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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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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음악회, 평화의 꿈

박기영·장필순·이상은·최고은·권진원 5명 뮤즈의 작은 음악회

‘내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원하는 이유’
등록 2017-10-12 23:44 수정 2020-05-03 04:28
탈핵 페미니즘
세계적 생태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마리아 미스와 함께 쓴 (창작과비평사·2000)에서 핵발전이 지역 주민과 여성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가부장적 속성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여성들은 “이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것이 미래 세대와 생명과 이 지구 자체에 충실해지는 길임을 알게 된다”고 했다. 탈핵의 바람이 부는 곳에 여성들이 있다. 가정집과 주민센터를 찾아가 노래 부르고, 큰 솥에 밥을 지어 연대자들을 먹이는 일이 탈핵운동을 하는 여성들의 방식이다. 탈핵 뮤즈들과 최고령 탈핵 아이콘 밀양 할매들을 만났다.

MUSE(뮤즈). ‘음악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1970년대 미국에서 다른 의미로도 쓰였다. 1979년 핵을 반대하는 미국의 뮤지션들은 ‘안전한 에너지를 위한 음악인 연합’(Musicians United for Safe Energy·MUSE·뮤즈)을 결성했다. 계기는 1979년 3월28일 일어난 미국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 사고였다. 이 사고 이후 ‘핵의 안전성’에 대한 회의가 미국 전역을 휩쓸었고 이는 대체에너지 운동으로 발전해간다. 스리마일섬 사고 이전부터 핵발전에 반대해왔던 잭슨 브라운, 그레이엄 내시, 보니 레잇, 존 홀 등이 주축이 되어 ‘뮤즈’를 결성했고 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통로를 통해 반핵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뮤즈는 다섯 번의 ‘노 뉴크’(No Nukes) 콘서트를 열었다. 공연의 절정은 1979년 9월23일 뉴욕 배터리 파크 시티 매립지에서 열린 콘서트였다. 뮤즈의 취지에 공감하는 주요 음악인들이 총출동했고 20만 명의 관객이 참석해 ‘반핵’을 외쳤다. 이 콘서트는 음반과 함께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제작됐고 모든 수익은 반핵운동 단체에 활동 자금으로 기부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을 논의하기 위한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2017년 9월, 한국에서도 ‘뮤즈’들이 모였다. ‘내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원하는 이유’라는 이름으로 5명의 여성 음악인이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콘서트를 제작한 조윤석 십년후연구소 소장은 “원전 문제에 관심 있는 뮤지션들이 모일 기회를 가지려 하고 있었다. 재생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각 지역 시민모임과 연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그렇게 모인 장필순, 이상은, 최고은, 권진원, 박기영 5명의 뮤즈는 동네 책방에서, 주민센터에서, 가정집에서 릴레이 콘서트를 열고 탈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동네 엄마와 아빠, 아이들 20~30명이 참석한 5번의 공연은 작지만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5명의 음악인들은 아이 엄마로서, 한국의 국민으로서, 지구에 사는 사람으로서 원전 건설이 중단돼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음악을 통해 그 마음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기를 희망했다.

6살 여자아이 엄마 박기영

“가수 박기영이 신고리 원전 5·6호기를 유지하고자 하는 강력한 힘을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 아이들 때문이죠. 아이들의 미래 때문입니다.”

9월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3동 주민센터에서 박기영은 무대에 올랐다. KBS , MBC , 출연으로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가 오른 무대치고는 상당히 소박했다. 그는 이 작은 무대가 “너무 신나고 재미있다”고 했다. 자신을 6살 여자아이의 엄마라고 소개한 그는 아이를 낳고 36개월 동안 ‘독박육아 맘’으로 지낸 이야기를 들려줬다. 38개월이나 모유를 먹인 덕에 딸이 수족구도 이틀 만에 물리쳤다는 말에서는 진한 모성애가 느껴졌다.

그에게 원전 반대는 ‘책임’과 같은 말이다. “제가 아이 엄마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자연을) 지키지 못해 입은 너무나 큰 피해들이 있어요. 우리가 잘 몰라서 저지른 일들 때문에 아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어른으로서, 세대를 먼저 살아간 사람으로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해요. 그래서 반대합니다.”

그는 또한 분노했다. 원전 주변에 387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속 가능한 인류의 사랑을 위해서는 (원전은) 반드시 끊어내야 합니다. 많은 뮤지션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실천에 옮기려 해요. 그러려면 함께 공부하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작은 무대라 편안했다는 박기영은 그 작은 힘들이 뭉쳐 더 큰 목소리가 되기를 기도했다. 자연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자며 그가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 이 공연장 안을 가득 메웠다.

태양광발전 시설 설치한 장필순

한국 여성 포크록의 대표 뮤지션으로 꼽히는 장필순. 운동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모은 채 마이크를 들고 앉아 있는 그의 표정은 따스하고 다정했다. 지난 9월5일 릴레이 콘서트의 첫 테이프를 끊은 그는 서울 강서구 등촌동 ‘민중의 집’에서 열린 공연에서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사실 저는 잘 몰라요. 그러나 이런 자리에 동참하면서 자신만 생각하기보다 주변을 생각하려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는 희망을 보곤 합니다.”

