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화약 앞에서 제주해군기지 구럼비 발파에 쓰일 화약 운반을 저지하기 위해 강정마을 주민들이 플라스틱관을 이용해 인간띠를 만들어 정문을 막자, 경찰이 망치로 파이프를 깨트리고 있다. 류우종 기자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또다시 중심에 등장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을 바꾼 국군기무사령부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반대 여론에 대한 강경 기조를 이끈 것은 정보기관들이었다. 경찰도 거들었다. 정보 수집, 집회 강경 진압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제주도청도 도민 편은 아니었다. 국가기관이 총동원한 대규모 공세에 한 마을이 버틴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파괴는 철저했고,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았다.
5월27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기자회견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국책사업으로 진행됐으나 제주도민, 강정마을 주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과정 등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으며, 건설 추진 과정에서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한 반인권성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정부와 제주도 및 여러 국가기관이 해군기지 반대 측 사람들에게 보여준 부당한 행위에 대한 사과와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경찰 이외에 해군, 해경, 국정원 등 여러 국가기관의 역할 및 부당한 행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보기관의 불법은 행간에서 겨우 발견된다. 하지만 이 취재한 결과 조사위는 조사 과정에서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국정원이 전 과정을 이끌었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7년 해군기지 건설 지역으로 강정마을이 결정된 초기만 해도 국정원 등 정보기관은 물밑에 있었다. 전면에 나선 것은 해군과 제주도였다. 주민 갈등의 대표적인 예로만 알려졌던 강정마을 투표함 탈취 사건의 경우, 해군이 개입해 투표 무산을 주도한 사실이 이번 조사 결과 확인됐다. 당시 해군제주기지사업단장(대령)이 찬성 쪽 주민단체인 해군기지사업추진위원회 쪽과 사전 모의한 정황이 파악된 것이다.
배후에서 보이지 않게 움직이던 정보기관의 태도가 바뀐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다. 이때부터 이들은 노골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대표적 예가 2011년 8월 재향군인회, 특수임무유공자회, 해군동지회 등 보훈단체가 이끌었던 제주해군기지 건설 찬성 집회다. 당시 해군기지 반대 쪽과 찬성 쪽 집회 참가자들의 충돌이 우려됐다. 주민 안전을 고려해 경찰이 직접 나섰다. 보훈단체에 집회 장소를 애초 신고된 강정마을 인근이 아니라 제주도청 앞으로 변경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곧바로 경찰청 고위 간부에게 국정원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왜 당신 마음대로 하느냐”며 집회 장소 변경 불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경찰은 이에 따랐던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났다.
집회 전날 해군 등이 보훈단체와 사전에 계획한 집회라는 의혹도 제기된 터라 제주도민의 반대 여론은 더욱 거세졌지만 결국 찬성 쪽 집회가 강정마을 인근에서 열리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조사위 조사 결과 음향 장비, 펼침막 등 찬성 집회의 해군 지원이 확인됐다). 국정원의 월권은 이것만이 아니다. 국정원과 기무사는 경찰에 해군기지 건설 반대 주민들에 대한 첩보 작성을 요구했다. ‘신상털이’에 가까운 보고 요청에도 경찰은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기무사는 경찰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면서 민간인 불법사찰 혐의를 비껴가려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국정원, 기무사의 손발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정보기관 독대를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국정원, 기무사 등 두 정보기관은 앞다퉈 청와대를 위한 자료를 만들었다. 청와대 보고 자료에 담기는 내용은 해군기지 건설 진척 정도나 제주도민 여론 등 ‘상황’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주요 인물의 활동 상황을 기록한 이른바 ‘존안자료’가 대부분이었다고 에 전했다. 예를 들어 서귀포서장은 성격이 온순해 집회 상황을 장악해 강하게 밀어내지 못한다는 등 인물 세평이 보고에 담겼다. 제주도 내 경찰 간부들은 위로부터 받는 (개인을 향한) 압박이 정보기관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위는 당시 정보기관 보고에 부정적 세평이 언급된 제주도 내 주요 경찰 간부가 교체됐던 사실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에서 정보기관들은 청와대를 배경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셈이다.
조사위 관계자는 에 “당시 국정원이 가장 상부에서 (현장) 상황이나 조치에 대해 핸들링(조종)을 했고, 그에 따라 경찰이 위법성이 다분히 포함된 조치나 대응을 강경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이번 조사 과정에서 확인했다”고 말 했다.
