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사장 퇴진’을 내건 2012년 MBC 파업은 언론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적 시간이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친 170일간의 처절한 투쟁.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던 시간”은, 그러나 아무것도 손에 쥔 게 없는 지독한 패배로 끝났다.
‘시용’이라는 모멸어쩔 수 없었다. 파업이라는 집단의 결정으로 노동은 멈췄지만 길어지는 무임금의 시간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었다. 그 시간만큼, 사람 수만큼 다양한 감정이 생겨났다. 누군가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며 이탈했다. 결국 “그 약속, 부도수표”라는 만류를 뿌리치며 노동조합은 정치권을 믿기로 했다. 업무 복귀마저 ‘투쟁’이라고 선언하며 노동의 자리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그중 일부는 끝내 자신이 있던 노동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파업 170일 동안 6명이 해고(최승호·박성제·박성호·이용마·강지웅·정영하)됐고, 69명이 대기발령 통보를 받았다. 10여 건의 고소·고발, 소송, 가처분 조처는 오랜 시간 꼬리표로 남았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밀려난 사이 경영진은 2012년 파업 이후 4년간 30명의 시용 기자를 포함해 경력직 229명을 채용했다. 이들은 서슴없이 “MBC의 DNA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벽이 생겼다. 누군가는 섬이 됐다. 처음엔 이렇게 위력적일지 몰랐던 벽이고, 이렇게 외로울지 모를 섬이었다. 170일간의 파업에 참여한 구성원은 자신이 잉여가 되는 동안 그 자리를 꿰찬 ‘대체 인력’을 싸잡아 ‘시용’이라 모멸했다. 그들에게 229명은 실제 여부와 상관없이 ‘근로계약 체결 후 일정 기간을 두어 근로관계 계속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제도’로 입사한 이들일 뿐이었다. 밀려난 이들과 그 자리를 메운 이들은 처음엔 “호흡조차 교환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에게 대체 인력은 방송 장악이란 비정상적인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계속 근로’를 하지 않을 이들이었다. 이토록 근로계약부터 정의롭지 못한 이들과 “밥을 안 먹는 건 당연했다”. 기존 구성원들에게 경력직은 생존의 합리성을 좇아,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스며든 이들이었다. 처절한 적대가 적절한 응대로 여겨졌다. 이들 경력직 가운데 2명이 어렵게 과 얼굴을 마주했다.
2012년 파업 이후 MBC에 기자직으로 입사한 A는 이렇게 말한다. “분위기는 한마디로 극단적이었다. 처음 들어와 낯설 때, 밥 먹는 자리에 가면 자연스레 한쪽에는 원래 있던 사람들, 한쪽에는 새로 온 사람들이 앉았다. 경력직만 따로 앉아 있으면 그쪽만 식사하고 우리 쪽은 멀뚱히 앉아 있었다. 밥을 안 시켜줘 그대로 있었던 거다. 내 동료를 대체한다고 생각한 이들에 대한 적개였다.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당황스러웠다.”
을 쓴 어슐러 르 귄은 “모든 벽은 양면을 향해 있고, 어느 쪽이 안이고 어느 쪽이 바깥인가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보도국 내 섬처럼 존재하던 경력기자들”은 간부들 처지에서 보면 “싫다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리기 쉬운 기자들”이었다. “보도하기 애매한 것들이 경력기자에게 우선 할당되기 시작”했다. 기존 구성원이었다면, 과거 MBC 뉴스를 만들었던 이들이라면 당연히 거부했을 아이템이 그렇게 뉴스에 잡혀갔다. “전 직장만도 못한 이런 뉴스를 하러 MBC에 왔나” 자괴감이 들었지만 벽에 막혔다.
“처음부터 누가 뉴스를 베끼려 했겠나”철통 같은 벽이 둘러쳐진 섬은 고립됐다. “한마디 할 데 없고 하소연할 동료도 없었다.” 저널리즘을 배신하러 MBC에 온 게 아닌 이들이 어느 순간 MBC를, 공영방송 전체를 꾸역꾸역 배신하는 이들로 불렸다. 그 배신적 시간에 한 선배는 “내가 너한테 잘해주고 싶어도, 그럼 밖의 유배지에 있는 내 후배들이 뭐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살아남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승리로 조직을 건사해내지 못한 패배감이 켜켜이 꼬여 현재의 MBC 체제가 만들어졌다.
