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2년이 지났다. 질문은 꼬리를 물었지만 잘린 꼬리만 남았다. 세월호 관련 형사재판에서 선원과 선사 관계자들이 대표적으로 처벌받았다. 해양경찰과 정부 책임자 가운데는 현장에 출동한 100t급 소형 경비정 정장 한 명만 처벌받았다. 수사·재판을 통해서도 세월호의 직접적인 침몰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이 원인으로 지목한 ‘조타 실수’를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국정원 관여 의혹은 안갯속
큰 그림은 그려졌다. 무리한 세월호 증개축과 적재, 그리고 부실 고박을 일삼은 선사와 현장 지휘에 미온적이고 무능했던 정부·해경, 그리고 퇴선 명령 없이 먼저 탈출한 선원들의 잘못이 드러났다. 끈질긴 의문을 품고 분초 단위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15만 장 가까운 수사·재판 기록을 추적·분석한 책 (진실의힘 펴냄)은 조각난 사실들을 다시 그러모았다. 판결문 범죄사실에서 생략되거나 소략될 그날의 경위와 맥락을 온전히 복원하려는 작업이었다. 참사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그러나 수사·재판 대상에 오르지 않은 의혹들의 진상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국가정보원이 세월호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그간 참사 희생자 가족들과 언론은 국정원이 공식·비공식적으로 세월호 운영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정황은 있지만 그 의미가 제대로 밝혀진 적은 없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와 언론에 남겨진 과제다.
세월호 참사 석 달 뒤, 국정원 관련 의혹이 처음 제기됐다. 세월호에서 발견된 한 컴퓨터 한글 파일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는 2014년 7월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에서 인양된 노트북에서 ‘국정원 지적사항’([선내 여객구역 작업 예정 사항]-국정원 지적사항)이란 제목의 한글 파일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문서 작성일은 2013년 2월27일로 기록돼 있다. 내용은 선박 내 설비·비품, 직원 관리 등에 관한 업무 예정 사항이었다. 1번부터 100번까지 항목을 매겨 폐회로텔레비전(CCTV), 표지판 등 예정 설비작업이나 직원 휴가계획서, 작업수당 보고서 작성 계획과 담당자 이름을 적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국정원이 세월호 구입, 증개축, 운항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라고 밝혔다. 세월호는 2012년 10월 일본에서 수입해 2013년 2월까지 증개축하고, 국가보호장비 지정을 위한 보안측정 등을 거쳐 2013년 3월15일 처음 취항했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세월호의 국가보호장비 지정을 위해 3월18~20일 ‘보안측정’을 실시했다”고 해명했다. 그 과정에서 청해진해운이 작성한 문서라는 뜻이다. 하지만 문서 작성일이 보안측정 시기보다 이르다는 점이 또다시 논란이 되자, “인천해양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 등과 합동으로 2월26~27일 세월호를 방문하여 미비점 등을 점검한 사실이 있다. 당시 현장에서 기관별로 소관사항에 대해 언급했고 100개 항목 중 국정원이 언급한 항목은 4개 항목일 뿐”이라고 했다.
세월호 취항 전후 압력 의혹국정원이 대테러 보안상 문제점으로 지목했다는 항목은 △15번 CCTV 추가 신설 수리 신청(브리지 LIFERAFT 2곳) △16번 CCTV 추가 신설 수리 신청(트윈데크 2곳) △17번 “객실 내 일본어 표기 아크릴판 제거 작업 △18번 탈출 방향 화살표 제작 및 부착 등 네 가지다. 2013년 2~3월은 세월호 보안측정 및 시험운항이 이뤄진 시기이지만 문서에 다른 기관이나 보안측정에 대한 언급이 없다. 보안측정 과정에서 생산된 문서인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이 세월호 취항 전후로 청해진해운에 모종의 압력을 행사한 정황도 드러났다. 청해진해운 기획관리팀장 김아무개씨는 3월29일 세월호 특조위 2차 청문회에 출석해 “2월 초순경 세월호 (첫) 출항과 관련해서 (이를 홍보하는) 언론 보도자료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보도를 본 국정원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는데 이런 보도가 먼저 나가면 되느냐’고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얘기를 듣고 국정원에 찾아가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문제 삼았다는 ‘절차상 하자’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관련 수사자료를 보면, 이성희 청해진해운 제주지역본부장이 국정원의 압력을 받았음을 암시하는 내용을 수첩에 기록한 것이 있다. 이 본부장은 2013년 3월14일자 수첩에 “세월호 면허나다?!! 세월아 네월아 1개월간 점검?!! 손톱 밑에 가시는 언제 빼나? 괘씸죄가 이런 것인가?”라고 적었다. 세월호 국정원 보안측정이 끝난 3월22일자 수첩엔 “국정원과 선사 대표 회의 라마다 Hotel 12시 소름 끼치도록 황당한 일이 θ의 경고! 경고! 징계를 넘어 경고 수준 메시지”라고 적었다.
