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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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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점휴업 사드, 법의 심판이 기다린다

옛 정부가 ‘알박기’한 사드 불법 논란…

법적 소송, 국회 청문회, 국정조사 대상으로 전락하나
등록 2017-05-17 22:43 수정 2020-05-02 04:28
4월26일 이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주민과 지킴이들은 마을 입구를 막아 사드 장비 추가 반입에 강하게 맞서고 있다. 지난 5월4일 군 부식 운송 차량으로 유류를 반입하려던 국방부의 꼼수에 항의하는 소성리 주민과 지킴이들의 모습.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제공

4월26일 이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주민과 지킴이들은 마을 입구를 막아 사드 장비 추가 반입에 강하게 맞서고 있다. 지난 5월4일 군 부식 운송 차량으로 유류를 반입하려던 국방부의 꼼수에 항의하는 소성리 주민과 지킴이들의 모습.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제공

국정 전반에 산적한 박근혜 정부의 실책을 만회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속도가 붙고 있다. 새 정부 출범 보름여를 앞두고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가 기습 배치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의 운명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단 눈에 띄는 변화는 사드 운용에 필요한 유류와 추가 장비의 반입이 ‘잠정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업무를 개시한 5월10일 주한미군이 사드 장비 운용에 필요한 유조차를 11일 새벽에 반입한다는 정보가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에 입수됐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사드 특위) 간사는 과의 통화에서 “국방부 차관에게 확인해보니 처음엔 ‘미군의 사드 전개 과정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10분 뒤 다시 전화를 걸어와 ‘그럴 계획(5월11일 새벽 유조차 반입)이 있었으나 반입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소성리에 상주한 경찰 병력에 대해서도 “소성리에 계신 분들은 평화집회를 하고 있다. 최소한의 경찰 병력을 제외하고 철수하는 쪽으로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드 정상 가동 어려워

4월26일 새벽 사드 장비 일부가 기습 배치된 뒤 육로로 사드 관련 차량이나 장비가 추가 반입된 적은 없다. 주민들이 소성리 입구에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는 현재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미국에서 한국에 반입된 것으로 알려진 발사대 6기 가운데 4월26일 반입된 것은 2기뿐이다. 추가 반입이 필요하지만 이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발사대 6기로 구성된 사드 포대 자체가 완전히 배치된 것도 아니고, 기반 공사도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시험 수준이 아닐까 한다. 2기만으로도 시험 가동은 할 수 있겠지만 국방부가 말하는 요격 가능 상태로 정상 가동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말을 아끼고 있다. 문상균 대변인은 사드 정상 가동 여부에 대해 “작전 관련 내용이라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유류 반입과 관련해서는 “우리 군 부식 차량으로 옮긴 유류는 우리 군이 쓰기 위한 것으로, 사드 운용을 위해 반입하려던 게 아니다. 미군은 헬기로 유류를 운반한다”고 해명했다.

이제 남은 것은 배치 결정, 부지 선정, 기습 배치 과정에서 제기된 위법·불법 논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다. 경북 성주군·김천시 주민들이 국방부, 외교부 등 사드 관련 부처의 적법 절차 위반에 대해 법원에 낸 소송만 4건이다.

주민들은 사드 배치 과정에서 국방부가 국방시설사업법, 환경영향평가법, 국유재산특례제한법 등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국방시설사업법은 군사시설을 설치할 때 국방부 장관이 사업 시행자가 낸 ‘사업계획’을 승인해야 하고, 승인을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방부 장관은 사드 배치 관련 사업계획을 승인한 적이 없다. 또 지난해 9월30일 소성리가 ‘사드 부지’로 발표되고 7개월 뒤 사드가 실제 배치될 때까지 국방부 등은 소성리 주민들을 상대로 주민설명회나 공청회를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다. 국방부가 4월26일 사드 배치 전에 환경영향평가법이 정한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은 부분도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롯데와 토지 맞교환으로 국유지가 된 성주 골프장을 주한미군에 공여할 때 지켜야 할 국유재산특례제한법 위반을 문제 삼아 주민들은 4월21일 사드 부지 공여 무효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추가로 제기했다.

