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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는 박근혜 호위무사

세월호 참사 뒤 TF 60명 유가족 사찰에 탄핵 심판 때 계엄령도 검토…

박근혜 위해 청와대 지시로 움직였나
등록 2018-07-10 14:47 수정 2020-05-03 04:28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7월4일 긴급 공직기강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7월4일 긴급 공직기강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180일간의 기록(’14.4.16~10.12.)-세월호 현장 지원 T/F(’14.5.13~7.24)’

어느 문건의 제목이다. 제목만 봐서는 박근혜 정부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의 보고서나, 자원봉사 단체의 백서가 연상된다. 하지만 이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의 제목이다. ‘국방 사이버 댓글 사건 조사 태스크포스(TF)’(군 댓글 TF)가 기무사의 사이버 여론조작 활동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해 7월2일 공개했다.

기무사와 세월호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기무사 누리집을 보면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는 자신의 주요 업무를 ‘군사보안·방위산업 보안·방첩수사·대간첩/대테러 업무’라고 소개하고 있다. 기무사의 문건에서 세월호가 등장하며 느껴지는 이물감은 문건의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충격으로 바뀐다. ‘세월호 180일간의 기록’은 기무사가 세월호 참사 뒤 유가족들의 동향을 사찰하고, “유가족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여론을 조성하려는 정황이 담긴 기록이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정권의 정보기관으로,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로 악명을 떨쳤던 보안사령부(보안사)는 1990년 10월 윤석양 이병이 1300여 명에 달하는 전방위적인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며 그 이름을 ‘국군기무사령부’로 바꾸고 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7월2일 군 댓글 TF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2014년 기무사는 24여 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게다가 이번 문건의 공개로 국가정보원, 경찰에 이어 기무사까지 모든 권력기관이 구조와 진상 규명 대신 세월호 참사의 책임론이 박근혜 정부로 향하는 것을 막는 데 총동원됐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기무’(機務)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밀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일’이란 뜻이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비밀’을 지키려 했을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24년 전 보안사령부 사찰 판박이</font></font>

군 댓글 TF가 공개한 기무사의 세월호 여론조작과 유가족 사찰 의혹은 활동 규모와 방식, 시점 등 모든 면에서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보안사’를 연상케 한다. 군 댓글 TF의 조사 결과, 기무사는 ‘세월호 관련 TF’(세월호 TF)를 만들어 참모장(육군 소장)을 TF장으로 앉히고 6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조직으로 꾸렸다. 단일 사건, 그것도 민간인 동향을 사찰하고 공론장의 여론 형성에 관여한 활동에 군 정보기관이 이렇게 대규모 조직을 운영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는 게 이 취재한 군 내부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TF는 △유가족 지원 △탐색 구조·인양△불순세력 관리 등으로 업무를 나눴고, 세월호 구조 현장인 전남 진도 팽목항뿐 아니라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도 기무 활동관을 배치해 일일 보고를 받은 의혹이 있다. 정보기관 특성상 일반적으로 부서별 칸막이가 높아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데, 세월호 TF의 경우 칸막이를 허물고 전방위적으로 꾸린 것도 이례적이었다는 게 군 관계자들 이야기다. 세월호 유가족, 국회 등을 사찰한 것도 노골적이었다.

군 댓글 TF가 찾아낸 기무사의 문건을 보면, 과거 보안사처럼 세월호 유족과 가족대책위원회 인물들의 이름과 직업, 경력 등을 정리하고 성향을 강경·중도 등으로 분류했다. 한 실종자 가족 대표에 대해 기무사는 ‘강경’으로 분류하고 “4대 독자 희생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 지대”라고 표현했다. 다른 가족도 ‘강경’으로 분류하고 “실종자 가족들의 여론 주도, 실질적 대표 자격 행사-남편도 처의 극단적 행동에 부담 토로, 같이 있을 것을 기피”라는 부연 설명을 달아놨다. 이는 기무 부대 요원들이 세월호 유가족들 속으로 들어가 이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관계자들은 참사 뒤부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권력기관의 사찰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온라인 블랙리스트 활용 여론조작 의혹</font></font>

게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정보기관의 온라인 여론조작·사찰 활동이 세월호 유족들을 상대로 진행된 정황도 드러났다. 문건을 보면 당시 ‘가족대책위 대변인을 맡은 이’(유경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 추정)에 대해 “과거(13.11월) VIP(박근혜 전 대통령) 비방글 게시/5.16 VIP 면담시 유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 제정을 강하게 주장”이라고 표시한 대목이 있다. 세월호 참사 이전 온라인에 올린 글까지 파악했다는 이야기인데, 의 단독 보도로 드러난 국군 사이버사령부(사이버사)의 온라인 블랙리스트<font color="#C21A1A">(제1198호 ‘작전명 레드펜, 온라인 블랙리스트도 있었다’)</font>가 세월호 유가족 사찰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앞서 은 사이버사가 ‘레드펜’(red pen)이라는 작전명으로 정부 비판 성향의 게시물과 댓글을 단 인터넷 아이디를 대량 수집해 온라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온 사실을 보도했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이후 온라인 여론이 정권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블로그, 포털 사이트 등에서 정부 비판 여론을 주도하는 아이디를 수집하고 분석했다는 것이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 공개한 국방부 ‘2012년 사이버심리전 작전지침’의 제2장 제4조(작전운영) 4항을 보면 “작전협조는 국방부, 합참, 기무사, 청와대, 국정원, 경찰청 등과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보안 유지하에 정보를 공유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즉, 군 사이버사가 온라인 블랙리스트를 기무사와 공유했고 이를 세월호 유가족 사찰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군 댓글 TF의 조사 결과를 보면, 기무사 역시 ‘광우병 촛불’ 이후 ‘300’ ‘스파르타’라고 불린 600여 명 규모의 ‘댓글 부대’를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들이 온라인 블랙리스트를 활용해 온라인 여론조작에 나섰다는 의혹이 더욱 짙어진다.

