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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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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엄마가 세상을 바꿔나가죠"

한유총 개원 연기 미리 알고 교육 당국 엄정 대응 요구한

'정치하는 엄마들' 백운희 공동대표 인터뷰
등록 2019-03-09 15:07 수정 2020-05-03 04:29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 도입 등에 반대하며 집단 개학 연기에 나섰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역풍을 맞았다. 한유총은 1995년 설립 이래 아이와 부모들을 볼모로 한 ‘휴원 협박’을 내세워 손쉽게 자기 이익을 관철해왔다. 이번엔 예상치 못한 여론 악화와 교육 당국의 법인 취소,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업자 단체 금지행위 조사라는 호된 철퇴를 맞았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한유총 비판 여론 형성을 주도했다. 한유총이 이른바 ‘개학 연기 투쟁’을 공식화하기도 전, 회원들의 제보로 교육 당국보다 먼저 개원 연기 움직임을 감지하고 교육 당국에 엄정한 대응을 주문하며 발 빠르게 대처했다. 2018년 10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비리 유치원 명단을 공개하며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를 공론화하기 5개월 전, ‘정치하는 엄마들’은 ‘비리 유치원·어린이집 명단 공개 행정소송’으로 공론화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은 3월6일 저녁 백운희 공동대표의 집에서 백 대표를 만나, 한유총 사태와 한국의 유아 보육·교육 문제에 대한 ‘정치하는 엄마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한유총의 무력 시위에 굴복해온 정부2월23일 정기총회에서 김정덕 공동대표와 함께 신임 공동대표로 선출되셨습니다.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0살 아이와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양육자입니다. 사회적으로는 2014년까지 지역 일간지 기자로 일했던 경력단절여성입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고, 거창한 시민 활동이나 정치 활동이 아니라 일상의 활동가를 꿈꾸며, 누구나 활동가가 될 수 있는 ‘나도 활동가’를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3월5일 기자회견에서 한유총과 소속 유치원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공정거래법과 유아교육법·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셨는데요.

3월5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냈습니다. 2월25일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서 있었던 한유총 집회와 개원 연기 집단행동은 사업자 단체의 부당한 공동행위를 금지한 공정거래법 제26조 위반이고요, 이런 행위는 유아교육법 제32조와 아동복지법 제3조에서 규정하는 아동학대 범죄입니다. 한유총은 준법 투쟁이라고 말하지만, 개학을 연기한 것은 명백한 교육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교육 당국에 한유총과 물밑 협상하지 말고 ‘유아교육 정상화’를 하라고 주문하셨습니다. 당장 한유총을 달래 개원에 차질 없게 하는 것보다 이번 기회에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신 것인데요, ‘유아교육 정상화’란 무엇입니까.

우리 단체뿐만 아니라 현재 양육을 하지 않는 시민들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임계점을 넘었음’을 확인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사립유치원 비리인데, 사실 크든 작든 사립유치원 비리는 우리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간 ‘내 아이가 피해 볼까봐’ 문제제기를 못했던 것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동체의 요구가 있었고, 그 처방이 에듀파인 도입이었습니다. 최소한의 처방도 받아들이지 않는 한유총과는 당초 협상이 불가능했습니다. 한유총의 무력 시위는 한두 해 일이 아닌데, 정부가 무력 시위에 굴복해 협상해서는 안 될 문제까지 협상해주니까 한유총이 몸집을 불릴 수 있었던 거고요. 이것에 여론이 교육 당국에 ‘더 이상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준 것입니다.

유아교육 정상화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면 됩니다.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춰서 제대로 돌봄이 이뤄지게 하면, 피로에 지친 교사들의 아동학대 문제도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표준보육료를 만들어 부모부담금 등 ‘근거’를 제시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양육자들은 뭔가 기준이 있어서 부모부담금을 낸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보니 유치원에서 자기들 받고 싶은 대로 받는 게 부모부담금이었습니다.

현재 1700원 정도인 유치원 급식비 단가도 현실화해야 합니다. 비리 유치원에서는 심지어 1700원의 일부를 원장이 빼돌립니다. 한창 자라야 할 시기에 그 영양 결핍이 초래할 결과가 두렵습니다. 금요일마다 김치볶음밥이든 야채볶음밥이든 어떤 형태로든 볶음밥이 나오는 유치원이 있습니다. 식재료를 소진하려는 건데, 학부모운영위원회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떻게 식재료를 사고 처리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급식표를 보면 간식으로 사과를 준다는데, 사과 하나를 주는 건지 10분의 1쪽을 주는 건지 알 수가 없고요.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낸 ‘자영업자’ 마인드‘정치하는 엄마들’은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행정소송 등 유아교육 문제 중에서도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에 주목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여러 유아교육 관련 문제 중에서 무엇보다 비리 문제가 중요하다고 보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사립유치원 비리는 ‘돈을 써야 하는 곳에 안 썼다’는 얘기입니다. 아이들의 안전, 건강과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원장들이 시설 보수나 관리비를 빼내 다른 데 쓴다면 위험이 누적되겠지요. 급식비를 빼내 착복한다면 아이들이 그만큼 먹을 것을 먹지 못했다는 얘기일 테고요. 비리는 아이들의 권리침해와 직결됩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아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가장 약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영역에서부터 비리가 시작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마지노선이 무너진 거라 생각합니다.

