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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이 어때서

콤플렉스가 있어도, 자존감이 낮아도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담은 사진전 ‘아이엠뷰티풀’
등록 2016-01-01 19:03 수정 2020-05-03 04:28
사진전 ‘아이엠뷰티풀’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보다 단점이 있는 ‘나’도 아름답다고 여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보미, 알리나 샴수지노바, 송경훈, 김예진씨. 포토그래퍼 김민석· 제공

사진전 ‘아이엠뷰티풀’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보다 단점이 있는 ‘나’도 아름답다고 여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보미, 알리나 샴수지노바, 송경훈, 김예진씨. 포토그래퍼 김민석· 제공

이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는 새해를 맞아 새로 산 수첩에 어김없이 쓰고 말았을 것이다. 신년 목표의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지만 연말이 되면 늘 실패로 끝나고 마는 것, 다이어트.

올해는 이 네 글자 위에 두 줄을 박박 긋고 새로운 다짐을 써넣기로 했다. 좀 낯간지럽더라도 새해에는 이런 말을 써보는 건 어떨까. 오늘의 아름다움을 탐색하고 기록할 것.

플러스사이즈 패션컬처 매거진 이 시작한 보디이미지 캠페인의 하나인 ‘아이엠뷰티풀’ 사진전은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 아름다움을 찾는 시도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남들이 나의 외모나 체형을 가지고 험담이나 농담을 일삼지만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자존감이 낮고 자신감도 없지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사진 속에 담고 속마음을 꺼내놓았다.

외부의 시선 대신 자기만의 미적 기준을 세우고 탐색해나가는 20~40대 남녀 24명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들 참가자 중 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모자란 점을 인정하고 다독이며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었다.

날씬했지만 불행했던 그때

“살 빼면 참 예쁠 텐데, 왜 안 빼?” 최보미(33·대학원생)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이런 말은 익숙해질 수 없다. 칭찬을 가장한 몸에 대한 비난, 때마다 상처가 되는 일상적 폭력은 한때 그를 깊은 우울에 빠트리기도 했다.

보미씨는 대학원에 진학하기 직전까지 직장생활을 했다. 한국어와 영어로 관광객을 안내하는 일이었다. 퇴근하고 하루에 3~4시간씩 개인 PT를 받았다. 맘에 들지 않았던 군살이 빠지고 입고 싶은 옷도 맘껏 입을 수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체형이 좋아졌다”며 칭찬을 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것 먹으면 스쿼트가 몇 개인데…’ 하며 망설였다. 외모는 세상의 잣대에 맞춰 더 아름다워졌지만 허기지고 외로운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만 4년 채우고서 깨달았다. ‘인생의 지옥에서 아무리 애쓴다고 해도 행복해질 수 없겠구나.’ 직장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어왔던 그는 그런 차별이 내재화돼 자신도 누군가를 차별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직장에서 사람들은 보미씨가 일하는 직군의 사람들을 ‘07’이라고 불렀다. 비정규직 공무원을 지칭하는 코드 번호다. 직장에선 높은 호봉의 정규직 공무원과 보미씨 같은 비정규직 공무원, 일용직 노동자가 함께 일했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는 차이에 따라 사람들의 층위가 나뉘고 차별이 발생했다.

한복을 입고 관광객을 안내하는 보미씨는 때때로 활동하기 거추장스럽고 여름에는 더운 그 옷이 버거웠다. 하지만 아무도 왜 늘 한복을 입고 일해야 하는지, 힘든 점은 없는지 고민하거나 물어보지 않았다. 일터의 나이 지긋한 직원들은 “기생들 손님 받으러 간다”며 폭력적인 농담을 던지곤 했다. “좋은 대학 나오고 영어도 잘하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공무원 시험 보면 합격할 것 같은데” 등 하는 일을 비하하는 말도 일상적이었다. 늘 마음이 황량하다보니 스스로를 아름답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대학원에서 음악극창작과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요즘 졸업 작품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대본·가사 전공이라 오래 앉아서 작업하다보니 몸무게는 인생 최고점을 찍은 데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보다 17kg쯤 적게 나갔던 시절보다 마음은 편하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장단점을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황폐했던 마음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니 “내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것”을 눈여겨볼 여유도 생겼다.

“사람에 따라 시장 노점에서 일하는 할머니의 쪼글쪼글하고 때가 낀 손, 고목… 이런 게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누군가에게 아름다워 보이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 너무 예뻐서 놀랐어요”
각자 옷장을 뒤져 가장 잘 어울리거나 좋아하는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촬영 뒤 디지털 작업을 하지 않았다. 왼쪽부터 최보미, 알리나 샴수지노바, 김예진, 송경훈씨. 포토그래퍼 김민석· 제공

각자 옷장을 뒤져 가장 잘 어울리거나 좋아하는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촬영 뒤 디지털 작업을 하지 않았다. 왼쪽부터 최보미, 알리나 샴수지노바, 김예진, 송경훈씨. 포토그래퍼 김민석· 제공

알리나 샴수지노바(23·대학생)씨의 고향은 카자흐스탄 알마티다. 고려인 4세대인 알리나씨는 언젠가 플러스사이즈 모델에 도전해보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체격이 큰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알려진 테스 홀리데이의 사진을 보고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길고 마른 것만이 옳다는 세상의 기준을 깨부수는 그의 당당함이 경이로웠다.

