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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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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할 자유’ 달라는 오제세법

‘오세제법’ 통과되면 기관장이 요양보호사 인건비 빼돌려도 처벌 힘들어

요양기관 3분의 2 차지하는 재가기관 ‘수십억 투자’ 주장 꼼수도 과장
등록 2018-11-24 15:37 수정 2020-05-03 04:29
오제세법을 반대하는 김미숙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위원장.  변지민 기자

오제세법을 반대하는 김미숙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위원장. 변지민 기자

“요양 비리 양산하는 ‘오제세법’ 반대한다!”

10여 명이 무대로 뛰어올라 펼침막을 들고 소리를 지른다. 무대를 지켜보던 수백 명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입에서는 험한 말이 튀어나온다.

“나가!” “입 닥쳐!” “니들이 뭘 알아!”

11월14일 오제세(69)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민간장기요양기관의 장기발전을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는 시작 직후 난장판이 됐다. 법을 바꿔 수익을 높이려는 민간장기요양기관장들과 자신의 임금을 지키려는 요양보호사들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국가가 민간에 복지제도를 위탁한 대가로 나타나는 갈등의 한 대목이다. 박용진(47)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의 파장이 민간어린이집을 넘어 이제 민간장기요양기관까지 도달했다. 그 중심에는 ‘오제세법’이 있다.

머리는 공공성, 손발은 영리 추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정부가 65살이상 노인이나 치매·중풍·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병을 겪는 이들에게 신체 활동과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를 해주는 사회보험이다. 2008년 처음 시작했고 비용은 국민건강보험과 정부지원금으로 대부분 충당하며 15~20%는 본인이 부담한다(저소득층은 본인 부담금이 절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무료). 보험료 대부분은 요양보호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의 인건비로 쓰이며 이들이 노인들을 간호하고 목욕시키고 돌본다.

이 제도는 국가에서 설계해 나랏돈이 들어가는 공적 서비스다. 그런데 운영 주체인 노인장기요양기관(이하 요양기관)은 99% 민간에서 소유하고 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보다 국공립 비율이 매우 낮다. 국가에서 운영할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제도를 급하게 시행하려다보니 민간의 자금과 인력을 끌어쓴 것이다.

게다가 이 서비스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고령화로 수급자가 급증해서다. 2017년 말 기준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는 62만6504명, 요양기관은 2만377개다. 유치원(학생 67만5998명)보다 조금 적은 규모다. 수급자는 2020년 75만 명, 2030년 100만 명, 2050년 278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공(사회보험)과 사(영리 추구)가 뒤섞인 구조, 폭풍 성장, 제도의 미비는 각종 비리를 불렀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 요양기관 727곳을 조사한 결과, 94.4%가 요양급여를 부당하게 청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기도 성남의 한 요양기관은 고가의 벤츠 승용차를 임대한 뒤 보증금 5171만원과 월 사용료 328만원, 차량 보험료와 유류비 등을 요양원 운영비에서 충당했다.

‘요양 비리’ 막는 재무·회계규칙 무력화 시도
11월14일 국회에서 열린 ‘오제세법’ 관련 토론회에서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 펼침막을 들고 토론회 진행을 막아선 모습. 변지민 기자

11월14일 국회에서 열린 ‘오제세법’ 관련 토론회에서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 펼침막을 들고 토론회 진행을 막아선 모습. 변지민 기자

요양기관 비리를 막기 위해 2011·2016년 차례로 법 개정이 이뤄졌다. 요양기관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재무·회계 규칙을 따르도록 한 것이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요양급여에서 일정 비율을 직원 인건비로 쓰도록 의무화하고, 회계 내용을 온라인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덕분에 투명성이 강화됐다.