또한 세월호 특조위는 2차 청문회에서 국정원이 청해진해운에 인천항 부두 CCTV 설치 비용과 항구 보안경비를 직접 부담하도록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세월호와 국정원의 ‘특수관계’를 유추할 만한 정황증거들이지만 구체적인 배경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세월호(당시 나미노우에호) 도입 때부터 국정원이 관여한 의혹도 제기됐다. 세월호 특조위는 2012년 세월호 도입 당시 청해진해운이 작성한 ‘나미노우에 도입 관련 업무담당 연락처’라는 문서의 ‘운항관리규정 심의’ 항목에 ‘국정원 서OO 실장’이 기입돼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운항관리규정 심의기관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2차 청문회에서 청해진해운의 국정원 담당자로 지목된 기획관리팀장 김씨는 “서 실장을 모른다”고 답변했다. 청해진 문서에 국정원 서OO 실장이 왜 등장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사고시 보고라인은 국정원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심할 만한 핵심적인 정황이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의 별첨 문서인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는 세월호 사고 발생시 국정원 인천지부와 제주지부,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실에 먼저 보고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세월호를 포함한 1천t급 이상 연안여객선 17척 가운데 사고 발생시 국정원에 보고하도록 한 선박은 세월호가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4년 7월 국회 국정조사 특위에 해경이 제출한 자료를 통해서도 드러난 바 있다.
국정원은 청해진해운의 ‘보고 계통도’에 대해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작성·승인에 전혀 관여한 바 없으며, 선박 납치·테러 사건에 대비해 대테러 주무기관인 국정원을 포함시켰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해명했지만, 의혹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사고시 국정원에 우선 보고실제로 세월호 참사 당일 청해진해운은 국정원 직원에게 발 빠르게 사고 상황을 보고했다. 청해진해운 기획관리팀장 김씨는 당일 오전 9시33분 국정원 인천지부 항만보안담당 직원에게 “세월호 남해안 진도 부근에서 선체가 심하게 기울어 운항을 못하고 있습니다. 내용 파악 중에 있는 상황입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5분 뒤 이 국정원 직원은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2분1초간 통화했다. 2월23일 보도에 따르면 이 국정원 직원은 10시23분에도 14초 동안 김씨와 통화했고 저녁 8시12분경에도 통화를 시도했다. 그는 참사 당일부터 이틀간 총 7차례에 걸쳐 청해진해운 기획관리팀, 해무팀, 물류팀 직원 3명과 통화했다.
참사 이튿날 국정원이 세월호 선원을 따로 조사한 정황도 드러났다. 1등 기관사 손지태씨는 4월17일 오전 9시49분경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오후 또 국정원 취조가 있을 텐데 마스크 하고 가유”라고 보냈다. 손씨는 나흘 뒤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한 뒤 체포됐다.
평소에도 청해진해운과 국정원 직원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은 4월15일 청해진해운 기획관리팀장 김씨의 휴대전화 포렌식 수사자료를 검토한 결과, 전화 주소록에 국정원 소속으로 저장된 인물이 12명이라고 보도했다. 국정원 소속으로 저장된 A씨는 김씨에게 2014년 1월19일 카카오톡으로 음란물 동영상 링크와 함께 “오늘 점심은 초밥으로”라고 보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양우공제회, 세월호 투자 의혹또 2011년 1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청해진해운 내부 공식문서에서 확인된 국정원과의 대면 회동은 12차례에 달했다고 은 보도했다. ‘국정원 정기모임 참석’(2012년 1월27일), ‘국정원(세기: 안보관광 담당자) 접대’(2014년 3월5일) 등과 같은 이름의 자리도 포함돼 있었다.
국정원 직원 사조직으로 알려진 ‘양우공제회’가 세월호에 투자했거나 세월호의 실소유주라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014년 12월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청해진 명의로 등록된 세월호의 실제 소유자는 누구일까? 나는 여전히 세월호가 국정원 소유임을 확신하며 ‘양우공제회’의 존재로 그 확신이 더 커졌다”고 썼다.
그로부터 한 달 전 은 국정원 현직 직원들의 상조회인 양우공제회가 자본금 30억원으로 수천억원을 운용하고 있으며 주식, 항공기·선박 펀드, 부동산 임대업, 골프장 개발업 등에 투자해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는 4월16일 ‘세타의 경고, 세월호와 205호 그리고 비밀문서’편에서 양우공제회가 2009년께 일본 아리아케호 선박 펀드에 투자했던 일을 언급하며 국정원의 세월호 투자 의혹을 제기했다.
김선식 기자kss@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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