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경찰, 낙선운동 겨냥하다

서울시 선관위, 구멍 뚫린 피켓 등 빌미 삼아 ‘총선넷’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 경찰, 참여연대 등 10여 곳 압수수색… 대선 앞두고 시민단체 재갈 물리기 나섰나
등록 2016-06-21 14:31 수정 2020-05-03 04:28
경찰이 6월16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경찰이 6월16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경찰이 지난 4·13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벌인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를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6월16일 총선넷 활동을 주도한 참여연대 사무실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총선넷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등 10명을 집중 낙선 후보로 선정하는 등 다양한 유권자 운동을 펼쳤다.

‘총선넷’ 겨냥 대대적 압수수색

하지만 총선 시기 낙선운동을 벌인 것은 총선넷뿐만이 아니었다. 월드피스자유연합 등 시민단체는 3월30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야당 후보 28명을 낙선 대상으로 발표했다. 대부분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국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참여한 의원들이었다.

한국대학생포럼 등 10개 단체도 3월31일부터 은수미 전 더민주 의원 등 9명을 상대로 낙선운동을 진행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에 반대했다는 것 등이 낙선 대상자 선정 이유였다.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 역시 4월1일부터 표창원 더민주 의원 등 5명을 동성애를 옹호하는 ‘5적’으로 규정하고 낙선운동을 펼쳤다. 총선을 앞두고 여러 보수·진보 시민단체에서 낙선운동을 진행한 것이다.

활발한 낙선운동이 펼쳐졌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시민단체가 낙천·낙선 대상자를 발표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직선거법은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는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시민단체가 기자회견 등의 방식으로 낙천·낙선 후보자 명단을 발표하는 것은 ‘선거운동이 아닌 것’으로 보아왔다.

하지만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여러 단체 중 총선넷만을 문제 삼아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2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4월12일 검찰에 고발했고, 이 사건은 경찰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

서울시 선관위가 안 처장 등을 고발하면서 적용한 법 조항은 공직선거법 제90조(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 제91조(확성장치와 자동차 등의 사용 제한), 제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 게시 등 금지), 제103조(각종 집회 등의 제한), 제108조(여론조사의 결과 공표 금지 등)로 총 5개다.

총선넷이 부적격 후보를 뽑기 위해 ‘워스트(Worst) 10, 베스트(Best) 10’ 후보자에 대한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 것과 각 후보자의 선거사무소 앞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연 것 등이 문제가 됐다. 선관위는 온라인 투표는 ‘사실상’ 여론조사였으며, 낙선 대상 후보자 선거사무소 앞에서 연 기자회견은 ‘사실상’ 집회였다고 판단했다. “나는”과 “안 찍어” 등의 문구 사이에 구멍을 뚫은 피켓을 사용한 것에도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구멍 뚫린 피켓이 문제?
이번 경찰 수사는 ‘총선넷’이 구멍 뚫린 피켓 등을 활용해 20대 총선 후보자 낙선운동을 한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서울시 선관위가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이번 경찰 수사는 ‘총선넷’이 구멍 뚫린 피켓 등을 활용해 20대 총선 후보자 낙선운동을 한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서울시 선관위가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하지만 총선넷 쪽은 낙선운동을 진행하면서 선관위 쪽과 수시로 협의했다고 밝혔다. 총선넷의 법률 지원을 맡았던 양홍석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선관위 직원이 나와 있었고 실제로 선관위 의견을 존중해 행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안진걸 처장도 “선관위 직원이 매번 적게는 3명, 많게는 10명까지 나왔지만 현장에서 문제를 지적받은 것은 한 번뿐이다. 이노근 새누리당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이 후보 쪽 지지자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참가자 일부가 시민들을 상대로 발언했던 것을 ‘집회로 볼 수 있다’며 선관위가 지적한 것이 유일하다. 총선넷 내부에서는 ‘너무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아무런 의견을 내놓지 않던 선관위가 나중에야 법 위반이라며 총선넷을 고발했다는 주장이다.

기자회견과 집회를 가르는 기준, 온라인 투표와 여론조사의 경계 등은 모두 모호한 영역이다. 결국 선관위의 판단에 따라 고발 여부가 갈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선관위 판단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느냐다.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례들이 있다.

경기도 선관위는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4대강 사업 반대 사진전을 연 경기환경운동연합의 안명균 사무처장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4대강 찬성·반대 활동이 투표에 영향을 주는 선거운동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도 여주군 선관위는 비슷한 시기 남한강 일대에서 4대강 사업을 홍보한 여주군 재난안전과, 여주군 읍면 이장협의회, 건설사 등 9곳에는 서면 경고를 하는 데 그쳤다. 4대강 사업 찬성과 반대 쪽에 서로 다른 처분을 내린 것이다. 게다가 2011년 대법원은 안명균 사무처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확정했다. 선관위가 4대강 사업 반대 단체를 무리하게 고발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난 셈이다.

유권자 재갈 물리는 선거법 개정해야

총선넷은 이번 선관위의 고발과 잇따른 경찰의 압수수색 역시 ‘의도’가 담겼다고 의심한다. 양홍석 변호사는 “대선을 앞두고 시민단체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안진걸 처장은 “현장에서는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다가 나중에야 고발하고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국면이 만들어지자 시민단체 활동에 위협을 느껴서 강도 높은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문제의 근원은 선거법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복경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현행 선거법은 유권자와 야당 정치인에게 재갈을 물리는 군국주의 시절 일본 법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같은 일본 모델을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에 들여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선거법 자체가 규제 중심이다보니 (SNS 등)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또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방식으로 자꾸 유권자의 권리를 축소시키고 있다.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다. 선거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해 유권자의 의견이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허위 사실 유포 등의 피해는 다른 법률로도 충분히 규제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 캠페인 기간 중 정기구독 신청하신 분들을 위해 한겨레21 기자들의 1:1 자소서 첨삭 외 다양한 혜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