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10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계사에서 걸어나와 경찰차를 탔다. ‘한상균 석방 콘서트’를 제안한 이들은 이날 “그의 눈에 맺혔던 눈물과 우아하게 걸어가던 품위를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싸움이 벌어졌을 때, 가장 오래 싸우는 이는 대개 앞서 “싸우자”고 외치던 사람들이 아니다. 싸움이 왔을 때, 차마 도망가지 못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다치는 이들을 외면하지 못해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다.
2009년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대량해고가 예고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2014년 ‘쉬운 해고’가 노동개혁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사회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한 사람이 있다. 그를 만났던 이들의 기억 속 ‘인간 한상균’이 그렇다. 그 선택의 결과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위원장이었고,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그가 쌍용차 공장에서, 조계사 한켠에서 간절히 바랐던 한 가지는 “제발 협상을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미웠고, 슬펐고, 힘들고”1월21일 저녁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한상균 석방 콘서트’가 열린다.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행사가 아니다. 인권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안하고 시민과 단체가 호응해 열리는 콘서트다. 지난해 12월, 그가 조계사를 걸어나와 경찰에 연행된 장면에서 “한국 사회가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고, 해고자를 어떻게 내쳤는지 본 것만 같은” 이들이 ‘한상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이들은 “동료를 안으며 애써 참았던 눈시울을 붉히던 그”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십시일반 콘서트를 기획했다. 소셜펀치( www.socialfunch.org/hsgfree)를 통해 콘서트 기금을 모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내가 한상균이다’는 인증샷과 함께 해시태그를 달아 ‘한상균 석방’”을 올리자고 제안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한상균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먼저, 민주노총을 오해한 이들이라면 더 먼저 모시겠습니다”라고 호소한다.
이들은 “우리는 한상균이 무죄라는 것을 압니다”라는 말을 넣은 ‘조각보 성명’도 함께 만들고 있다. 조각보에 새겨질, 한상균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고 싶은 마음의 조각을 먼저 모아 기사에 담았다. 지난해 12월10일 경찰에 자진출두하면서 “저는 살인범도, 파렴치범도, 강도범죄나 폭동을 일으킨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해고노동자입니다”라는 말을 남긴 55살 한상균이 누구인지 콘서트는 알리고 싶다.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씨는 2008년 노동조합 선거를 하면서 47살 한상균을 만났다. 고씨는 “노동자는 열심히 하는 놈이 장땡이라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웃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한 번도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조합 활동 내내 그랬어요.” 그렇게 부지런한 20년 현장 노동자 한상균은 해고의 폭풍 전야에 쌍용차 노조 지부장이 됐다. 그리고 이어진 77일간의 옥쇄파업이 끝나고 3년의 감옥을 살았다.
“석방되고 환영행사를 하는데 형수에게 썼던 편지를 읽었어요. 가족여행을 가자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3개월이 안 돼서 다시 송전탑에 올라갔죠.” 그리고 이어진 171일간의 송전탑 농성. 고씨는 그의 희생을 보며 “미웠고, 슬펐고, 힘들고” 했다. 가족보다 조합원 생각을 먼저 하는 그가 눈물겹게 “미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시기에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다. “온몸이 책임감으로 뭉쳐 있는 사람” 한상균은 첫 직선제 위원장에 출마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아 두 번째 기다림이 시작됐다.
김혁이 말하는 ‘친구 한상균’파업을 진두지휘한 민주노총 위원장,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라는 직책으로 설명되지 않는, 해고자 한상균의 삶을 콘서트는 전하고 싶다. 한상균을 기다리는 사람들 제공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통해 한상균 위원장을 만난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인간 한상균’에 대해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한상균을 알지 못하고 쌍용차 해고자들을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만나왔지만) 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이들이 살아온 삶을, 그이들이 겪었던 상실을 잘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페이스북에 남긴 이 글은 ‘한상균의 품위’를 말한다.
“다시 수감된, 승냥이 같은 언론에 살점이 뜯기면서도, 조계사 그곳에서 누구보다 온화한 풍모를 지니고 걸어나왔던 품위가 어디서 온 것인지. 맞다. 나는 그날 그에게서 품위를 느꼈다. 기름 번지르르 흐르는 고관대작들과 수백 벌쯤으로 여겨지는 화려한 한복에 화장 덧칠한 대통령에게서 보지 못한 품위. 우아하게 걸어, 감옥으로 간 한상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와 인권활동가들이 ‘한상균 석방 콘서트’를 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박진씨는 그를 “묵직한 사람”이라고, 고동민씨는 “자기 이야기를 영웅담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모두들 잘 몰랐다. 19살 고등학생 한상균이 1980년 광주에서 시민군이었단 사실을. 옆 반에 있었던 전남기계공고 학생 둘은 2009년 쌍용차 투쟁을 하면서 다시 만났다. 김혁 금속노조 기획국장은 쌍용차 파업 지원을 하면서 당시 한상균 지부장을 만났지만, 1980년 당시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거리에 섰다는 사실을 몰랐다. 20년을 거쳐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는 2014년 소설 가 출간되면서 알려졌다. 소설가 고진씨가 김혁과 한상균 이야기에 바탕한 소설을 쓴 것이다.
김혁 국장은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고 돌이켰다. 그가 말하는 ‘친구 한상균’은 이렇다.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연설을 하면서도 문학적 표현이 들어가요. 감옥 안에서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는데, 지금도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게 드러난 대목이 기억에 남습니다.” 2001년 대우자동차 농성, 2003년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 등을 함께하면서 구속된 적이 있는 김혁 국장은 친구와 함께 쌍용차 파업을 하다 6번째 옥살이를 했다.
“굳센 노래 솟을 때까지”1월21일 ‘한상균 석방 콘서트’에는 김혁 국장과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권지영 와락 활동가 등이 이야기 손님으로 나온다. 이날 콘서트에는 노래 손님으로 우리나라, 제리케이, 시와 등이 출연한다. 가수 시와는 “한상균 위원장을 이번 기회를 통해 잘 알고 싶어서” 함께한다. 시와는 자신의 노래 와 민중가요 를 무반주로 부를 생각이다. 의 마지막 노랫말 “심장에서, 굳센 노래 솟을 때까지”를 한상균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부르고 싶다.
1980년 광주, 2009년 평택, 2014년 조계사. 그곳이 그에게 왔는지, 그가 그곳으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자신이 만난 역사의 현장을 피하지 않았던 한 노동자가 있었다. 두 번째 기다림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한상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김새론 비보에 김옥빈 ‘국화꽃 애도’…지난해 재기 노력 끝내 물거품
[속보] 배우 김새론 자택서 숨진 채 발견
점입가경 권영세 “홍장원 메모 조작…내란 행위 없던 것 아니냐”
[단독] 노상원, 내란 실패 뒤 ‘롯데리아 준장’ 통해 비화폰 반납
김새론 비보에 유퀴즈 정신과 교수 “사회가 오징어게임 같아”
미-러, 이번주 우크라 종전 협상…트럼프-푸틴 정상회담 속도
전 국정원장 “난 영부인 문자 받은 적 없다…김건희는 별걸 다 해”
질서 Yuji [한겨레 그림판]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단독] 명태균 “오세훈 ‘나경원 이기는 조사 필요’”…오세훈 쪽 “일방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