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새마을장학금은 완전히 사라질까

41년 만에 전국 최초 ‘새마을장학금 지급 조례’ 폐지시킨 광주 시민들

여전히 다른 시·도에선 시행 중… 전북도의회는 조례폐지안 논의 움직임
등록 2019-03-15 10:31 수정 2020-05-03 04:29
지난 2월19일 광주시의회 회의실 앞에서 새마을장학금 지원 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이를 반대하는 새마을단체 회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19일 광주시의회 회의실 앞에서 새마을장학금 지원 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이를 반대하는 새마을단체 회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비효과를 일으킬까, 찻잔 속 태풍에 그칠까. 광주 시민들이 ‘유신 잔재’ 가운데 하나인 새마을운동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광주시의회는 2월20일 본회의를 열어 ‘광주시 새마을장학금 지급 조례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새마을장학금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시민의 세금으로 별도 예산을 편성해 새마을지도자 자녀들에게만 주는 돈이다.

일반 장학금에 견줘 1인당 2배 지급

다른 단체에선 볼 수 없는 전형적인 특혜 조처로, 새마을단체 회원 확장과 조직 유지에 큰 구실을 하는 돈이다. 1975년 당시 내무부 지침에 따라 각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해 예산을 마련해왔다. 광주시는 1978년부터 시와 5개 구청이 절반씩 부담해 장학금 재원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이번 조례 폐지에 따라 광주시에서는 새마을장학금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새마을장학금이 없어지는 것은 지금까지 광주시가 유일하다.

조례 폐지는 광주 시민단체들의 활약에 힘입었다. 광주의 15개 시민단체들은 2018년 초 ‘새마을장학금 특혜 폐지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를 구성한 뒤 새마을장학금 폐지를 광주시에 요구했다. 시민회의는 “시민의 세금으로 지급하는 새마을장학금이 다른 장학금에 견줘 과도한 특혜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회의가 최근까지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한 자료를 보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빛고을장학금의 경우 2014년부터 5년간 1227명에게 10억4200만원이 지급됐다. 반면 새마을장학금은 같은 기간에 새마을지도자의 자녀 614명에게 9억9100만원을 줬다. 1인당 지급액을 비교하면 새마을장학금(163만원)이 빛고을장학금(84만원)의 2배에 가깝다. 장학금 받을 확률을 비교하면 격차가 더 커진다. 2017년 한 해 동안 새마을지도자 4071명(가구) 가운데 133명이 새마을장학금을 받아 3.3% 확률을 기록한 반면, 광주시 전체 가구(58만9232)를 대상으로 한 빛고을장학금은 229가구가 받아 0.04%로 무려 80배 이상 차이가 났다.

장학금을 중복해 받은 것으로 보이는 사례도 발견됐다. 시민회의가 2014~2017년 새마을장학금 수혜자 572명을 전수조사해보니 같은 기간에 이름이 두 차례 이상 나오는 새마을지도자가 78명이나 됐다. 이국언 시민회의 공동대표는 “78명은 자녀가 모두 장학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된다. 이뿐만 아니라 내리 3년 동안 장학금을 받아간 새마을지도자도 있었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마련한 장학금이 일부 새마을지도자에게 집중 지급되는 불공정한 구조다”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시민회의의 요구에 따라 새마을장학금 조사에 들어갔다. 결국 지난해 8월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는 ‘새마을장학금은 보조금 지원 취지에 어긋나 즉시 폐지해야 한다’고 의결했고, 광주시는 올해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민회의는 새마을장학금 지원 조례 폐지를 요구했다. 어차피 새마을장학금 지원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거라면 유명무실한 조례를 그냥 둘 이유가 없다는 논리로 시의회를 압박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별다른 저항이 없던 새마을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광주시의 조례 폐지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광주 지역 30개 새마을단체는 ‘장학금은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대안 없이 장학금 지원 조례를 폐지하는 것은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새마을단체 눈치 본 여당 시의원들

