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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딱새우’ 맛을 알아?

딱딱하고 손질 어려운 식재료의 격상 꿈꾸는 요리사 김장순… 이탈리안·프렌치 요리로 변신한 딱새우 쓱쓱 비비면 ‘밥도둑’
등록 2016-08-02 16:52 수정 2020-05-03 04:28
‘저스트 쉬림프’의 칼초네에는 흡사 새우 크로켓을 먹는 재밌는 식감이 있다.

‘저스트 쉬림프’의 칼초네에는 흡사 새우 크로켓을 먹는 재밌는 식감이 있다.

새우, 전세계 어디를 가도 있는 흔한 식재료다.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적지만 새롭기도 어려운 평범한 재료다. 누구나 맛을 알고 있고, 어떻게 조리하든 그 맛을 상상할 수 있는 이 식재료로 제주에서 유일한, 아니 전국에 딱 하나뿐인 음식을 하겠다는 레스토랑이 있다. 그 포부만큼 이름이 심플하다. ‘저스트 쉬림프’(Just Shrimp).

‘저스트 쉬림프’는 요새 제주에서 가장 ‘핫’하다는 애월에 있다. 정확히는 하귀 바닷가, 동귀포구 옆 마을이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찾아가다보면 이런 곳에 식당이 있을까 싶은 위치에 갑자기 도회적인 건물이 등장한다(애월에 있는 건물 중 상당수가 그러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 맞다. 여기가 제주지!’ 싶은 그럴싸한 해안선이 창밖으로 펼쳐진다.

고작 새우 요리하려고?

‘저스트 쉬림프’의 메인은 새우다. 모든 메뉴가 새우로 짜여 있다. 하지만 이 새우 앞에는 ‘딱’이란 접두사가 붙는다. 딱새우의 학명은 ‘가시발새우’(Red-banded lobster)다.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잡히고 한국에선 남해 동부와 제주도 인근에 흔하다. 하지만 이런 학적 정의는 제주 사람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 제주 사람들에게 이 새우는 딱딱해서 딱새우고, 씹을 때 딱딱 소리가 난다고 해서 딱새우고, 껍질이 빈틈없이 붙어 있다고 해서 딱새우다.

사실 딱새우는 근래 들어 입길에 좀 오르지만 제주도에서도 크게 의미 있는 식재료는 아니었다. 딱딱해 먹기 불편하고 먹으려면 이만저만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주로 국물 내는 용도로 많이 쓰였고, 최근에 가장 큰 용도는 여행객이 많이 먹는 ‘오분자기 뚝배기’를 받쳐주는 것이었다. 딱새우에 대한 입길은, 그래서 껍질을 제거해 먹을 수 있는 ‘딱새우 간장양념장’ 같은 것에서 시작됐다.

김장순(36) 요리사는 그런 딱새우의 ‘격상’을 꿈꾸는 요리사다. 올해로 주방에서 일한 지 15년 된 김 요리사는 4년 전 제주로 내려왔다. 서울에서 주로 이탈리안이나 프렌치 요리를 했던 김 요리사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제주에 왔다. 막연히 “제주에 가면 새로운 작물이나 싱싱한 식자재를 맘껏 쓸 수 있지 않을까 로망했다”.

기대는 금방 깨졌다. 제주라고 한들 대중음식점의 식자재 납품 방식이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재료를, 상태 좋을 때 바로 공급받고 싶다”는 기대는 계약된 물건만 들어오는 시스템에서 계속된 ‘갈증’이었다.

그래서 제주를 떠나려고 할 때, ‘저스트 쉬림프’를 만났다. 내심 제주를 떠나고 싶었던 가족은 “고작, 새우 요리를 하려 하느냐”며 반대했다. 서비스업이 발달한 제주에서 요리사의 인건비는 서울보다 훨씬 싼 편이다. 반면 제주 체류자들의 생활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경쟁도 치열하다. 무엇보다 제주에는 새우보다 고급한 재료들이 흔하다. 서울 식당들에선 최고급 재료로 평가받는 전복 같은 것도 흔하게 쓴다. 서양음식의 격이란 게 어쩔 수 없이 원재료의 등급에서 어느 정도 결정된다고 하면, 새우는 아무래도 메인이 되기엔 쉽지 않은 재료였다.

