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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손전등을 들고 세월호를 비추자

필독 콘서트 <세월호, 그날의 기록> 공동저자 정은주 기자… 사고 나도 보상하면 그만이라 여기는 한국 사회, ‘잠수함설·고의침몰설’은 근거 없어
등록 2016-05-21 07:52 수정 2020-05-02 19:28
이 네 번째 초대한 ‘필독 콘서트’의 주인공은 세월호 참사 관련 책을 최근 펴낸 정은주 기자다. 정은주 기자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2년여 동안 진실을 추적했고, ‘진실의힘 세월호 기록팀’과 함께 세월호 관련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등 15만여 장의 기록과 3테라바이트(TB)의 영상을 분석해 (진실의힘)을 펴냈다. 지난 4월28일 필독 콘서트를 찾은 청중 80여 명은 숨죽인 채, 정은주 기자가 글 대신 말로 푼 ‘진실’ 추적기를 들었다. 정 기자는 “이 책은 손전등으로 배를 비춘 정도다. 여러분이 다 같이 손전등을 들고 비추면, 그렇게 더 환하게 배가 보인다면, 그때면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 자리엔 함께하지 못한 독자를 위해, 앞으로 손전등을 같이 들 독자를 위해, 2시간 넘게 진행된 필독 콘서트 현장을 교육연수생이 요약해 지상중계한다.
은 계속 ‘필독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평소 남몰래 흠모해왔거나, 그의 글맛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던 필자가 있다면 전자우편( arum@hani.co.kr)으로 필자와의 만남을 신청해주기 바란다. _편집자
4월28일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필독콘서트 모습. 정은주 기자(왼쪽), 박준도 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장,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뒷모습)이 대담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4월28일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필독콘서트 모습. 정은주 기자(왼쪽), 박준도 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장,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뒷모습)이 대담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그 많은 유능한 기자가 있는데 왜 나한테 왔을까.’

세월호 기록을 받았을 때 정은주 기자가 처음 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그 기록의 운명이 안쓰러웠다”고 했다. 4월28일 저녁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Hu:)’에선 정은주 기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80여 개의 좌석이 가득 찼다. 사회진보연대의 박준도 노동위원장과 안수찬 편집장이 필독 콘서트에 함께했다. 박 위원장은 책을 읽고 나서 ‘필자들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 필독 콘서트를 제안했다.

안수찬 편집장이 책의 발간 경로를 설명하며 대담을 시작했다. 정은주 기자는 2년 전 세월호 참사 발생 뒤 취재를 시작했다. 희생자 가족과 함께 경기도 안산에서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대전으로 38일간 전국을 함께 걷기도 했다. 그 뒤 취재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막대한 기록을 입수했다. 혼자 하기엔 자료가 워낙 방대해 기록을 보는 노하우가 있는 ‘진실의힘’을 찾았다. 진실의힘은 1970~80년대 고문받고 간첩으로 조작당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진실을 규명해 재심에서 무죄를 밝혀낸 단체다. 정 기자가 입수한 세월호 기록 이야기를 듣고 진실의힘이 ‘후원금을 마련해주겠다’고 나섰다. 그 돈으로 박다영·박현진씨, 박수빈 변호사 등과 함께 ‘진실의힘 세월호 기록팀’을 꾸렸다.

돈의 덫, 세월호 사건이 불행한 이유

“기본적으로 기록을 보는 것은 뭐든 그냥 헤매는 것이다. 처음에 ‘헤매자’고 하니까 다들 너무 힘들어했다. 한 달 내내 헤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서로가 굉장히 괴로워했다. 그런데 결국 스스로 자기 길을 다 찾더라.”

방대한 기록과의 숨바꼭질이었다. 1년여간 뒤진 끝에 만든 은 총 5부로 구성됐다. 1부 ‘그날, 101분의 기록’, 2부 ‘왜 못 구했나’, 3부 ‘왜 침몰했나’, 4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 어떻게 태어났나’, 5부 ‘구할 수 있었다’ 등을 담았다. 그중 1부는 특히 문학적으로 생생하게 재현돼 있는데 박준도 위원장은 “마치 사고 현장 속에 있는 것 같다”며 1부를 읽으면 궁금한 점을 2, 3, 4, 5부에서 찾게 된다고 했다. 정 기자는 “그것이 정확히, 책의 구성 의도”라고 했다.

1부를 집중적으로 쓴 박다영씨와 박수빈 변호사는 배를 모형으로 만들어 사고 당시를 상상했다. 승객들이 어디에서 탔고, 어디서 기다렸고, 어디서 나오지 못했는지를 그리면서. 단원고 학생들은 실명과 비실명으로 등장한다. 실명은 사망자들이다. 많은 친구들을 구하고 못 나온 친구 등을 정 기자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유가족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했다. 연락할 때는 유가족이 ‘이것을 해주실까?’ 싶었지만 너무나 흔쾌히, “우리 아이를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고 한다.

돈의 덫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의 민낯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안전하게 배를 운용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려면 비용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상하는 게 더 싸면 (안전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그냥 놔둔다. 1970년대 미국 포드자동차가 생산한 핀토는 달리다 충돌할 경우 연료통이 폭발하는 결함이 있었지만 모든 차를 리콜하기보다 사고가 난 사람들에게 보상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사건이 발생했고,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생겼다. 한국 사회는 기업 이윤을 위해 정부도, 우리 자신도 돈이 더 드는 안전제도를 만들기보다는 사고가 발생하면 보상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이 불행한 이유는 이러한 사고를 더욱 뿌리 깊게 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인허가와 안전을 점검했던 공무원은 거의 무죄를 받았기 때문이다.”

