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의 하루, 무심코 서 있었던 정거장에 버스가 지나갔다. 출근길 몽롱한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크나큰 글씨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흡연은 질병입니다. 금연은 치료입니다.’ 버스 측면을 가득 메운 검은 바탕의 광고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한참 잔상이 남았다. 광고의 주체를 보지 않아도 느낌이 온다. 보건복지부의 금연 캠페인 광고다. 흡연인구 전체를 한번에 질환자로 만드는 이 광고에서 경고가 아니라 위협, 계몽이 아니라 혐오의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공익을 위해선 어떤 내용도 괜찮은 것일까?
공익광고에서 보이는 ‘혐오’의 감정
언젠가 TV를 보면서 느꼈던 불쾌감이 겹쳤다. 뒷좌석 안전벨트를 매자는 광고다. 이 광고는 화창한 주말에 여행을 떠나는 가족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아빠가 묻는다. “안전벨트 맸어?” 자녀들이 휴대전화를 만지며 건성으로 대답한다. “맬게요.” 이어지는 라디오 디제이의 잔잔한 목소리. “오늘은 나들이하기 정말 좋은 날씨죠. … 김민수 학생의 사연입니다. …뭔가 큰 실수를 하셨나봐요.” 목소리는 잔잔하지만 겹치는 비주얼은 끔찍하다. 이들이 탄 자동차가 대형 트럭과 충돌하고 중앙선 시멘트 난간에 부딪히는 모습이 이어진다. 충돌 장면이 자극적이긴 하지만 여기까진 실수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잔인한 카메라는 자동차의 내부로 들어간다. 자동차에 타고 있던 청소년 남매는 충돌과 함께 몸이 쏠린다. 대못을 박듯이, 소녀의 머리가 창문에 부딪혀 유리가 깨지는 장면이 천천히 묘사된다. 이후의 참상이 즉각 연상된다. 카메라가 보여주지 않아도 보인다. 고개를 돌릴 틈도 없이 급습한 영상에 불쾌감이 솟구친다. 그리고 이후에 여기에 이들이 없다는 것까지 광고는 못박는다. 사고를 수습 중인 현장에 앞좌석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엄마만 망연한 얼굴로 앉아 있다. “이렇게 될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냉담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이 광고엔 위협만 있고 슬픔이 없다.
“이거 처음 보고 놀랐다. 무섭기로는 옛날 공익광고협의회급이다(보건복지부 금연광고도 그렇고 요즘 정부 부처끼리 어느 쪽이 더 무섭게 만드나 경쟁하는 건가). 이거 보고 트라우마 발생자 안 나오길….” 광고 포털 ‘TVCF’(tvcf.co.kr)에 올라온 이 광고(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 캠페인-뒷좌석 안전띠 편)에 달린 댓글이다. “경각심을 느꼈다” “위협소구로 성공했다”는 반응도 있지만, “심의에 통과되는 기준이 뭘까요? 고무줄인지 거미줄인지…” 같은 의문도 댓글에 있다. 국토교통부 공익광고의 위협소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보건복지부의 TV 금연광고다. 연주황색 옷을 입은 여성이 고통에 찬 몸짓을 한다. 이런 몸짓을 하는 이들이 점점 모이고 쌓인다. 이 고통이 무엇을 뜻하는지, 여성들이 모여서 이룬 형체가 말한다. 고통스런 이들이 모여서 만드는 폐가 보인다. 여기에 겹치는 문구는 “당신의 폐를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 치료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질병. 이 병의 이름은 흡연입니다.”
현재 금연 캠페인의 슬로건인 “흡연은 질병입니다. 치료는 금연입니다”가 이어진다. 고통스런 사람들이 모여서 뇌 모양을 이루는 광고도 있다. 흡연이 뇌세포, 폐조직에 그런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한국의 금연광고인가 의심할 정도로 미장센을 비롯해 변화를 보인 광고다. 그러나 카피가 아직 옛 금연 캠페인을 답습하고 있는 점이 다소 아쉽다.” 역시 TVCF 사이트에 올라온 평가다.
광고를 보면서 시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불량식품을 포함한 ‘4대악 척결’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는 공익을 강조하지만 자칫 공격으로 이어지기 쉬운 국정 기조를 유지해왔다. 금연을 위해 흡연자를 ‘환자’로 묘사한 방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누군가를 겨냥하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정부의 성격이 공익광고에 투영되지 않을 리가 없다. 박근혜 시대 공익광고는 공동체의 윤리보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뒷좌석 안전벨트 캠페인 광고는 당신의 잘못만 따진다. “울면서 잘못했다”고 인정하라고 윽박지르는 듯하다. 광고가 오른 사이트 댓글은 광고가 배제한 외부를 말한다. “(시내)버스에도 안전벨트를 설치하면 좋겠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특정 집단을 공격하는 정부는 그럼으로써 정당성을 얻으려 한다. 광고를 보면서 다중이 느낄지 모르는 혐오감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혐오는 정부가 권하는 시대의 감정이 되었다. 공익을 가장한 광고의 칼끝은 흡연자뿐 아니라 노동자도 겨냥한다.
논란의 노동 개혁 정책이 광고로 승화됐다. 아버지를 상징하는 의 주인공 황정민과 청년 세대를 대표하는 의 주인공 임시완을 내세운 공익광고에 이어 ‘휘열이의 우리 엄마’ ‘두희의 우리 아빠’ 편이 전파를 타고 있다. 일단 이런 생각이 든다. ‘저렇게 논란이 심한 정책도 공익광고를 하는 과감한 정부’에 놀란다. 취업 면접을 다녀온 아들이 나오는 우리 엄마 편에는 “퇴근하고 먹는 밥은 어떨까?”라는 말이, 자격증 공부하는 딸이 나오는 우리 아빠 편에는 “나도 아빠랑 같이 출근하고 싶다”는 대사가 나온다. 여기에 “노동 개혁은 우리 딸과 우리 아들의 일자리입니다”라는 멘트가 이어지면, 이 광고가 누구의 책임을 묻는지 묻지 않아도 안다. 부모의 일자리를 쪼개서 청년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임금피크제’가 자극하는 죄책감이 광고로 유포된다. 자식을 볼모로 부모를 협박하는 내용으로 읽힌다. 여기도 부모와 자식으로 개별화된 인간만이 있을 뿐, 공동체는 없다. 정부와 기업의 책임은 묻지 않는다.
보수 정권에서 급진성 잃어버린 공익광고공익광고는 일종의 바로미터 구실을 해왔다. 딱딱하고 근엄하고 재미없던 공익광고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다가서는 기발하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변했다. 이즈음 국제광고제에서 한국의 공익광고가 상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수 정부 시대에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무서운 나라의 무서운 광고다. 위협소구의 공익광고는 다른 나라에도 있다.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공익광고는 급진적 표현으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묻는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뜬금없는 비난으로 누군가를 몰아가선 곤란하다. 예외도 있다.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와 달리 환경부의 재활용 캠페인 ‘쓰레기에도 족보가 있다’는 생각만 달리하면 얼마든지 크리에이티브한 공익광고가 가능함을 증명한다. 영화 시리즈의 명대사인 “아임 유어 파더”(내가 네 아비다)를 익살스럽게 사용한 이 광고는 구겨진 캔이 ‘새끈한’ 자동차의 아버지임을 유쾌한 반전으로 보여준다. 여전히 발상의 전환이 문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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