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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영화계 길들이기 기획의 전말

<한겨레21>-<씨네21>-정의당 김종대 의원실 공동취재…

모태펀드와 영화진흥위원회의 ‘가족영화’ 지원사업의 모든 것
등록 2017-04-11 20:25 수정 2020-05-03 04:28
편집자주_몸통은 밝혀졌다. 박근혜 구속영장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범행’ 중에서 청와대가 ‘모태펀드 운용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식회사 한국벤처투자의 임원 교체를 통한 대책 강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간 제기된 모태펀드 관련 의혹이 청와대의 치밀한 기획에 따라 실행된 것이다. 과 , 그리고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은 박근혜 정권이 돈줄(모태펀드)을 쥐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작동시켰는지 낱낱이 밝혀내기로 했다. 지금까지 의혹이 제기된 모태펀드에 대한 모든 것, 다른 계정과의 비교를 통한 문화·영화 계정 외부 전문가 풀 분석, 영화 의 후속 조치로 실행된 영화진흥위원회의 가족영화지원사업의 전말, 박근혜 구속영장청구서를 통해 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전말을 다루었다.
<씨네21> 김성훈 기자의 취재수첩과 <한겨레21>이 보도했던 기사들. <한겨레21>과 <씨네21>은 두 달여간의 취재로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블랙리스트’ 파문이 이명박 정부 때 이미 기획됐으며, 모태펀드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산업 논리를 바꾸려 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씨네21 최성열 기자

<씨네21> 김성훈 기자의 취재수첩과 <한겨레21>이 보도했던 기사들. <한겨레21>과 <씨네21>은 두 달여간의 취재로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블랙리스트’ 파문이 이명박 정부 때 이미 기획됐으며, 모태펀드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산업 논리를 바꾸려 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씨네21 최성열 기자

“2014년도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올린 예산안에는 가족영화 제작지원 사업이란 항목 자체가 아예 없었습니다.”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김세훈·이하 영진위) 예산 작성 책임자급 인사이던 영진위 고위 관계자의 증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영진위가 2015년에 시작한 ‘가족영화 제작지원 사업’은 총사업비 규모가 연간 50억원에 달한다. 영진위가 부산영화제에 연간 8억원가량 지원하고, 독립다큐멘터리 전체 제작지원 예산이 1억5천만원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그런데 이 사업의 실무 조직인 영진위 내부에선 예산이 확정될 때까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정부 예산은 4월에 부처별로 자체 예산안을 짠 뒤 5~6월에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확정한다. 이후 7~8월에 다시 부처 간 조정 과정을 거쳐 10월에 정부안을 확정해 국회에 보낸다. 이런 통상적인 절차에 비춰본다면 가족영화 제작지원 사업은 영진위가 예산을 기안한 2014년 4월 이후 누군가 중간에 ‘끼워넣은’ 사업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실이 영진위에 확인한 결과, 영진위도 이 대목에 대해선 사실을 인정했다. 영진위 쪽은 “가족영화 제작지원 사업이 최초 예산에는 없었고 정부 예산안 확정 시점인 11월 초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제출에 앞서 별도 편성됐다”고 밝혔다.

느닷없이 ‘끼워넣은’ 50억원 예산

가족영화 지원사업이란 박근혜 정권과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우파 영화인들이 제작하는 이른바 ‘건전 애국영화’를 지원하는 데 동원된 사업이다. 그렇다면 영화 관련 예산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국가 예산의 ‘곳간 열쇠’를 쥔 기재부에 동시에 영향을 끼친 이들은 누구였을까.

이 해답을 얻기 위해 과 은 공동으로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하기 위해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을 입수해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세력을 위해 국가 예산을 좌지우지한 박근혜 정권의 추악한 모습이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을 구속으로 몰고 간 것은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을 국가 지원사업에서 솎아내기 위한 ‘블랙리스트’였다. 그 이면엔 자격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우파 영화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화이트리스트’가 존재했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기 위해 검찰이 작성한 구속영장을 보면, 화이트리스트의 필요성을 처음 언급한 이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2014년 4월 신동철 전 국민소통비서관에게 “좌파에 대한 지원은 많은데 우파에 대한 지원은 너무 없다. 중앙정부라도 나서서 지원하라.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좌파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 우파는 배고프다”라고 말한다. 김기춘의 지시를 받아 2014년 4월부터 5월 하순까지 ‘국민소통, 행정자치, 사회안전, 경제금융, 교육, 문화체육, 보건복지, 고용노동’ 청와대 비서관들이 참여하는 ‘민간단체보조금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진다. TF는 좌파들에게 지원되는 이른바 ‘문제 예산’을 솎아내 배제하는 ‘부처별 관심 예산’(총 130건)을 추린다. TF의 활동은 ‘문제단체 조치 내역 및 관리 방안’ 이름의 보고서로 정리돼 김기춘에게 직접 보고됐다. 실행 책임은 박준우 정무수석이 맡았다가, 2014년 6월 후임자인 조윤선 수석에게 인계됐다.