이번에 사진전 참가 신청서를 낸 이유도 그래서였다.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리고 마른 몸이 아니더라도 평소 잘 웃고 사람들을 배려하는 자신의 태도가 몸에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리나씨는 대학 진학을 위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두 가지 때문에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다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하나같이 항상 꾸미고 다닌다는 느낌이었어요. 또 하나는 한국에서 뚱뚱한 사람들이 자꾸만 자신을 숨기는 듯한 태도예요. 짙은 색의 옷 속에 자신의 몸을 숨기려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어요. 뚱뚱한 사람들이 입을 예쁜 옷이 많지 않긴 해요. 한국에서 프리사이즈의 기준이 스몰에서 미디엄 사이즈거든요.”

알리나씨는 카자흐스탄에서 그래온 것처럼 늘 당당하게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때때로 한껏 드레스업을 하고 멋있게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생활 4년차임에도 여전히 외적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분위기의 한국 사회에서 가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헷갈리곤 한다. “한국에서 화장 안 하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게 달라요. 무시하는 듯한 느낌. 그래서 요즘은 화장을 안 하면 가리기 위해서 모자를 쓰거나 옷이라도 예쁘게 차려입어요.”

알리나씨가 한국의 높은 외모 기준에 문화 충격을 받았다면 김예진(24·학생)씨는 반대의 경우다. 하체에 콤플렉스가 있는 그는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반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스웨덴에서 지내면서 몸매와 상관없이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 사람들을 보며 용기를 내서 짧은 옷을 처음 사봤다. 가장 최고 몸무게를 찍은 순간, 가장 짧은 옷을 입었다. 이번 캠페인 촬영 때도 처음 입은 반바지를 가져갔다.

한국에서는 교복 치마 이후로 치마를 입은 적이 거의 없다. 대학교 1학년 때 딱 한 번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지하철에서 마주 앉은 젊은 남성의 시선이 불쾌했다. “‘쟤 왜 저렇게 입고 다녀?’ 이런 눈빛이었어요.” 그 뒤로 짧은 하의에 손이 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났을 때 늘 듣는 인사말은 “살쪘네”였다. 바지를 사러 의류 매장에 가면 직원이 위아래를 스캔하고는 “아가씨 맞는 옷 없어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늘 외모를 지적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건네는 말들이 쌓여 깊은 상처로 자리 잡았다.

내가 쌓은 세계로 나오려는 시도

예진씨는 폭력적인 말에 반하는 행위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셀프 캠페인인 셈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입고 싶은 옷을 입었다.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저 사람이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라는 태도에서 ‘나 정도가 어때서?’의 태도로 옮겨온 것 같아요. 남들보다 내가 먼저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내적 갈등이 줄었어요.”

송경훈(23·학생)씨는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단 두 사람의 남성 중 한명이다. 키가 특별히 크거나 작지도 않고, 외모에 눈에 띄는 단점도 없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네가 뭐 어때서? 괜찮은데? 내가 너만큼만 돼도….” 하지만 아무도 그가 왜 때때로 그토록 우물쭈물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 실패하면 선을 확 그어버리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는다.

경훈씨는 새로운 일이 늘 두렵다. 친구들이 방학 때 놀러가자고 계획을 세워도 “니네들끼리 알아서 해. 그냥 따라갈게, 귀찮아”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까봐 겁나서 하는 말이다. 관공서나 은행 같은 곳에 가는 것도 힘들다. 낯선 사람 앞에서 평소 하지 않는 말을 하고, 일상적으로 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버겁다.

경훈씨의 어릴 적 기억은 부모님의 다툼으로 채워져 있다. “정말 매일매일 싸웠어요.” 4살 터울의 형은 늘 싸움에 개입해 한쪽 편을 들거나 말리곤 했지만 어린 경훈씨는 이런 악다구니를 마치 TV 보듯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만 보곤 했다.

가족이 모이면 이렇게 싸우는 게 일상이었고, 그러지 않을 때는 늘 혼자였다. 초등학교 시절 일찍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중학생인 형은 학원에 다니느라 바빠 늘 귀가가 늦었다.

해보고 싶은 일에도 늘 제약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는 연극반에 들어가 연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학원 시간이랑 부딪힌다는 이유로 승낙받지 못했다. 대학에 가서는 마케팅이나 홍보 쪽을 공부해보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바람대로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밖에서 뛰어노는 게 좋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하기 좋아하는 그였지만 ‘재미있겠다, 할 수 있다’며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에만 있는 게 편해지기 시작했다.

일상의 상처들이 쌓이며 어느새 실수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일에 주눅 드는 사람이 돼 있었다.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것은 알을 깨고 나오는 시도다. “이게 난데 어쩌겠어요. 사람들이 괜찮다고 뭐 어떠냐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라, 전 이런 단점이 있는 사람이고 그걸 그대로 드러내고 받아들이고 싶어요.” 경훈씨는 그렇게, 스스로 깨부수는 시간이 쌓이다보면 몰랐던 자기의 아름다움을, 늘 집에 틀어박혀 침잠하며 들여다봤던 자기의 진짜 모습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나같이 다른 반짝이는 순간들

이제껏 왜곡된 사회의 기준에 맞서 혼자 싸워나갔던 사람들이 전시를 통해 한목소리를 내어 말한다. 이들의 지금 이 순간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사진은 하나도 후보정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전시된다. 자존감이 낮아도 자신감이 없어도 나의 어떤 지점이 아름다운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하나같이 다른 작고 반짝이는 순간들이 사진에 담겼다. 전시는 1월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한겨레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리며 관람료는 없다. 다만 전시와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특별호 제작을 위한 후원은 텀블벅(▶바로가기 www.tumblbug.com/iambeautiful)을 통해 가능하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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