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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에서 닭을 해방하라

연례행사 돼버린 AI 사태, 살처분·방역·공장식 축산 등 문제 해결 없인 벗어나기 힘들어
등록 2017-01-03 20:50 수정 2020-05-03 04:28
2012년 4월 서울 세종로 광화문네거리에서 동물자유연대 회원들이 공장식 밀집사육을 반대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2012년 4월 서울 세종로 광화문네거리에서 동물자유연대 회원들이 공장식 밀집사육을 반대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최초로 발견된 2016년 11월16일 이래 597개 농가 2844만 마리의 닭·오리·메추리 등이 살처분되고, 그 피해액만 1051억원 규모에 달한다(2016년 12월30일 0시 기준, 잔여 농가 포함). 이 상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비슷한 시기 AI가 발생한 일본에선 5개 농가 78만 마리 살처분으로 피해를 최소화한 것에 반해, 한국의 대응은 무능했다. 일본과 피해 규모 차이는 무려 36배에 달한다.

매일 경신되는 살처분 수를 답답하게만 느끼다가 현재 우리나라 인구인 5168만 명과 비교해보니 그 엄청난 수에 아득해진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피해가 커지게 되었을까.

2003년부터 한국에선 거의 매년 AI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03~2004년 528만5천 마리, 2006~2007년 280만 마리, 2008년 1천만4천 마리, 2010~2011년 647만3천 마리, 2014~2015년 1937만2천 마리, 그리고 2016년 2844만 마리. 매년 AI가 발생하고 그 피해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지만 그동안 방역 당국은 AI의 발생 원인으로 야생 철새에게만 초점을 맞추었다.

살처분, 결코 만병통치 아니다

원인을 야생 철새에 맞추지만, 포획 자체가 쉽지 않아 역학조사도 잘 진행하지 못한 채 말이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에 확산되는 AI 바이러스는 ‘H5N8’이다. 이 H와 N 바이러스의 조합에 따라 144가지 유형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사전에 백신을 개발하기 어렵다. 그리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에도 잠복기에는 증상을 확인하기 어려우며, 당연히 면역력 정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H5N8 AI의 경우 중국에서 사람에게 감염된 사례가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변이로 조심스럽게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

원인 진단만큼이나 이론적이던 살처분 대처는 오히려 현재 상황을 악화시켰다. AI 발생 농가만이 아니라 인근 500m, 3km에 위치한 농가들도 예방적 살처분이란 이름으로 대규모 살처분을 감행했다. 이는 AI 바이러스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론적으로 완벽한 계획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살처분에 투입돼야 하는 인력 부족과 대응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은 오히려 AI 확대를 부추겼다. 살처분을 감행해야 하는 인력은 농장당 15~20명이 필요하지만 그에 훨씬 못 미치는 5~6명만이 현장에 투입됐다. 인력에 비해 감당해야 할 농가 수가 너무 많다보니 24시간 이내 살처분 원칙은 지켜질 수 없었고, AI 확진 뒤 엿새가 지나서야 농장주가 직접 사람을 고용해 살처분을 감행한 사례도 있었다.

대규모 살처분 방식은 전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무모한 방식이다. 일본·영국·유럽연합에서는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해당 농가만 살처분 대상으로 삼고, 나머지 인근 지역은 철저한 이동 제한, 이동 금지 명령 등 방역 조치를 강화하는 것으로 후속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의 미흡한 방역, 유통 시스템은 AI 확산을 부추겼다. AI가 발생한 11월16일 이후 11월19일 살아 있는 토종닭 유통을 금지했으나, 관계기관 협의회의 결정으로 12월15일 방역 강화 조치를 조건으로 제한적으로 유통을 재개했다. 하지만 부산에서 토종닭의 AI 발생으로 뒤늦게 유통 재금지와 시장 격리를 조치했다.

