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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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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촌은 이제 입주자 회의를 하는 마을이 되었다

‘환경 파괴’ 제주제2공항을 반대하는

농성자들을 기습 진압한 제주도청
등록 2019-01-19 15:16 수정 2020-05-03 04:29
제주도청은 수 백명의 공무원을 동원해 1월8일 제2공항을 반대하는 도민들을 진압했다. 계단 위에 찢어진 채 놓인 팻말들.

제주도청은 수 백명의 공무원을 동원해 1월8일 제2공항을 반대하는 도민들을 진압했다. 계단 위에 찢어진 채 놓인 팻말들.

20일째 아침에 쓴다. 여기는 제주도청 앞 천막촌이다. 국토교통부 제2공항 기본 계획 중단을 요구하려고 도청 앞으로 왔다. 제주 제2공항을 반대하며 무기한 단식 열흘째인 성산 주민 곁에 천막을 쳤다. 그 과정에서 도청 현관 계단을 점거하게 됐다. 공권력의 탄압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미 천막과 사람들을 한 차례 공권력이 강제로 철거했다.

그러나 바로 그 밤에 천막은 다시 세워졌고 도청 계단에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렇게 제주도청 앞에 마을이 생겼다. 제주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에 당사자임을 자처하며 시민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사람들의 천막이 늘어나고 있다. 이 광경은 예사롭지 않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사건으로서 제2공항의 해결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존 질서가 만든 현재의 문제에 저항하는 눈높이를 가지고 이곳에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조율 한번 해주세요”

1월3일이었다. 국토부가 기습적으로 제2공항 기본 계획 용역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용역은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맡았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입지 선정 타당성을 재조사하면서 사실상 중단됐던 관련 절차가 6개월 만에 재개된 것이다. 도청 바로 앞에서 제2공항 문제로 천막농성 중이던 우리에게 그 소식은 말 그대로 날벼락이었다. 그마저 며칠 지나 언론을 통해 늦게 알게 된 사람들은 도청 계단에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계단에 앉자 건장한 도청 공무원들이 달려와 에워쌌다. 그리고 무릎으로 계단에 앉은 사람의 등을 내리찍었다. 비명에 놀란 사람들이 항의하며 함께 앉았다. 계단에 앉은 사람들은 그 밤이 다 가도록 계단을 떠나지 못했다.

사실 이 계단에 닿기까지 한 번도 이긴 적 없는 몸싸움이 있었다. 이 계단에 앉는 일이 대체 무어라고, 우리는 여태 한 번도 이 계단에 닿을 수 없었다. 그동안 1인시위자들을 포함해 어떤 구호도 도청 안에 들어올 수 없었다. 제주도청은 1인시위자들의 자리를 일방적으로 정해주고 눈에 띄지 않는 바깥으로 내쫓았다. 질문하는 시민의 존재는 도청 문 밖에서만 허용됐다. 그날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시민들이 계단에 앉았을 뿐인데 도청은 허둥댔다. 무릎담요 한 장도 허락하지 않았다. 음식물도 못 넣게 막았다. 공중으로 음식을 던져 받아먹는 일이 시작됐다. 그렇게 팽팽한 나흘이 흘렀다.

진압은 도청 출입문을 100여 명이 여러 겹으로 막는 것으로 시작됐다. 계단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포위돼 밖에선 보이지도 않았다.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이 계단을 떠나면 천막도 철거하지 않겠다는 협상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천막 철거를 우리 손에 맡기는 공공의 행태에 응답하지 않았다. 추운 날 배고픔에 떨며 밖에서 던져준 김밥을 다 먹기도 전에 진압이 시작됐다. 입안에 든 김밥을 삼키며 누군가 시작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그렇게 팔다리가 들려 누군가는 치마가 올라가고, 겹쳐 입은 옷 네 겹이 다 벗겨지고, 떨어져 머릴 다친 채로 내동댕이쳐졌다.