피자·커리로 무궁무진 변신
이탈리안과 프렌치 요리에 제주 특산품 딱새우의 접목을 고민하는 김장순 요리사.

이탈리안과 프렌치 요리에 제주 특산품 딱새우의 접목을 고민하는 김장순 요리사.

하지만 김 요리사는 새로운 걸 보았다. 그건 제주에 내려와 ‘아티초크’를 맘껏 쓸 수 있게 됐을 때와 같은 ‘흥분’이었다. 아티초크는 서양 음식에서나 흔히 쓰이는 재료이지만, 제주에선 한림 지역에 농장이 있어 서울보다 훨씬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다. 김 요리사는 딱새우가 “기본적으로 손질이 어렵지만, 껍질을 제거하면 속살이 일반 새우와 전혀 다른 식감을 갖는” 것에 착안했다. 일반 새우는 껍질이 연하고 살이 단단한 반면, 딱새우는 껍질은 단단하지만 살은 입에 넣으면 녹을 정도로 부드럽다. 그냥 새우가 쫄깃하다면 딱새우는 입안에 들어가 흩어지며 박히는 맛이다.

그 맛의 최적화를 위해 김 요리사는 3개월 넘게 씨름했다. 부드럽고 단 딱새우의 맛을 이탈리안과 프렌치 음식에 접목하기란 쉽지 않았다. 껍질을 제거한 채 식감을 살려내며 딱새우를 ‘메인’으로 느낄 수 있는 풍미까지 만들어내는 ‘실험’과 ‘시행착오’를 계속하고 있다. 김 요리사는 일단 ‘버터’와 ‘식초’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재료와 양념의 궁합에서 “버터와 식초를 동시에 사용하는 게 딱새우 맛에 가장 큰 상승작용을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저스트 쉬림프’의 대표 메뉴는 ‘원플레이트’다. 흡사 동남아에서 먹는 새우 요리와 비슷한데 원하는 맛을 골라 먹을 수 있단 게 장점이다. 한 플레이트에 코코넛과 타이 커리로 맛을 낸 딱새우, 칠리로 버무린 딱새우, 마늘로 맛을 증폭한 딱새우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그릴 채소와 밥을 함께 주는데, 양념에 비비면 ‘밥도둑’이 된다.

김 요리사가 추천하는 또 한 가지 메뉴는 ‘칼초네 피자’다. 접어먹는 피자인 칼초네는 이제는 흔해진 피자이지만 ‘저스트 쉬림프’의 것은 좀 생경하다. 흡사 크로켓 속살 같다고 해야 할까, 도(반죽) 안에서 딱새우 속살이 촉촉하게 씹힌다.

흑돼지와 회로 대표되는 제주의 맛에 ‘딱새우’가 그럴듯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딱새우가 대중화되려면 유통과정이 좀 정돈될 필요가 있다. 딱새우는 크기 분류 없이 식당에 공급된다. 일반 새우보다 예민해서 잡고 나면 바로 급속냉동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일반 새우보다 유통기한이 짧다. kg 단위 박스로 딱새우를 받아 크기 분류와 손질을 거쳐 다시 냉동했다가 필요한 만큼 해동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러다보니 조리를 잘못하면 그냥 “햄 같은 맛”이 나고 만다. 그 맛의 중복을 피해 상품성 있는 메인 메뉴를 만들어내는 데는 까다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인터넷으로 주문합서예

김 요리사 역시 여전히 딱새우의 대표 메뉴를 고민하고 개발해보고 있다. 그깟 새우 요리가 엇비슷한 소스에 굽거나 찌거나 삶는 거지 별것 있냐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제주도의 딱새우를 한번 먹어보길 권한다. 제주가 너무 멀다면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방법도 있다. 집에서 딱새우를 어떻게 먹느냐고? 김 요리사는 “딱새우가 제일 맛있는 건 쪄먹는 거다. 소량의 물에 소금만 살짝 넣고 찐 뒤 달걀 노른자에 올리브오일 조금, 마요네즈 약간, 식초, 설탕을 넣은 소스를 만들어 찍어 먹으면 된다”고 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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