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이언맨보다 힘센 몬샌토”

유전자변형식품(GMO) 찾아 삼만리

다큐영화 만든 제러미 세이퍼트 감독
등록 2017-06-07 16:07 수정 2020-05-03 04:28

긴 여정은 아이스크림에서 시작됐다. 씨앗과 사랑에 빠진 핀, 그런 형을 따라하는 스카우트는 얼굴에 까만 칠을 해가며 정신없이 초코아이스크림을 핥는다. 갓 태어난 여동생 펄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런 세 아이를 바라보며 부모는 고민에 빠진다.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지키고 싶은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우리가 GMO를 먹고 있다는데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서울환경영화제 참석 위해 방한

미국 영화감독 제러미 세이퍼트는 세 자녀에게 GMO를 먹여도 되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한 긴 여행을 떠났다. 박승화 기자

미국 영화감독 제러미 세이퍼트는 세 자녀에게 GMO를 먹여도 되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한 긴 여행을 떠났다. 박승화 기자

다섯 가족은 답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노스캐롤라이나를 떠난 가족은 한 달 넘게 승합차를 타고 캘리포니아에서 워싱턴까지 동서를 가로질렀다. 세계 최대 유전자변형식품(GMO) 개발업체 몬샌토, GMO 옥수수 농장, GMO 표시 의무법안을 논의 중인 국회의사당을 찾아갔다.

아빠의 나 홀로 여행은 계속됐다. 몬샌토가 기부한 종자를 불태운 아이티의 농민,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에 있는 세계종자은행 저장고 직원, GMO가 몸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연구한 프랑스 캉대학 질에리크 세랄리니 교수를 만났다. 달랑 신용카드 한 장 들고서.

이토록 유별난 아빠는 미국 다큐멘터리영화 감독 제러미 세이퍼트다. 워낙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세이퍼트 감독에게 GMO는 비껴갈 수 없는 주제였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GMO를 재배하고 먹는 국가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가공식품의 80%에 GMO가 쓰이고 있다. 그런데도 GMO가 들어간 제품에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법률은 두고 있지 않다.

이러한 미국의 적나라한 현실을 세이퍼트 감독은 다큐멘터리영화 [GMO OMG](2013)에 담았다. 친구들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대형 슈퍼마켓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구조하는 과정을 그린 전작 [다이브!](2010)처럼 진지하되 유쾌하다.

[GMO OMG]는 2013년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돼 호평을 받은 데 이어, 올해 또다시 아이쿱생협의 초청으로 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됐다. 지난 5월19일, 서울환경영화제에 참석한 세이퍼트 감독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전해준 미국의 상황은, 세계 1·2위 GMO 수입국을 다투지만 소비자는 식품에서 GMO 표시를 발견할 수 없는 한국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었다.

제목 ‘GMO OMG’의 뜻이 뭔가요.

영화를 만들 때는 타이틀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어느 날 인터뷰를 하다 만난 (환경단체) ‘350.org’의 설립자 빌 매키벤이 ‘GMO OMG’를 이야기하더군요. 완벽했죠. ‘오, 마이 갓’(Oh, my god)이라니. 우선 사람들이 뭔가 굉장히 놀랐을 때 ‘맙소사!’라고 하잖아요. 기독교에서도 ‘오, 주여!’ 하며 기도하고요. 그 두 가지 뜻이 다 있어요.

왜 GMO에 관심을 두게 됐나요.

시작은 아이티였어요. (2010년 1월 지진 참사가 났을 때) 몬샌토가 GMO 종자를 기부했는데, 농민들이 “다 태워버리겠다”고 한 기사를 봤어요. 도대체 왜 그런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내가 GMO를 먹고, 아이들에게 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제작에 2년이 걸렸어요.

제초제도 GMO 씨앗도 ‘한 회사’가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변형한 농산물인 GMO는 크게 ‘내충성 GMO’와 ‘제초제 내성 GMO’로 나뉜다. 예를 들어 제조체 내성인 ‘라운드업 레디 콩’은, 제초제 내성 유전자를 콩에 주입해 만든다. 그러면 제초제인 라운드업을 콩밭에 뿌려대도 모든 잡초는 죽지만 콩은 멀쩡하다. 놀라운 사실은 제초제를 파는 회사가 제초제 내성 GMO도 함께 만든다는 점이다. ‘꿩 먹고 알 먹고’인 셈이다. 실제 몬샌토, 듀폰, 신젠타 등 ‘빅3’ 농약회사가 종자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미국은 20년 넘게 GMO를 먹고 있어요.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GMO가 뭔지 모를 수 있나요.

