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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지명, 측근 비리에 자신 있다?

박근혜 정권뿐 아니라 노무현 정권 눈치도 보지 않았던 검찰총장 후보

“여당 스스로 경계하도록 만드는 효과도”
등록 2019-06-22 14:23 수정 2020-05-03 04:29
새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6월17일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새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6월17일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 지명은 당연하면서도 낯설다. ‘정치검찰’ 폐해를 잘 아는 문 대통령이 정권 눈치를 보지 않는 강직한 이미지의 윤 후보자를 선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치검찰을 적폐 청산 1호로 외친 ‘촛불정신’을 계승한 정부임을 자임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측근 비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정권 후반기에 ‘강골 검사’를 검찰 수장으로 선택한 것은 역대 정권에서 보기 힘든 모험이다. 그만큼 측근 비리에 자신감이 있다는 것일까.

2년 만에 식언이 돼버린 윤 수석의 발언

윤 후보자 지명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검찰 인사 철학’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19일 당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은 2005년 고검장급으로 격상된 이후 정치적 사건 수사에 총장 임명권자(대통령)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계속되어온 점을 고려해 종래와 같이 검사장급으로 환원시켰다.” 당시 고검 검사였던 윤석열을 고검장급인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한 ‘파격 인사’의 배경을 설명한 말이었다. 또한 서울중앙지검장이 고검장급이 된 이후 ‘서울중앙지검장 → 총장 직행’의 인사 유형이 생김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의 ‘정권 눈치 보기’는 201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폐지된 후 서울중앙지검이 ‘슈퍼 검찰청’이 되면서 더 심해졌다. 이런 맥락에서 윤영찬 수석의 발언은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이 되려고 대통령 눈치를 보는 구태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검찰개혁을 공약한 ‘촛불정부’다운 발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인사로 윤 수석의 발언은 불과 2년여 만에 식언이 돼버렸다. 더불어 2년 전의 파격 인사가 결국 윤석열을 총장으로 앉히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다는 비판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러나 청와대는 검찰개혁의 필요조건인 검찰 내 인적 청산을 자연스레 유도할 수 있게 됐다. 윤 후보자(사법연수원 23기)가 문무일 총장(18기)보다 무려 5기수 아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이거나 선배인 기수들은 사표를 내는 게 검찰의 오랜 관행이다. 현재 외부 개방직인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을 제외한 검사장급 이상 간부 40명 가운데 연수원 19∼23기는 31명에 이른다. 이들이 관행에 따라 사표를 낸다면 검찰 고위직 4명 중 3명이 조직을 떠나는 초유의 인사 태풍이 불어닥친다.

문 대통령은 검찰의 이런 관행을 비판적으로 봤다. 그는 2012년 대선 출마 직전에 펴낸 에서 이렇게 썼다. “검찰의 전통은 후배 기수가 선배 기수를 추월해서 승진하면 선배들은 모두 옷을 벗는 것이었다. 동기 중 한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면 나머지 동기들은 모두 그만두고 나갔다. 참여정부는 그런 문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없어져야 할 군사문화라고 판단했다. 검찰개혁 방향과도 맞지 않았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이 변함없음을 대변했다. 그는 6월19일 국회에 출석해 “(윤 후보자의 지명은 문 총장과 윤 후보자) 가운데 끼어 있는 기수들보고 다 옷을 벗으라는 뜻이냐”는 여당 의원의 질문에 “그런 의미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척결할 군사문화인가, 물갈이 신호탄인가

그러나 박 장관은 검찰 수뇌부의 ‘물갈이’ 인사도 예고했다. 그는 “기수 문화가 검찰에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검사로서의 자세, 능력이 중요하다. 앞으로 검찰 인사에서는 그런 부분이 중시돼야 하고, 기수에 따라 (자리를) 배치하는 것은 점차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장급 이상 검찰 수뇌부를 지금보다 훨씬 젊은 세대로 구성하겠다는 의도다. 법무부는 6월17일 윤 후보자 지명 직후 검사장 바로 밑 차장검사 승진 대상을 29기까지 확대하고 이들에게 재산검증 동의를 받았다. 앞서 28기까지 재산검증 동의를 받은 지 불과 보름 만의 일이다. 그만큼 인사 폭이 확대될 것을 예고한 것이다.

