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 뒤편에서 논의 과정을 끝까지 지켜봤던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50)씨는 “너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었다고, 엄마가 가서 얘기해줄게”라며 울먹거렸다. 이어 어머니는 “아들한테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 수 있는 면목이 생겨 고맙다”며 “온 국민이 함께해주셔서 제가 이렇게 힘을 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이튿날인 12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은 유가족을 만나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책임 있는 답변이 가능할 때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만남 제의를 미뤘다. 대신 어머니는 12월29일 파인텍 노동자가 굴뚝 농성을 하는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열린 ‘굴뚝 농성 408+413일 굴뚝으로 가는 희망버스’ 문화제에 참석했다. 이어 1월2일 인천출입국·외국인청 단속 과정에서 숨진 미얀마(버마) 출신 이주노동자 탄저테이의 아버지를 만났다. 1월8일에는 살인, 산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을 고소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었다.
1월9일 오후 3시께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와 아버지, 이모를 만났다. 어머니는 인터뷰에서 “아들에게 조금은 할 말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날은 김용균씨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운송 설비를 점검하다가 이튿날 새벽 3시23분께 석탄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아들에게 조금은 할 말이 생겼지만…”지난해 12월11일 김용균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먼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김용균씨 유가족을 찾았다. 정부 당국의 단속 과정에서 숨진 미얀마 이주노동자 탄저테이의 아버지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김용균씨 분향소에 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어머니를 만났다.
“용균이는 제게 햇빛 같았어요. 어느 보물보다 소중한 보물이었죠. 세상 전부였어요. 그런 용균이가 처참하게 죽었어요. 한이 깊어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제가 가만히 있으면 용균이의 한도 풀지 못하고, 용균이 동료들도 계속 죽어나갈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아들의 죽음 이후 어머니가 현장에서 직면한 사회는 슬프고 참혹했다. 굴뚝 농성 현장에서 어머니는 왜 파인텍 노동자들이 75m 굴뚝에 올라가 공장 정상화와 단체협약 이행 등을 요구하게 됐는지 들었다. “많은 사람이 힘겹게 싸우는 걸 국민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저도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모든 일이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어머니는 광화문광장 분향소에서 탄저테이 아버지가 아들의 장기를 한국인 4명에게 기증하기로 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타국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와 그 나라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서로를 위로했다.
아들의 죽음 이후 현장에서 만났던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어머니, 제주의 한 생수 제조업체에서 현장 실습 중 사고로 숨진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등은 김용균씨 어머니보다 먼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다. 어머니는 “다른 유가족에게 큰 도움을 받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만날 생각이에요. 아들을 잃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앞일이 걱정되고 암담했어요. 다른 유가족과 함께 살아남은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싶어요”라고 했다.
이르면 1월11일 특별근로감독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김용균씨의 사망 사고를 계기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정작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와 유가족 쪽이 요청했던 김용균씨 동료인 현장 노동자나 전문가는 특별근로감독에서 배제됐다. 어머니는 “사고 현장에서 뭐가 문제였는지, 무엇이 얼마나 위험한지 판단할 수 있는 용균이 동료들이나 전문가들도 특별근로감독에 참여해야 합니다. 사고 원인을 제대로 조사해야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면 하려 했던 김용균씨의 장례도 한 달이 다 되도록 치르지 못했다. 1월4일 유가족은 고용노동부 보령고용노동지청을 찾아 한국서부발전의 작업 재개 시도를 막아서기도 했다. 한국서부발전이 사망 사고가 난 뒤 작업을 중지한 9~10호기의 석탄 저장 창고(옥내 저탄장) 부분 작업 재개 허가를 고용노동부에 요청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어머니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1~8호기도 작업을 멈추고 환경을 개선하라고 요구해왔어요. 그런데 그사이 한국서부발전은 화재 위험이 있다는 핑계로 안전 대책도 없이 사고가 난 9~10호기를 다시 돌리려 했어요”라고 했다.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어 장례를 치를 수 없어요. 아들이 누명 벗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떠났으면 좋겠어요.”
시민대책위와 유가족이 요구하는 진상 규명은 단순히 사고 원인 조사가 아니다. 정부 부처인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가 모두 참여하는 수준의 진상조사위 구성을 요구했다. 조성애 시민대책위 진상조사위 팀장은 과 한 통화에서 “발전 산업이 왜 민영화·외주화됐는지, 원·하청 구조 속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2인1조 근무라는 안전 수칙이 어떻게 지켜지지 않았는지 구조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진상조사위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려면 관련 부처들을 총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들이 꿨던 정규직 꿈, 다른 비정규직이라도어머니도 한때 ‘평범한 어머니’였다. 아들에게 ‘똑바로만 살라’고 당부하던 부모였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었다. 어머니는 ‘살인’이라고 했다. “천재지변으로 아들이 죽은 게 아니에요. 기업이 잘못했고, 정부가 그 길을 터줬어요. 살인이에요. 그런 살인이 무수히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제가 나선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래도 제가 최선을 다한다면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서 싸움을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
김용균씨 어머니는 투사의 이름이 됐다. 어머니는 1월5일 열린 3차 범국민 추모제에서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구호를 거듭 외쳤다. 아들의 죽음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제때 추진됐다면 막을 수 있던 사고였다. “아들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고 현실을 직시할 겁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멈추지 않을 겁니다.”
아들을 잃고 나서야 어머니가 알게 된 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비참했다. “사고 현장을 직접 보고 기가 막혔어요. 일이 너무 험했어요. 용균이는 밤낮으로 혼자 일하고 헤맸어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어요. 교육받은 지 3일 만에 현장에 투입됐죠. 용균이가 어두운 곳에서 혼자 일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팠고 원한은 더 깊어졌어요. 아들을 처참하게 찢어 죽였으니 제가 더 나서는 겁니다.”
어머니와 시민대책위는 발전 5사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면 정규직화하거나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다. 박준선 시민대책위 상황실장은 과 한 통화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정부가 발표한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여태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의 요구는 상식적인 거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를 직접 고용하겠다던 가이드라인을 정부가 지키라는 거다”라고 했다.
제2의 김용균들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어머니는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을 뒤로 미뤘다. 말뿐인 위로가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위로를 원해서다. “위로 차원에서 대통령과 만나는 거라면 만나지 않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면 ‘이 일이 어느 정도 끝났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어머니는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등이 제대로 이뤄졌을 때 대통령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말뿐인 약속은 믿을 수가 없어요. 국민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진상조사위 구성을 원합니다. 강력한 책임자 처벌도 해주길 바랍니다. 대통령을 만난다면 아들의 바람대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돼 서민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나서도 경기도 화성의 한 공장에서 20대 현장 노동자가 자동문을 설치하다가 숨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어머니는 재차 외쳤다. “예상했던 사고예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우리가 모두 나서지 않는다면 이런 사고는 계속 이어질 것은 뻔한 사실이에요. 당장 내 자식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어느 순간 내 자식이 당할 수도 있는 조건입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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