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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조현천 독대날, ‘친위 쿠데타’ 시작일?

박근혜 탄핵안 가결 2016년 12월9일 조현천 기무사령관 청와대 방문…

계엄 문건 작성 뒤 준비와 실행 모의 의혹
등록 2018-08-28 12:59 수정 2020-05-03 04:29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왼쪽)이 한민구 국방부장관과 함께 국회에 출석한 모습. 두 사람은 기무사 계엄 문건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내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왼쪽)이 한민구 국방부장관과 함께 국회에 출석한 모습. 두 사람은 기무사 계엄 문건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내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2016년 12월9일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박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고 대통령으로서 모든 권한은 자동으로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넘어갔다. 엿새 전인 제6차 촛불집회에서 232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인파가 촛불을 들고 “대통령 즉각 퇴진”과 “국회 탄핵”을 외친 결과였다.

바로 이날(12월9일) 조현천 국군기무사령관이 청와대를 방문한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났다. 국군기무사령부는 탄핵 가결 한 달 전인 11월 초부터 ‘현 시국 관련 국면별 고려사항’ 등의 문건을 통해 ‘계엄령’을 논의한 바 있다. 문건 작성 뒤 기무사령관의 수상한 청와대행은 ‘친위 쿠데타’의 시작일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인다. 민군 합동수사단(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의 대통령 관저를 방문한 ‘흔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 전 사령관과 박 대통령의 독대는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그날 박 전 대통령은 오후 5시 국무위원 간담회를 제외하면 계속 관저에 머물렀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전 군 고위 관계자는 과 한 통화에서 “(조 전 사령관이) 문고리 권력 가운데 한 사람의 연락을 받고 청와대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군 실세, 계엄 문건 작성 개입 의혹

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군 또는 정부 고위 인사가 관저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4월16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등 청와대 핵심 인사들은 박 대통령이 관저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들어가지 못했다. 사건 발생 1시간이 지나서야 이영선 제1부속실 행정관과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관저로 이동해 박 대통령과 접촉했다.

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이 박 전 대통령 이외에도 향후 계엄의 준비와 실행을 위해 당시 청와대 관계자 다수와 접촉했을 것으로 본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장아무개 국방비서관이다. 합수단은 최근 소환한 장 전 비서관에게 조 전 사령관 접촉 사실과 계엄 관련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비서관은 청와대와 국방부를 잇는 다리이면서 군 동향 전체를 보고받는 자리다. 장 전 비서관은 국방부 요직인 정책기획관을 지낸 인물로 김관진 당시 안보실장 라인으로 분류된다. 합수단은 박근혜 정부의 군 최대 실세라고 할 수 있는 김 전 실장 또한 기무사의 계엄 문건 작성 의혹에 관련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장 전 비서관은 김 전 실장으로 가는 길목인 셈이다.

계엄 문건과 관련해 수사 선상에 오른 것은 김 전 실장만이 아니다. 박흥렬 전 청와대 경호실장도 계엄 문건 작성에 개입됐다는 주장이 문건 폭로 직후인 지난 7월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특히 박 전 실장은 수도방위사령부의 군 병력 투입 준비에도 관련됐다는 의혹까지 더해진 상태다. 3월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에서 “제보에 의하면 12월9일 이후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기각할 것에 대비해 시위대에 군 병력 투입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분분했고, 당시 구홍모 수도방위사령관(현 육군참모차장)은 사령부 회의를 주재하며 소요 발생시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지금까지 10차례 있었던 계엄의 역사에서 ‘경쟁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던 두 조직은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령부(옛 보안사령부)와 청와대를 포함한 수도 경비를 맡고 있는 수도방위사령부였다. 합수단은 구홍모 차장과 박흥렬 전 실장을 조사할 계획이다.

합수단의 수사 선상에 오른 인물들을 조합하면 경호실장, 국가안보실장, 국방비서관,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등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정권 연장을 위해 획책한 1972년 유신헌법을 위한 계엄, 1979년 유신헌법 개정을 막기 위한 계엄, 전두환이 군부 쿠데타를 위해 획책한 계엄(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등 과거 계엄과 쿠데타 관련 주요 요직들이 모두 2017년 불법 계엄 문건 작성·준비와 관련해 다시 등장한다. 나열되는 직책만으로 보면 역대 계엄의 종합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계엄의 종합판

조현천 전 사령관이 청와대에서 누구를 만났느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내용을 논의했느냐일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이름을 밝히기 꺼린 여권 고위 인사는 에 “조 전 사령관이 어떤 내용을 청와대와 교감했는지는 그날 이후 행적에 답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 전 사령관이 기무사 본연의 방첩, 군사정보, 대전복 기능 등을 논의하려 했다면 청와대 관저가 아니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머무는 곳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를 찾았고, 그 뒤 계엄 실무를 맡는 합동참모본부(합참)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조 전 사령관은 합참에 계엄 실행 여부를 직접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합참은 촛불집회 등의 동향은 파악하면서도 이를 계기 삼아 계엄 실행 계획을 세우는 것은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해졌다. 합수단은 합참의 계엄 관여와 관련해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이나 계엄과장이 기무사나 청와대와 교감했는지 수사하고 있다.

