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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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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의 선언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심각한 오독이 불러온 분노에서 시작해
자기성찰과 고백으로 이어지며 끊이지 않고 있는 ‘해시태그 페미니스트 운동’
등록 2015-03-19 17:53 수정 2020-05-03 04:27

“‘여성의 날’도 지났는데 이제 너무 늦은 것 아닌가?” 매주 월요일 열리는 편집회의에서 편집장이 말했다. ‘해시태그 페미니스트 운동’에 대해 쓰겠다고 얘기하자 돌아온 걱정이었다.
트위터상에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문장 앞에 샤프(#) 기호를 달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선언하는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된 건 지난 2월10일이었다. 프랑스 풍자 주간지 테러 사건이 벌어진 뒤 트위터상에서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 억압을 둘러싼 날선 싸움이 있은 뒤였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씨가 한 패션지에 쓴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칼럼도 선언의 계기가 됐다.
특이한 점은, 이 온라인상의 선언이 한 달이 지난 3월13일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논쟁이 선언 당사자들의 성찰과 각성, 자기고백으로 이어진 점도 특이하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기청넷) 운영위원이자 대학원생인 희원(28)씨는 이에 대해 “트위터에서 자주 봐왔던 공격적 논쟁들은 보통 소모적으로 서로 상처받으며 끝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페미니스트 운동’이라는 생산적 움직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선언이 큰 운동은 아니지만 개개인에게 ‘시작점’이 될 수 있어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작점’이 될 수 있어 뜻깊은

온라인상의 선언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졌다. 기청넷은 희원씨 등 회원들의 제안으로 3월8일 여성의 날에 ‘기본소득’과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를 결합한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문구도 책갈피로 만들었다. 기본소득과 여성주의가 만난 셈이다. 이를 전후해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주의 저널 , 한국여성의전화 등에 대한 후원이 늘었다. 요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요리공간 ‘네타스키친’의 요리사 차유진씨가 공간을 제공해 오프라인 모임도 열렸다. 이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앞으로 70대 할머니·할아버지도 페미니즘을 쉽게 공부할 수 있는 자율학습 키트를 만들고, 페미니즘 영화 상영회 등을 열자는 얘기가 오갔다.

요리작가 차유진씨가 지난 3월8일 ‘여성의 날’ 일 때문에 간 프랑스 파리에서 직접 제작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손팻말을 들었다. 차씨는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페미니스트 선언’에 동참한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함께 만나는 자리를 주선하기도 했다(맨 위쪽).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3월8일 ‘여성의 날’에 기본소득과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을 결합해 거리로 나왔다. 차유진 제공,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제공

요리작가 차유진씨가 지난 3월8일 ‘여성의 날’ 일 때문에 간 프랑스 파리에서 직접 제작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손팻말을 들었다. 차씨는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페미니스트 선언’에 동참한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함께 만나는 자리를 주선하기도 했다(맨 위쪽).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3월8일 ‘여성의 날’에 기본소득과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을 결합해 거리로 나왔다. 차유진 제공,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제공

끝나지 않은 것은 선언만이 아니다. 선언을 둘러싼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시선과 말들도 계속되고 있다. “해시태그를 단다고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라며 선언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해시태그 페미니스트’들이 해시태그를 달지 않는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왜 달지 않냐’고 질문하는 방식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비판하는 이도 있다. “해시태그를 패션처럼 유행으로 소비한다”는 비판도 있다.

트위터에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단 사람들은 다양한 결의 개인이다. 이들을 하나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왜 지금 이 선언을 했을까. 이들의 선언에는 이슬람국가(IS)가 촉발한 논란에 대한 분노를 넘어선 성찰과 고백이 있었다. 선언 뒤에는 적어도 온라인상에서 마주치는 삐딱하고 불편한 시선들을 견뎌야 했다.

이들이 이런 불편을 감내하고 적극성을 띤 이유는 뭘까. 트위터 140자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들을 직접 물었다.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찻잔 속 태풍은 언제든 찻잔 밖 태풍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전박길수(32)씨는 2월15일 조심스럽게 트위터에 썼다. “뭔가 선언한다는 것이 부끄럽고 어색하지만 제가 항상 의식하는 건 페미니즘. 권력과 관계, 몸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어서 #나는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합니다.”

삐딱한 시선? 불편해도 괜찮아

길수씨는 대학교 학부 시절인 2006년 여성주의 학회에 들어갈 만큼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다른 사회적 이슈에 비해 여성주의 이슈는 사실 이해가 잘 안 됐어요. 제가 남성으로 태어나 남고 등을 거치며 남성으로 키워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편을 끼치거나 차별적 발언을 하는 가해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됐어요.”

