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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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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제2라운드, 핵쓰레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끝났지만 꺼질 수 없는 탈핵 이슈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두고 경주·대전 주민들 싸움 이어져
등록 2017-10-24 14:08 수정 2020-05-03 04:28
10월18일 열린 나아리이주대책위원회 도보 순례. 제일 앞에 선 이가 황분희 부위원장이다. 2016년 1월 황 부위원장과 5살 손자를 비롯한 월성핵발전소 최인접 마을 주민의 소변에서 중수로 핵발전에서 대량 방출되는 것으로 알려진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나아리이주대책위원회 제공

10월18일 열린 나아리이주대책위원회 도보 순례. 제일 앞에 선 이가 황분희 부위원장이다. 2016년 1월 황 부위원장과 5살 손자를 비롯한 월성핵발전소 최인접 마을 주민의 소변에서 중수로 핵발전에서 대량 방출되는 것으로 알려진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나아리이주대책위원회 제공

건설 재개로 결정 난 ‘신고리 5·6호기’는 지난 두 달여 공론화 기간에 모든 탈핵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하면 탈핵이고, 재개하면 반탈핵인 것처럼 양립 불가능한 진영 논리에 갇힌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는 탈핵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과 상관없이 문재인 정부가 해결을 약속한 탈핵 이슈가 제2라운드를 기다리고 있다.

나아리 주민들의 고독한 싸움

맥스터(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시설)와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사용후핵연료 재처리)이 대표적이다. 결국 ‘핵쓰레기’라 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까라는 문제로 통하는 두 사안은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결정된 사안을 백지화하고 재공론화를 검토한 것이기도 하다. 신고리 5·6호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맥스터와 파이로프로세싱 문제를 떠안은 경주와 대전 주민들은 고독한 싸움을 이어갔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경북 경주 월성핵발전소 최인접 마을인 양남면 나아리이주대책위원회 주민들은 경주 시내를 걷는 ‘탈핵 도보 순례’를 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결과 발표 하루 전날인 10월19일에도 황분희 나아리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과 신용화 사무국장, 이상홍 경주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등은 경주 시내를 4시간여 걸었다. 신 국장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쪽으로 결론이 날 거라고 예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은 매몰 비용 2조원에 더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이죠. 월성원전 1호기 수명 연장 때도 안전성보다는 이미 7천억원을 투입했는데 어쩔 수 없다는 논리에 발목이 잡혔어요.”

경주를 달구는 탈핵 이슈는 사용후핵연료, 즉 고준위 핵폐기물을 중간 저장하는 시설인 맥스터 증설 문제다. 고준위 핵폐기물처리장 부지 선정이 20년 가까이 표류하면서, 전국 4개 핵발전소 부지의 맥스터 가운데 월성핵발전소의 맥스터가 2019년 포화를 코앞에 두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사용후핵연료 관련 공론화가 진행됐으나 그 결과를 담은 2016년 5월 산업통상자원부의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안은 경주의 염원을 배반했다. 월성핵발전소 맥스터를 증설해 이를 2053년까지 보관하는 결론에 대해 경주 주민들은 2005년 중저준위 핵폐기물처리장을 유치할 때 2016년까지 고준위 핵폐기물을 다른 지역으로 반출하겠다는 ‘약속’을 정부가 위반했다고 거세게 반발해왔다.

핵쓰레기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경주의 요구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와중에도 그치지 않았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출범 사흘 뒤인 지난 7월27일, 경주 양남면발전협의회 백민석 회장은 “맥스터 추가 건설을 결사반대한다”며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면담을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11일에 걸친 단식 끝에 백 장관이 면담을 약속했다. 9월12일 백 장관은 경주 월성핵발전소를 방문해 연 주민간담회 자리에서 “과거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향후 재공론화를 통해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핵발전소 없는 대전이 끓는 이유
지난 5월3일 대전 유성구 관평동 배울네거리에서 열린 수요촛불 집회 모습. 오후 6시에 시작한 촛불집회라 해가 지지 않았다. 촛불은 없지만 아이들의 밝은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한살림대전 핵없는세상을위한생명위원회 제공