조 전 사령관의 청와대행에 이은 합참 다음의 행선지는 육군본부(육본)였다. 이를 계기로 기무사 계엄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으로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이 언급된다. 또 기무사령부는 합참을 대신해 계엄을 기획한다. 2017년 1월 기무사령부 내 방첩 업무를 하는 3처 산하 ‘미래방첩업무 발전방안’이라는 위장 명칭의 태스크포스(TF)를 꾸린 것이다. 이 티에프에서 3월3일 기무사 불법 계엄 문건인 6쪽짜리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 방안’(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과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만들었다. 12월9일 이후 본격화된 ‘친위 쿠데타’를 위한 문건은 이렇게 완성됐다.

군 관계자들은 조 전 사령관의 합참, 육본으로 이어지는 행적 자체가 기무사령관 개인의 판단으로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이런 맥락에서 12월9일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에서 논의한 뒤 지시받은 내용이 계엄 준비가 아니겠느냐라는 추론이 다시 한번 힘을 얻는다.

직무 정지 상태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위하려는 ‘친위 쿠데타’를 방증할 만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만 정작 합수단의 수사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수사는 청와대 등 윗선의 지시와 이에 따른 일선 군부대의 실행(준비)을 규명해야 하는 두 갈래 작업이다.

윗선 지시와 일선 군부대 실행 규명

최근 기무사 계엄 문건에 나오는 15개 계엄임무수행군의 지휘관, 작전계통 장교 등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마쳤다. 기무사 문건에 등장하는 ‘계엄임무수행군’은 육군 8·11·20·26·30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 2·5기갑여단과 1·3·7·9·11·13공수여단, 그리고 대테러부대인 707특임대대 등이다. 합수단은 이들에게 기무사나 육본과 계엄과 관련해 교감이 있었는지 캐물었지만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합수단 조사에서 지휘관 등 관련자들은 대체로 기무사 계엄 문건과 자신이 무관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것이다.

전 군이 들썩일 정도로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졌음에도 이번 군 수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결정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친위 쿠데타’에 가담했을지 모를 지휘관과 작전장교들을 소환해 물었다면 답은 뻔하다는 것이다. 수사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사 경험이 많은 군 관계자는 “내란을 위한 예비·음모를 규명하려면 최소한 준비명령(군 지시의 종류)은 나와야 한다는 게 수사팀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기무사의 지시는 대개 구두로 이뤄지고 문서가 내려가더라도 보고 뒤 폐기가 일반적이다. 그게 나올 리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부대장이 그런 보고나 지시를 받았다고 할 리도 없다. 쿠데타의 핵심 세력이라고 누가 자인하겠느냐”고 덧붙였다.

합수단이 계엄 준비가 일선 부대에서 이뤄졌는지를 찾으려고 하지만 실제로 계엄은 준비명령 없이도 시행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가상훈련이긴 하지만 을지연습을 통해 숙달된 상태이고, 전국 계엄이 내려지면 자동적으로 해당 부대는 임무에 따라 주둔지로 이동하니 특별히 명령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내란’의 수괴 밝혀내기까지

합수단이 난관에 부닥친 것은 무엇보다 조 전 사령관의 수사를 기약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합수단은 현재 조 전 사령관의 가족과 변호인을 통해, 지난해부터 미국에 체류 중인 조 전 사령관이 자진 귀국해 조사를 받도록 타진 중이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합수단은 뒤늦게 외교부를 통해 ‘여권 무효화’를 위한 여권 반납 명령 절차를 실시하는 방안과 미국과의 형사 공조로 조 전 사령관의 신병을 확보하는 방안 등 필요한 조처를 검토하고 있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합수단은 9월18일까지 수사 기간을 1차 연장했다. 이 입수한 국방부 문건을 보면, 군 특별수사단 수사는 3차 연장 기간을 다 쓰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최대 수사 기간을 특별수사단장 임명날부터 최대 130일간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이번 합수단의 수사 기간이 11월17일임을 밝힌 것이다. 나아가 수사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현 상황 변화에 따른 수사 기간 검토’ 항목에선 “수사 상황에 따라 수사 범위가 확대될 수 있어 예정한 11월17일보다 초과될 가능성이 있다. 당초 예정한 130일보다 초과될 경우 특별수사단 운영에 관한 훈령을 개정해 수사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 여권 인사는 “이는 수사 대상의 광범위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아울러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내부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법원에서 전두환을 12·12 군사 쿠데타의 내란 수괴라고 하기까지 18년이 걸렸다. 이번 ‘내란’의 수괴를 밝혀내기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진실은 여전히 저 너머에 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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