국정원, 기무사 등 정보기관이 앞장섰다고 하지만 경찰과 해군, 제주도청의 잘못도 이에 못지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해군은 주로 해군기지 반대 목소리를 막는 데 집중됐다. 경찰이 주도한 해군기지 반대 쪽 집회 방해, 무차별 연행, 특정 지역 봉쇄, 온라인 댓글 달기 등이 대표적 예다. 해군은 투표함 탈취나 해상 시위대를 폭행하는 등 노골적인 불법을 저지르는가 하면, 해군기지 찬반을 묻는 총회를 앞두고 (반대 쪽 주민들의) 불참을 독려하거나 투표 당일 주민들에게 관광을 시켜주고 투표 시간이 끝난 뒤 귀가시키는 등의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제주도와 도의회도 환경영향평가, 절대보전지역 해제 등 절차적 문제가 있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길을 터줬다. 특히 제주도청 고위 관계자는 2008년 국정원, 제주지방경찰청, 해군 등이 모인 유관기관회의를 주관하고 “(주민) 분열은 좋은 상황”이라거나 “걸림돌을 제거하고 가야 한다”며 ‘공세적’ 법집행의 필요성을 강조한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상황은 달라졌을까. 물론 경찰의 진상 규명 노력에서 보듯 그사이 정부 당국의 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12월 이낙연 국무총리는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소송을 취소하는 법원의 강제조정안을 수용해, 해군이 강정 주민 등 116명과 시민단체 5곳을 상대로 한 34억여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했다. 지난 3월1일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집회 등으로 고초를 겪은 관계자 19명을 사면·복권했다.
하지만 민심은 여전히 예사롭지 않다. 조사위 발표로도 드러났듯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과 유사한 상황이 2018년 해군 국제관함식에서 불거지면서다. 관함식이 있기 6개월여 전 해군본부 관계자는 강정마을을 찾아 “(강정)마을이 반대하면 (제주해군기지가 아닌) 부산에서 관함식을 열겠다”고 말했다. 곧바로 강정마을회는 임시총회를 열었고 유치 반대를 결정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해군은 국방조달시스템을 통해 제주도에서 진행하는 ‘관함식 대행용역’ 입찰공고를 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주민들은 정부에 또 속았다며 들끓었다. 도의회에서도 ‘개최 반대 촉구 결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만큼 반대 여론이 높았다. 청와대에서 직접 나서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강정마을회는 개최 찬성 결론에 다다랐지만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관함식 개최를 앞두고 열린 반대 쪽 집회를 해군 헌병대 병력과 이들이 고용한 민간인들이 방해하면서 10년 묵은 상처를 건드렸다. 주민들의 관함식 반대 여론은 다시 끓어올랐다.
갈등은 문재인 대통령이 해군기지를 방문한 관함식 당일에도 계속됐다. 신고된 반대 집회를 대통령 경호를 이유로 봉쇄하면서다. 이날 문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절차적인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그로 인해서 강정마을 주민들 사이에 또 제주도민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주민공동체가 붕괴되다시피 했다. 그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마을 주민의 간담회가 끝난 다음 경찰 통제는 해소됐지만, 현지에서는 경찰이 경호를 이유로 반대 쪽 의견을 들어야 할 대통령의 귀를 막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사위는 이날 발표에 “2018년 10월 해군기지 정문에서 집회를 준비하던 중 해군이 방해했고, 집회 참가자들이 현장에 있는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방관했다”거나 “(관함식 당일) 신고된 집회를 경찰이 봉쇄했다는 주장에 대해 경찰은 경호 계획에 따라 집회·시위를 제한한 사실이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12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제주해군기지 반대 여론을 주도한 유치반대추진위원회는 “강정의 아름다운 자연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해군기지 관련 자료를 널리 홍보하여 지역민의 선택에 신중을 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립 목적을 밝히고 있다. 문구 그대로 해석하자면 반대추진위의 출범 계기는 해군기지 유치와 결정 과정에서 마을에 존재한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다. 2년 전 은 강정마을 주민 101명을 설문조사해 10년의 잔혹사를 그린 바 있다(제1168호 표지이야기 ‘마을이 깨졌다, 국가가 나서라’ 참조). 당시 강정 주민들은 여전히 마을에서 희망을 찾고 있었다. ‘마을에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주민투표에 참여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77명이 ‘있다’고 답했다. ‘사안에 따라 다르다는 답’(13명)까지 포함하면 90%에 이르는 주민이 여전히 마을의 민주주의를 믿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사위 관계자는 지난해 해군의 관함식 추진 과정에 대해 “마을회를 통해 (반대) 의견을 모으면서 공동체는 활력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정부의 말바꾸기와 집회 방해가 재연되면서 겨우 아물기 시작한 상처를 또 헤집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조사위 발표 이틀 뒤인 5월30일 제주해군기지 반대주민회, 제주해군기지 전국대책회의 등은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정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국정원, 기무사, 해군, 경찰, 해경에 이르기까지 국가 공권력의 이름으로 강정 주민 등에게 행한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즉각적으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제 공은 다시 정부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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