공부를 해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던 ‘여성주의’는 머리를 기르면서 한 걸음 가까이 왔다. 2008년 여자친구가 물었다. “너는 머리가 왜 짧아?” 길수씨는 “짧은 게 잘 어울린다”고 대답했다. 반론이 제기됐다. “머리를 길러본 적도, 다른 머리 스타일을 해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게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정말 그랬다. 그는 초·중·고를 지나 대학생이 된 당시까지도 늘 짧은 머리였다. 머리를 길러본 적도 없는데 그저 짧은 머리가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관습적으로 생각해왔다. 길수씨는 정말 자신에게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냥 ‘남성이 으레 하는 머리 스타일’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인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길렀다. 머리 긴 남성으로 사는 건 꽤나 불편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친지 어른들은 “계집애처럼 머리를 기르느냐”고 직설적으로 질책했다. 긴 머리 덕분에 한번에 파악되지 않는 성별로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이들은 울기도 했다.

남성인 길수씨는 긴 머리를 갖게 되자 여성적 습관이라고 생각했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행위를 하게 됐다. ‘청순한 긴 머리 소녀’ 판타지를 유지하려면 머리를 감고 관리하는 데 드는 노동이 꽤 고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길수씨는 ‘긴 머리 남성’이 된 뒤 “사람을 자꾸 성별과 성적 지향으로만 판단하려는 시선에 대한 불편함을 경험하게 됐고 여전히 그런 남/여 이분법적 세계가 공고하기 때문에”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병역거부자이기도 한 길수씨는 늘 “감히 나는 페미니스트가 못 된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남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육아, 명절 가사노동 등이 관습적으로 짐지워진 여성의 억압을 내 것처럼 느끼기는 쉽지 않다. 오만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이번 선언에 동참한 것은 선언의 맥락 때문이다. “이번 해시태그 페미니스트 선언 운동의 맥락은 ‘내가 페미니스트야’라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낙인처럼 여겨지고 김태훈씨가 한 패션지 칼럼에 썼듯 페미니즘을 오독하는 상황에서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을 긍정하는 차원이다.”

편 가르기 위함 아닌 긍정을 위한

요리작가 차유진씨는 해시태그 페미니스트 선언이 처음 있은 때부터 적극적으로 해시태그를 달아왔다. 평소 쓰던 계정 외에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계정(@iamfeminist2015)을 따로 만들었다. 이 계정을 통해 지난 2월24일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첫 모임을 주선해 오프라인 공간에서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당사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성장 과정에서 특별한 차별을 경험하지 않았던 차씨는 이번 선언을 계기로 생애 전체를 다시 한번 짚어보게 됐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살던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이야기는 “공부 열심히 해야지 언니들처럼 공장에서 일 안 해”였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 언니들 대부분이 공장에서 오빠·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경우였다”며 과거 가부장제 사회에서 딸을 대하는 방식이 새삼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요리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소비 방식도 다시 한번 성찰하게 됐다. “지금 요리 프로그램에서 소비되는 여성은 예쁘게 차려입고 맛집에 가는 여성()과 한복 입고 나타나는 가정요리사(), 두 가지뿐이에요. 전문성을 띠고 요리사 복장을 한 ‘셰프’는 모두 남성입니다.” 가정 살림을 하는 사람은 모두 여성인데 정작 전문성을 띤 직업인으로서의 요리사는 모두 남성이다.

그는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이 여성들의 이런 자기성찰과 자기고백, 또 사회구조적 부조리함과 부당함에 당당할 필요가 있다는 각성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엄마, 엄마의 엄마가 반복했던 아들 타령의 못난 마음을 나 역시 극복하지 못하고 여덟 달 동안 가져야 했던 것을 반성한다. 나는 장손 며느리다. 그리고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_rev), “재작년 여성학 수업 때 교수님께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하셨을 때 침묵했던 것이 부끄럽고 죄송해서, 지금이라도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hatter) 같은 반성은 물론, “어머니는 여아를 임신했다고 강제로 낙태당한 적이 있었다. 나는 성별 때문에 친가에서 완전히 배제당하며 자랐고 지금껏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깔아뭉개려는 별별 헛소리를 다 들어왔지만 여전히 여성임이 자랑스럽고 긍지를 꺾지 않을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s) 같은 ‘젠더사이드’(성별에 따른 낙태)에 대한 고백도 줄을 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교유하는 남자들에게 무의식적 의존이나 피해의식 없이 자유롭고 따스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여성임을 자각하여 부당함은 거부하도록 노력하고 억지로 남성성을 익히지도 말자고 생각한 순간이었습니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lakim) 같은 깊은 성찰도 있었다. 차씨는 이번에 여러 사람이 쓴 트위트가 타임라인을 채우는 광경을 보면서 마치 “집단 심리상담 현장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뭉클함, 치유의 효과를 느꼈다”고 말했다.