검찰의 기수 문화가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반론도 있다. 대통령이 마음대로 검찰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을 견제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 고위 간부를 지낸 한 법조인은 “대통령이 아무런 제한 없이 자기 마음에 드는 검사를 총장으로 발탁할 수 있다면 일선 검사들이 대통령 눈에 들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할 유혹에 빠진다. 이는 또 다른 ‘정치검찰’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검찰을 권력 유지에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인사권 견제가 필요하다.

현재 검찰 수뇌부를 구성한 19~23기는 노무현 정부의 검찰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세대다. 2003년 ‘대통령과 전국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검사들이 이 세대에 해당한다. 노 대통령이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말할 정도로 검사들은 날 선 질문을 쏟아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현장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목불인견”()이라 표현했다. 문무일 총장도 2005년 ‘수사지휘권 파동’ 때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강정구 교수 불구속 수사 지휘에 반발해 김종빈 검찰총장의 ‘항명 사퇴’를 건의했던 대검 ‘소장파’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것을 여권이 곱지 않게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 후보자 지명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의뢰로 6월18일 전국 성인 500명에게 윤석열 차기 검찰총장 지명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은 결과, ‘잘했다’는 긍정 평가가 49.9%로 나타났다. ‘잘못했다’는 부정 평가는 35.6%였다. 이는 윤 후보자의 ‘강골 검사’ 이미지가 만든 결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3월9일 ‘전국 검사와의 대화’에서 발언하고 있다. 뒷줄 맨 오른쪽에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앉아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3월9일 ‘전국 검사와의 대화’에서 발언하고 있다. 뒷줄 맨 오른쪽에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앉아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잔인한 인사 보복 그리고 화려한 부활

윤 후보자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초기에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실무를 지휘하면서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집행했다가 수사팀에서 쫓겨났다. 그는 그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 수뇌부의 수사 방해를 적나라하게 증언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반대한 검찰 수뇌부가 노골적으로 수사를 방해한 것을 검찰 수뇌부 면전에서 폭로한 것이다. 원 전 원장이 선거법 위반(불법 선거 개입)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되면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은 큰 타격을 받을 게 불 보듯 뻔했다. 이를 우려한 검찰 수뇌부가 수사팀에 압력을 가한 것이다. 윤 후보자의 저항으로 원 전 원장은 결국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원 전 원장은 2017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돼 재수감됐다. 국정원법은 물론 선거법 위반도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윤 후보자가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대가는 컸다. 그는 박근혜 정부로부터 잔인한 인사 보복을 당했다. 그는 항명을 이유로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은 뒤 이듬해 1월 정기인사에서 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대검 중수2과장·중수1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특수부 요직을 섭렵한 경력에 전혀 맞지 않는 인사였다. 하지만 그를 부활시킨 것도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였다. 윤 후보자는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에 임명됐다. 박영수 특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입증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시키는 등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윤 후보자는 정치인을 수사할 때 정파적 이해를 따지지 않았다. 그는 김대중 정권 때도 당시 경찰 실세인 박희원 정보국장(치안감)을 구속했다. 경찰과 일부 호남 정치인들이 수사 초기부터 거세게 반발했지만 그는 구속을 강행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대선자금 수사팀에 참여해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 안희정, 강금원 등 대통령 측근을 잇따라 구속했다. 노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검찰에 대한 분노를 토로할 정도로 정권 실세에 냉혹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초기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을 수사할 때도 거침이 없었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중에도 전 수석의 압수수색을 강행했다. 그의 지휘를 받는 서울중앙지검은 전 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법원 결정을 대놓고 비판했다.

강직함이 부메랑 될지도

이런 맥락에서 여권에서는 윤 후보자의 강직함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와대와 여당의 힘이 빠지는 정권 후반기에 검찰 수사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6월19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윤 후보자의 강직함을 강조하면서 “(민주당에서는) 경우에 따라 윤 후보자가 가진 칼날은 양면적이라는 이야기도 한다”고 말했다.

반면 윤 후보자의 존재로 인해 정권 실세 비리가 조기 차단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20일 tbs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후보자가 어떤 정권하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수사하는 것은 틀림이 없기에 여당도 스스로 경계하도록 만들기 위한 의지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검찰총장이 임명권자를 겨냥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선택이 부메랑이 될지는 문재인 정부 하기에 달렸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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