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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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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주택 안에서 무슨 일이?

‘통영의 딸’에서 시작된 우익 영화 ‘사선에서’ 제작사,

가짜 뉴스 진원지 <노컷일베> 발행사,

탄핵 반대 태극기집회 주도한 자유민주주의수호시민연대까지 한 건물에
등록 2017-03-14 21:33 수정 2020-05-03 04:28
박근혜 정부의 이념 전쟁에 앞장섰던 우익 단체들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부림주택. 김완 기자

박근혜 정부의 이념 전쟁에 앞장섰던 우익 단체들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부림주택. 김완 기자

우익 단체들이 모인 건물이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부림주택’이다. 강남대로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간 주택가 골목에 자리잡은 연립주택 건물이다. 외관을 리모델링한 이후 ‘부림 소호’라는 간판이 달려 있다. 지하 1개층에 지상 3개층짜리 건물이다.

부림주택 지층에는 서로 다른 우익 단체들이 집결해 있다. 예닐곱 단체들이 직간접적으로 이 건물에 주소를 두고 있다는 것이 각 단체의 누리집 주소 등을 통해 확인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 운동에 적극적인 ‘기회평등 학부모연대’, 우파 학생운동을 대변한다는 ‘전국청년대표자연합’등이다. 이들 단체는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로 활동하며 박근혜 정부가 벌인 ‘이념 전쟁’의 맨 앞에 섰다.

부림주택의 존재는 과 의 공동취재로 확인됐다. 정의당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의원실의 도움이 컸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건물에 침입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 단체들은 자신들의 사무공간이 노출되는 것에 극단적인 거부감을 보였다.

취재 과정에서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얼핏 우익 단체와 어울리지 않는 영화사가 부림주택을 ‘프로필투어’ 주소지로 쓰고 있었다. ‘SH필름’으로 부터 '통영의 딸' 판권을 사들인 '디씨드'란 영화사였다. 프로필투어란 오디션에 나서는 배우들에게 프로필 자료를 받는 장소를 말한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프로필투어 주소지는 실제 일을 보는 곳이란 뜻”이라고 말했다.

'통영의 딸'의 원저작권자였던 SH필름의 대표는 신상한이다. 신 대표는 영화계 모태펀드를 관리하던 ‘한국벤처투자’의 전문위원이었다. 모태펀드는 정부가 출자한 돈을 민간에 지원하고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의 투자다. 신 대표는 한국 영화를 ‘블랙리스트’(투자 배제)와 ‘화이트리스트’(투자 지원)로 나눠 지원과 배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5억원 모태펀드 투자 ‘사선에서’

'통영의 딸'은 올 4월쯤 개봉할 예정이었다. 순제작비 45억여원을 모태펀드로만 충당한 기념비적인 영화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제목은 ‘사선에서’로 바뀌었다.

‘사선에서’는 서독에서 북한으로 월북한 오길남 박사의 에세이 (세이지 펴냄)을 원작으로 한다. 2016년 영화진흥위원회 가족영화 제작 지원 사업 작품으로 선정됐고, 제작되기도 전에 롯데가 배급사로 결정된 작품이다.

오길남 박사는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5년 독일 브레멘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한 공작원에 포섭돼 가족과 함께 월북했고, 이후 공작원으로 파견됐다가 1992년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에 혼자 자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부인 신숙자씨와 두 딸 혜원·규원씨는 북한에 끌려가 악명 높은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활한 것으로 전해진다.

뒤틀린 한국 현대사가 만든 기구한 사연은 2011년부터 보수 단체들의 핵심 의제가 됐다. 북한인권학회 세이지(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지성)는 전시회 ‘그런데 통영의 딸이 그곳에 있습니다’를 경남 통영에서 열었다. 이후 그해 말까지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구출 운동’이 100만 서명운동, 국회 결의문 추진, 유엔 청원운동 등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을 주도한 이는 최홍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당시 남북청년행동단 대표)이다. 최 전 행정관은 ‘구출! 통영의 딸, 백만 엽서 청원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했던 ‘통영의 딸 송환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한 운동권 출신으로 이후 전향해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했고, 이명박 정부 때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최연소 이사를 지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인수위원회를 거쳐,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기획단장 등을 역임했다. ‘통영의 딸 구출 운동’이 기존 보수 운동과 다른 맥락에서 세련되고 광범위하게 기획·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운동권 출신 최홍재의 역할이 컸다.

최홍재가 주도한 ‘통영의 딸 송환 운동’을 영화로 만들자는 기획은 SH필름에서 시작됐다. SH필름 신상한 대표와 최홍재는 대학 동문이다. 신 대표는 최홍재가 ‘통영의 딸’ 운동을 한창 하던 2011년 10월 영화 저작권 계약을 맺었다.

