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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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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간몰 헛소동의 교훈

<뉴욕타임스> 북한 삭간몰 미신고 기지 보도 논란 팩트체크

비핵화의 진짜 암초는 김정은 아니라 미국 내 반발?
등록 2018-11-17 16:27 수정 2020-05-03 04:29
미국 상업용 위성업체 ‘디지털글로브’가 지난 3월29일 찍은 북한 황해북도 삭간몰 탄도미사일 기지 모습. 미국 외교·안보 전문연구기관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삭간몰 기지에 대해 이미 알려진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펴내고, 이를 근거로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REUTER

미국 상업용 위성업체 ‘디지털글로브’가 지난 3월29일 찍은 북한 황해북도 삭간몰 탄도미사일 기지 모습. 미국 외교·안보 전문연구기관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삭간몰 기지에 대해 이미 알려진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펴내고, 이를 근거로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REUTER

짤막한 보고서 한 편이 파란을 불러왔다. 때맞춰 나온 과장된 보도가 정치권의 과잉반응과 맞물리면서, 흡사 사라진 ‘위기’라도 다시 불러낼 기세다. 북-미 협상이 맥없이 미뤄지면서, 오랜 관성이 다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믿음이 없는 대화는 얼마나 허망한가?

‘신고하지 않은 북한-삭간몰 미사일 기지’. 미국 외교·안보 전문연구기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11월12일 누리집에 이런 제목의 보고서를 올렸다. 1985년부터 위성사진을 이용해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추적해온 조지프 버뮤데스 연구원이 주도해 작성한 이 보고서엔 보수적 한반도 전문가이자 ‘북한 붕괴론’을 주장해온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도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20년 전 보도된 삭간몰이 비밀기지?

보고서의 형식과 내용은 그간 버뮤데스 연구원이 발표했던 숱한 위성사진 분석 자료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분량도 각주를 포함한 본문 내용이 A4용지 약 8쪽에 불과하다. 내용 대부분은 위성사진에 대한 해설이다. 보고서에 등장하는 위성사진 12장은 상업용 위성 전문업체 ‘디지털글로브’가 지난 3월29일 촬영한 게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비무장지대에서 북쪽으로 85㎞, 서울에서 서북쪽으로 135㎞ 떨어진 북한 황해북도 지역에 삭간몰 탄도미사일 기지가 있다. 보고서가 공개한 위성 좌표(북위 38.584698도, 동경 126.107945도)를 구글 지도에 찍어보니, 북쪽으로 평양과 맞닿은 황해북도 최북단 연탄군에 인접한 봉산군의 산악지대로 보인다. 보고서는 “지하 미사일 기지로 잘못 알려졌지만, 삭간몰은 인민군 전략군사령부 소속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 화성-5·6호 발사 기지”라고 했다.

보고서는 삭간몰 기지가 1991~93년 사이 착공됐으며, 당시 인민군 제583 공병부대가 건설에 동원됐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영문 일간지 가 1999년 9월29일 보도한 “이 기지에 스커드미사일 27기가 배치됐다”는 내용을 따, “기지 건설 1차 공사가 1999년 9월 부분적으로 완료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보고서 각주에 등장하는 출처 대부분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국내 언론이 보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 무렵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햇볕정책이 추진되면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졌을 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 등장 이후엔 어떨까? 보고서는 이렇게 썼다.

“2011년 12월 집권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실전에 버금가는 훈련과 작전 대비 태세 강화를 주문했다. 이에 따라 전략로켓사령부가 2013년 전략군사령부로 개편되는 등 군 조직 개편이 이뤄졌으며, 몇몇 미사일 기지의 확대 건설이 추진됐다. 반면 삭간몰 기지는 별다른 증축이 이뤄지지 않았다. 2018년 11월 현재, 삭간몰 기지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북한 기준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잘 유지된 상태다.”

이어 보고서는 지난 3월29일 촬영된 위성사진을 바탕으로 삭간몰 기지를 기능에 따라 온실 등 농업지원시설, 지휘부·막사 등 주요기지 시설, 지하시설, 미사일 지원시설 4가지로 분류해 이를 세밀하게 확인·분석했다.

의 삭간몰 무리수

여기까지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이미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사실을 추려 적고, 비교적 최근의 위성사진을 바탕으로 주요 시설을 해설한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석’이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쪽은 보고서 맨 앞에 등장시킨 ‘주요 연구 결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삭간몰은 신고되지 않은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 기지다. 모두 20곳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미신고 미사일 발사 기지 가운데 연구소가 확인한 13곳 가운데 하나다. 현재까진 단거리탄도미사일만 배치돼 있지만, 손쉽게 중거리탄도미사일도 배치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삭간몰은 비무장지대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기지 가운데 하나로, 짧은 시간에 타격이 가능한 거리에 있다. 북한의 서해 위성 발사시설해체 등이 언론의 큰 관심을 끌면서, 이 기지를 포함한 북한의 신고되지 않은 미사일 기지가 품고 있는 미군과 한국에 대한군사적 위협이 가려지고 있다.”

‘신고되지 않은’이란 표현은 객쩍다. 보고서가 인용한 것처럼 이미 20년 전부터 삭간몰 기지는 언론에 보도됐다. 민간 연구단체는 상업용 위성사진을 활용하지만, 한-미 군사·정보 당국은 군사용 위성을 이용해 북한 전역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데도 연구소 쪽이 마치 ‘감춰진 진실’이라도 발견한 듯 호들갑을 떤 이유가 뭘까? 보고서가 공개된 시점에 맞춰 미국 일간지 는 이렇게 보도했다.

