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고비마다 불복종이 있었다. 한국사국정화저지네크워크(cafe.daum.net/historyact2012)를 보면, 국정화 방침이 확정(2015년 10월12일, 역사 교과서 발행 체제 개선 방안 발표)되기 전인 2015년 9월부터 교육부 확정고시(2015년 11월3일, 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구분한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안’ 고시) 직전인 10월 말까지 60여 일 동안 모두 67건의 국정화 반대 선언문이 발표됐다.
실명을 밝힌 개인이 2만2천여 명(단체 형태의 반대 선언 제외)이었고, 일반대 70여 곳의 교수 520여 명은 집필을 비롯한 심의·감수 등 제작 전 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학정보 포털 ‘대학알리미’를 보면, 전국 일반대 197곳 가운데 역사 관련 전공이 설치된 곳은 80여 곳이다.
국정교과서 집필 강제 차출에 퇴직한 공무원2015년 11월3일 국정화 확정고시 이후에도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불복종이 있었다. 집필진에 ‘강제 동원’됐다가 공무원 자리를 스스로 반납한 A씨가 그 사례다.
지난해 6월7일 이한기 전 편집국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학 동기인 국립박물관 학예관 A씨가 국정교과서와 관련돼 20여 년 동안 몸담은 공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전했다. 당시 그는 게시글에서 “국립박물관에서 20년 넘게 학예사·학예관으로 일했던 대학 과동기가 지난 4월 말에 공무원 생활을 때려치웠단다. 본인의 뜻과 관계없이 ‘국정 역사 교과서’ 파트로 강제 차출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차라 오늘 연락해봤”다며 A씨와의 통화 내용을 전했다. ‘국정교과서 때문에 그만둔 거냐’고 묻는 이 전 국장에게 A씨는 “그렇지, 뭐…. 내가 어떻게 그걸 하겠냐”고 대답했다. “어떻게 현대사가 나를 비껴가는 법이 없냐”고도 했다.
게시글이 올라온 뒤 몇몇 언론에서 A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접촉했지만, 보도를 원하지 않아 기사화되지 않았다. 이 전 국장 역시 기사를 쓰지 않았다. 그는 과의 통화에서 “친한 친구니까 물어봤다. 그런데 그거(국정교과서 때문에 그만뒀다) 말고는 얘기할 게 없다고 했다. 더 길게 얘기하는 것을 피하는 친구에게 기사를 위해 꼬치꼬치 캐물을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 전 국장은 A씨를 이후 한두 번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퇴직과 관련해 물어보면 웃기만 한다. 자세한 얘기는 안 하고 ‘얼굴이나 자주 보자’ 그러고 만다. 내 속이 더 아프다. 자존심과 밥그릇을 동시에 빼앗겼는데 속이 찢어지지 않겠나. 국가는 국민의 양심을 보호해야 하는데 공무원이란 이유로, 생계가 걸렸다는 점을 악용해서 양심을 억압하고 영혼을 빼앗은 것이다.” 2월9일 기자는 A씨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10일까지 회신은 없었다.
국정화 결정과 동시에 터져나온 ‘집필 거부 선언’으로 집필진 구성이 난항을 겪자, 교과서 개발 책임을 맡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역사 관련 국책연구기관과 여러 국립박물관의 학예사·학예관 등 ‘공무원’들에게 손을 뻗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신분상 국가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렵고, 집필 과정에서도 국가의 개입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개연성은 충분했다.
실제 지난해 11월28일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과 함께 공개된 집필진 31명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포함돼 있었다. 진재관 역사교과서개발추진단장(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은 국책연구기관의 집필진 동원 우려에 대해 2015년 11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책연구기관은 검토나 감수 단계에서 활용할 것”이라며 집필진으로 초빙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뉴라이트적’ 편찬심의에 반기 든 교사국정교과서 제작에는 집필진뿐만 아니라 편찬심의회 위원도 필수 인력이었다. 2015년 10월12일 교육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한 보도자료를 보면 “교과서 개발의 전 과정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다양한 관계자들과 논의하여 교육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를 확보할 것”이라며 “교과서 편찬 과정에서 수정·보완에 관여하는 편찬심의회를 역사·교육·국어·헌법학자와 교사, 학부모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편찬심의회를 개방적으로 운영해 국정교과서의 편향성 논란을 불식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실제 공개된 편찬심의회 구성은 애초 취지와 달랐다. 지난 1월31일 공개된 편찬심의회 위원 명단과 한국현대사학회의 임원 명단(‘2011년 역사 교육과정의 문제점과 한국현대사학회’, ‘초·중·고 역사 교과서의 현대사 서술과 민주주의’ 학술토론회 자료집)을 대조해보면, 위원 12명의 절반(전문가 6명, 교원 4명, 학부모 2명)을 차지한 전문가 위원 6명 가운데 4명(표 참조)이 2011년 5월 뉴라이트를 표방하며 출범한 한국현대사학회에 이름을 올렸다.
이 때문에 편찬심의회 위원 명단이 공개된 뒤 ‘우편향’ ‘뉴라이트 일색’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교사 몫으로 들어간 일부 위원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름 애를 썼다. 편찬심의회 내부에서 ‘뉴라이트적 심의’에 반기를 든 이들의 존재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현장 교사로 참여한 위원 B씨는 과의 통화에서 “사실상 9(뉴라이트) 대 3의 구도였다. 집필진의 원고본(초고)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과 의견이 달라 고충이 많았다. 주로 교사 3명이 시민들이 주장하는 내용으로 계속 제시했는데 (반영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력이 화려하지만, 우리 교사들은 스펙이 없잖은가. 내가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한 것을 처음 후회했다.”
B씨는 심의 과정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적이 있었다. 애초 16명으로 위촉한 편찬심의회 위원은 중도에 4명이 사퇴하고 12명만 남아 최종 명단이 발표됐다. “교사들이 순진하잖은가. 너무 우편향인 사람들만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어떻게 되겠나 하는 생각에 들어갔다. 1차 심의 때 내가 제주 4·3사건에 대한 심의 의견을 냈는데, 그것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미운털이 박혀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다 혹시 가족한테도 피해가 갈까 (사퇴를) 고민했다.”
교사 위원들의 심의 의견이 반영된 부분도 있다. B씨는 대표적으로 애초 단체사진으로 얼굴 식별이 불가능했던 김구 선생의 사진이 별도로 들어간 점을 꼽았다. 박정희 관련 학습 분량이 너무 많은 점을 꾸준히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정교과서 개발 과정 숨기는 교육부B씨는 통화 내내 “이런 얘기를 해도 되나” “나는 괜찮지만 내 얘기 때문에 다른 분들한테 누를 끼치면 어쩌냐”고 걱정했다. 교육부는 2015년 10월12일 보도자료에서 “집필부터 발행까지 교과서 개발의 전 과정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부는 집필진 명단처럼 편찬심의회 위원 명단도 국정교과서 개발 완료 뒤에야 공개했다. 편찬심의회 회의록도 공개를 거부하다 야당 의원들의 요청으로 지난 2월8일 ‘요약본’을 제출했다.
더불어민주당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가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편찬심의회 회의록’을 보면, 각 위원들의 말이 단어 위주로 요약 정리돼 있어 맥락이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참석자 이름은 있지만, 해당 발언을 한 사람의 이름은 지워져 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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