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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판사, 내가 ‘아는 사람’이니까

전직 판검사 출신 변호사 4명이 말하는 ‘전관예우’와 ‘정운호 법조 비리’ 사건
등록 2016-05-25 14:44 수정 2020-05-02 04:28
검찰이 5월10일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 비리’ 의혹과 관련해 서울 서초동 홍만표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5월10일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 비리’ 의혹과 관련해 서울 서초동 홍만표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억원.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008~2009년 검찰 수사 때 쏟아부은 변호사 비용이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2007년 라 전 회장에게 50억원을 건넨 사실을 밝혀내고 라 전 회장을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 등으로 내사 중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도 여럿 발견됐다.

라 전 회장 쪽은 검찰 소환조사가 임박하자 한 대형 로펌에 5억5천만원, 개인 변호사 2명에게는 각각 착수금 1억원을 건네 ‘쟁쟁한’ 변호사들을 선임했다. 라 전 회장 개인 자금 7억5천만원, 당시 회사 임원들이 신한은행 재일동포 주주들에게 빌린 돈 등을 끌어모아 변호사비를 댔다. 검찰이 기소하기도 전에 수사 단계에서만 수억원을 퍼부은 것이다.

그 효과였을까? 2009년 6월 검찰은 라 전 회장을 무혐의 처분하고 내사를 종결했다. 검찰은 “50억원은 개인자금으로 경남 김해의 가야컨트리클럽(가야CC) 지분을 인수해달라고 (박연차 회장에게 준) 투자금”이라는 라 전 회장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라 전 회장은 2009년 이후로도 차명계좌 운용과 세금 탈루 혐의 등으로 여러 차례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한 차례도 기소되지 않았다. 평범한 직장인이 평생 모아도 만지기 힘든 돈을 쏟아부어 ‘쟁쟁한’ 변호사들을 선임한 결과다.

‘자문’만 해주고 1억원 받는 변호사

14억원은 2008~2009년 쓴 변호사 비용에 불과하다. 2012년 신한은행 고위층의 내분 사태가 법정 싸움으로 비화돼 누가 회삿돈을 횡령했는지 다투는 과정에서 ‘14억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가 드러났다. 이후 라 전 회장이 추가로 얼마나 많은 변호사 비용을 썼는지 알 수 없다.

2009년 라 전 회장을 도왔던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과의 통화에서 “검찰 내사 단계에서 자문만 해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문’ 대가로 1억원 이상의 변호사 비용을 받았다.

이는 거액의 변호사 자문료 또는 수임료의 정확한 액수가 드러난 몇 안 되는 경우다. 변호사 비용은 금액이 클수록 비밀에 부쳐진다. 대기업 총수의 변호사 비용이 수십억원대라는 소문만 무성하다. 최근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 로비’ 사건이 법조계 안팎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유기도 하다. ‘설마’가 ‘정말’로 확인된 탓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는 “(재판부한테 청탁해) 보석 또는 집행유예로 나올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정운호 대표에게 50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를 지난 5월12일 구속했다.

정운호 대표는 마카오 등에서 수백억원대 도박을 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2심에서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 변호사는 정 대표의 항소심 사건을 맡았고, 실형이 선고되자 착수금 20억원만 챙긴 뒤 ‘성공보수’로 책정됐던 나머지 30억원은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최 변호사는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송아무개 이숨투자자문 대표한테서도 50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혐의를 사고 있다.

정운호 대표는 ‘법조 브로커’를 통한 로비도 시도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건설업자 이아무개씨를 시켜 항소심 재판장인 임아무개 판사와 식사하도록 했으나, 임 판사가 다음날 재판 회피 신청을 해서 로비는 무위로 돌아갔다.