국내법 피하려는 꼼수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국방부는 “주한미군 사업으로 국내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소송을 대리하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국방부가 148만m²에 달하는 성주 골프장을 확보하고도, 주한미군 공여 면적은 5분의 1 수준인 32만8천m²라고 밝히는 점에 주목한다. 국방시설사업법상 사업계획 작성과 환경영향평가법상 환경영향평가는 모두 33만m² 이상 군사시설에만 적용된다. 민변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국내법상 책임을 면하려는 꼼수”라고 말했다. 민변 송기호 변호사는 5월11일 정확한 공여 면적 정보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불법 논란 탓에 새 정부에서 국회 청문회나 국정조사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이제 집권여당은 4월30일 기자회견에서 5월 임시국회에서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더불어민주당이다. 김영호 의원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국방부, 외교부, 환경부 장관 임명 등 새 내각이 구성되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사드 배치의 진실이 자연스럽게 국민에게 공개될 것이다. 위법성이 확인되면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주군과  김천시  읍·면·동  단위  투표  결과  뜯어보니


TK  표심과  달랐던  사드  표심


“우리는 아주 든든합니다. 오히려 기대 이상입니다.”
경북 성주군의 제19대 대선 투표 결과에 대해 박수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 상황실장은 “(사드에 반대하는) 우리 편이 최대 2천 표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심상정 표가 7천 표 나왔다. 우리 스스로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가 매일 열리는 성주군(55.8%)과 김천시(47.7%)에서 사드 배치에 찬성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득표율이 문재인 대통령의 득표율(18.0%-24.1%)을 압도한 것을 놓고 ‘당해도 싸다’며 주민들을 비난하는 ‘역심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읍·면·동 단위로 개표 결과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니 시·군 단위 결과에선 보이지 않던 미묘한 변화가 관찰됐다.
소성리 주민들이 투표한 ‘초전면 제2투표소’에선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득표율이 6.5%로 성주 평균(5.7%), 경북 평균(5.2%)을 웃돌았다. 박 상황실장은 “문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사드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심상정 후보는 입장이 분명하다고 여기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초전면 제2투표소에서 심상정 후보가 얻은 표는 소성리 주민 100여 명보다 많은 141표다. 그 밖에 성주(1714표)와 김천(5458표)에서 나온 심 후보 득표 수를 모두 합치면 7172표가 된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정의당(750표-2742표) 득표 수의 2배다.
김천시 내 22개 투표구 가운데 율곡동은 일반적인 TK 표심과 판이하게 달랐다. 율곡동에선 문 대통령 득표율이 50.2%로 홍 후보 득표율 17.1%의 3배에 달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율곡동은 더불어민주당(25.2%)보다 새누리당(28.3%), 국민의당(27.1%)을 더 많이 지지했다. 율곡동은 한국도로공사, 교통안전공단 등 공공기관 이전으로 2014년 조성된 김천혁신도시 지역이다. 사드 기지가 된 소성리 성주 골프장으로부터 7km 떨어져 있다. 성주 골프장과 18km 떨어진 성주군청보다 가깝다. 김천혁신도시 거주 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카페(맘카페)에는 ‘사드 게시판’이 따로 있고, 김천역 광장에선 지난해 8월22일 이후 매일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천 촛불집회에서 율동하는 엄마들의 모임 ‘율동맘’의 ㄱ(42)씨는 “젊은 사람들은 선거 때 말 한마디 잘못하면 빨갱이 소리를 듣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대놓고 사드에 반대할 수 없었던 이유를 이해한다. 당선 뒤 국민 여론을 귀하게 여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1번 뽑은 엄마가 많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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