정은주 기자의 이야기는 최근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기업은 치명적인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팔았고, 유독성 문제를 제기한 일부 희생자 가족에게 개별 보상을 했다. 정부는 살균제의 유독성을 방조했고 그동안 모른 척했다. 한국 사회는 얼마나 더 희생자들이 나와야 비용으로 안전과 삶을 평가하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 뒤 해양사고 증가

박진도 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세월호에서 교훈을 얻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세월호 참사 뒤) 심지어 해양사고가 늘고 있다. 보통 대형 사고를 겪으면 그다음 연도에는 그 정도가 줄기 마련이다. 배의 고장도 늘어나고 있다. 주된 이유가 낡아서다. 제2의 세월호는 아직도 한국을 떠돌아다니고, 과적을 하고 있다.”

정은주 기자의 이야기를 듣던 한 청중이 “해경 조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정 기자는 먼저 “김경일 123정장(세월호 참사 해역에 출동한 해경 경비정) 관련 법원 기록을 보면 항소심 탄원서가 300~400장에 이르는데, 전부 해경이 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라도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다수였다. 이 사건이 해경에 어떤 교훈을 줬을까? 바로 ‘현장에 가지 마라’다. 현장에 간 사람만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세월호 이후 더 불행해졌는지 모른다. 해경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많이 생각해야 한다. 사고 현장에 갔던 해경은 악마가 아니라 굉장히 평범한, 우리 아빠 같은 사람들이다. 나의 잘못으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바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정은주 기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의 이야기가 해경 수뇌부를 향할 때 목소리는 높아졌다. “(세월호 참사 해역에 가지 않은) 목포해경서장 김문홍은 헬기가 있는 배를 타고 있었다. 그 헬기가 사고 현장으로 날아가는데 타지 않았다. 그 덕분에 형사처벌을 피했다. 현장지휘자였지만, 현장에 가지 않은 김문홍을 처벌하지 않은 것이 해경 전체에, 한국 공무원 사회에 어떤 메시지와 교훈을 남길 것인지 비판적으로 책에 썼다.”

‘홋줄 침몰설’ 설득력 없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상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에 대한 질문도 현장에서 나왔다. “그 영상에선 해경 경비정 123정이 약 9시30분에서 10시 사이에 세월호를 침몰시키려는 것같이 홋줄을 매고 연기를 뿜으면서 뒤로 가는 모습이 보인다”고 질문했다. 정 기자는 그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123정장이 해경 지휘부와 교신했던 TRS(주파수공용통신) 기록과 휴대전화 통화 기록이 있다. 그의 목소리와 발언을 종합해봤다. 최소한 홋줄로 세월호를 끌려면 김경일 정장이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통신 속에서는 그런 의도가 보이지 않았다.” 정 기자는 영상 장면 하나하나마다 팀원들과 토론했고 홋줄로 세월호를 빨리 침몰시킨 의혹은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필독 콘서트는 페이스북에서 생중계됐는데, 이를 통해 ‘세월호 근처에 잠수함이 있었는지’ 묻는 질문이 들어왔다. 정 기자는 “영상 전체를 본다면 그건 잠수함이 아니다. 잠수함이라고 영상이 돌아다니는 것은 세월호가 촬영된 여러 영상 가운데 아주 극히 일부를 자른 것이다. 그 앞뒤를 다 보면 배다”라고 설명했다.

국가정보원과 세월호의 관련성에 대해선 정 기자는 제주도의 특수성을 이야기했다. “제주도가 중국인들이 입국할 때 무비자로 바뀌면서 탈북자가 제주도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생겼다. 청해진해운만이 인천과 제주도를 오가는 두 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국정원이 이 배를 관리하려는 어떤 의지가 더욱 강해지지 않았을까.” 정 기자는 이런 추론에 대해 “국정원이 대답을 해줘야 하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밝혀내야 한다”고 했다.

단 한 사람이 내 글을 읽어주면

정 기자는 “이 책은 손전등으로 배를 비춘 정도다. 여러분이 다 같이 손전등을 들고 비추면, 그렇게 더 환하게 배가 보인다면, 그때면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필독 콘서트의 말을 끝맺었다.

‘단 한 사람이 내 글을 읽어주면’, 정 기자가 이 책을 쓰며 한 생각이다. 을 쓰며 떠올린 단 한 사람은 세월호에서 홀로 구조된 5살 여자아이다. 그날 부모와 오빠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아이. 그 아이가 10년쯤 뒤 2014년 4월16일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을 때’ 이 책이 나침반이 되고 지팡이가 될 수 있게 진실의힘 세월호 기록팀은 글을 썼다. 수십 번 포기하고 싶었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며 자신을 다잡고 쓴 책. ‘엄마, 아빠, 오빠가 다 자신을 두고 제주도로 이사를 갔다’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10년 뒤 이 책이 전달될 수 있기를, 꼭 그렇게 이 책이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채연 교육연수생 chloette020@naver.com
한채민 교육연수생 dodreamrh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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