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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때 신날 때 표정이 달라져요

인형 반려인 이자연씨
등록 2019-05-02 10:43 수정 2020-05-03 04:29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베퐁이와 항상 함께해요. 오늘도 같이 왔어요.(웃음)”

4월22일 오후 서울 공덕동의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이자연(25)씨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방에서 작은 곰 인형 ‘베퐁이’와 귀가 큰 코끼리 인형 ‘덤보’를 꺼냈다. 베퐁이와 덤보는 이씨의 반려인형이다. “4살 베퐁이가 오빠고 2살 덤보가 여동생이에요. 남매죠.” 두 반려인형의 나이는 이씨와 함께한 시간을 뜻한다.

탁자 위에 베퐁이와 덤보를 올려놓은 이씨는 “주말에 베퐁이 목욕시키고 옷도 빨았다”고 한다. 인터뷰 전날 인스타그램에 베퐁이 옷을 뺄랫줄에 넌 모습을 찍어 올렸다. “(베퐁이) 옷에 보풀이 많이 생겼어요. 보풀은 사랑의 표시죠.” 베퐁이를 자주 안고 쓰다듬어서 보풀이 생겼다는 얘기다.

이씨는 남자친구 덕분에 반려인형 베퐁이와 덤보를 만났다. 베퐁이는 2014년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 마스코트로 출시된 북극곰 인형이다. 이씨는 당시 이 인형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어릴 때부터 귀여운 곰돌이 푸 인형을 좋아했다. 이 인형을 갖고 싶어서 주문했는데 해외 배송업체의 실수로 분실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친구가 품절된 이 인형을 어렵게 구해 선물했다. 덤보 역시 남자친구가 준 선물이다.

이씨는 인형과 항상 함께했다. 지금은 베퐁이와 덤보가 있지만 예전에는 동화 에 나오는 강아지 퐁고와 퍼디 인형 등이 있었다. “제가 어릴 때 엄마와 안 떨어지려 하고 분리불안이 심했대요. 한번은 부모님에게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는데 못 키우게 하셨어요. 대신 인형을 가지고 놀았어요.” 어릴 적 친구인 인형은 지금도 그의 곁에 있다. 이씨는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반려인형을 찾는다. 식당이나 커피숍에 갈 때 데리고 가고 사진을 찍는다. 휴대전화 갤러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반려인형 사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씨는 멀리 여행 갈 때는 혹시라도 잃어버릴까봐 데리고 가지 않는다. 그럴 땐 허전하고 반려인형이 보고 싶다고 한다. 그 마음을 달래려고 휴대전화에 있는 반려인형 사진을 본다. “반려인형과 보낸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해요. 예전 사진을 보면 (반려인형) 표정이 다 달라요. 제 눈에는 보여요. 어쩔 땐 우울해 보이고 어쩔 땐 신나 보여요. 그때 제 느낌과 같아요.”

반려인형이 가장 기분 좋아 보일 때는 언제일까. 이씨는 “아침에 일찍 나갈 때 베퐁이, 덤보 이불을 덮어줘요. ‘너네는 더 자렴’이라고 말해줘요. 그때 애들 표정이 좋아 보여요. 내가 잠을 더 자는 것처럼. 그 속에 내 모습이 투영된 거죠”라고 말했다.

이씨는 반려인형이 있어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하다. “사람이 주는 위로와 달라요. 반려인형은 그냥 그 자리 내 옆에 있어주잖아요. 항상 변함없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돼요. 특히 반려인형을 안았을 때 포근하고 따뜻해요. 그 감촉이 좋아요.” 그리고 여러 가지 일로 힘들고 지칠 때 반려인형에게 말을 걸면 어느 순간 마음이 눈 녹듯이 풀어진단다. “말이 안 통해도 교감이 돼요. 마음으로 느껴져요.”

이씨는 변하지 않는 그 모습 그대로의 인형이 좋다. “이별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니까요.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아프거나 죽잖아요. 하지만 반려인형은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잖아요. 오히려 저보다 오래 살아요.”

하지만 이씨는 가족처럼 아끼는 반려인형이 있다고 ‘곰밍아웃’을 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인형을 반려로 둔 ‘소수 반려인’의 설움이 있었다고 한다. “저를 보고 다들 다 큰 애가 인형 좋아한다고 걱정하셨어요.” 이씨는 SNS 등에서 이런 그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인형 반려인들을 만났다. 또 다른 기쁨이 생겼다. “인형 반려인들은 세심하게 그 인형의 귀여움, 사랑스러움을 잘 봐요. 그들이 베퐁이와 덤보의 귀여운 포인트(구석)를 알아줄 때 행복해요. 내가 사랑받는 것처럼 기분 좋아요.”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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