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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하라 우리를

우리가 누리고 지켜야 할 것에 대한 대규모 풀뿌리 토론… 4·16 인권선언에 힘을 보탤 당신을 기다리며
등록 2015-11-17 10:59 수정 2020-05-02 19:28

“권리를 알 권리!” 단원고 2학년9반이었던 세희 아빠 임종호씨가 제안했다.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자각하고 지켜낼 수밖에 없다는 못난 아빠의 뼈아픈 깨달음에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깨닫고 지켜야 할 권리는 무엇일까? 풀뿌리 토론으로 찾아가보자는 겁없는 도전이 시작되었다. 지난 7월11일 열린 ‘4·16 인권선언 추진단 1차 전체회의’다.
“4·16 인권선언은 한국 사회가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단절의 선언이다. 달라지기 위해 다시 세워야 할 가치와 실천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선언이다. (…) 전국 곳곳에서 펼쳐질 풀뿌리 토론은 잠들어 있는 권리들을 깨우고 우리의 몸을 일으킬 것이다.” 한목소리로 결의문을 낭독하던 그때,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었을까? 적어도 나는 2차 전체회의를 앞두고 뒤늦게 깨닫고 있다. 그때의 목소리는 뜻을 정하는 결의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묶어세우는 결사의 약속이기도 했음을.
청소년, 장애여성, 홈리스, 입시생이 모여

전국에서 4·16 인권선언의 내용을 채우는 토론이 벌어졌다. 용인시민모임, 고양시 동녘교회, 제천간디학교, 수원 칠보산마을 촛불모임(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 4·16 인권선언 추진단 제공

전국에서 4·16 인권선언의 내용을 채우는 토론이 벌어졌다. 용인시민모임, 고양시 동녘교회, 제천간디학교, 수원 칠보산마을 촛불모임(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 4·16 인권선언 추진단 제공

약 석 달 동안 전국 곳곳에서, 해외에서 다양한 규모로 풀뿌리 토론이 열렸다.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유일한 공통분모였다. 이름을 알 법한 큰 단체들보다는 작은 모임들에서 더욱 많이 열렸다. 동네 카페, 도서관 인문학 교실, 교회에서 토론이 열렸고 청소년, 장애여성, 홈리스, 입시생들이 모여서 토론했다.

결과 기록이 취합된 것을 보면 1천 명이 함께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라면 수백만 명이 서명하고 수만 명이 탄원을 하는지라 1천 명은 많은 수가 아니다. 그러나 두세 시간을 내어 토론에 참여한 인원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처럼 시민들이 자발적이고 수평적으로 교류하며 함께 인권선언을 만들어간 경우는 선례를 찾기 어렵다.

풀뿌리 토론의 결과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줬다. 토론의 첫 번째 장에서는 슬프고 화나고 미안하고 무력하기도 했지만 가만히 있지 않는 우리가 보인다. 두 번째 장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본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일상의 단면을 통해 우리는 문제의 근원을 꿰뚫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살고 싶은 사회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 번째 장에서는 인간의 존엄을 기초로, 사전이 아니라 사건으로부터, 함께 선언해야 할 권리를 제안한다.

진실과 정의를 향한 목소리는 선명하고 단호했다. “무엇이 잘못됐거나 문제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제대로 알고 물어볼 권리가 있다.” 어쩌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진실을 알 권리는 “책임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 권리”이기도 하다. 권력이 클수록 책임도 크게 져야 하며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강렬했다. 한편, “폭력적인 사람으로 매도되지 않을 권리” “정직한 언론을 가질 권리”와 같이 언론을 콕 집어 제안한 권리도 많았다.

표현과 행동에 관한 권리 주장은 센스 있고 풍성했다. “꽃을 선물할 권리” “청와대 입구에서 집회할 권리” “캡사이신에 망가진 내 휴대전화 보상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와 같은 제안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 있는 제안들은 두터웠다. “문제를 문제라고 이야기할 권리”뿐만 아니라 “경청받을 권리”와 같이 표현의 자유가 결국 들릴 권리임을 깨닫게 하는 제안도 있었고 “학교에서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권리”와 같이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제안도 있었다. 아마 “공감을 조직할 권리”는 이 모든 것을 함축한 말일 것이다.

“돈보다 생명”이라고 힘주어 강조하는 제안도 많았다. 그러나 안전에 관한 고민은 가치를 강조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 권리의 제안으로까지 뻗어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목한 권리를 모아보면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이 보인다. 현실의 위험을 어떻게 줄일지, 불평등하게 위험이 분배되는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풀뿌리 토론 참여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제안한 “슬퍼할 권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슬퍼할 권리”를 제안했다. 슬프고 화나고 울고 싶은데 그만하라거나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눈치를 받아본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게 왜 권리인지 모르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고 “슬퍼하지 않을 권리”가 제안되기도 했다. 이렇게 모아보면 권리의 알맹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존중되어야 할 것은 감정의 표면이 아니라 감정의 주체인 사람이다.

“피해자답지 않아도 괜찮을 권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풀뿌리 토론 참여자들은 피해자들이 “불쌍한 사람으로 남아야” 하는 것처럼 만드는 사회, 과도하게 도덕성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판했다. 피해자들이 마음껏 슬퍼하지도 화내지도 못하는 사회에서는 권리를 주장하기도 어려워진다.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가 권리의 주체이기 때문에 함께한다는 감각은 연대를 권리로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흔히 공감과 연대는 의무처럼 말해진다. 그러나 풀뿌리 토론 참여자들은 공감과 연대를 권리로 언어화했다. 타인에게 어렵거나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돕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 중 하나라며 “이타할 권리”를 제안한 참여자도 있다. “모든 사람이 연대의 힘을 누릴 권리가 있으므로” “우리의 권리는 연결되어 있으므로”, 연대는 의무의 짐이 아니라 권리의 날개가 된다. 한 참여자는 연대가 권리라는 감각을 얻게 되면서 새로운 질문을 품게 되었다고 전했다. 왜 나의 연대할 권리를 가로막는가.

우리는 새롭고 화끈한 권리를 찾아헤매지도 않았고 오래 묵어 단단한 권리를 찾아 기대지도 않았다. 제안된 다수의 권리들은 어쩌면 뻔하다. 대한민국 헌법도 보장하는, 마땅하고 지당한 권리들이다. 그러나 풀뿌리 토론 참여자들은 기존 질서에 안주하지 않았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현재의 질서를 거역해야 한다며 “양심에 따를 권리”나 “불복종할 권리”를 제안했다. 주권자로서 권력을 통제하고 참여할 권리를 제안한 사람도 다수다. 기존 질서가 폭력이 되어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고 누군가의 삶을 짓밟은 공통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깨닫는다. 인권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서로에게 나누는 약속이다. 사회가 허락하는 권리를 넘어설 권리와 같은 제안이, “집단적 자신감을 회복”하자는 의견이 그것을 호소한 것이리라.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우리를 구하자

그래서 선언이다. 1천 명의 열정과 의지가 만들어낸 말은, 말이 아니라 관계이고 조직이 된다. 우리에게는 “절망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절망은 개개인의 무기력이나 나약함 탓이 아니다. 우리는 희망을 선언할 수 없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포기할 것인가. 권리를 제안하는 풀뿌리 토론은 포기할 수 없는 ‘우리’를 구하는 과정이었다. 이제 선언하자. 기꺼이 서로의 용기가 되어줄 당신을 기다린다. 11월28일(토) 서울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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