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긴장 지수가 치솟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설전은 날이 갈수록 거칠어진다. 북한은 “미국에 엄중한 경고신호를 보내기 위해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케트 ‘화성 12형’으로 괌 주변을 포위 사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더는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세계가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대응했다. 은 8월10일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를 만나 한반도 ‘8월 위기설’의 가능성과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짚어봤다. 김 교수는 “한반도 전쟁 위기는 과장돼 있다”면서도 “긴장 완화를 위해 우리 정부가 벌어지는 상황을 따라가지 말고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전쟁 억제의 구조 존재”한반도 8월 위기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긴장 국면을 어떻게 보나.아직은 말과 말의 대결이라고 생각한다. 이 위기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출구를 찾지 못해 긴장이 계속 고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발적 충돌도 있는 것이다. 군사적 충돌은 의도적이라기보다 언제나 (우연적인) 폭발에 의해 이뤄진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우발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나.가능성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전쟁 위기는 과장돼 있다.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후 여러 번 전쟁에 가까이 갔다. 1968년 북한의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나 북핵 문제 초기이던 1994년 6월이 그랬다. 그때마다 마지막 문턱을 넘지 않은 ‘전쟁 억제’의 구조가 존재했다. 미 국방 당국은 선제 타격이든 뭐든 간에 군사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때 발생하는 피해가 어느 정도라는 것을 잘 안다. 누구라도 합리적 추론을 해보면 군사적 해결은 선택할 수 없는 대안이다.
북한과 미국이 긴장 국면을 지속하는 원인은.한쪽의 책임으로 보긴 어렵다. 일단 북한 처지에선 확실한 ‘핵억지력’을 지니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한다. 트럼프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대북정책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 같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고 결론 낸 뒤 ‘최대의 압박과 관여’로 방향은 잡았는데 이를 일관적으로 추진할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초기 한-미 관계의 안정에 초점을 맞춰 이를 발판으로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지금 북한의 압박 전략과 미국의 감정적 대응 사이에서 양쪽의 말 대 말 싸움에 올라탄 상황이 됐다. 우리의 정책과 전략을 갖고 문제 해결에 접근해야 한다.
북한의 석탄과 철 등을 수출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효력을 발휘할 가능성은.제재가 왜 효과가 없겠는가. 북한의 대외무역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정도의 효과를 내겠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은 핵억지력 확보를 체제 생존과 연결해 생각한다. 결국 제재 효과 유무는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의 태도에 달렸다. 내가 어제 중국에서 왔다. 중국 쪽 인사들은 “중국은 국제사회의 합의를 충실히 지키고 있다. 그런데 과연 제재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고 한다. 중국은 제재에 회의적이다. 그들은 제재로 문제를 풀지 못하면 중국이 고스란히 해를 입고 결국 시간 낭비할 것으로 봤다. 중국의 시각이 이러니 얼마나 압박이 가능하겠나.
“남한 핵무장론 현실 가능성 없다”문재인 정부 출범 3개월여 동안 북한에 ‘베를린 평화 구상’을 밝히고 군사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제의했지만 무산됐다.남북관계가 사실상 단절된 지 9년이 지났다. 불신이 최대로 고조됐다. 악화된 상황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좋아지는 과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은 핵억지력 확보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민간 교류 등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뭔가 할 여지는 많이 줄어든 악조건이다. 하지만 위기 국면이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 정세는 긴 시각에서 봐야 한다. 정세는 사이클이 있다. 만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관련해 한두 번 추가 실험을 하고 나면 핵보유국 선언을 할 것이다. 그 뒤부터 일종의 평화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다. 위기 국면은 일정 부분까지 지속되겠지만 진정되고 완화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북정책에서 정부가 상황을 쫓아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우리 정부가 과거처럼 관성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다. 제재를 강화하면 북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거나, 아직 대화할 때가 아니라는 식의 대응은 박근혜 정부 때 많이 해봤지 않은가. 상황을 다르게 전환할 해법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대북 신호가 다소 상충돼 상호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임시배치 결정이나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 등이 상황을 쫓아다니는 사례인가.사드 배치는 전 정부에서 진도를 너무 많이 나갔다. 말했다시피 벌어진 상황을 쫓아가면 답이 없다. 방법이나 길이 없을 때는 마냥 따라가지 말고 조금 멈춰서 생각해야 한다. 사드 배치는 단순히 무기 하나를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 반발 등 동북아시아의 정세에 미치는 효과를 두루 고려해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상황 논리에 따라 오락가락하다 깊이 들어가버려 나중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으면 안 된다.
보수 일각에서는 남한 자체의 핵무장론 등을 제기하는데.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가 기준은 하나다. 과연 그렇게 해서 북한 핵 문제를 풀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핵무장론은 현실 가능성이 없다. 이는 긴장을 구조화하고 핵무기 대결 구도를 지속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해법이 아니다.
“따라가기보다 설득 나서라”문 대통령이 남북문제에서 운전대를 잡겠다고 했는데, 난국을 풀어갈 해법은 뭔가.지금은 안갯속이기 때문에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북핵 문제는 남-북, 북-미, 한-미라는 세 가지 관계의 산물이다. 이것을 적대적 관계에서 협력적 관계로 전환하는 게 해법이다. 삼각관계를 풀려면 우리가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풀어서 북한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미 관계에서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의 협조와 협력을 구할 수 있다.
글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정리 김보현 교육연수생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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