한국은 등록 원아 수 대비 사립유치원 비율이 현저히 높습니다. 국공립유치원 수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국공립은 일찍 하원하고 대부분 셔틀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 등 맞벌이 부부가 자녀를 보내려야 보낼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립유치원은 부모부담금이 많으니 아이들을 더 잘 보호하리라는 심리도 사립유치원 선호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데, 사립유치원 비리는 ‘내 아이가 좋은 것 먹고 잘 지낼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비리를 용납해서는 안 되고, 비리 유치원 명단을 공개해야 부모들이 알고 피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무조정실은 양육자들의 권리보다 사립유치원의 영업권을 더 존중하면서, 행정감사 적발 유치원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행정소송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한유총 전성하 정책위원이 “(유치원 폐원시 학부모 3분의 2 동의를 받도록 한 유아교육법 시행령은) 치킨집 사장이 치킨집을 하지 않을 때 종업원 3분의 2에게 동의를 받아오라는 것과 똑같다”고 유치원을 치킨집에 빗대 집중포화를 맞았습니다. 유치원을 치킨집에 비유한 교육자를 보며 양육자로서 어떤 심정이신가요.

사실 저는 처음에 ‘치킨집 비하’라고 생각했습니다. 치킨집이 왜 그분들 입에 오르내려야 하나요? 그리고 어떻게 유치원 학부모를 치킨집 종업원에 빗댈 수가 있나요? 한유총의 교육철학 부재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교육자인데 너무 노골적인 자영업자 마인드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당당하게 밝히는 걸 보고 새삼 놀랐습니다. ‘저런 분들이 가르치는 곳에 아이를 보내야 하나…’ 많은 양육자가 참담하다고 하십니다.

한유총이 사유재산 운운하는데, 교육 시설로 인허가를 받았고, 교육 시설이라 각종 세제 혜택에 정부 지원까지 받습니다. 부모들은 부모부담금까지 내죠. 에듀파인은 학부모 부담금을 목적에 맞게 써라, 급식비는 급식에 교육비는 교육비에 쓰라는 겁니다. 그것도 못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자영업자냐 교육자냐를 떠나 상식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보노보노’와 성차별 콘텐츠 아카이빙한유총의 집단 개학 연기 사태만 놓고 본다면 여론에서도 한유총이 완패했고, 굳이 교육 당국을 비판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국의 영유아 보육과 교육 문제는, 그동안 국가 책임의 상당 부분을 시장과 부모에 떠넘겼던 정부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지 않을까요.

지금은 한유총 문제가 워낙 커서 정부 책임 부분이 가려졌고, 이번에 교육 당국이 예상외로 엄정하게 대응하면서 본인들 실책을 만회한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사립유치원 태동이 그랬고, 늘어나는 유아교육 수요에 정부가 부응하지 못하고 사립유치원과 양육자에게 떠넘긴 책임이 분명히 있습니다. ‘시장’에 맡겼으면 감시라도 잘해야 했는데, 감시마저 놀랄 만큼 허술했지요. 저희가 행정소송을 하면서 살펴보니 지역 교육청에 감사 권한이 있는데, 지역마다 감사 기간·감사 항목·공개 여부까지 다 달랐습니다. 균일한 기준조차 없이 방치돼왔다는 게 충격적이었습니다.

한유총이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흐름을 계속 무산시켜온 역사가 있습니다. 2017년 서울교육청 공청회 때 저희가 아이들을 데리고 갔는데, 한유총 소속 500여 명이 공청회장을 점거하고 교육 당국자와 저희에게 막말을 퍼부었습니다. 아이들 보는 앞에서 저희에게도 ‘젊은것들은 집에 가서 애나 키우라’고 멱살잡이하듯 막아서고 그랬습니다. 저희는 그들의 민낯을 너무 많이 봐서 비리 유치원 명단에 주목한 것인데, 교육부는 한유총의 속성을 잘 알았기 때문에 더 건드리지 못하고 방치했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불법 후원금을 받고 한유총을 비호한 국회의원과 정치권이 있고요.

‘정치하는 엄마들’은 2017년 6월11일 직접 정치에 참여해 성평등 육아 환경을 만들고자 창립됐습니다. 사립유치원 문제 외에 ‘정치하는 엄마들’이 집중하실 다른 주제, 이슈가 있을까요.

