살펴본다.

공공부문 민간위탁 사무 총 1만99개

민간위탁이란 공공기관 사무를 민간에 맡기는 것이다. 민간위탁이 생겨난 이유는, 늘어난 공공서비스 수요를 정부조직을 늘려 감당하기보다 민간에 위탁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정책적 판단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말부터 정부조직이 민간위탁을 조금씩 활용했으나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다. 재정적 효율성보다 외부 인력을 활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작은 정부를 유지하면서 더 많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정원 통제를 받지 않는 민간위탁을 경쟁적으로 늘려왔다.

그 결과 2018년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를 보면, 862개 공공부문의 민간위탁 사무는 총 1만99개였고 5169개(시설위탁 2109개·사무위탁 3060개) 민간위탁이 지자체 소관이었다. 민간위탁이 늘어나면서 선정 기준 등 민간위탁 활용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실제, 같은 업무임에도 직영(기관이 직접 운영)과 민간위탁이 혼재된 경우가 있었다.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의 경우 전국적으로 13.2%는 직영 운영되지만 85.5%는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자체별로도 차이가 커서 전라남도에선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의 직영 비율이 64.3%였으나 서울시의 직영 비율은 0%였다.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의 민간위탁은 기초자치단체의 권한이어서 광역지자체가 통제하기도 쉽지 않았다. 위탁 방법도 제각각이어서 같은 민간위탁 사무임에도 지자체별로 수의계약과 경쟁계약이 존재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공공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파악하는 것인데, 이 역시 충분한 검토 없이 관행적으로 민간위탁을 늘려왔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무질서하게 남용돼온 민간위탁의 정규직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현재 추진되는 민간위탁의 정규직화와 관련해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다. 하나는 개별 기관이 자율적으로 민간위탁의 정규직화를 결정하도록 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민간위탁 사무가 가장 많은 기관은 지자체이지만 정작 지자체는 민간위탁의 직영 전환에 소극적이어서 정규직화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우려는, 민간위탁의 정규직화 논의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이 배제돼 이해당사자 의견을 충분히 제시할 수 있는 통로가 봉쇄됐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모두 귀 기울여야 할 사안으로, 이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는 것에서 민간위탁의 정규직화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지자체에 정규직화 소극적…정부·여당 나서야

첫 번째 지적과 관련해, 지자체 등 개별 기관이 민간위탁의 정규직화에 소극적인 것은 사실이므로 집권여당과 정부가 나서서 민간위탁의 정규직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민간위탁은 종류가 다양하고, 지자체 등 개별 기관에 결정 권한이 있어 1·2단계처럼 일괄적으로 정규직화를 강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이미 민간위탁의 정규직화를 개별 기관의 정책적 결정에 따른다고 정했기에 이를 번복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지만 민간위탁의 정규직화를 추진한다면서 의지가 부족한 개별 기관의 자율적 결정에만 맡겨둘 수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집권당과 정부가 함께 지자체장들을 설득해 민간위탁의 정규직화 필요성을 설명하고 추진을 독려해야 한다. 정부와 집권당이 아무 조처도 하지 않으면서 지자체장 등 개별 기관만 탓할 수는 없다.

둘째, 심층 논의가 필요한 민간위탁 사무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정규직화를 추진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민간위탁 정규직화와 관련해 심층 논의가 필요한 사무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상수도 검침, 콜센터, 전산 유지·보수, 한국수자원공사의 댐 정비 등을 정하고 이들 사무의 정규직화 여부는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고, 그 결과를 정부 비정규 전담팀(TF)에 보고하도록 했다. 이들 사무를 특별히 심층 논의가 필요한 업무로 정한 것은 민간위탁이지만, 국민의 생활·안전과 직접 관계됐을 뿐만 아니라 노무 도급과 유사한 운영 방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콜센터의 경우 이미 많은 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셋째, 노동자 등 이해당사자가 민간위탁 정규직화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열린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심층 논의가 필요한 사무의 경우 노동자 대표가 심의위원회에 참여해 민간위탁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 의견을 제시해 올바른 결정이 내려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개별 기관에서 노동자 참여가 어렵다면 정부 차원의 비정규 TF에 노동조합 참여를 보장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도록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 참여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다.

1~2년 논의로는 재공영화 불가능

공공기관의 민간위탁은 20년 넘게 확대돼온 정책으로 재공영화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논의가 필요하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1~2년 정도의 논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올해는 심층 논의가 필요한 민간위탁의 정규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 다소 방만하게 운영된 민간위탁에 대한 평가와 재공영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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