지난 5월3일 대전 유성구 관평동 배울네거리에서 열린 수요촛불 집회 모습. 오후 6시에 시작한 촛불집회라 해가 지지 않았다. 촛불은 없지만 아이들의 밝은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한살림대전 핵없는세상을위한생명위원회 제공

재공론화는 2018년 본격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방식은 시민참여단이 숙의 과정을 통해 결정하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다른 절차의 공론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전환경과 관계자는 “신고리 5·6호기는 찬반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사용후핵연료는 이슈가 복잡하고 해법을 도출해야 하는 사안이다. 공론 조사를 몇 차례 하는 형태가 아닐 것이다. 올해 안에 공론화위원회 구성을 목표로 하고, 공론화 과정 자체는 내년에 실시하는 일정으로 방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은 핵발전소가 들어선 지역은 아니지만, 탈핵 이슈로 부글부글 끓는 독특한 곳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진행되는 중에 대전 유성구 관평동의 작은 공원에선 지난해 10월부터 열린 탈핵 수요촛불집회가 이어졌다. 공론화위원회 결정 이틀 전인 10월18일 저녁에도 주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대전의 탈핵 이슈는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를 가동하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존재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은 원자력연구원이 1987년부터 2013년까지 각 핵발전소에서 사용후핵연료 1699봉을 반입한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원자력연구원이 있는 유성구가 발칵 뒤집어졌다. 당시 허태정 대전 유성구청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30년간 한 번도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쉬쉬한 것은 명백한 기만 행위”라고 비판했다.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고리핵발전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보관된 곳이 대전이라는 사실도 지난해에야 드러났다. 대전시청은 ‘대전시 원자력시설 안전 시민검증단’을 구성해 지역 주민을 불안하게 하는 핵 문제를 연말까지 검증하려 한다.

지금 가장 뜨거운 탈핵 이슈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방식 가운데 하나인 파이로프로세싱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을 거치면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를 크게 줄이고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 시절 2018년 7월 실시 계획이 잡혀 있었다. 그러나 핵연료를 쪼개고 부숴 연소되지 않은 핵연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고독성 방사성 핵종이 방출된다는 사실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유성구 주민 김유라(46)씨도 마찬가지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라는 게 플라스틱이나 종이 재활용하는 것처럼 환상적인 기술이라면 당연히 해야죠. 그런데, 다른 몇몇 나라에서도 안전성,경제성문제로 그만둔 사례들이 많아요. 고독성 핵종을 개별 포집하는 기기에 엄청난 비용을 투입해야 한대요. 100%포집도 아니구요. 대전에서는 실험만 하고, 상용화는 경주 쪽에 한다는데 님비처럼 우리만 안전하면 된다는 게 아니에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방안도 없이, 우리 대전에서 거부하니 들여온 사용후핵연료봉을 다시 반출한다는 것은 지역 주민 사이에 갈등만 부추길 뿐이죠.” 2014년 이사 올 때만 해도 원자력연구원의 존재를 몰랐던 그는, 2015년 유성구 주민들의 ‘핵안전 주민조례 제정운동’ 등을 거치며 탈핵 운동가가 됐다. 지금은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안에 설치된 핵없는세상생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다. 대전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 지난 3월 출범한 ‘핵재처리실험 저지 30km연대’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꺼지지 않는 탈핵 이슈

파이로프로세싱의 국내 실시 여부는 연말께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공론화는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지난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자력진흥정책과 관계자는 “당정 협의 등을 거쳐, 파이로프로세싱은 공론화하지 않고 전문가 그룹이 결론을 도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 그룹에서 핵산업계에 밀착한 이들은 배제하기로 했다. 이 관계자는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는 비원자력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찬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 인사들이 참여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10월 말 결과가 나오는 정책연구(‘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 알앤디 갈등영향 분석’) 결과에 따라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는 주민 의견 수렴 방식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시작되던 7월 말, 경주의 신용화 사무국장과 김유라씨를 비롯한 대전의 한살림 핵없는세상생명위원회 회원 엄마들은 ‘삼중수소 스터디 모임’을 꾸렸다. 경주와 대전이 주도하는 핵쓰레기 공론화 문제에 당면한 문재인 정부, 탈핵 제2라운드는 1라운드와 다를까.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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