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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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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했던 PD의 죽음

스스로 목숨 끊은 CJ E&M의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PD…

유족·대책위가 회사의 ‘근무태만’ 주장에 맞서 ‘공개 사과·재발 방지’ 요구하는 까닭
등록 2017-05-05 12:42 수정 2020-05-03 04:28
반년 전 죽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 이한빛 신입 PD가 tvN 16부작 드라마 제작진에 합류한 지 꼭 1년이 되던 날이었다.
지난 4월18일 유족과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마지막 방송 다음날인 2016년 10월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PD의 죽음에 대해 회사가 공개 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고용노동부는 제작 과정에서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이 있었는지 내사에 착수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유족과 회사 사이에 세 차례 면담과 두 차례 서면 응답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tvN을 운영하는 CJ E&M은 ‘고인의 근태 불량’은 있었지만, ‘고인에 대한 모욕이나 학대’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대책위는 밝혔다. 유족은 회사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맞섰다.
은 이 PD가 죽음에 이른 과정과 가족·지인들이 기억하는 그의 삶을 추적했다. 이 PD의 어머니 김혜영(59)씨, 대책위 관계자, 유족 자체 조사에 참여한 친구 이○○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대학 친구 권준희씨, 옛 스터디모임 친구 박수정씨, 군대 선임 김○○씨, 제작에 참여한 외주업체 관계자, CJ E&M 관계자, 고용노동부 관계자와는 전화로 인터뷰했다. 군 복무 중인 남동생과 입원 중인 아버지는 사정상 인터뷰하지 못했다. 대책위의 ‘사건 조사 보고서’, , 이 PD의 글을 모아 엮은 추모자료집 ‘빛이 머문 시간’, 지인들이 이 PD에게 보낸 엽서 사본 등의 자료도 참고했다. _편집자
고 이한빛 PD의 방. 어머니 김혜영(59)씨는 장례식이 끝난 뒤 아들의 유품 몇 가지를 치워버린 걸 못내 아쉬워했다.

고 이한빛 PD의 방. 어머니 김혜영(59)씨는 장례식이 끝난 뒤 아들의 유품 몇 가지를 치워버린 걸 못내 아쉬워했다.

엄마가 아들의 방문을 열었다. 흰 이불이 깔끔히 정리된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책상 옆 책꽂이엔 아들의 대학 졸업 사진 액자와 상패들이 놓여 있었다. 바로 옆 키 큰 책꽂이엔 문학과 사회과학 서적이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흐트러짐 없이 명확히 구분돼 꽂혀 있었다.

“한빛이가 꼭 새벽에라도 올 것 같아서 방을 깨끗이 청소해놔요.” 반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실감 나지 않는다. “어제도 방문을 열고 한빛! 밥… 그러다가 없다는 걸 알고….”(울음) 눈가가 쓰라릴 만큼 많이 울었다던 엄마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지난 4월24일 오후 2시, 서울 도봉동 이 PD의 방 창문으로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PD가 키우던 고양이 ‘푸리’(19세기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푸리에’에서 따온 이름)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반년은 ‘정말로 이건 삶이 아닌’ 시간이었다. 직장엔 나갔지만, 직장에선 절대 울지 않았다. 매일 퇴근하고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성당을 찾았다. 그곳에 안치한 아들을 만났다. 기도하고 울었다. 예수를 만나 싸우며 울었다. “도대체 왜 그랬어요. 그 애가 뭘 잘못했어요. 날 보고 어떡하라고….” 그렇게 1시간. 집에 오면 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불면증에 시달린 애아빠는 수면제를 먹다가 매일 밤 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가끔 잠결에 애아빠가 아들 방에서 오열하는 소릴 들었다. “왜 그랬어. 한빛, 보고 싶어. 엄마는 어떻게 하라고 그랬어.” 애아빠는 4월13일 새벽 응급실에 실려갔다. 간에 문제가 생겼다. 엄마는 ‘나처럼 매일 소리 지르며 마음을 풀지 못해 쓰러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게 따뜻한 사람

아들의 ‘마지막 결정’을 엄마는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은 엄마를 ‘너무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대학 1학년 2학기부터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자취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반찬을 보냈다. 집에서 밥을 잘 안 먹는 줄 몰랐다. 아들은 엄마가 온다고 하면 그대로 남아 상해버린 반찬을 다 버리고 청소를 해놨다. “엄마가 마음이 상할까봐 그랬는지 힘들어할까봐 그랬는지 다 치워놨어요. 말로는 엄마가 온다고 하면 친구들 약속도 잘 안 잡았대요.” 조조, 심야를 가리지 않고 ‘무진장’ 영화를 많이 봤던 아들은 엄마에게 “이건 너무 슬프고, 이건 너무 잔인하니까 보지 마라”고 했다.

