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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이 ‘왕세자’?

박근혜 정부의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문서에 등장한 적나라한 표현
등록 2017-10-17 17:41 수정 2020-05-03 04:28
공판에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공판에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왕’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왕세자’로 부르며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지원하는 내용의 문건이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은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두 달째인 2014년 7월 민정수석실이 작성한 것이다. 10월10일 내용이 공개된 문건에는 “지금이 삼성의 골든타임, 왕이 살아 있는 동안 세자 자리 잡아줘야”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당시 민정수석은 김영한씨, 민정비서관은 우병우씨였다. 문건은 이들의 지휘를 받으며 일하던 이아무개 선임행정관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항소심에 영향 미칠까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기록원을 통해 확보한 내용을 보면 “경영권 승계가 삼성의 제1현안”이라는 언급과 함께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은 검증된 바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의원은 “(문건에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가 삼성의 경영을 좌우한다고 봤다. 문건 안에는 삼성의 현안이 한국 경제의 고민거리라고 명시한 부분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어 “일종의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된다. ‘현재 껍데기만 있고 내실은 약한 사업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성공하면 이를 이재용의 첫 작품으로 부각하고, 실패하면 이건희의 유산으로 정리한다’는 식의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삼성 승계와 관련된 논의는 2015년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 회의 문건에서도 발견된다. 7월29일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록을 보면, 이 실장은 안종범 경제수석에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 우려의 시각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10월28일 같은 회의록에서는 이 실장이 김현숙 당시 고용복지수석에게 “(내일) 국민연금공단 이사회가 열리는데 최광 이사장의 돌출행동이 없도록 잘 관리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최 이사장은 당시 합병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왕세자 문건이 공개된 이틀 뒤인 10월12일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이 부회장 항소심 첫 공판이 열렸다. 이 부회장 쪽 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삼성은 수동적으로 지원했을 뿐이며 청탁의 결과로 삼성이 부당하게 유리한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 부회장의 무죄를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 회장의 세 차례 독대에서 어떤 내용의 대화가 있었는지 입증할 증거나 진술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검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문화·체육 발전이라는 공익적 명분을 내세웠다는 이유만으로 삼성이 공익적으로 지원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맞섰다. 미르·K스포츠 재단 지원과 관련해 현대자동차·SK 등 다른 대기업과 달리 삼성은 ‘경영권 승계’라는 부정 청탁을 위한 중요 현안이 있었던 만큼, 재단 지원을 무죄로 본 원심 판단 역시 바로잡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뇌물수수 혐의에도 변수

이 부회장을 ‘왕세자’로 칭한 이번 청와대 문건은 이 부회장 항소심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1심 재판부는 청와대 캐비닛 문건과 이아무개 행정관의 진술이 주요 증거임을 명확히 했다. 2심 재판부는 이번에 공개된 문건을 포함한 증거 일체를 다시 판단하게 된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그동안 애당초 그룹 승계 작업이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공식 생산한 문건에서 세습을 의미하는 ‘세자’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승계를 언급한 만큼 이 부회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문건은 1심 선고를 앞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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