복수의 영진위 관계자들은 우파 영화를 활성화하라는 윗선의 압박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영화 제작은 ‘정치 논리’가 아닌 ‘산업 논리’로 움직인다. 투자자 없이 신념만으로 영화가 만들어질 순 없다. 우파 영화들이 제작되지 못한 배경이다. 그러나 CJ에서 제작한 ‘인권 변호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 (양우석 감독, 송강호 출연·2013)을 계기로 기류가 달라진다. 박근혜 정부는 ‘직접 예산지원’을 통해 우파 영화를 만들어내기로 방침을 바꾼다. 흥행 이후 신설된 영진위 가족영화 제작지원 사업은 함량 미달로 ‘메인 투자사’를 구하지 못해 고사되는 우파 영화에 박근혜 정권이 내린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우파 영화 살리기’
한국 영화 진흥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주)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는 박근혜 정부 들어 영화를 ‘화이트리스트’(투자 지원)와 ‘블랙리스트’(투자 배제)로 나눠 관리했다. 화이트리스트 작품들(<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이 수십 억원의 투자를 받을 때, 블랙리스트 작품들(<보통사람> <택시운전사>)은 지원에서 배제됐다. 각 영화 제작사 제공

한국 영화 진흥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주)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는 박근혜 정부 들어 영화를 ‘화이트리스트’(투자 지원)와 ‘블랙리스트’(투자 배제)로 나눠 관리했다. 화이트리스트 작품들(<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이 수십 억원의 투자를 받을 때, 블랙리스트 작품들(<보통사람> <택시운전사>)은 지원에서 배제됐다. 각 영화 제작사 제공

우파 영화 활성화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기획’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족영화 지원사업이 정부의 직접 지원이었다면, 그동안 한국 영화의 안정적 발전에 큰 역할을 해온 영진위 모태펀드의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한 것은 교묘한 ‘간접 지원’이었다.

지난 4월1일 일반인들에겐 낯선 ‘모태펀드’라는 말이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로 올랐다. 이날 SBS ‘두 개의 광장, 하나의 진실’(1070회)이 방영된 직후였다. 박근혜 정권에서 영진위 모태펀드로부터 전폭적 지원을 받아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영화사 사무실이 우익단체들과 한 공간에 모여 있다는 내용이었다. 은 3월13일 발행된 제1153호 이슈추적 ‘부림주택 안에서 무슨 일이’를 통해 관련 사실을 앞서 보도한 바 있다.

모태펀드의 사전적 의미는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Fund of Funds), 즉 펀드의 어머니다.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2005년 만들어진 모태펀드는 기업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 개별 펀드(투자조합)에 출자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모태펀드는 법률에 근거해 정부기금과 예산으로 조성된다. 이 가운데 영진위 모태펀드는 한국 영화 제작에 투자한다.

모태펀드가 펀드의 어머니라면 펀드의 아들인 자펀드는 기업에 직접 투자한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정부 주체는 중소기업청 산하 공공기관인 (주)한국벤처투자(대표 조강래)다. 한국벤처투자는 정부가 출자한 돈을 민간투자 재원과 합쳐 펀드 운용사가 투자하는 중소·벤처기업이나 개별 사업에 투입한다. 영화 투자의 경우 문체부나 영진위가 문화예술진흥기금과 영화발전기금의 투자조합출자사업 예산을 모태펀드에 출자하면 한국벤처투자가 이 기금을 민간 투자금(창업투자회사,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투자, 개인투자자)과 함께 영화 제작사나 특정 작품에 투자하는 식이다.

모태펀드는 개별 투자자가 감당해야 하는 투자 위험도를 줄여 제작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모태펀드는 단기 투자가 지배적인 민간 금융시장에서 신뢰성 높은 공공자금을 끌어들여 일정 규모의 금액이 영화산업에 지속적으로 선순환되는 환경을 만든다. 그 때문에 모태펀드는 오랫동안 영화계의 종잣돈 구실을 해왔다. 특히 서울 충무로의 보릿고개인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 영화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태펀드 덕분이었다. 이렇게 형성된 모태펀드의 총규모는 2016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2조4212억원이고 민간자금이 결합된 자펀드는 14조5672억원에 이른다.

