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재용 떨고 있나

이재용 뇌물사건 대법원 판단에 가장 큰 영향 미칠 박근혜 판결…

삼성 제공 뇌물액 72억여원으로 판단한 것 악재로 작용할 듯
등록 2018-04-10 15:09 수정 2020-05-03 04:28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뇌물사범’이라는 오명을 추가하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뇌물사범’이라는 오명을 추가하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국정 농단 사건의 주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인 그에게 ‘뇌물사범’이라는 오명도 추가됐다. 4월6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은 230억원대의 뇌물수수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날 선고로 16개월 동안 진행돼온 국정 농단 사건 재판이 일단락됐다.

실체적 진실 근접한 ‘김세윤 재판부’

국내 사법 역사상 처음 전국에 생중계된 이날 공판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김세윤 부장판사는 2시간 가까이 차분한 목소리로 판결문 요약본을 읽어내려갔다. 그는 중형을 선고한 주요 이유로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렸으면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태도”를 들었다. 그는 “탄핵 사태까지 벌어졌는데도 범행을 부인하면서 주변에 책임을 전가했다”며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한을 남용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지난해 10월 법원의 구속 연장 결정에 반발해 재판을 보이콧한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구치소에서 선고 결과를 전달받았다. 그는 이날 오전 재판부에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법정에 나가지 않겠다는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구치소에 머물렀다. 박 전 대통령은 선고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를 접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변호사는 오후 1시30분께 접견 신청을 하고 구치소에 들어가, 2시10분에 시작된 선고공판 동안 박 전 대통령과 함께 머물렀다. 이날 선고공판은 방송으로 생중계됐지만, 구치소에서는 방송되지 않았다. 구치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선고 결과를 전해들은 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보다 이날 선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법한 이는 따로 있다. 바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최씨의 정유라씨 승마 지원과 관련해 77억9735만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과 관련해 16억2800만원 등 모두 89억여원이 뇌물로 인정됐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는 승마 지원과 관련해 36억여원(코어스포츠 용역대금)만 뇌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무죄를 선고한 뒤 이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이처럼 1·2심 재판부의 판단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 관심이 모인다. 대법원이 최종 판단한 뇌물액에 따라 이 부회장의 형량과 재수감 여부가 결정된다.

대법원 판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판결이 바로 박 전 대통령 판결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주범인 박 전 대통령 사건을 재판한 ‘김세윤 재판부’가 사건의 전모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김세윤 재판부는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된 모든 재판 기록을 검토했고, 검찰과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신문 등을 통해 실체적 진실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재판부로 볼 수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 항소심도 영향

이런 맥락에서 이날 김세윤 재판부가 삼성이 제공한 뇌물 액수를 이 부회장 2심 재판부(36억여원)보다 많은 72억여원으로 판단한 것은 삼성 쪽에 악재임이 틀림없다.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이 삼성 뇌물을 다룬 세 재판부 가운데 김세윤 재판부의 판단을 가장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이 부회장 사건을 여러 사건 가운데 하나로 다뤘기 때문에 법리 다툼이 충분하게 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1·2심에서 삼성 쪽을 대리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선 당사자인 이 부회장 쪽의 반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재판부가 반드시 사건의 실체를 더 잘 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 쪽은 이번 판결로 애초 이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기소가 무리였다는 게 확인됐고, 이 부회장의 유무죄 여부도 승마 지원으로 좁혀졌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선 신동빈 롯데 회장의 항소심도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 판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불구속 기소됐던 신 회장은 1심에서 70억원의 뇌물액이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돼 법정 구속됐다. 신 회장이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수준의 형량을 받고, 이 부회장의 뇌물액이 대법원(또는 파기환송심)에서 신 회장보다 많은 72억원으로 확정되면 집행유예가 취소되고 징역 2년6개월 이상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 회장이 항소심에서 1심보다 적은 뇌물액을 인정받고 형량이 깎인다면 이는 이 부회장에게 ‘호재’다.

이와 관련해 최근 법원이 신 회장을 ‘국정 농단 사건’ 재판에서 분리해 ‘롯데 경영비리’ 재판부에 재배당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고법은 4월2일 신 회장 쪽의 신청을 받아들여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에 배당돼 있던 신 회장을 롯데 경영 비리 사건을 심리 중인 형사8부(재판장 강승준)로 재배당했다. 함께 기소된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형사4부에 남았다.

신 회장 쪽은 형사8부가 신 회장의 형량을 깎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경영 비리 사건은 신 회장이 총수 일가에 508억원의 부당 급여를 지급하고, 누나인 신영자 전 이사장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권을 몰아주는 등 회사에 778억원의 손해를 끼쳐 기소된 사건이다. 신 회장은 지난해 12월22일 1심에서 징역 1년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단순 경영 비리보다 국정 농단 사건의 죄질이 더 나쁘기 때문에 신 회장 쪽이 재배당을 요청한 것인데, 법원이 이를 선뜻 받아준 게 영 찜찜하다”고 말했다.

특활비 혐의 재판 아직 안 끝나

이날 선고가 박 전 대통령의 형사처벌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월22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등과 공모해 국정원 특수활동비 35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됐다. 뇌물 1억원 이상이면 10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그의 수인 생활이 24년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