나 역시 믿을 수 없어요. (웃음) 나도 아이티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으니까요.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도, ‘처음 듣는다’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하더군요. 그래도 (영화를 찍을 때인 2011~2013년보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인식하고 있어요.

영화에서 GMO 재배 농민들이 ‘규제 담당자와 과학자들을 믿는다’고 하던데요.

모든 농민이 어떤지 말할 수 없지만, 보통 그들은 (정부와 과학자가 아닌) 기업을 믿어요. 왜냐면 몬샌토처럼 거대 기업들이니까요. 거대 기업들은 ‘존’이나 ‘밥’ 같은 (농민들의) 이웃들이 운영하는 작은 상점에 (GMO) 씨앗을 줘요. 그러면 상점 주인들이 (자연스레) 농민들에게 씨앗을 팔죠. 거대 기업들은 홈페이지와 광고도 아주 세련되게 잘 만들어요. 농민들이 그걸 믿을 수밖에 없죠. ‘70억 인구를 먹여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다’라는 식으로. 주 80시간을 일하는 농민들은 스스로 (그 내용을) 조사할 여력이 없어요. 그래도 요즘엔 GMO 대신 일반적인 농사를 짓는 농민이 늘고 있어요. 그것도 농약을 많이 쓴다는 점에서 만족스럽진 않지만요.

미국에서 GMO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이 생기는 것은 종자회사들의 횡포 때문이다. 종자를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농민들은 해마다 특허료를 내야 한다. 그렇다고 GMO 종자의 수확량이 늘 뛰어난 것도 아니다. GMO는 완벽한 조건에선 잘 자라지만 가뭄과 장마 등에는 취약하다. 가뭄일 때는 GMO보다 유기농업의 생산량이 31%나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아이 스카우트도 그랬잖아요. “GMO를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라고.

그렇죠. 어린아이의 말은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과 정확하게 같아요. ‘나는 GMO를 먹어도 괜찮기만 한데?’라는 거죠. 그러나 이건 20~30년에 걸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에요. 담배처럼.

환경적으로도 GMO 부작용이 많이 나타나고 있죠.

미국에선 ‘슈퍼 잡초’가 많이 생겼어요. 제초제를 뿌려도 끄떡없어요. ‘슈퍼 벌레’ 문제도 있고요. 또 유전자를 조작할 때 (식물의) 유전자층이 있고 그 안에서 변형이 일어날 수 있는데 과학자들에게 물어보면 침묵해요. 여기에 GMO가 비유전자변형농산물(Non-GMO)을 오염시키는 문제도 있어요. 멕시코에서 발생한 심각한 문제예요. 수천 종의 토종 종자를 기르는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통해 (GMO) 옥수수를 수입했어요.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조사를 갔더니 토종 종자들이 오염돼버린 거예요. 인간의 역사가 1천 년이라고 하면 GMO를 만든 건 70년밖에 안 됐는데 어떤 영향이 있을지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어요.

제초제에도 적응한 ‘슈퍼 잡초’
다큐멘터리영화 [GMO OMG] 포스터. 네이버 무비

다큐멘터리영화 [GMO OMG] 포스터. 네이버 무비

GMO가 인간의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아직 논쟁 중이지만 환경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선 제초제에 완벽하게 적응한 ‘슈퍼 잡초’가 10종 넘게 발견되고 있다. 쥐꼬리망초, 새포아풀 등은 제초제를 뿌려도 하루에 최대 7cm 자라나 농장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서부옥수수뿌리벌레, 목화씨벌레 등 ‘슈퍼 벌레’는 농약을 아무리 쳐도 끄떡없이 엄청난 식욕을 자랑한다.

미국 식품에선 아직도 GMO 표시를 찾기 어렵나요.

