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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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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사드 대신 평화의 파란나비

경북 성주 주민들의 싸움 다룬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 박문칠 감독

“겉으론 잘 보이지 않는 사드 반대 투쟁 모습을 영상에 담고 싶었다”
등록 2017-06-15 15:34 수정 2020-05-03 04:28
“리본 만드는 정성으로 사드가 철회되겠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가 배치된 경북 성주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는 수다로 시작한다. 성주 아줌마들이 모여 파란 천 가운데를 철사로 묶는다. 철사 위를 다른 천으로 감싼 뒤 ‘글루건’(glue gun)으로 옷핀을 붙인다.
“(집에) 가져가니까 다른 일이 진짜 안 돼!” “이걸 안 하면 전부가 불안해가꼬.” 수다를 떠는 동안 사드 철회를 상징하는 ‘파란 나비리본’이 하나씩 완성돼 빈 상자에 담긴다. 업체에 맡기면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될 일이다. 돈도 몇 푼 들지 않을 일감이다. 그래도 직접 만든다. 6월22일 개봉을 앞둔 의 박문칠 감독은 “그 정성이 지금의 성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을 6월6일 대구의 집에서 만나 성주와 영화에 대해 묻고 들었다. _편집자
박문칠 감독이 6월6일 대구의 집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파란나비효과>는 <마이 플레이스>에 이어 박 감독이 만든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다. 류우종 기자

박문칠 감독이 6월6일 대구의 집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파란나비효과>는 <마이 플레이스>에 이어 박 감독이 만든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다. 류우종 기자

영화는 경북 성주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찍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처음부터 성주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대구에 살아서 성주가 멀지 않아, 현장 분위기라도 보고 오자고 생각했다. 촛불시위가 시작되고 5~6일 정도 됐을 때로 기억한다. 집회 형식은 투박했고 실수도 많았다. 하지만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주민들은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발언했다. 외치는 구호 하나하나 절절했다. 젊은 여성이 무대에 올라 “외부에서는 자업자득이라고 한다. 그말이 맞지 않냐. 아무 생각 없이 1번만 찍어오지 않았냐.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고 발언했다. 경북의 보수적인 동네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있다보니 사드 반대 투쟁 배경에 젊은 여성들의 물밑 노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에선 피켓 든 모습이나 집회 장면만 나오지 않나.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이 일군 투쟁

젊은 여성 주민들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과거 사회운동에선 남성들의 역할이 주로 주목됐다. 집회나 투쟁은 남성이 한다는 것이 아직도 익숙한 사회 인식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여성이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이슈가 생겼다. 2008년 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투쟁 때 거리로 나온 ‘유모차 부대’가 상징적이다. 환경이나 안전, 먹거리, 급식, 원전 등 생활에 밀착한 이슈가 정치화되는데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전면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고 싶었다. 이들에게서 기존 노동조합이나 사회운동단체가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주민들의 믿음을 얻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곁에 계속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위로이자 신뢰의 바탕이 된 듯하다. 주민들이 갑자기 집회에 나가야 할 때가 있다. 급할 때는 아이들을 대신 봐주기도 했다. (웃음) 운전사 역할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믿음이 생겼겠지만, 주민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성주를 돌아다니는지 몰랐을 것이다. 영화 제작이 끝날 때까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다 주민들에게 촛불시위 100일을 맞아 영상 하나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떤 마음으로 촬영해왔는지 보여줄 수 있었다. 영상을 상영한 뒤 주민들과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

주민들이 변화하는 모습도 지켜봤겠다.

본격적인 촬영은 2016년 8월부터 했다. 그때 이미 주민들이 많이 바뀌었다. 워낙 많은 일이 있었다. 그만큼 정부의 태도나 늘 봐온 보수언론에 대한 실망도 컸다. 이후 스스로 공부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정보를 공유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면서 정부가 얼마나 엉망으로 운영됐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어떤 일을 했는지 다 지켜봤다. 사드가 자유무역협정(FTA), 그리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꿰기 시작했다. 사드 배치 과정에서 미군이 웃으면서 장비를 나르는 것을 본 뒤 미국 반대 목소리도 높아졌다. 미군 무기 반입을 위해 한국의 군대와 경찰이 투입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과 미국의 불평등 관계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인상적인 건 주민들이 세월호 참사,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 등 다른 사회 이슈까지 다시 돌아보게 됐다는 점이다.

1318명 모인 단톡방

카카오톡 대화방 최대 인원을 의미하는 ‘1318 단톡방’의 역할이 컸다던데.

원래 농산물을 팔거나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단톡방이다. 이곳이 사드 반대 투쟁의 저수지 같은 구실을 했다. ‘언제 1인시위를 하자’ ‘이런 형식의 집회를 하자’ 등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즉석에서 제안된 활동이 실제 집행되는 일도 많았다.