“북한이 비밀 기지 16곳(보고서에선13곳)에서 탄도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새로 공개된 상업용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이는 북한이 엄청난 사기극을 벌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으론 주요 탄도미사일 발사시설 해체-초기 작업에 착수했다가 지금은 중단한 상태다-를 제안한 북한이, 다른 한편으론 재래식 탄두는 물론 핵탄두까지 발사할 수 있는 기지 10여 곳에서 시설 개선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연구소 쪽이 미리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 보고서를 인용해 쓴 기사임에도, 보고서에 없는 내용이 등장한다. 보고서에선 삭간몰 기지에 대해 “2018년 11월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북한 기준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잘 유지된 상태”라고만 언급했다. 그런데도 ‘사기극’으로 규정한 근거는 뭘까? 신문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 석좌이자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탄도미사일 기지는 동결(활동 중단)되지 않았다. 기지는 계속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려스러운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좋지 않은 협상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다. 북한은 핵실험장 한 곳을 포기했고, 몇 군데 관련 시설을 해체했다. 그 대가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평화협정을 받게 될 수 있다. 그러고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승리를 선언하고, 역대 미국 대통령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고 말할 거다. 북한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사기’는 약속을 전제로 한다. 북한과 미국은 어떤 약속을 했나?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 체제 수립,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전쟁포로·실종자 유해 발굴 등 4개항에 합의했다. 유해 발굴을 뺀 3개항은 북-미 협상의 목표에 해당한다.

협상의 원칙에도 합의했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안전 보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그의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밝혀 적었다. 체제안전 보장과 비핵화를 동시병렬적으로 맞바꾼다는 뜻이다.

“합의 어긴 것 아니다”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그런데도 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아직 비핵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지 않았다. 그 첫걸음은 미국에 핵개발 장소, 무기, 생산 시설, 미사일 기지의 목록을 제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6·12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나온 주장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끌어다 쓴 꼴이다.

“CSIS 보고서의 내용은 북한이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어기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위험 신호’가 있긴 하지만, 합의를 어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보고서가 공개된 다음날인 11월13일 일간지 는 이렇게 보도했다. 이튿날인 11월14일엔 인터넷판에 올린 기사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신문은 비확산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연구원의 말을 따 “김정은 위원장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되레 김 위원장은 자신이 앞서 공언한 것들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무슨 말일까?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1일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전면 복원과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혔다. 꽉 막혔던 남북관계의 물꼬가 트이면서, 남북·북-미 정상회담까지 내달릴 수 있게 된 신호탄이었다. 당시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은 핵·미사일과 관련해서도 여러 언급을 내놨다. 김위원장은 핵무기를 ‘평화 수호의 강력한 보검’이라 규정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은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핵무기 연구 부문과 로케트 공업 부문에서는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해 실전 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

북한은 2017년 11월29일 미국 동부 지역까지도 타격권으로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5형(사거리 1만3천㎞) 시험 발사에 성공한 직후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후 1년째 일체의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한 상태다. 이에 발맞춰 한-미도 대규모 연례 군사훈련을 잠정 중단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통한 체제안전 보장으로 가기 위한 협상 무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북한의 ‘핵 카드’는 ‘2중의 3종 세트’로 이뤄져 있다. 먼저 시점을 중심으로 놓고보면 이미 완성한 핵무기(과거 핵), 핵물질 생산과 핵탄두 제조 등 현재 진행 중인 핵무기 관련 프로그램(현재 핵), 향후 핵무기 개발과 고도화를 위한 핵·미사일 시험(미래 핵)이 있다. 미래 핵은 북한의 선제적인 핵·미사일 시험 중단 선언으로 동결됐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시험장과 평북 철산군 동창리 탄도미사일 발사장 폐기는 미래 핵은 물론 현재 핵의 일부까지 동결할 수 있는 조처다. 남은 현재 핵과 과거핵은 협상으로 제거해나가야 한다.

둘째, 무기체계 면에선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핵분열 물질, 조립·완성된 핵탄두, 핵탄두를 실어나를 탄도미사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미국 핵과학자협회보가 내놓은 ‘2018 북한 핵능력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북한이 생산한 핵분열 물질은 플루토늄 20~40㎏, 고농축 우라늄 250~500㎏이다. 이 단체는 북한이 연간 핵탄두 6~7기를 제작할 수 있는 핵분열 물질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완성한 핵탄두는 16~32기로 추정 했다.

실제 협상에선 핵물질·핵탄두와 함께 이른바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도 비중 있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일본 등을 타격권으로 하는 노동미사일(사거리 1200㎞), 괌 등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미사일(IRBM) 화성 12형(사거리 3300~4500㎞),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5형(사거리 1만3천㎞)을 모두 갖추고 있다.

비핵화, 북한만 잘해서 될까
10월7일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면담한 뒤 환한 표정으로 나란히 걷고 있다. AP 연합뉴스

10월7일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면담한 뒤 환한 표정으로 나란히 걷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래서다. 북-미가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맞바꾸는 건 산을 옮기는 것보다 길고 어려운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단계적이고 동시병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계적인 핵물리학자이자 북핵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지난 5월 말 펴낸 ‘기술적 관점에서 본 북한 비핵화 로드맵’에서 “북한의 비핵화 작업을 끝내는 데 최장 15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미는 2차 정상회담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한 고위급회담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의 손발을 묶으려 하다간, 협상 테이블 자체가 엎어질 수 있다. ‘속도 조절’은 ‘현상 유지’를 뜻한다. 시간은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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