2018년 5월부터 ‘민간재가(在家)장기요양기관’(이하 재가기관)에 대한 재무·회계 규칙이 적용됐다. 요양기관은 크게 시설과 재가기관으로 구분된다. 시설은 노인 여러 명을 한 장소에 모아 관리하고, 재가기관은 각 가정에 머물고 있는 노인에게 요양보호사를 파견해 도움을 준다. 재가기관은 전체 수급자의 66%(41만7494명)를 담당해 시설보다 규모가 두 배 크다.

재가기관에 대한 첫 결산보고서 제출이 2019년 3월 이뤄질 예정이다. 재가기관장들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전국민간장기요양기관총연합회(회원 1만5천 명)는 대체입법추진본부를 만들어 오제세법 입법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오제세법은 앞에서 말한 재무·회계 규칙을 무력화하는 새로운 법이다. 요양기관에 “상법에 따른 회계 원칙을 준수하도록 해” 적극적인 영리 추구를 할 수 있도록 한다. 회계 투명성은 악화된다. 정식 명칭은 ‘사회복지사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시설 관련)’과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일부개정 법률안(재가기관 관련)’으로 오 의원이 7월12일 대표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오 의원(4선), 변재일 의원(4선)과 유은혜 교육부 장관, 바른미래당 박주선 의원(4선),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4선)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중진 의원들이 발의자에 이름을 올렸다.

11월14일 국회 토론회에는 500여 명의 요양기관장들이 오제세법을 응원하기 위해 참석했다. 세미나실이 가득 차 바닥에 앉지도 못하고 문밖에 서 있는 기관장도 여럿 있을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 오 의원이 “재무·회계 규칙 개정으로 민간장기요양기관이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윤일규(더불어민주당), 김순례·이명수(자유한국당) 의원도 환호성을 받았다. 이 토론회를 무산시키려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펼침막을 들고 소리를 질렀지만, 토론회를 1시간 연기시켰을 뿐이다.

법으로 정한 인건비 비율 폐지 요구

“수십억원의 사유재산을 투자했는데, 투자 수익은커녕 이자도 못 갚는다.”

오제세법을 추진하는 쪽에서 내세우는 논리다. 사립유치원이나 민간어린이집 원장들이 입이 닳도록 주장하는 내용과 똑같다. 요양기관을 세울 때 상당한 사유재산이 투자됐으니 지나친 규제(재무·회계 규칙)로 옥죄지 말고 자유롭게 영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풀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에도 일리 있는 부분은 있지만 시설 투자 원금과 이자는 요양급여로 갚을 수 있다. 또한 비영리 사회복지시설로 등록돼 국가보조금 지급, 소득세·법인세 등에서 각종 면세·감세 혜택을 받는다. 후원금(기부금) 사용도 편리하다. 이미 투자 수익을 일정 부분 가져가는 셈이다.

한편 재가기관은 투자액이 그리 크지 않다. 노인들이 머물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재가기관의 서비스는 방문 요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방문 목욕, 방문 간호, 주야간 보호, 단기 보호 등이 있다. 방문요양기관의 경우 기관장과 사회복지사가 업무를 볼 작은 사무실 하나만 임대하면 된다. 대부분 공인중개사 사무실만 한 크기다. 임대료도 요양급여에서 낼 수 있어 실제 사유재산 투자는 간판, 컴퓨터, 의자, 책상 등 최대 1천만원 수준의 인테리어 비용과 임대보증금뿐이다.

요양보호사 파견업이다보니 당연히 인건비가 전체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재무·회계 규칙은 방문요양기관에 제공되는 요양급여에서 요양보호사 등 인건비 비율을 86.4%로 맞출 것을 의무화한다. 나머지 13.6%에서 임대료, 공과금 등을 내고 기관장 수익으로 돌리도록 했다.

기관장들은 인건비 비율을 낮추거나 아예 없애서 수익을 키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은근슬쩍 ‘시설 투자금 수십억원’ 이야기를 뒤섞는 경우도 있다. 수십억원이나 투자했고 정부보조금도 받지 않으며 영세해서 먹고살기 힘든데 정부가 과도하게 규제한다며 사실관계를 뒤섞는 식이다. 국민과 언론이 요양기관의 종류를 잘 모르는 점을 이용해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꼼수다.