이후 최홍재는 청와대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2013년 3월~2014년 3월)과 대통령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기획단장(2014년 4월~2015년 5월)을 거쳤는데, 이 무렵인 2015년 1월 신 대표는 모태펀드를 운영하는 한국벤처투자의 상근 전문위원이 됐다.

그리고 영화 ‘사선에서’는 영진위에서 8억원의 지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 모태펀드 산하 투자 캐피털로부터 35억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정부기금을 운용하는 기관의 간부가 자신이 저작권을 샀던 영화에 기금을 준 셈이다. 총 45억원의 제작비 가운데 메인 투자사 없이 43억원을 정부의 지원과 관리 기금으로 충당해낸 전무후무한 사례다. 영화는 올 4월 개봉을 목표로 촬영이 진행됐고, 주연은 배우 이범수가 맡았다. 그러나 아직 후반 작업이 끝나지 않아 언제 개봉할지는 알 수 없다.

이병기 국정원장, 보수단체 지원 실토

그런 사연을 품은 영화를 제작하는 회사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기존 보수 단체 말고도 새로운 두 단체가 최근 입주했다. ‘자유민주주의수호시민연대’와 ‘에픽미디어’다. ‘에픽미디어’의 대표가 ‘자유민주주의수호시민연대’의 간사를 맡고 있다. 두 단체 모두 탄핵 반대 집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유민주주의수호시민연대는 50여 개 보수우파 단체의 연대기구로 탄핵 반대 태극기집회를 주도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전희경 의원과 함께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권영해 전 안전기획부장이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이하 탄기국)가 ‘탄핵 반대’라는 하나의 목표로 뭉쳐 있다면, 자유민주주의수호시민연대는 보수 단체의 상설 연대체로 보면 된다.

에픽미디어는 의 발행사다. 온·오프라인에서 동시 발행되는 는 (프리덤뉴스)와 함께 가짜 뉴스의 진원지로 꼽힌다. 의 도메인 등록 시점은 2016년 7월이다. TV조선이 대통령 측근 의혹을 처음 보도한 직후다. 기사를 발행하기 시작한 건 10월25일이다. JTBC가 ‘태블릿PC’ 보도를 한 다음날이자 박근혜가 1차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날이다.

이들이 모두 한 건물을 쓰고 있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아직은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실마리는 있다. 일반적으로 모태펀드 지원금은 영화 개봉 뒤 수익을 얻으면 환수된다. 제작 과정에서 지원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셈이다. 신 대표가 제작 중인 ‘사선에서’는 범우파의 프로젝트였고, 현재 같은 건물에 주소지를 둔 단체들의 대표나 임원급 인사들은 ‘통영의 딸’ 구하기와 관련이 깊다.

예컨대, 자유민주주의수호시민연대 간사이자 에픽미디어 대표인 홍수연은 ‘통영의 딸’ 구하기에도 열심히 참여했던 인사다. 모태펀드 영화 문화 계정 외부 전문가 역을 맡은 자문 변호사들 역시 ‘통영의 딸’ 구하기와 관련 있는 단체들에서 활동해왔다.

국정원장을 지낸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최근 실토한 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지난 1월 특별검사 조사에서 “(국정원이)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은 예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기조실장한테 그런 내용에 대해 보고받았지만, 계속 그런 지원이 있어왔기 때문에 국정원장이 굳이 터치할 입장은 안 됐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국정원장은 2014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 국정원장으로 재직했다. 이 전 국정원장이 민간 단체에 직접 지원했다고 밝힌 시기와 부림주택에 입주한 단체들의 창립 시기가 겹친다. 부림주택에 입주한 6개 단체의 상위 단체인 기회평등학부모연대는 2014년 12월 발기인 준비모임을 열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영화   「사선에서」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본지는 2017년 3월 13일자 『부림주택 안에서 무슨 일이?』 및 2017년 4월 10일자 『모태펀드와 화이트리스트』 제목의 기사에서 영화 「사선에서」 관련 의혹을 보도하였습니다.
사실 확인 결과 해당 영화 제작사는 SH필름이 아닌 원작 출판사로부터 판권을 직접 구입한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또한 위 제작사는 영화 「사선에서」는 「통영의 딸」과는 줄거리와 기획의도를 달리하며, 가족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고군분투를 그린 가족영화로 우익영화가 아니며, 총 제작비는 65억 원 규모로 그 중 가족영화 지원사업 지원금은 8억, 모태펀드 계정 투자금은 35억이며, 나머지는 민간 투자금으로 구성되었고, 부림주택의 다른 임차인들과 무관하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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