우리 단체의 핵심이지만, 소기의 성과 내기조차 어려웠던 것이 있어요. 저는 ‘보노보노’라고 하는데, 보육노동보육노동! 문제는 보육노동입니다.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노동 여건이 개선돼야 양육자에게 양육 시간이 생겨요. 보육 문제는 노동문제로 풀어야 한다는 게 저희의 핵심인데, 만만치 않은 문제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 장벽, 질 낮은 저임금 일자리, 경력단절도 결국은 보육과 연결돼요. 지난해 회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처음엔 80%가 정규직이었다가 출산 뒤엔 그 비율이 30%도 안 되더라고요. 통계로는 다 알지만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사연들, 저희는 그 사연을 알기 때문에 굉장히 슬픈 현실로 통감했고요, 보노보노 활동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올 한 해 아름다운재단에서 사업비를 받아 ‘집단지성의 힘’으로 미디어의 성차별 콘텐츠, 혐오 콘텐츠 아카이빙 작업을 하게 됩니다. 창조하고 경쟁하는 역할은 남자아이, 시기하고 질투하는 역할은 여자아이, 핑크와 가사 돌봄은 여성의 역할로 규정하는 미디어의 고정된 성별화에 각성을 촉구할 예정입니다. 미디어에서 다양한 가족 유형과 인종, 장애인을 표현하지 않는 문제도 지적할 거고요. 출발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저희 미디어 감시팀이 진행한 교육방송 모니터링이었어요. 가령 도 문제가 많았는데, 여성 캐릭터인 루피는 맨날 다른 아이들을 돌보고 밥하고, 잘 울고 감정적인 캐릭터로 등장했죠.

‘정치는 일상이구나’ 깨달아야
장하나 활동가(전 공동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등 ‘정치하는 엄마들’ 관계자들이 3월5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소속 유치원을 고발하기 위해 서울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장하나 활동가(전 공동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등 ‘정치하는 엄마들’ 관계자들이 3월5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소속 유치원을 고발하기 위해 서울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회원은 몇 명이고, 어떤 분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계신가요.

회원은 1700명 정도 되고, 후원금을 내고 의결권을 갖는 권리회원은 800여 명 정도예요. 지난해 10월 비리 유치원 명단이 공개되면서 활동이 부각돼 회원이 굉장히 많이 늘었지요. 아무래도 30~40대 양육자가 많은데 50~60대도 계시고, 비혼 이모·삼촌도 있어요. ‘엄마’는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책임감을 가지고 돌봄을 수행하는 모든 주체가 다 엄마입니다.

‘정치하는 엄마들’ 창립 때부터 거듭 밝혀온 문제라 새삼스러울 수 있을 텐데요, 끝으로 다시 한번만, 양육자의 직접 정치 참여가 왜 중요한지 설명해주세요.

양육자가 됨으로써 한 사회의 모든 부조리에 눈뜨게 됩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교육 외에 도시, 부동산, 건강, 교통 등 모든 정책이 망라되어야 하니까요. 사실 부조리를 보고서도 문제제기를 하면 ‘예민한 엄마’로 비칠까봐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유독 결속력이 뛰어난 게, 그동안 까칠하고 예민하다고 핀잔을 듣다가 서로에게 지지 세력, 동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민함은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고, 예민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나가죠. 저희는 말합니다. 충분히 예민하셔도 됩니다!

부조리를 바꾸려면 정책을 바꿔야 하고, 정책은 정치예요. ‘정치는 일상이구나’ 깨달아야 합니다. 가령 유치원 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은 너무 당연하고 상식적인 법안인데, 자유한국당 반대로 통과를 못 시켰어요. 꼭 자유한국당만이 아니라, 국회의원 구성을 보면 양육자를 대변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성별, 연령대도 그렇고 국회의원 상당수는 부유하기 때문에 양육의 어려움을 돈으로 수월하게 해결하며 살았을 가능성도 큽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당사자만큼 대변할 수 없고 현실적으로 관심이 없습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우리는 정치한다”고 계속 이야기합니다. 감시 활동뿐만 아니라 회원들이 지방선거나 총선에 직접 나서는 것도 포함됩니다. 나서고 도전해서 당선이 되고, 엄마들이 세력화할 수 있다면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를 응원하는 분들 중에 “깨끗하게 시민단체로만 남아주세요”라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 시민단체가 하는 일도 정치입니다. 왜 인식이 정치와 시민운동을 분리하는 데 머물러야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궁극적으로 정치는 혐오나 불신의 대상이 아니고 ‘누구나 해야 하는 일’입니다.

백 대표의 초등학생 딸은 조용한 인터뷰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아빠와 함께 방문을 걸어 잠갔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너무 답답해”라고 한소리를 하며 총총 뛰쳐나와 인터뷰 테이블 위에 놓인 포도를 한알 두알 떼어다 먹었다. 딸의 눈과 입은 무심한 듯 포도를 담고 있었지만, 두 귀는 ‘쫑긋’ ‘팔랑’ 엄마의 정치 이야기로 향해 있는 걸 느꼈다면 손님이 너무 ‘예민’했던 걸까?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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