최유정 변호사는 정 대표의 항소심 구형량을 줄여달라고 부탁할 목적으로 사법연수원 동기인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이런 로비가 통했는지 항소심에서 검찰은 정 대표에게 1심(징역 3년)보다 낮은 2년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법원이 ‘보석 신청’에 대한 의견을 묻자 “사안에 부합하도록 적의처리(적당히 처리)함이 상당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정운호 대표는 2014~2015년에도 도박 혐의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지난해 10월 기소되기 전에는 경찰에서 한 차례, 검찰에선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때 정 대표의 변호를 맡았던 사람이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다.

홍 변호사는 네이처리퍼블릭 회사 고문 변호사도 맡고 있다. 홍 변호사는 검찰 내 ‘특수통’으로 2011년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그는 2013년에만 91억6800여만원을 벌어들이는 등 변호사 개업 뒤 지난 5년간 해마다 수십억원대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개 판사랑 잘 아시냐?”
법조계를 뒤흔드는 정운호 대표(왼쪽)의 ‘법조 비리’ 사건에 연루된 홍만표 변호사(가운데)와 최유정 변호사(오른쪽). 한겨레 신소영 기자, 한겨레 자료

법조계를 뒤흔드는 정운호 대표(왼쪽)의 ‘법조 비리’ 사건에 연루된 홍만표 변호사(가운데)와 최유정 변호사(오른쪽). 한겨레 신소영 기자, 한겨레 자료

검찰 안팎에선 그가 ‘전관’으로서 검찰에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검찰은 홍 변호사가 5년간 수임한 사건 내역을 전수조사하는 등 탈세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나, 아직 구체적인 혐의를 잡지는 못하고 있다.

검찰은 5월17일 네이처리퍼블릭 납품업체와 대리점 등을 압수수색해 정운호 대표의 비자금 의혹으로 수사를 넓혀가는 한편, 19일에는 홍 변호사가 수십억원을 투자한 부동산 관련 업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변호사로 벌어들인 소득을 감추는 데 이 회사를 활용했는지 확인하는 차원이다.

한 사람의 변호사가 연간 91억원(월 7억6천만원꼴)을 벌어들인 것에 대해 변호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전직 판검사인 4명의 변호사에게 정운호 ‘법조 비리’ 사건과 변호사 업계 내에서 ‘전관’(前官·전직 판검사)의 의미를 물었다.

판사 출신 A변호사는 개인 법률사무소 개업 뒤 여러 차례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소송 의뢰인들이 찾아와서는 “아무개 판사랑 잘 아시냐?” “아무개 판사랑 사법연수원 동기 아니시냐?”며 재판부와의 친분 관계부터 물었기 때문이다.

“판사를 안다고 해서 사건이 잘 해결되지는 않는다. 나의 법적인 전문성이나 성실성을 믿고 변호를 맡겨준다면 열심히 하겠지만 (재판부와의 친분 관계를) 이용하려고 나를 찾아왔다면 나는 적합하지 않다.” A변호사는 꽤 많은 의뢰인을 이렇게 대답해 돌려보내야 했다.

그는 “의뢰인들이 변호사와 재판부의 친분 관계를 궁금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로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재판 결과가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니까 불안해서 ‘혹시 흑막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고 변호사 선임 기준도 거기에 맞추는 거다. 결국 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 속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 B변호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의뢰인들이 와서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변호사님, 담당 검사(또는 판사) 아십니까?’이다. ‘모른다’고 답하면 그냥 가버린다. 변호사 비용이 더 들더라도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가겠다는 거다.”

현직 판사나 검사가 ‘전관’ 출신 변호사가 들고 오는 사건이라고 더 우대해주는 ‘전관예우’라는 실체가 존재하든 아니든 간에 ‘전관’ 변호사가 소송 당사자들이 붙잡고 싶어 하는 동아줄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가장 최근에 옷을 벗고 개업한 ‘따끈따끈한’ 전관 변호사들일수록 사건이 더 몰려들기도 한다.