확진 판정 골든타임도 놓쳐
2016년 11월29일 전남 나주시의 한 씨오리 농장에서 작업자들이 오리를 땅에 묻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11월29일 전남 나주시의 한 씨오리 농장에서 작업자들이 오리를 땅에 묻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 검진 시스템의 오류도 문제다. 방역 시스템 문제는 중앙-지역의 역할 분배에도 엮여 있다. AI가 발생한 것으로 의심되면, 이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으로 바이러스를 보내 판정을 받는다. 이 과정에 24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지역별로 방역차를 곳곳에 설치하고, 발생 지역의 교통을 차단하며, 방역 업무와 살처분을 진행하는 이원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지역별 이동 시간과 결과 판정 시간이 오래 걸려 초기 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밖에 없다. 또한 지역별로 방역·소독을 맡겨왔으나 초기 한 달간 AI 확진판정을 받은 178개 농장 중 156개 농장에서 겨울철 효력이 떨어지는 소독제를 사용해 사실상 바이러스를 방치한 상황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중앙과 지역의 시스템 변경이 필요하다. 중앙에서 확진하고 지역별로 방역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서 AI를 검진할 수 있는 전문인력 배치, 전국적으로 공통된 방역 시스템 시행 등으로 변경돼야 한다. 늦었지만 12월29일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축산 차량 위치를 위성항법장치(GPS)로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종합상황관제시스템을 보완하기도 했다.

최악의 AI 사태에 언론과 정부에서는 방역 시스템과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중심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축산 시스템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매년 AI 대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날개를 펼칠 수 없는 철장에 닭을 가둬 층층이 쌓아두고, 물가에서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오리는 관리의 편리를 위해 죽을 때까지 물 위에 한번 떠보지 못한 채 ‘생산’되고 있다. 고기와 달걀을 싼값에 유통하기 위한 공장식 축산은 동물의 생태적 삶을 고려하지 않은 학대를 자행했고, 그런 환경에서 동물의 바이러스 저항력이 떨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실제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양계농장의 대형화, 전문화를 지원한 이후 AI 피해가 급증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총 3회에 걸친 AI 발생 일수는 총 669일 동안 계속됐다. 한여름이던 2개월을 제외한 기간에 계속 AI 피해가 확산돼 809농가에서 1937만2천 마리를 살처분했다. 피해액만 2381억원이었다. 이때 발현된 AI 바이러스 유형이 현재와 같은 H5N8이다.

동물복지 농장까지 피해

2014년 피해 속에서도 AI 청정 지대로 살아남은 곳은 동물복지 농장이었다. 하지만 방역 시스템이 무너진 2016년에는 초기 방역이 지연돼 인근 농가에서 동물복지 농장에 AI를 전염시켰다. 현재 농장주는 방역 당국의 허술한 대응에 대해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AI 확산으로 달걀값이 폭등하고, 우리는 닭과 오리를 먹어도 되는지 걱정하고 있다. 정부는 2017년 상반기에 달걀 9만8555t을 수입하기 위해 관세율을 현재 27%에서 0% 수준까지 낮추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물론 가정과 업소에서 사용되는 소중한 식재료인 달걀을 수급하기 위한 방법은 중요하다.

하지만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맞춘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여전히 소외되는 사람들은 양계 농부다. 현재와 같은 공장식 축산이 동물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 학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소비자로서, 시민으로서 우리의 선택은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소비 방식을 바꾸는 것, 싼 식재료가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적절한 가격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생산자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병행돼야 할 순간이다.

2015년 녹색당과 카라(동물보호단체),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이하 동변)이 함께 가축사육 시설의 허가 및 등록 기준을 규정한 옛 축산법 시행령 제14조 제2항 별표 1의 제1호 가목, 사목, 마목과 축산법 시행령 제14조의 2 제2항 별표1의 제2호에 대해 공장식 축산 위헌소송을 진행했다.

‘케이지를 추방하자’ 백만인 서명 운동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축산 관련 법령이 가축사육 시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갖추었다며 축산법 위헌소송을 기각했다. 최소 기준으로 매년 구제역과 AI가 발생하고 있다면, 적정한 기준으로 변경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는 성장 중심의 대규모 축산농가가 동물의 생태적 습성을 고려하는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바뀔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이 상황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의 힘과 지혜가 모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공장식 축산 위헌소송을 진행했던 녹색당, 카라, 동변이 함께하는 ‘공장화된 농장에서 케이지(감금틀 사육을 상징)를 추방하자’는 백만인 서명(http://stopfactoryfarming.kr)에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제 우리가 공장식 축산을 멈추고,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변경될 수 있도록 정부를 압박하고 견인해야 할 때다.

이상희 녹색당 정책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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