이른 아침에 시작한 행정대집행은 끝날 줄을 몰랐다. 사람들이 다시 그 계단으로 달려가고, 달려가고, 달려갔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제주 공권력은 시민의 도전을 거의 받지 않았다. 오늘 이 광경은 단일한 사건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참아온 분노가 축적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 밤, 많은 시민이 모여들었다. 천막을 다시 세웠다. 작은 텐트가 몇 개 들어섰다. 계단에서 웅크린 밤샘이 다시 시작됐다. 비가 내렸다. 1인용 텐트 안에서 추운 것이 귀찮아 꾹 참아낸 아침이 밝았다. 천막이 또 늘었다. 그렇게 하루에 한두 개씩 날마다 늘어났고, 이제 날마다 입주자회의를 하는 마을이 되었다.

노루 가족이 지나는 길을 관통하는 도로

제주도청은 이미 행정대집행 전날 계단에 앉은 사람들을 고소했다. 계단에 앉은 사람들은 그 ‘법대로’라는 폭력 구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제 여기 이 사람들은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이들은 지금 일어나는 광경의 원인을 질문하고 있다. 행정대집행 바로 다음날, 제주도지사 원희룡은 보란 듯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계단에 앉은 이 사람들 한가운데를 관통해 들어갔다. 팻말을 밟아 빠개고, 먹던 음식도 밟고, 사람을 떼어내고, 광경을 동강 낸 원희룡 지사의 행동은 섬뜩할 만큼 상징적이었다.

원희룡 지사는 도청 공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도청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여긴 도민들이 이용하는 도청입니다. 절대 길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라고도 했다. 계단에 앉은 사람들은 절박하게 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도발하는 존재다. 감히 제주도청(관청) 현관 계단에 앉았으니 당연하게 ‘불온한 자들’이다.

제주도청에 천막을 세우기 전날, 비자림로 나무가 베어진 숲에 갔다. 2월에 공사를 다시 한다고 했다. 그 숲에서 아름답고 빨간 줄이 죽음을 암시하며 어떤 세계를 동강 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나무는 얼마 전에 죽었고, 어떤 나무는 곧 죽어야 하며, 어떤 나무는 친구의 죽음을 보며 살아남을 것이다. 비자림로 나무들 사이로 두 개의 펼침막이 나란히 있었다. 하나는 “도로 확장은 지역 발전. 사람이 먼저다”였고, 다른 펼침막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살려주세요.”

산록길로 오다가 노루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였다. 차를 멈추고 라이트를 껐다. 노루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어린 노루 몇 마리가 안전하게 건너편 숲으로 들어갔다. 노루가 무사히 길을 건넌 뒤에야 알았다. 노루가 길을 가로질러 갔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산을 가로질러 도로를 냈다는 것을. 가느다란 빨간 선을 허리에 감은 나무를 보며 깨달았다. 우리의 처지가 이 나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무는 인간의 욕망으로 한날한시에 이곳에 왔다가, 다시 인간의 욕망으로 한날한시에 죽었다. 그렇게 사라진 생명은 셀 수도, 헤아릴 수조차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에게 기회는 없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경험하지 못했다. 권력이 편안하게 지도에 그림을 그릴 때, 우리 삶은 통째로 요동쳤고, 우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무시됐다. 우리는 작전 대상이었지 논의할 주체가 아니었다. 개발로 얻어지는 재벌 이익보다 열등한 존재였고, 희생 시스템에 결국 굴복하고 말 하찮은 존재였다.

이곳에서 ‘당사자’란 ‘폭도’들의 이름

이곳에서 ‘당사자’란 말은 역사성을 박탈당하고 권력에 의해 절대적 타자로 전락했던, 그리하여 진압당해 마땅한 바로 그 ‘폭도’들의 이름이다. 우리는 저마다 생생한 얼굴로 자신의 분노를 말하고 자유롭게 싸우고 있다. 공권력은 물론 다수의 시민에게도 동의받지 못한 관청 점거는, 그래서 중요하다.

나는 저 계단에서 제주의 새로운 정치 언어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부당한 공권력에 분노한 얼굴들로 빼앗긴 것을 찾겠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실험실, 아시아의 군사 요충지, 소모형 관광지, 토호 정치의 텃밭으로 전락한 제주도 주민으로 이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학살의 당사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천막촌 너머 밤은 더욱 춥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제주=글·사진 엄문희 제주도청 앞 천막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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