‘#’ 운동이 가져온 치유의 효과

차유진씨는 이런 현상을 사람들이 적대시하는 이유가 의문이었다. “저술가 고종석씨가 온라인에서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 사람들을 ‘스탈린’ ‘크메르루주’에 비유한 것은 너무 과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당신은 왜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지 않나요’라고 묻거나 강요한 적이 없다. 그리고 설사 누군가 그걸 물었다고 해도, 그게 생명을 위협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독재자의 행위에 비교할 만한 질문이자 강요인지 의문이다. 그건 ‘페미니스트’라는 존재가 욕하기 쉽기 때문에 나오는 격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차씨는 “페미니스트는 남성의 밥그릇을 뺏는 존재가 아니라 똑같은 권리를 누리며 함께 잘 살자고 이야기하는 존재다. 이 해시태그 선언이 온라인상에서 계속되길, 페미니스트가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사회가 되는 데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희정 편집위원은 3월8일 여성의 날에 “여성은 노동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사적 영역’이라고 딱지를 붙여서 부불(不拂)노동으로 만들어온 가사노동, 감정노동, 성노동에 종사하고 있을 때에도, 당연히 우리는 노동자입니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트위트를 통해 선언에 동참했다. 손 편집위원은 이번 해시태그 운동에 대해 “지난 10년 동안 페미니즘 운동이 점차 그 에너지를 잃어왔는데, ‘페미니즘 운동을 되살려야 한다’는 에너지가 트위터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 편집위원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처음 여성주의 영화를 접하고, 이어 여성영화제에서 일하고 페미니스트 선배들을 만나면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세계관을 확립했다. 일상에서 겪는 구조적 성차별 문제는 그의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더 확고하게 한다. 한국 영화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캐릭터가 사라지는 문제, 술자리에서 동료라고 생각했던 남성에게 성희롱을 당하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 주변의 맞벌이 부부들 가운데 늘 여성이 육아와 가사의 주 담당자가 되어 있거나 다른 여성(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혹은 여성 가사도우미 등)이 그 일을 나눠가지는 상황들이 그렇다.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그가 꿈꾸는 페미니즘은 어떤 페미니즘일까. 손 편집위원은 나를 ‘무엇’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지만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지하는 이론은 ‘에코페미니즘’이다”라고 말했다. 에코페미니즘에선 현실세계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서로 협력하며 지탱된다고 생각한다. 자본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해 남성은 공적 영역에, 여성은 임산·출산·육아·돌봄 노동을 포함하는 사적 영역에 위치시키고 공적 영역에서의 생산력만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임금을 지급했다. 여성의 노동과 여성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어서 저임금 노동이 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이렇게 남성 중심적 세계를 강화했다. 에코페미니즘은 양쪽 모두에 저항하고 소비가 아닌 자급을 강조하고 돌봄이나 배려의 가치를 되살리고자 한다. 손 편집위원은 이를 여성의 특징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특징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산적인 공격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선언’을 통해 이야기되는 많은 사례 가운데 적극성과 호응성을 띠는 것은 ‘동일노동-동일임금’ 같은 이슈다. 이런 흐름에서 에코페미니즘이나 노동·환경·여성 이슈를 함께 이야기하는 ‘적녹보라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면 “전선을 흐린다”거나 “양성평등, 여성주의 이슈를 희석한다”는 물타기로 인식해 공격하는 경향도 있다. 이에 대해 손 편집위원은 “한국 사회에는 지난 10년간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 비어 있는 상태였다. 지금 더 많은 페미니즘, 더 많은 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필요하고 더 많은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간혹 보이는 ‘같은 편끼리의 소속감을 확인하고 자기 정체성을 세우는 방식’은 트위터에서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 사람의 특징이라기보다, 140자 안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리트위트를 유발해야 이슈가 널리 퍼지는 트위터라는 공간의 속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라고 발화하는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고 고민을 나누다보면 파괴적인 공격성이 아니라 부조리한 것과 싸우는 생산적인 공격이 가능할 것이다.”

해시태그 페미니스트 선언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어야 한다. 선언한 사람들의 바람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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