몇몇 회사가 자발적으로 자기들 음식에 GMO 표시를 해요. (유명 시리얼 브랜드) ‘치리오’를 파는 회사에선 GMO 원재료를 제품에서 빼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 회사는 표시를 꺼려요. 그래서 슈퍼마켓에 가면 볼 수 없어요.

지난해 7월 ‘GMO 표시 법안’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하기까지 참 오랜 기간이 걸렸어요.

아직도 멀었어요. 그 법안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표시하도록 했어요. 법적 구속력이 없어요. 또 다른 문제는, 이 법안이 진짜 GMO 표시법인 버몬트주법을 없애버렸다는 거예요. 연방법이 생기면 주법은 무효가 되니까요.

소비자는 전혀 만족하지 못한다는 거네요.

전혀요. GMO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 법안은 정말 농담 같아요. 말도 안 돼요.

몬샌토 같은 기업들의 힘이 그렇게 막강한가요.

무한대죠. 슈퍼맨, 아이언맨, 어벤저스 알죠? 그거보다도 세요. (웃음) 로비를 하는 데 제한이 없으니까요. 그들은 민주주의를 통제하고 있어요. 굉장한 독인 거죠.

5천억여원으로 미국 의회 쥐락펴락

2018년 7월 시행되는 GMO 표시 법안 제정에 앞장선 이는 놀랍게도 몬샌토다. GMO 생산자단체 역시 적극 옹호했다. 지난해 7월1일 시행된 버몬트주의 강력한 ‘GMO 완전표시제’를 막기 위한 꼼수였다. 몬샌토를 비롯한 생명공학 업계는 지난 10년간 5억달러(약 5630억원)의 로비 자금을 사용해 의회를 쥐락펴락해왔다. 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국회의원 참모 출신 로비스트만 3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몬샌토가 밀어붙인 법안은, GMO 사용 식품에 GMO 심벌을 부착하거나 글자로 표시하는 것 외에 스마트폰용 QR코드를 삽입하는 것도 허용했다. 이 허술한 법안을 두고 버몬트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를 비롯해 많은 소비자가 알 권리를 가로막았다는 뜻에서 ‘어둠의 법’(Dark Act)이라며 분노했다.

왜 GMO 표시 법안을 강화해야 할까요.

사람들에겐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자기 몸에 뭘 집어넣고 있는지. 기업들은 GMO가 ‘몸에 괜찮다’ ‘환경에 좋다’ ‘지속 가능하다’고 해요. 그러면 자신들이 창조한 GMO를 자랑스러워하고 떡하니 표시도 해야죠. 나이키, 아디다스, 삼성, 소니가 자신의 상표를 숨기는 거 봤나요.

불완전한 법을 바꾸려는 노력은 하고 있나요.

표시법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그룹이 많은데, 단일화된 운동이나 캠페인은 없는 걸로 알아요.

상황이 비슷한 한국에 조언을 해준다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포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계속 싸워라, 힘내라.’ (웃음) 당신에게 알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면 그걸 옹호해야 해요. 포기하는 건 쉽지만, 싸우는 건 충분한 가치가 있어요. 한국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여러분이 가장 좋은 접근법도 알고 있을 거예요.

영화를 보면 100여 종의 GMO 채소와 과일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고 했어요. 미국이 생산을 줄일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요. 그러면 한국도 영향받을 텐데요.

음, 미안합니다. (웃음) 나도 그러길 바라요. 그러길 정말 바라는데…. 농민들이 지금은 한 가지 작물만 많이 짓는데, 수백 가지 작물을 조금씩 짓는 소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GMO 알고 나서 저절로 다이어트” GMO를 알고 나서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저절로 다이어트된 거 말고요? (웃음) 영화에도 나오지만 아이들이 핼러윈 파티를 즐길 수 있게 모자에 사탕을 넣어줬어요. 늘 갈등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주고 싶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이 문화와 전통을 경험했으면 하거든요. 우리 집에선 100% 유기농, 로컬푸드를 먹어요. 매우 어렵고 비싸요. 그래도 더운 여름에 바닷가로 휴가를 가면 아이들이 졸라요.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그러면 난 줄 수밖에 없겠죠. (웃음)

다음 영화 주제는요.

톱 시크릿인데요. (웃음) 거대 화학업체 듀폰이 만드는 프라이팬의 불소 코팅에 대한 영화예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