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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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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국정교과서야

교과서 수정 논란, 박근혜 정부 ‘위법 수정’부터 따져야
등록 2019-07-15 11:00 수정 2020-05-03 04:29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6월27일 국회에서 ‘문재인 정권 사회교과서 불법 조작 사태 긴급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6월27일 국회에서 ‘문재인 정권 사회교과서 불법 조작 사태 긴급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느닷없이 초등 국정교과서 (2016~2018년 사용) 보도가 쏟아졌다. 와 자유한국당이 중심이 되어 생산한 뉴스의 핵심은 박근혜 정부가 2016년 발행한 초등용 사회 국정교과서를 문재인 정부가 ‘무단 또는 불법 수정’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권 교과서 불법 조작 대책특위’를 구성해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과 함께 헌법재판소에 ‘초등학교 5·6학년 사회교과서의 사용금지 가처분신청’까지 냈다.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된 국정교과서

자유한국당은 한발 더 나아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초등 교과서를 책임 개발한 진주교육대학 박용조 교수를 초대해 긴급 간담회까지 하며 교과서 공세 수위(국정조사 요구서 제출,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 고발 등)를 높이고 있다. 박 교수와 자유한국당이 문제 삼는 내용의 핵심은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자유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한 것과 일본군 ‘위안부’ 서술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 입맛에 맞게 교과서 내용이 바뀌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이들이 ‘국정교과서=정권교과서’라는 공식이 맞다고 주장하니 고맙고 반갑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할 때 역사교사와 학생들, 역사학자와 시민들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한 이유와 일치한다. 늦게나마 자유한국당이 국정교과서의 명백한 한계를 인식했다면 하루빨리 모든 국정교과서 제도를 폐지하고 검인정, 또는 자유 발행제로 가자는 당론을 채택할 날을 기다려본다.

문재인 정부는 초등 사회 교과서를 ‘무단 또는 불법 수정’했을까? 교육부를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규정상 아무 문제가 없다.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1항은 “교육부 장관은 교과용 도서의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국정도서의 경우에는 이를 수정하고, 검정도서의 경우에는 저작자 또는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라고 돼 있다. 교육부 장관이 대표 집필자인 박 교수의 동의와 상관없이 수정이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교육부가 수정 과정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것을 비난할 수는 있지만, 국정교과서 저작권은 교육부에 있으므로 ‘무단 또는 불법 수정’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2015년 박근혜 정부와 뉴라이트가 한 일

그런데도 박 교수는 제1야당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무엇이 그리도 억울했을까? 박 교수가 책임 집필한 교과서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6년 처음 발행한 초등 국정교과서는 2009 교육과정을 토대로 제작됐다. 교육과정은 “인물의 활동을 중심으로 광복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의 과정을 파악한다.”로 돼 있다.

박 교수팀이 박근혜 정부 시절에 개발한 초등 국정교과서는 현장 적합도 검사를 위해 ‘실험본’ 형태로 2014년 2학기에 실제로 초등학교 수업에 활용됐다. 실험본 교과서는 2009 교육과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르게 서술했고, 일본군 ‘위안부’ 사진과 설명도 실렸다. 그러나 2016년 3월 발행한 최종본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됐고 일본군 ‘위안부’ 사진과 설명은 삭제됐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던 박근혜 정부는 2015 교육과정(2015년 9월 공고)에서 이른바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라이트의 요구를 반영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꿨다. 역사 교과서에 ‘건국’이란 표현을 쓰지 못할 바에는 ‘정부’를 빼버리자는 뉴라이트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였다. 2015년 11월4일에는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했다. 황 총리는 검정 역사 교과서의 99.9%가 좌편향이라는 황당한 논리로 국정화를 합리화하려 했다. 박근혜 정부가 검정한 교과서를 박근혜 정부의 총리가 좌편향이라 공격하는 자학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12월28일에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발표됐다.

이 무렵 박 교수팀은 2009 교육과정에 따라 3년간 개발한 초등 교과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 발행하는 초등 국정교과서이니 곧 개발할 중등 국정 역사 교과서와 같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했을 수 있다.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불가역’이란 용어로 합의했으니 일본을 자극할 수 있는 ‘위안부’ 관련 서술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6년 3월 배포된 초등 교과서는 결국 교육과정을 지키지 못한 교과서가 됐다. 검정이었다면 대표적인 불합격 사유에 해당한다. 박 교수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위법한 수정 과정에 사실상 동의했지만, 3년 뒤에는 문재인 정부의 적법한 수정에는 동의하지 못한 채 위법한 수정이 옳다고 주장하며 억울해하는 셈이다.

역사 교과서 정치화는 그릇된 욕망

자유한국당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무단 수정’ 의혹을 밝힌다며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했다. 만일 국정조사가 이뤄진다면 박근혜 정부 시절 박교수가 교과서를 개발하던 시점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자유한국당이 집권할 때 제작 배포된 초등 국정교과서가 어떤 이유로 교육과정도 지키지 않고 개발됐는지 명백히 밝힌다면 국정교과서 제작 과정의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나리라고 본다.

보수 언론과 일부 야당은 역사 교과서의 정치화에 대한 그릇된 욕망을 여전히 부여잡고 있다. 이들은 ‘우리 아이들이 좌편향된 교과서로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역사교육을 받고 있다’는 논리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10여 년간 권력을 앞세워 역사교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학부모의 불안감을 자극하며 지지층을 결집하거나 상대를 배제하는 데 악용했다. 그 극단이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다 정권의 몰락을 가속화했던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실패였음을 잊은 듯하다. 초등 교과서를 시작으로 곧 발표할 검정교과서에 대한 해묵은 공세를 반복하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지난 10년간 당신들 머리에 ‘우리 아이들’과 ‘살아 있는 역사교육’에 대한 고민이 단 한순간이라도 있었는가?

조한경 부천 중원고 역사교사·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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