새마을단체들의 반발은 시의원들의 발목을 잡았다. 광주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22명, 정의당 소속 의원 1명으로 구성됐는데 여당 의원들이 조례 폐지 법안 발의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이국언 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새마을지도자들이 지역 유지에 해당하는 이가 많기 때문에 시의원들이 이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유일한 야당 의원인 장연주 정의당 의원이 총대를 멨다. 장 의원은 민주당에서 뜻을 같이하는 의원 4명의 도움을 받아 새마을장학금 지급 조례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 심의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상임위를 거치는 과정에서 새마을단체들의 반발과 이를 의식한 여당 의원들의 방해로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법안에 비협조적인 시의원들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지역구에서 오랜 기간 새마을회 임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새마을장학금 조례 폐지에 찬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민회의는 이들이 “지방자치법의 겸직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공격했다. 자치단체를 감시해야 하는 시의원이 자치단체로부터 사업비와 운영비를 지원받는 새마을회의 임원을 겸직하는 것은 명백한 ‘이해충돌 방지’ 위반이다. 결국 시의회는 시민들의 뜻에 따라 새마을장학금 조례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광주시의 새마을 관련 예산 문제는 장학금에 그치지 않았다. 시민회의가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한 자료를 분석해보니 광주시와 5개 자치구는 2018년 새마을 예산으로 8억3천여만원을 지원했는데, 이 돈이 새마을운동 취지에 맞게 사업비로 쓰인 것은 2억7천여만원(33%)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장학금과 운영비, 교육비 등 광주시 새마을 회원(1만6269명)들을 위한 비용으로 쓰였다. 더욱이 사업비도 지출 내용을 따져보면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2017년 자료를 보면 새마을지도자대회, 새마을지도자교육, 자원봉사 워크숍 등 새마을단체 회원이 수혜자인 행사에 사업비의 3분의 2가 지출됐다고 한다. 그나마 새마을운동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 ‘내 집 앞 내가 쓸기 청결사업’도 사업비 4천만원 중 70% 이상이 시상금과 밥값 등으로 쓰였다.

새마을 예산을 둘러싼 문제는 비단 광주에 국한된 게 아니다. 새마을운동은 바르게살기운동, 한국자유총연맹과 함께 법률에 근거해 국고 지원을 받는 법정 관변단체다. 하지만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전부와 227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210개가 조례를 제정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새마을운동이 유일하다. 따라서 새마을 예산 감시는 전국적인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장연주 시의원은 “새마을장학금을 비롯한 새마을 예산 문제는 전국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다. 각 지자체의 보조금심의위원회에서 시민들의 세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2월14일 광주 북구청 공무원들이 새마을기를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2월14일 광주 북구청 공무원들이 새마을기를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여전히 돈과 대접을 받는 ‘유신 잔재’

이런 맥락에서 광주의 새마을장학금 지급 조례 폐지는 전국적으로 확산될 폭발력을 갖고 있다. 당장 전북도의회가 새마을장학금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다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북도의회 최영심 의원(정의당)은 “지역주민들에게 새마을장학금 문제를 얘기하면 ‘아직도 그런 게 있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분이 많다. 도의회에서 이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정권이 남긴 유신 잔재 가운데 가장 생명력이 길다. 아직도 새마을기를 태극기와 함께 나란히 다는 관공서가 많은 현실이 이를 상징한다. 광주시는 ‘촛불 정국’이 한창이던 2017년 1월19일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시청사에서 새마을기를 내렸다. 새마을기는 1972년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이하 새마을중앙회)가 정부 기구로 출범한 이후 1973년 당시 내무부에서 게양을 권고했고, 1976년 내무부령으로 게양을 의무화했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대통령 직속기구인 행정쇄신위원회에서 새마을기 다는 것을 각 기관의 자율에 맡겼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1995년 새마을기를 내렸고, 다른 지자체들도 새마을기 달기를 중단했다. 하지만 여전히 태극기 옆에 새마을기를 내건 지자체가 많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와 더불어 성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10월 유신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 도장’으로 삼았다. 겉으로는 ‘근면·자조·협동’을 표방했지만, 새마을운동의 실제 집행은 정부 주도의 권위주의적 대중 동원 방식으로 진행됐다. 농민의 경제력을 무시한 농촌 근대화 사업은 각종 농기계와 텔레비전, 세탁기 등 가전제품 구입 부담을 늘렸다. 주택개량사업도 농민들을 농협 빚더미에 올라앉게 했다. 고속도로 주변의 말끔한 농촌 마을은 새마을운동의 성공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농촌 경제는 안으로 곪았다.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새마을운동의 전성기였던 1970년부터 1980년까지 10년 동안 농가 호당 소득은 26만원에서 270만원으로 10.5배 늘어난 반면, 농가 부채는 1만6천원에서 34만원으로 21배 늘었다.

새마을중앙회는 나 몰라라

새마을운동은 1979년 박정희 정권의 몰락과 함께 쇠퇴기를 맞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세계화 사업으로 변신해 거액의 국고 지원이 재개됐다. 2014년 지구촌 새마을운동 관련 예산이 무려 531억원에 이를 정도였다. ‘새마을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건재를 과시했다. 2018년 예산이 251억원으로 박근혜 정부 말기인 229억원보다 더 늘었다. 원조 대상인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든든한 배경’을 의식한 탓일까. 전국의 새마을운동 단체를 관할하는 새마을중앙회는 광주시의 새마을장학금 지급 조례 폐지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새마을중앙회 관계자는 “각 지회에서 일어난 문제는 중앙회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주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