보호사 인건비 빼돌리는 기관장도
11월22일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투쟁 선포식을 하는 모습. 한겨레 김명진 기자

11월22일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투쟁 선포식을 하는 모습. 한겨레 김명진 기자

오제세 의원도 이런 혼동에 일조하고 있다. 그는 10월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복지부 장관에게 “민간에게 사설로 요양기관을 설치하도록 해놓고 (중략) 예를 들어 20억원을 투자했을 때 수익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투자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발언했다. 10월29일 국정감사에서도 박 장관에게 “개인이 재산을 10억, 20억을 투자했는데”라며 재차 추궁했다. 대체입법추진본부는 이 발언을 그대로 자료집에 실어 오제세법을 통과시켜야 할 이유로 소개하고 있다.

오제세법이 통과하면 기관장들이 요양보호사 몫으로 책정된 인건비를 합법적으로 횡령할 수 있게 된다. 인건비 비율 의무화 조항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부 기관장들은 정부가 요양보호사에게 전하라고 지급한 돈을 상당 부분 빼돌려왔다. 복지부가 3월부터 4월까지 전국 768개 요양기관을 점검해 8월10일 제2차 장기요양위원회에 안건으로 제출한 현지 조사 자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정부에서 책정한 인건비 기준대로라면 요양보호사들은 월평균 186만원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163만원을 받는다. 기준보다 12.2% 적게 받는다는 뜻이다. 사회복지사(8.9%), 물리·작업치료사(7.9%), 간호·조무사(2.1%) 등도 정부 기준보다 실제 인건비가 낮다.

그 차액은 주로 시설장과 사무국장이 가져간다. 시설장들은 기준대로라면 평균 263만원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31.3% 높은 346만원을 가져가고 있다. 시설장과 가족·친인척 관계인 경우가 많은 사무국장도 수가보다 실제 인건비가 12.8% 높았다.

재가기관에 재무·회계규칙이 본격 적용된 올여름부터는 이런 ‘인건비 빼돌리기’가 어려워졌다. 기관장들이 재무·회계규칙을 무력화하는 오제세법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점이다.

요양보호사들로 구성된 전국요양서비스노조(이하 노조)는 지도부 삭발과 천막농성까지 하며 오제세법을 결사반대한다. 김미숙 노조위원장은 “지금도 요양보호사들은 최저임금밖에 못 받고 있다. 정부가 정한 기준(표준임금)에 맞게 임금을 주는 요양기관은 전국에 한 군데밖에 없다. 요양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표준임금을 지키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기관장들도 할 말은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서울 동작구의 한 방문요양기관장은 “신고만 하면 누구나 방문요양기관을 설립할 수 있다보니 난립해서 경쟁이 치열하고 수익성도 악화됐다. 노인 30명을 돌봐도 200만원 가져가기 힘들다. 조그만 파이 하나 주고 나눠 먹으라고 하니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지금 방식은 정부가 을과 을의 싸움을 조장하고 있다. 진입장벽을 만들든지 해서 기관장이 제대로 이익을 거둘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건비-간접비 분리’ 대안 제시도

일부 기관장들은 ‘오제세법 통과 뒤 회계 투명성 악화’ 우려에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방병관 한국민간장기요양기관협회 회장은 과 만난 자리에서 “요양보호사 등의 인건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직접 지급하도록 하면 된다. 나머지 간접비는 기관장이 영리 목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기관장들은 요양보호사들 인건비를 탐내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원한다”고 했다.

복지부는 오제세법에 대해 ‘수용 곤란’ 뜻을 밝혔다. 현재 재무·회계규칙으로는 모든 임직원의 보수를 기록하게 돼 있는데, 오제세법이 통과되면 이런 규정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업의 특성상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무·회계규칙이 필요하고, 상법상 회계는 복식부기 방식이라 현장에서 적용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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