“매일매일 동의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졌다. 편집회의에 들어온 책임자급 인사들이 ‘어제 뉴스 좋았다’고 말하면 그 자리에 앉은 구성원들은 전혀 납득을 못하는 게 일상이었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기본적으로 뉴스를 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도 구조적으로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주저앉는 과정이랄까. 뉴스 제작의 기본 시스템이 완전히 와해되고 붕괴된 상황에서 뒤늦게 입사한 개인이 취재와 보도의 절차를 요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누가 뉴스를 베끼려 했겠나. 그렇게 해도 뭐라 하는 이가 없으니 시작된 거다.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이 뉴스를 해야 시간이 채워지니, 돌아가면서 그냥 막았다.” A가 말했다.
소설가 김훈은 “80년대 전두환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를 써야 하면 다 내가 썼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래야 동료들이 안 다치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위악적 논리였다. 그때는 1980년대였다. 국가안전기획부 직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며 ‘직접적 위협’을 가하던 시절이었다. 더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는 없었을까. 직업인으로서 불가피했다는 말은 그럼에도 비겁한 변명이 아닐까. 김장겸 MBC 사장이 보도본부장이던 시절 MBC에 입사한 또 다른 경력기자 B는 말했다.
“뉴스가 계속 떨어진다. 안 된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시킨다. 최대한 톤을 조절하고, 비틀어서 취재해도 결국 부장이 다 바꿔놓는다. 그게 계속 반복된다. 어느 날 1시간만 놓고 보면 왜 저항을 못했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이 365일 계속된다. 저항해도 무시된다. 더 이상 MBC에서 저항은 불가능하다. 그냥 버티는 거다. 너무 세게 저항하면 아예 리포트를 안 시켜버리니까 버틸 수도 없다. 그때부터 자기합리화가 시작된다. 비정상적 인사가 수시로 나는 상황에 경력기자 처지에선 사실 도망갈 곳도 없었다.”
경력기자 A는 때때로 “도망가고 싶고, 깔끔하게 싸워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도망도 싸움도 퇴로가 있어야 가능하다. 경력기자로서 선택은, 버틸 거냐 버릴 거냐뿐이었다. 그는 외로운 섬으로 버티는 것을 택했다. “안팎에서 욕먹는,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기자가 되었지만, 그래서 티 낼 수도 없고 티 나지도 않겠지만 그나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몸부림쳤다. (부장이 말한) 영상을 너무 크게 쓰지는 말자, (태극기집회) 규모를 너무 크게 보여주지는 말자. 이런 선택을 매일 스스로 판단해 소심하게 결정하고 책임도 지고.” 그렇게 5년을 버텨냈다.
현재 MBC에는 3개의 노동조합이 있다. 1노조는 애초 MBC에 몸담고 있던 이들이 중심이다. 2노조는 이런저런 회사의 부침에 관심 없는 시니어 그룹으로 존재감이 없다. 3노조는 사 쪽 입장에 복무하며 윗선의 지시에 깔끔하게 순종해 일 시키기 편한 사람들로 채워졌다는 평을 받는다. MBC 보도국 내에서 문제가 된 ‘저격 리포트’와 베끼기 등은 주로 이들이 담당했다. 그들이 사회법조팀이나 정당팀 같은 보도국 내 민감한 부서를 장악하고 있다. 지금 MBC 뉴스의 현실에서 “그런 곳에 (지난 파업을 주도했던) 1노조원을 넣으면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사 쪽 입장에선 당연하고 또 편리한 선택이다. 경력기자들이 모두 3노조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3노조원이 아닌 경력기자들 역시 그렇게 활용된다. 애초 MBC에 근무하던 이들은 “어디서 반발할지 포인트를 이미 간부들이 다 아니까, 사 쪽에선 예민한 취재 말고 다른 데 쓰는 방식”이 2012년 이후 MBC에 자리잡은 경영 문법이다. 그 문법 속에 시청률이 2% 안팎으로 추락했다. 조롱을 넘어 냉소를 부르는 보도가 이어져도 회사는 꿈쩍도 안 했다. 오히려 사 쪽은 그걸 “체질 개선 과정”이라 믿는다.