지난 대선에서 경북 성주의 투표 결과가 논란이 됐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8.1%,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56.2%를 득표했다. 사드를 들여온 정당 후보를 그대로 찍었다는 비판 여론이 퍼졌다. 하지만 성주의 변화는 ‘진행 중’이다. 영화를 보면 과거 집회 참가자들을 연행하던 경찰의 사복 체포조 ‘백골단’ 출신 주민이 팔을 흔들며 을 부른다. 주민은 “자신도 이 노래를 직접 부를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제는 새누리당도 싫어요”라고 써붙인 현수막, ‘파란 나비’를 단 채 세월호 ‘노란 리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박 감독은 성주가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오랫동안 성주 투쟁이 이어진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진정성과 정성이다. 작은 일에도 혼신을 다한다. 현수막도 인쇄소에 맡기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쓰는 분이 많다. 공장에 주문 제작할 수 있는 파란 나비리본도 일부러 직접 만든다. 국회의원들이 성주에 오면 환영 피켓 문구도 각 의원에 맞게 쓴다. 가령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오면 ‘사이다 표창원’이라고 적은 피켓을 든다. 의견이 다른 주민들도 진심을 다해 설득하려 한다. 당연히 갈등이 있고 얼굴도 붉힌다. 하지만 절대 쉽게 내치지 않는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성주의 다른 주민들에게 전달된다. 그럼 그 주민들도 감동받고 뭔가 해야겠다는 의지를 갖는다. 이런 ‘선순환’이 성주 투쟁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외부에선 실망했다고도 이야기한다.

우선 성주 주민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됐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사정을 잘 모르니까 그런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주 주민 전체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그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성주 군수가 사드 배치를 수용했다. 이후 반대 주민을 고립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투쟁이 길어지면서 관심이 줄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가 배치되면 안 된다는 주민들이 있고, 그들이 성주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촛불집회에 나오는 이들 중에는 새누리당 당원이나 조직 책임자까지 했던 분도 많다. 밖에서 보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민들의 노력으로 적어도 홍준표 후보 지지는 이전 대선 때보다 많이 낮아졌다. 에는 이런 주민들의 간절한 노력이 담겨 있다. 성주 투표 결과에 부정적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이 영화를 꼭 보셨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면 지금 싸우는 주민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드는 철회될까

6월22일 개봉하는 <파란나비효과> 메인 포스터. <파란나비효과>는 극장 개봉과 함께 여러 단체나 지역 주민 등의 요청을 받아 공동체 상영도 진행한다. 인디플러그 제공

6월22일 개봉하는 <파란나비효과> 메인 포스터. <파란나비효과>는 극장 개봉과 함께 여러 단체나 지역 주민 등의 요청을 받아 공동체 상영도 진행한다. 인디플러그 제공

성주 주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클 것 같다.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사드 배치 과정에 대한 조사나 환경영향평가 등이 진행되고 있지만 배치 철회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조사로 문제점이나 비리, 불법 등이 드러나면 사드 철거에 유리한 환경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제점은 문제점이고 사드 배치는 그대로 한다는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박근혜 정부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다. 블랙리스트를 통해 정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됐다. 박문칠 감독도 그런 경험이 있다. 그의 전작 는 싱글맘인 동생의 이야기를 그렸다. 정치적 대목은 없었다. 한 방송사에서 를 상영하겠다고 했다. 좋은 기회였다. 그러다 한 대목을 문제 삼았다. 박 감독의 아버지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당과 관련한 말을 하는 장면이었다. 정치적 내용도 아니었다. 하지만 삭제를 요구했다. 박 감독은 거부했다. 상영은 불발로 그쳤다. 박근혜 정부가 계속됐다면 도 극장에 걸리기 어려웠을 것이다.영화를 본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영화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경쟁부문에 나간 것만으로도 큰 경쟁을 뚫은 거라서 만족했는데 주민들은 “상을 받아와라” “1등 해라” 하며 압박했다. (웃음)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가 올해 (4·19 혁명을 기리는) ‘사월혁명상’을 받았다. 그 기운을 이어받았으니 나도 받을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다. 다행히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영화에 출연한 주민들은 전주영화제에서 영화를 직접 봤고, 300일째 촛불시위가 있기 며칠 전 성주 집회 현장에서도 상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다가 웃고 다시 우는 주민이 많았다. 성주 이야기를 다뤄줘서 고맙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반응도 있었다.

탄핵으로 개봉 일정이 앞당겨진 것으로 안다.

올해 10월쯤 개봉할 생각이었다. 12월 예정된 대선 전에 개봉해 성주 문제를 더 많은 시민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탄핵으로 스케줄이 확 당겨졌다. 원래 편집을 한번에 끝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많이 숙고하는 편이다. 하지만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시의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빨리 개봉하기로 결정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어졌다면 극장 개봉이 힘들었을 텐데.

처음 제작을 할 때 극장 개봉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소규모 공동체 상영을 중심으로 할 생각이었다. 올해 초 영화진흥위원회에 후반 작업 지원을 신청할 때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생각지 않게 지원 작품으로 선정되고 개봉도 가능해졌다.

주민 손 잡아주길

예비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웃음) 너무 심각하게 다루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드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바라는 시민이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뉴스에 나오지 않아 잘 안 보이는, 또 잘 몰랐던 진실을 많이 담았다. 보수적인 동네에서 변화를 일구려는 소수이지만 뜻있는 주민들의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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