스스로 “잘 모른다”고 했지만 그는 이미 지속 가능한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다. 몇 년 전 제주도에 터를 잡은 장필순은 지난해 집에 태양광발전 시설을 설치한 경험을 들려줬다. 설치 당시에는 소박한 살림살이에 목돈이 들어가는 것 때문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지금은 큰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가끔씩 남는 전기를 한국전력에 되팔아 살림에 보태 쓰기도 한다.

장필순은 제주도에 버려진 동물을 거두기 시작해 어느새 10마리의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유기동물 엄마’이기도 하다. “이 자리가 정말 의미 있는 자리가 되려면 (원전을) 대신할 답을 우리가 찾아야 해요. 그 답을 찾았을 때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책임감도 함께 따라와야 하죠.”

숲과 나무를 사랑한다는 그는 자연을 닮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태어난 원천인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다 보면, 조금씩 해결책이 보이리라 믿어요. 결국에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곳입니다.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은 곳, 평화롭고 행복한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장필순이 작은 음악회에서 부른 노래는 였다. 최근 세상을 떠난 조동진보다 조금 앞서 간 그의 아내를 위해 장필순이 가사를 쓴 곡이다. “떠나버린 그대 따듯한 음성/ 이 밤 허공에 맴도네/ 왜 아무런 말도 없이/ 그대가 듣던 노래만 남긴 채.” 눈을 꼭 감은 채 깊은 울림의 목소리를 내던 그는 노래가 끝난 후에도 한참이나 눈을 뜨지 못했다.

“너무너무 위험한 원전 반대” 이상은

9월14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가정집 거실에 가수 이상은이 앉아 있었다. 그 앞에 성산동 마을 주민과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똘망똘망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가정집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이렇게 많은 어린이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도 처음이네요.”

그가 이렇게 작은 동네 음악회에 오게 된 것은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자는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의 경험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쓰나미가 밀려오는 영상을 보고 어마어마하게 충격을 받았어요. 일본에서 음악하는 친구들도 많이 힘들어했는데 저도 이 세상이 그렇게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동안 우울했습니다.”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세월호 침몰의 충격까지 더해져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는 과의 인터뷰에서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상기후 등으로 현재 지구 전체가 재난의 위험에 노출돼 있어요. 자연재해의 위험성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시대의 에너지 생산 도구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반대해야죠. 게다가 원전이 잠재하고 있는 피해는 재난의 수준이잖아요. 한마디로 너무너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은의 대표곡 이 나오자 아이들과 엄마들이 다 함께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 중간중간 아이들의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안전함이란 육아를 위해, 가족을 위해 품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다. (한국에서 육아에 더욱 밀착돼 있는) 여성이 민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강력한 힘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에너지 절약왕’ 최고은

“정말 미스터리예요. 아무리 혼자 사는 집이라고 해도 올해 7월 전기료가 4600원이 나왔더라고요. 엄청 아껴야지 한 것도 아닌데…. 고지서에 ‘귀하께서는 전기절약을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라고 써 있더라고요. 하하.”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 9월19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책방이음에서 유쾌하게 웃었다. 이번 릴레이 공연자 가운데 가장 ‘젊은’ 그는 원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도 그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그는 원전으로 이득을 얻는 몇 사람을 위해 왜 일반 시민들이 부속품처럼 사용돼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우리가 어떤 환경 속에 놓이는지는 반타의적으로 결정되죠. 누구나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데 원전이나 농약, 미세먼지 등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가끔 저를 참지 못하게 만들기도 해요.”

그는 과의 인터뷰에서 원전에 관심 갖게 된 계기에 대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참사를 언급했다. “원자력발전소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수익을 얻는다는 명목으로 지었는데 한번 사고가 나면 이를 처리하는 데 훨씬 많은 비용이 들잖아요. 특히 지난해 경주 지진을 보면서 좁은 땅에 많은 원전이 밀집된 한국이 괜찮은지에 대해 불안감이 생겼습니다. 탈핵은 여성과 아이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예요.”

찰랑이는 생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로 통기타를 메고 부른 자작곡 은 그의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촛불 이어 탈핵” 권진원

“제가 원전을 반대하는 이유는요, 지금 이렇게 평화로운 저녁을 정말 계속 느끼며 살고 싶어서거든요.”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가수 권진원이 9월21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호박골에너지자립마을 앞에 위치한 홍은1동 주민센터에서 말했다. 그는 이번 공연을 계기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접했을 때 너무나 무서운 거라고만 생각했지 자세히는 잘 알지 못했어요. 그러나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지난겨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그가 불렀던 노래 가 주민센터에 다시 울려퍼졌다. “진정 내가 원하는/ 그날들을/ 그대와 꽃피운다.”

그는 지난 촛불집회에서 국민의 손으로 세상을 바꾼 것처럼 엄청난 위험을 몰고 올 원전에 대해서도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제가 원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물질적으론 덜 풍족하더라도 안전하고 안심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나라, 그런 지구, 그런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떠오르네요. 평화를 원한다면 당신이 만들어라.”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사진= 십년후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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