모태펀드 날아든 ‘낙하산’ 수사해야

박근혜 정권은 이 선순환 구조를 왜곡해 우파 영화 지원에 물꼬를 트려 했다. 한국 영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온 모태펀드의 의사결정에 왜곡이 시작된 것은 모태펀드 운영 주체인 한국벤처투자에 ‘전문위원’이란 직함이 신설되면서인 것으로 보인다. ‘전문위원’은 정권이 불편해하는 영화를 걸러내는 구실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이에 대해 청와대가 “모태펀드 운용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상한 SH필름 대표는 2014년 10월 한국벤처투자 전문위원으로 취임했다. 이후 신씨가 저작권을 갖고 영화화를 추진하던 은 제작자와 제목을 바꿔(, 제작 디씨드) 2016년 가족영화 제작지원 사업작으로 선정됐다. 이후 모태펀드를 통해 추가로 35억원을 지원받았다. 가 정부가 기획한 지원 경로의 수혜를 입는 과정에서 원전 참사를 다룬 재난영화 , 군 비리 사건을 다룬 , 광주민주화운동이 배경인 ,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 국가안전기획부의 기획수사에 맞서는 한 가장을 주인공으로 한 등 여러 영화가 모태펀드 투자를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이 아니다. 공교롭다고 해야 할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애국심을 고취하는 이른바 ‘국뽕’ 영화들은 모두 모태펀드로부터 원활한 투자를 받았다. 같은 정권이 선호한 영화들은 2개 이상의 모태펀드로부터 각각 30억~40억원을 투자받았다. 모태펀드의 편당 평균 투자액이 5억~10억원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투자다. 이 과정 전반에 대해 과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이 취재와 보도를 시작하자 한국벤처투자는 전문위원 직책을 아예 없애버렸다.

월북한 오길남 박사의 에세이 (세이지 펴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는 2011년부터 보수단체가 큰 관심을 기울여온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였다. 북한의 비열한 정치 공작, 간첩 양성 과정, 정치범 수용소의 비극 등 북한 인권 문제를 두루 포괄한 내용이라는 특성 때문이었다.

오길남 박사의 기구한 사연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인 이는 최홍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당시 남북청년행동단 대표)이다. 최 전 행정관은 ‘구출! 통영의 딸, 백만 엽서 청원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한 ‘통영의 딸 송환대책위’ 공동대표였다. 최 전 선임행정관이 ‘통영의 딸’ 구하기 캠페인을 벌였을 때, 신 대표는 이 책의 영화 저작권을 사들였다. 최홍재와 신상한은 공교롭게도 고려대 동문이다.

검찰이 박근혜 구속영장에 모태펀드 운용에 개입한 사실을 적시한 만큼, 신 대표가 모태펀드의 투자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까지 수사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모태펀드의 다른 계정들과 달리 문화·영화 계정은 유독 전문위원회 외부 전문가 풀을 19명이나 운영(타 계정은 3~12명)했다. 19명 가운데 10명은 문화·영화 영역과 상관없는 변호사·교수였고, 7명은 보수우파 단체 활동가들인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벤처투자는 과 김종대 의원실의 취재가 시작된 뒤 외부 전문가 풀을 돌연 없앴다.




문화·영화  계정  외부  전문가  풀


문화·영화 계정에 속한 외부 전문가 19명 중 10명이 문화·영화 산업과 관련 없는 변호사, 사회과학 계열 교수들로 채워져 있다. 이 직접 확인한 8명 중 7명은 보수우파단체 활동 멤버(행복한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바른사회시민회의, 한국자유회의 등)다. 한국벤처투자는 이들을 투자 배제와 혜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통로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명과 이력을 모두 공개한 다른 계정과 달리 문화체육관광부만 외부 전문가 풀 명단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문성’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4일 영화계 5개 주요 단체는 ‘영화산업 블랙리스트 시행기관 모태펀드(한국벤처투자)의 범죄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해 “한국벤처투자 내 상근 전문위원과 계정별 외부 전문가 풀이 2015년에 신설되고 2017년 2월에 폐지된 전 과정을 밝힐 것을 촉구한다. 또한 각 위원이 누구에 의해 어떤 경로로 추천되었는지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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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김성훈 기자 pepsi@cine21.com



영화   「사선에서」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본지는 2017년 3월 13일자 『부림주택 안에서 무슨 일이?』 및 2017년 4월 10일자 『모태펀드와 화이트리스트』 제목의 기사에서 영화 「사선에서」 관련 의혹을 보도하였습니다.
사실 확인 결과 해당 영화 제작사는 SH필름이 아닌 원작 출판사로부터 판권을 직접 구입한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또한 위 제작사는 영화 「사선에서」는 「통영의 딸」과는 줄거리와 기획의도를 달리하며, 가족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고군분투를 그린 가족영화로 우익영화가 아니며, 총 제작비는 65억 원 규모로 그 중 가족영화 지원사업 지원금은 8억, 모태펀드 계정 투자금은 35억이며, 나머지는 민간 투자금으로 구성되었고, 부림주택의 다른 임차인들과 무관하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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