결국 이는 기무사를 비롯해 모든 국가 정보기관들이 왜 세월호에 이토록 집착했냐는 질문으로 다시 연결된다. 일단 기무사의 세월호 TF가 활동한 시점을 보면, 이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향하는 ‘세월호 참사 책임론’을 막기 위해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TF가 구성된 2014년 4월28일은 실종자 구조와 추모 분위기가 정부 기관의 초동대응 실패 등에 대한 분노로 옮겨가던 때였다. 공교롭게 세월호 TF 구성 다음날인 4월29일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처음 사과하고 안산 단원구에 마련된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참사가 발생하고 28일 뒤인 2014년 5월13일에는 기무사의 세월호 TF가 확대 운영되는데, 이날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같은 날 500여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가 가족·정부·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세월호 진상조사를 위한 국민참여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는 등 정부 책임론이 거세가 일어나고,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일부 교사들의 선언이 나오기도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기무사령관 “BH에 보고를 하는데…”</font></font>
국방사이버 댓글 사건 조사 TF의 보도자료. 연합뉴스

국방사이버 댓글 사건 조사 TF의 보도자료. 연합뉴스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들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당시 정부의 시각을 여실히 보여준다. 2014년 9월2일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상 탐색구조 종결 설득 방안’ 문건에는 “실종자 가족 설득 논리-유가족 지원에 막대한 국가 예산 지속 투입” 표현이 있다. 또 ‘유가족 요구사항 무분별 수용 분위기 근절’이란 보고서엔 “유가족 스스로 분별없는 요구를 하지 않도록 국민적 비난 여론 전달”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국회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동향도 보고됐다. 세월호 참사 뒤 당시 여당(새누리당)과 보수단체들 중심으로 형성된 “유가족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 “정치투쟁을 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기무사가 적극 대변한 것이다.

기무사의 이러한 행보는 자체 판단이라기보다 ‘윗선’인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연결된다. MBC는 7월3일 이 의심을 뒷받침하는 기무사의 ‘현안업무 회의록’를 공개했다. 기무사 요원들이 세월호 사찰 활동에 들어간 지 두 달이 지난 2014년 7월6일, 세월호 TF 팀장급인 처장·실장들이 모인 회의에서 이재수 당시 기무사령관은 “실종자가 현재 11명인데 부모 성향은 확인하고 있는가” “여기 정보기관이야! 옛날 같으면 일일이 공작할 사항이야!”라고 참석자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학부모에 대한 성향을 파악해서 일대일로 맨투맨을 붙이든 종교계를 동원하든 국정원을 동원하든, 타협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유가족들에게 실종자 수색 종결과 진상 규명 요구 중단을 설득할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도 회의록에 고스란히 담겼다. “오늘 BH(청와대로 추정) 보고를 하는데 어제 보고자료를 주면 어쩌라는 것이냐.” “이번에 보고할 때 한 줄도 수정하지 않고 말로 때웠다”는 이 사령관의 이야기도 회의록에 담겼다. 청와대 누군가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기무사가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위기에 호위무사를 자처한 정황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이철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7월5일 공개한 기무사의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을 보면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 내려지기 직전, 탄핵 기각 결정이 날 경우에 대비해 계엄령 선포를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탄핵 기각 결정에 불복한 국민이 청와대와 헌재에 밀려든다면 이를 막는다는 것으로, “광화문은 3개 여단, 여의도는 1개 여단이 담당”한다고 구체적 계획도 세웠다. 군인권센터는 7월6일 기자회견을 통해 문건에 특전사와 707특임대대 등 무장병력 4800여명을 동원하고 시민을 상대로 발포까지 고려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계엄 선포와 함께 서울 시내에 탱크 200여대, 장갑차 550여대 등을 배치한다는 계획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 문건은 당시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이철희 의원은 “불법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도 모자라, 군정 획책 계획까지, 갈 데까지 간 기무사는 해체에 준하는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군 정치 개입 이번엔 뿌리 뽑힐까</font></font>

일단 국방부는 군 사이버사, 기무사의 정치 개입을 이번 기회에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7월4일 국방부에서 주재한 ‘긴급 공직기강 점검회의’에서 “국군기무사령부와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정치 개입이 국군 역사에서 마지막이 되도록 조치하겠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불법행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이를 통해 조직·제도·법을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4천여명 수준인 기무사 인원을 20% 정도 줄이고 현재 중장인 기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추고 9명인 기무사 장성 수를 줄이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TF 60명 대부분이 현직근무 중이다. 세월호 유족에 대한 사찰은 물론 촛불집회 때 계엄 검토 문서 작성에 관여한 기무사 참모장(육군 소장)은 ‘국방부 기무사 개혁TF’에 참여했다가 7월8일자로 뒤늦게 해촉됐다. 개혁TF 구성원 12명 가운데 6명이 군 관계자고 그 가운데 2명은 기무사 고위 간부다.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정보기관이 대외적으로 변화를 선언하더라도 국내 정보 수집과 정치 개입이라는 유혹을 쉽게 버리지 못한 것은 역사에서 반복돼왔다. 국방부 내부의 개혁을 넘어 검찰 수사와 국회의 진상 조사 등을 통해 정보기관의 ‘흑역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여당인 민주당에선 기무사 인원 대폭 축소, 기무사에 대한 외부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 발의와 개혁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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