“전관 출신 변호사들이 ‘내가 아는 판사다’ ‘내가 변론을 하면 판사가 좀더 들어줄 거다’ 정도의 확인을 해주면서 사건을 맡고 법정에 들어가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이라는 게 있다. 의뢰인이 ‘개인적으로 판사한테 연락하거나 만나달라’는 등 (변호사법을 위반하는) 무리한 요구를 해오면 ‘안 된다’고 선을 그어야 한다. 최유정 변호사는 ‘꼭 되게 해주겠다’고 선을 넘는 약속을 했던 거다.” 판사 출신 C변호사의 말이다.

변호사도 보고 놀란 50억원 수임료

최유정 변호사라고 50억원 수임료가 지나치다는 걸 몰랐을까? C변호사는 “보통 지법 부장판사를 하고 나오면 건당 2천만원, 고법 부장판사를 하고 나오면 3천만~5천만원 정도를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50억원은 상상하기 힘든 금액이라는 뜻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판사가 변호사로 나오면 이른바 법조 브로커들이 100% 유혹해온다고 한다. 사건을 물어다주겠다는 거다. 요즘 개인 법률사무소 운영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니, 돈에 눈이 멀어서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 꼴이다.” 고위 법관 출신으로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D변호사는 혀를 끌끌 찼다. 그는 최유정, 홍만표 변호사 사건으로 국민들의 사법 불신이 더 심해질 것을 걱정했다.

“(50억원이니, 90억원이니) 그 액수를 보고 가장 놀란 사람은 아마 변호사일 거다. ‘나는 뭔가’ 이런 생각이 들 테니까.” B변호사는 최유정 변호사가 수임료로 50억원을 요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최 변호사와 연계해 법조 브로커 역할을 한 사무장의 돌출적인 광폭 행보는 이미 법조계 안에서도 소문이 파다했다. “내가 수임했던 사건 의뢰인한테도 접근해서 ‘보석으로 빼주겠다’고 했다더라. 내가 부른 수임료의 2~3배인 1억원 이상 금액을 부르면서. 항소심에서 석방 여부가 문제돼서 초조했던 의뢰인이 당연히 솔깃하지 않았겠나. 아무리 검사장급 변호사라고 해도 20억~30억원이면 평생 벌어야 하는 돈이다.”(B변호사)

같은 전관 출신 변호사라 해도 ‘부익부 빈익빈’이 나타나기도 한다. “연간 90억원 벌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밤늦게 야근해서 (변론에서 진술하려는 사항을 기재해 법원에 제출하는) 준비서면 쓰고 법정에 나가고 구치소 접견 다니면서 번 돈이냐? 손끝으로 땀 흘려 번 돈이냐? 아니다. (검찰 고위직 출신이라는 이유로) 준비서면도 안 쓰면서 ‘검사들한테 잘 얘기해놓겠다’는 말 한마디로 억 단위 수임료를 받아가니 다른 변호사들이 괘씸하게 생각하는 거다.”

D변호사는 “다른 변호사들처럼 시간을 투여하지 않으면서 (전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십억원대 소득을 올렸다는 데 변호사 업계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진짜 예우’는 이제 시작?

연간 매출 100억원 이상 올리는 로펌은 25곳(2014년 기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홍만표 변호사는 혼자 연간 91억원을 벌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최근 소속 회원 2563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월소득이 ‘200만원 미만’인 변호사도 93명(3.6%)이나 됐다.

전관 출신 변호사들도 ‘기형적’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번 정운호 ‘법조 비리’ 사건 수사를 검찰은 앞으로 어떻게 끌고 갈까? 검찰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검찰이 법조 비리보다는 탈세 쪽으로 수사 방향을 몰고 가리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변호사 개업 후 1년 동안 마지막으로 재직한 국가기관의 사건은 1년간 수임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전관예우 금지법’(변호사법 개정안)으로도 막을 수 없는 진짜 ‘예우’란 바로 이런 것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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