친구들은 ‘위악적인’ 것 빼곤 모든 게 괜찮았던 친구로 이 PD를 기억했다. 위악은 그가 즐긴 장난이자, 그의 특별함과 따뜻함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장치였다.

‘세월호 팔찌’를 선물한 친구에게 ‘이런 걸 왜 주냐’고 핀잔했던 그는 세월호 2주기가 되는 날 페이스북에 썼다. “아침마다 노란 팔찌를 차고 리본 열쇠고리를 가방에 단다. 기억을 위해 행하는 작은 의식이랄까.” 친구 조○○는 엽서에서 그를 ‘보이지 않게 따뜻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2011년 서울대 법인화 반대 ‘비상총회 성사를 위한 TF팀’ 집행위원장을 맡은 이 PD는, 그 활동을 제안한 친구 이○○를 두고 평소 “쟤한테 말려서 했다, 쟤는 피해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활동이 끝난 뒤 어느 글에선 ‘오랜 동지의 제안’이었다고 썼다. 이씨는 지난 4월26일 “서로 논쟁하고 나면 그에 대해 다시 고민해서 글을 쓰곤 했어요. 내 말을 하나도 안 받아들이는 줄 알았는데, 그걸 다 듣고 다시 고민해서 쓴 글이었어요. 그는 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를 깊이 파고들었고 그럴 때 가장 반짝반짝했어요”라고 말했다.

아들은 공부를 잘했다. 2008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했다. 2009년 전공을 정치학으로 정했다. 그는 대학에서 기존 학생운동에 갇히지 않는 학생운동을 하고 싶었다. 2학년 말 서울대 웹진 ‘자하연 잠수함’을 만들었다. 그가 2009년 11월 창간호에 쓴 ‘ACE를 꿈꾸던 소년’이란 제목의 글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지금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여러분들에게 잉여로 분류되고 있지만 난 원래 항상 어디서든 ACE로 살아온 인생이란 말이야.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항상 우수하게 수행했고, 언제나 주목받았으며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온 사람이라고.”

이 PD는 2010년 5월 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의 서울대 강연을 맞아, 이랜드 비정규직 집단해고 3주년맞이 ‘플래시몹’ 항의시위, 일명 ‘성수대첩’을 같이 기획했다. 행사 정식 제목은 ‘글로벌 구조조정과 불안정노동 리더십’이었다. 참가자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케이크를 들어 박 회장을 환영했다. 박 회장 강연은 취소됐다. “그가 좋아했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활동은 ‘성수대첩’처럼 학생들이 발랄하고 재기 넘치게 참가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친구 이○○)

검을 테면 철저히 검어라

아들은 “패션 좌파(세련된 좌파)가 되고 싶어 했지만 패션 좌파가 되지 못한 활동가”였다. “기본적으로 너무 성실한 활동가”였다.(친구 이○○) “그는 활동하면서 악역을 도맡거나 자기가 책임지는 게 모두에게 깔끔하다고 판단하면 그렇게 했다.”(친구 권준희) 한 친구는 그의 책임감을 다른 곳에서 봤다. “(언론사 입사) 스터디모임에서 팀장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다른 팀원도 도왔다. 보통 입사 스터디에선 자기한테 이득인지 손해인지를 따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빛은 객관적으로 늘 손해 보는 쪽이었고, 그걸 따져가며 하지 않았다.”(스터디모임 친구 박수정)

PD가 됐을 때 친구들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역할 조율을 잘해야 PD를 잘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한빛은 일을 잘 조율하고 안 보이는 데서 결과를 잘 이끌어냈다. 스스로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친구 권준희) “스터디모임을 하면서 그는 ‘기자는 팩트를 그대로 다루는데 드라마 PD는 세계관을 담을 수 있어서 자신의 이상향을 드라마에서 구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명 PD가 되면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그렇게 해서 정당 러브콜이 오면, 어려운 상황에 있는 노조나 신경 쓰라고 말할 것’이라고도 했다.”(친구 박수정)

