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청 내 주차장. 무료 정기주차 차량이 많아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왼쪽). 일반 방문자에게 10분당 300원꼴로 주차비를 받는다. 김주홍 제공
‘왜 이렇게 주차 공간이 없지?’
경기도 양평군에 사는 김주홍씨는 양평군청을 방문할 때마다 이상함을 느꼈다. 늘 주차장이 가득 차 있어 민원인이 차를 댈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김씨는 자신이 사무국장인 비영리 민간단체 ‘공공개혁시민연합’을 통해 지난해 10월 양평군청에 무료 정기주차차량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한 달 뒤 받은 자료에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자료에는 양평군청의 무료 정기주차차량이 무려 369대에 이른다고 나와 있었다. 양평군청 내 주차 공간이 총 195면(1면에 1대 주차)인데 그보다 두 배나 많은 차량이 2100년 또는 2118년까지 무료로 주차할 수 있게 등록됐다. 참고로 ‘양평군 주차장 조례’에 따르면 공영주차장의 월 정기권 요금은 7만원이다. 이들 차량은 1년에 84만원씩 요금을 면제받는 셈이다.
차량 369대의 주인은 누굴까. 109대는 언론인 소유였다. 14대는 국회의원·도의원·군의원 소유였고, 168대는 이장·부녀회장·시민단체 등 각종 단체 소유였다. 나머지는 양평군청 공무원 소유거나 관용차량 등이었다. 공공개혁시민연합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초 국민권익위원회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진정을 넣었다.
결과는 ‘언론인의 경우 김영란법 위반으로 보인다’였다. 공공개혁시민연합은 5월28일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로부터 “상당수 기자들에게 발급된 무료 정기주차권이 김영란법 위반으로 보여 경기도에 조사를 권고했고 양평군청 주차 담당 공무원들은 징계위에 회부할 것을 권고했으며,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전개할 것을 의결했다”는 답을 들었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과 한 통화에서 “진정 건과 관련해 사실관계는 확인해줄 수 없고, 민원인(공공개혁시민연합)에게 결과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80개 매체의 언론인 105명이 소유한 차량 109대. 그동안 이렇게 많은 언론인이 김영란법 위반으로 동시에 적발된 사건은 알려진 바 없다. 대부분 경기도 지역 언론인의 차량이었다. 해당 언론인이 소속된 매체의 본사가 있는 지역별로 차량을 따졌을 때 양평 25대, 여주·이천·가평 등 양평 주변 14대, 그 외 경기·인천 37대, 서울 29대 등이다. 10대 종합일간지나 지상파·종합편성채널 중에선 없었다.
사실 2016년 9월28일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언론인들은 자신이 출입하는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설치한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출입기자에 대한 무료 주차 정기권 제공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당시 국민권익위원회가 “원활한 취재 활동을 위해 1회 5만원 이내의 주차권 제공은 가능하지만, 취재 여부와 관계없이 상시적으로 주차가 가능한 정기주차권은 청탁금지법의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양평군청과 이곳 출입기자들은 과거의 관습을 유지하다가 제재받았다고 볼 수 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언론인 포함)의 경우 직무와 관련 있는 상대로부터 금품을 받는 행위를 금지한다(5만원 이하 경조사비 등 일부 예외 있음). 대가성 여부도 따지지 않는다. 이를 어기면 금품 가격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향후 경기도의 조사를 거쳐 법원에서 김영란법 위반이 확정된다면 구체적인 과태료 액수가 정해지겠지만, 언론인 1명이 1년 동안 무료 정기주차권을 받았다면 84만원의 2배(168만원)에서 5배(420만원)에 이르는 과태료를 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언론인 중엔 양평군청 출입기자로 보기 힘든 경우도 있다. 4개 매체를 거느린 미디어그룹의 회장인데 BMW와 벤츠를 등록한 경우가 그런 사례다. 해당 언론인은 “작은 언론사라 얼마 전까지 양평군청에 직접 출입도 했다”면서 “한 대는 개인 소유고, 다른 한 대는 언론사 공용차량”이라고 해명했다. 직원 6명이 모두 차량을 1대씩 등록한 양평 소재 언론사도 있다. 이 언론사의 관계자는 “양평군청 근처에 사무실이 있어서 등록했는데, 얼마 전 사무실을 옮기고 나서는 거의 군청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차량 주인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무료 차량으로 등록된 경우도 있었다. 차량 2대를 등록한 한 언론인은 “한 대를 사용하다 다른 차로 바꿔 등록했는데, 과거 차량이 삭제되지 않아 두 대가 등록된 것 같다”고 했다.
김영란법 위반 혐의를 받는 언론인들은 아직 국민권익위원회나 양평군청 등에서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다. 이 통화한 언론인들은 모두 “김영란법 위반은 상상도 못했다”는 반응이다. 명단에 포함된 유명 온라인 매체의 언론인은 “양평군청은 자주 방문하지도 않고 한번 가도 한두 시간씩 머무를 뿐이다. 경기도 다른 지자체에서도 취재 차량은 무료로 처리해주는데 왜 양평만 문제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언론인에게 무료 주차 혜택을 주는 방식은 경기도 내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이다. 수원시청과 가평군청은 언론인이 취재 목적으로 방문할 때 홍보팀에 이야기하면 당일 주차료를 면제해 준다. 상시 주차권은 발급하지 않는다. 경기도청과 이천시청은 일반인도 무료로 주차할 수 있어서 아예 주차권을 발급할 필요가 없다.
반면 성남시청과 군포시청은 양평군청과 마찬가지로 일부 언론인에게 상시 무료 주차 혜택을 준다. 성남시청 관계자는 “자주 방문하는 출입기자는 차량 등록을 해 무료로 다닐 수 있다”고 했다. 군포시청 관계자도 “일주일에 4~5일 정도 방문하는 기자는 직원 주차장으로 들어올 수 있게 출입 등록을 해준다”고 했다. 안산시청은 상주기자가 요청할 경우 ‘하루 3시간’으로 사용 시간이 제한된 상시 무료주차권을 준다.
양평군청 주차 담당자는 “양평군 주차장 조례에 따르면 취재기자에게 무료 주차를 지원할 수 있게 돼 있다”면서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문제 삼을 경우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또 “무료 주차 유효기간 종료 시점이 2100년이나 2118년으로 돼 있는 것은, 종료 시점을 따로 지정하지 않아 시스템이 자동 지정한 날짜”라며 “그 전에 출입기자가 바뀌므로 종료 시점은 의미가 없다”고 해명했다.
공공개혁시민연합은 “공영주차장이라는 공적 자산이 규정을 벗어나 특정 단체 또는 특정인에게 부당하게 독점적으로 제공돼 양평군청을 찾는 민원인들이 불편을 겪는 점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산하기관이나 중앙부처 청사와 산하기관에서 공영주차장을 비정상적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만연하다는 제보를 받았다”면서 “국민권익위원회가 향후 실태조사하겠다고 밝혀 전국 공영주차장의 부정 사용 실태를 고발하고 개선할 여지가 생긴 점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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