저항 포기하자 자기합리화가 시작됐다경력기자가 입사하면 간부들은 간 보듯 슬쩍 말이 안 되는 아이템을 찔러본다. 일을 시켜도 되는지 안 되는지 거르는 과정이다. 갓 입사해 걸러내는 과정에 저항하기 힘든 이들이 업무를 수행해내면 기존 MBC에 근무하던 기자들의 경계심이 증폭된다. 2012년 파업 뒤 입사한 MBC 기자들이 모두 통과한 시간이다. 조직의 신출내기로 정신없이 그 과정을 지나오면 이미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 있다. 저항할 방법이 없었는데, 저항을 유예한 자들은 그들을 ‘저항불능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건 보도국이 아니다. 언론사도 아니다. 그저 노동의 지옥도이자 ‘모두가 피해자뿐인 정신병동’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로 인해 MBC 보도국에는 기자가 자발적·의욕적으로 취잿거리를 내놓는 풍토가 사라졌다. 아침·점심·저녁으로 이어지는 편집회의는 취재 아이템이 경합하는 장이 아닌 ‘톱다운 방식’으로 회사의 이익과 전략에 복무하는 보도를 할당하는 기능적 자리가 됐다. 기자들은 언젠가부터 취재를 배당받으면 “‘이걸 왜 하자고 하지, 숨은 의도가 뭐지, 왜 시켰지’부터 고민”한다. 시청자와의 관계에서 뉴스를 사고하는 게 아니라 얼토당토않은 지시의 의미를 그나마 합리화해보려는 회피의 습관이 기자들을 지배해갔다.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 노출된 경험은 자포자기를 내면화하게 한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다.
당대 가장 능동적인 언론인 가운데 한 명인 JTBC 손석희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1992년 MBC 파업 상황과 자신의 현재를 회고하며 “기회주의자였던 나야말로 노조 활동으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때 57일간 이어진 파업을 통해 방송 민주화의 새로운 기틀이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손석희는 그 거대한 집단적 투쟁에서 환경을 극복해낸 경험을 가진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이후 2012년 파업은 분명 MBC의 또 하나의 경계선이었다. 손석희의 파업이 운 좋게도 성공적이었다면, 최승호·박성제·박성호·이용마·강지웅·정영하의 파업은 혹독하리만큼 가혹한 시간으로 이어졌다. “언론 통폐합 이후 최악의 9년”을 보내고 MBC 노동자들이 몸서리쳐지는 패배의 기억을 각인한 채 다시 경계선 앞에 섰다. 2012년 맨 앞에서 ‘김재철 퇴진,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친 이들이 이번에도 전위를 맡았다. 하지만 이번 싸움의 성패는 어쩜 그들에게 달려 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최근 MBC 사 쪽은 파업에 대비한 경력기자 채용을 공고했다가 철회했다. 달라진 정치 환경에서 무리수를 두지 않겠다는 것이겠지만 “이미 충분히 경력기자를 뽑았기에 뉴스를 만드는 데 무리가 없다”는 판단도 깔려 있을 것이다. 2012년 이후 기자 100명이 MBC 보도국에 수혈됐다. 2012년 파업 당시 불법 소지가 있는 대체 인력으로 채용된 ‘시용 기자’ 30여 명도 여전히 한두 명을 제외하고 보도국에 남아 있다. 이번 MBC 투쟁이 승리하려면, 당장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남기는 저항으로 기록되려면 2012년 이후 보도 담당자들이 자기 이름으로 저질러진 일에 ‘집합적 죄의식’을 가지느냐에 달렸다. 그렇게 함께 경영진에 버려졌거나 이용됐던 이들이 섞여야 한다.
경력기자 3분의 1 제작 거부 동참2012년 이후 입사한 경력기자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최근 제작 거부에 동참하고, 파업에 참가하기로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MBC노조) 허유신 홍보국장은 “조합원으로 있는 경력기자는 30여 명이고, 15명 정도 최근 가입했다. 고민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력기자 A는 말했다. “자괴감과 죄책감, 무기력감이 쌓이던 시간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 ‘MBC 꺼져라’ 기레기 소리를 듣고, 고 백남기 농민 사건에서 15초 화면이 나간 것이 전부고, 탄핵 국면에서 태극기집회만 보도하는데 어떻게 죄책감이 없었겠나. 무너지는 것도 한계가 있어야 적당히 추스르는데 너무 무너져 무방비 상태였다. 그 탈탈 털리는 시간에 어떻게 대응할지 방법을 찾지도 못했다. 파업 이후, 지금까지 무너진 공영방송에 경력기자로서 책임질 일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지고 싶다. 제발 그 논의가 시작됐으면 좋겠다. 그걸 인정하고 대화하는 과정, 그게 바로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 과정이다.”
글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류석우 교육연수생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류석우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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