아들은 2013년 2월 현역 공군에 입대했다. 그때부터 PD 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그는 ‘목표를 정하면 매우 확고한 친구’였다. 그의 페이스북 대문에 써놓은 드라마 의 대사 “검을 테면 철저하게 검어라. 단 한 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는 그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친구 권준희씨는 생각했다. 엄마는 아들에게 “넌 지금껏 너무 열심히 살았으니 군대에 가면 단순하고 멍청하게 살라”고 조언했다.

아들은 열심이었다. 온갖 스펙을 쌓고 입사 준비를 했다. 영어·중국어·경제 자격시험, 방송비평 공모전, 지상파 PD 공채 시험, 군대 독후감 대회에 응모했다. 군에서 논술·작문 온라인 스터디모임도 했다. “그가 군 복무 중인 걸 정말 몰랐다. 한 번도 ‘마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어서다. 책임감이 강했다.”(친구 박수정) 군대 선임 김○○도 그가 거의 매일 저녁 군대 독서실에 갔던 것으로 기억했다. “자기 말도 잘했지만 남의 말도 귀담아듣는 사람이었어요. 사령부 사병 50명 중 연락·인솔·회의주재 등을 맡아야 하는 ‘으뜸 병사’에도 자원했고, 축구를 잘하진 않았는데 골키퍼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군대 선임 김○○)

“원래 신입사원은 그런 거야”
4월24일 CJ E&M 건물 앞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모습.

4월24일 CJ E&M 건물 앞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모습.

아들은 2016년 1월18일 CJ E&M의 tvN 제작PD로 입사했다. 신입 교육과정을 거쳐, 2016년 4월18일 드라마 팀에 합류했다. 제작에 참여한 외주업체 관계자는 제작 초기 그의 모습이 아직 선하다. “이 PD는 드라마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는지 얼굴에 항상 웃음이 가득했어요. 꿈이 구체적이고 피드백이 빠르고 예의 바르고, 열심히 일하는 친구였어요.” “돌아보면 이 PD는 그때 서서히 시들어가는 꽃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한번은 얼굴빛이 너무 안 좋아서 ‘좀 자라’고 얘기하니, ‘잘 수 없다’는 말만 했어요.” 대책위는 이 PD의 통신기록과 제작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이 PD가 의상·소품·식사·촬영 준비, 데이터(영상파일) 딜리버리, 촬영장 정리, 정산, 편집, 차량 통제 등의 일을 맡았던 것으로 파악했다. 2016년 8월27일부터 10월20일까지 55일간 쉰 날은 이틀, 하루 평균 휴대전화 발신 건수는 28건이었다. 휴대전화 기록을 바탕으로 9월20~29일 수면 시간을 분석해본 결과, 하루 평균 4.5시간이었다. 대책위는 “조연출부 내 총괄 책임자가 없어 업무 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촬영 중간 제작팀이 크게 교체되면서 제작 현장 업무 부담이 가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PD에게 선임 PD들이 일상적으로 ‘언어폭력’을 행사한 정황도 휴대전화 기록, 녹취파일 등을 통해 대책위에 파악됐다.

“‘이 회사에 정직원이고 씨제인이고 하면 니가 일을 더 해야 돼…. 진짜 한 대 후려갈길 뻔했다. 너 퇴사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면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면 지금 나가라. 일이 몰리긴 뭘 몰려. 원래 신입사원은 그런 일 하는 거야.”(2016년 10월1일 한 선임 PD와의 대화) “야, 이한빛 정신 안 차리냐. 현장에서 뭘 어떻게 하길래 스태프들에게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아침에 내가 그 지랄 하는데 쌩까고 지나가냐? 생각할수록 ×나 열 받네. …앞으로 남는 촬영 방송 기간 동안 진짜 꼬투리 잡힐 짓 하지 마라.”(한 선임 PD가 조연출부 카카오톡 단체방에 쓴 메시지)

