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독타.
여기 사진집이 두 권 있다. 그리고 .
은 ‘통일 염원 45년’(1989) 박용수가 펴냈고, 은 2016년 박승화가 엮었다.
두 사진집 사이 세월은 27년. 은 1985~88년 학생운동·통일운동·농민운동·도시빈민운동 등을 기록했다. 기성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사진과 글이 빼곡하다. 은 을 이어받아 1989년부터 1993년까지를 담았다. 발간 시점이 27년 격절됐을 뿐, 두 사진집의 시간은 온전히 이어지고 있다. 일렬횡대로 사진을 나열하면, 두 사진집은 한 제목의 책 1권과 2권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두 사진집은 스크럼을 짜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에서? 거리에서. 그 시대의 상징이 바로 ‘군독타’이다. 군사 독재 타도. 그때 민중은 전두환·이순자 부부를 ‘단군 이래 최대 도둑’이라고 규정했다. 사진집 속 사진이 증거한다.
은 민족사진연구회(민사연) 회원 5명의 기록이다. 권선기·박승화·송혁·이소혜·임석현. 사진집 해제(‘승리의 그날은 오지 않았다’)를 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민사연 회원들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청년들은 ‘민족사진연구회’라는 정식 명칭보다는 박용수의 아이들로 더 자주 불렸다고 한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박승화는 박용수 선생의 아들이다. 이 사진집이 1989년부터 시작하는 것은 이 1988년 전두환의 백담사행까지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 1989년 후속편민사연 회원 5명이 남긴 사진은 10만여 점에 이른다. 2007년 이들 사진의 원판 필름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기증됐다. 회원 5명 가운데 여전히 카메라로 밥을 먹고사는 이는 박승화( 사진부장)뿐이다. 민사연 회원이었던 임석현(49)씨는 1월12일 과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는 밥집 사장이다.
“당시에는 언론 매체도 별로 없었고 현장사진 작업을 하는 ‘단위’가 아예 없었다. 운동권에서 유인물을 만들 때 항상 사진이 필요했는데, 언론사 사진을 오려 쓴다든지 하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나는 사진을 전공했던 것도 아니다. 사회단체에서 계속 활동하며 자료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기자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찰이 카메라를 빼앗거나 촬영을 방해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싸웠다.”
은 사람들 사진이다. 우는 사람, 소리치는 사람, 때리는 사람, 맞는 사람, 쫓는 사람, 달아나는 사람, 잡혀가는 사람, 숨는 사람, 찾는 사람…. 거기엔 화폐가 없고 통계도 없다. 한 대만 쳐도 뼈가 바스러질 것 같은 몽둥이를 들고 섰지만 자신도 최루탄이 매워 골목길로 달아난 경찰관, 때마침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두 손에 묻고 우는 여인이 있을 뿐이다. 엮은이 박승화는 ‘들어가는 말’에 적었다.
“이길 수 있었지만 이기지도 못했고 지면 안 되었기에 지지도 않았던 싸움이었습니다. 그 싸움이 이긴다는 확신으로, 승리의 그날 만들어질 보고서에 쓰이기를 기대하며 찍은 사진입니다. (…) 기대하던 그날은 오지 않았고 사진은 쓰임새를 잃어버리고 20년이 지났습니다. (…) 끊임없이 길을 찾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제대로 왔다고 믿는, 또는 ‘세상의 변화를 믿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 약은 척 자신을 믿다가 오히려 멍청이가 되어버린 이들의 바보 시절의 기록입니다.”
사진 속 사람을 찾을 수도 있었다. 화염병을 들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맞이하듯 청년들이 떼를 이뤄 걸어가는 사진. 거기에 키 작은 강상원(47)씨도 맨 앞에 있었다.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 강씨는 미군기지가 끝내 들어선 그곳에서 시민단체(평화센터)를 맡아 일하고 있다. 그는 수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1990년 서총련(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 출범 당시인 것 같다. 대학 2학년 때였다. 집회·시위·결사의 자유는 지금이 오히려 26년 전보다 더욱 침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군사정권이었지만 요즘 같은 정도는 아니었다. 법은 더 정교해졌다. 지금 청년들의 유일한 고민이 취업 아닌가. 당시엔 공부하는 학생들이 사회운동하는 학생들한테 미안해하던 시절이었다. 사회문제 해결 없이는 ‘나의 문제’도 풀어내는 데 한계가 있는데… 그런 면에서 좀 안타깝다.”
헬조선 시대, 스크럼 짠 두 사진집군독타는 진즉에 잊히고, 헬조선이 아우성인 2016년. 두 사진집이 기어이 스크럼을 짜고 섰다. 부조리한 국가권력에 맞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던 ‘민중의 길’이다. 그 길은 1987년 6월항쟁의 불꽃으로 타오른 이한열의 유고시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i> “그대 왜 갔는가/ 어딜 갔는가/ 그대 손목 위에 드리운 은빛 사슬을/ 마저 팔찌 끼고 어딜 갔는가”</i>이한열이 간 길은 박용수의 시 한 대목과 이 겨울 또다시 만난다.
<i>“하루 가고 하루 쉬고 또 하루를 가도/ 한 누리를 바쳐서 삼천리는 가야 한다/ 이 땅도 어느 때 얼음 풀리리라/ 이 골짜기 저 들녘 구석구석에/ 실안개도 오르고 꽃도 피리라” </i>한홍구 교수는 사진집 을 펼치는 소회를 해제 마지막에 적었다.
“우리는 묻게 된다. 사진 속에 등장하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냐고. 그때 참 젊었던 사진 속 주인공들은 기성의 권위와 질서를 뒤엎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대개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니, 당시의 젊은 그들이 뒤엎고 싶어 했던 기성세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싸웠는데도 지금 이 모양으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싸웠기에 겨우 여기에라도 온 것일까.”
이후 27년 만에 후속편 이 출간된 의미. ‘저항하라, 사람들아. 사람들아, 연대하자’는 뜻으로 읽는다. 헬조선일지언정, 헬조선이기 때문에.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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