CJ E&M은 유족에게 보낸 2016년 12월27일치 1차 회신문에서 “제작일지를 별도 작성하지 않아 고인의 정확한 출퇴근 내역을 확인할 수 없다” “촬영 준비, 촬영장 정리, 데이터 딜리버리, 정산·편집 업무 등은 고인에게만 배정된 업무는 아니었다” “연출부 구성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고인의 근태 불량을 상급자들이 지적했고 동료들에게 피해가 발생해 그 불만과 개선 필요성을 고인에게 전달한 적은 있지만 고인을 왕따시키거나 갈등이 장기간 지속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고 대책위는 밝혔다. CJ E&M 관계자는 지난 4월27일 과의 통화에서 자체 진상 조사 내용에 대해 “세세하게 우리 입장을 말하고 진실 공방하는 것이 유족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식적으로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엄마,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아들은 제작 과정에서 외주업체들이 교체된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토로했다. 제작진은 전체 4분의 1가량을 제작한 뒤, 자체 시사회에서 영상 품질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내리고, 촬영·조명·장비팀(외주업체)을 2016년 8월12일 교체하기로 결정한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업체들은 용역 대금 50%를 선지급 받았는데, 이 가운데 촬영을 다 채우지 못한 부분의 대금을 다시 ‘뱉어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전날 바뀌는 사람(스태프)들하고 술자리가 있었나봐요. ‘엄마 이건 좀 아닌 거 같아’라면서 ‘영상이 안 좋으면 촬영할 때 연출부가 책임지고 다시 찍었어야지. 그 사람들 선입금 받은 걸로 전세금 내고 대출금 갚고 했는데 그걸 다시 토해내라니. 연출부 잘못인데…’라고 말했어요.”(엄마 김혜영) “(팀 교체 직후) 카카오톡으로 비정규직 스태프를 정리한다고 하면서 미친 세상이라고 했어요. ‘운동하던 선배들이 일반 회사에 진입하지 않고 왜 계속 밖으로 돌았는지 알 것 같다’ ‘존엄성 지키기가 힘들다’는 말도 했어요.”(친구 박수정) “스태프들이 잘리고 나서 다시 해야 할 일이 많아서 한여름에 밤새워 일했는데 그때 이한빛 PD가 미안하다고 자주 말했어요. 난 당신이 선임 연출자도 아닌데 왜 미안해하냐고, 배우는 과정으로 생각하라고 했어요.”( 제작에 참여한 외주업체 관계자)

아들은 제작 현장에서 느낀 괴로움을 유서에 남겼다.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2016년 10월21일 오후 6시 아들은 서울 도봉동 집을 나섰다. 마지막 촬영을 앞둔 시점이었다. 엄마는 아들이 매일 밤새워 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흘 뒤, 10월25일 오후 회사 인사과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무단결근 중이라고 했다. 놀라서 바로 동네 지구대에 실종 신고를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회사를 찾았다. 1시간 뒤 한 선임 PD가 나타났다. 그는 아들을 1시간 동안 비난했다. “1%도 좋은 얘길 하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애가 ‘불성실했다, 계약직을 무시했다, 갈등이 너무 컸다, 같이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모르는 한빛이가 있나, 집에서랑 달랐나 생각했어요.” 엄마는 그 선임 PD에게 사과했다. “제가 아이를 잘못 키워서 죄송합니다.” 회사를 나와 발길을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애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한빛, 죽었어.” 애아빠는 더 말을 못 잇고 오열했다.

가슴에 맺힌 말

아들은 서울에 있는 한 숙박업소에서 발견됐다. 그는 노트북에 가족 앞으로 남긴 유서엔 이렇게 썼다. “저는 지금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이거 끝나고 나서 술을 먹을 겁니다.” 아들 통장에선 인턴 월급부터 매달 4·16연대, 빈곤사회연대, KTX 해고승무원 대책위 등에 후원한 내역이 나왔다. 많게는 한 단체에 매달 30만원을 후원했다. 엄마가 ‘적금 들라’고 했을 때 아들은 ‘1년만 하고 싶은 일에 쓰겠다’고 했다. “그런 애가 불성실하고 계약직을 무시했다는 말이 앞뒤가 맞는 얘긴가요.” 엄마는 회사의 말을 믿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말은 가슴에 맺혔다.

김선식 기자kss@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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