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은 길지 않았다. 2014년 10월 김기진(33)씨는 스마트폰에 모바일 메신저 앱 텔레그램을 설치했다. 검찰에 의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제기된 뒤였다. 새로운 앱을 사용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새 누군가 내 사적인 대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불쾌해 메신저를 바꿨지만 많은 친구들이 동참하지 않아서 금세 시들해졌어요.” 김씨가 말했다. 불쾌함을 감수하기로 한 김씨의 스마트폰은 다시 익숙한 소리를 낸다. “카톡!”
“나라 떠나고 싶지만 그럴 일이 아니란 생각에”정부의 게걸스런 눈길로부터 도망쳐 좀더 내밀한 회합을 기도했던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오래 떠나 있지 못했다. 웹데이터 분석·평가업체 랭키닷컴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10월 사이버 검열 논란 뒤 국내 텔레그램 사용자는 5만 명 수준에서 200만 명으로 급증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11월 마지막 주에는 120만 명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카카오톡 사용자는 2900만 명 수준으로 논란 이전의 사용자 수를 회복했다. 2014년 커뮤니케이션 분야 앱 방문자 수 1위를 견고하게 지키고 있다. 국가의 검열 앞에서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이들에게 망명은 명쾌한 답이 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요구가 개인적인 문제의식에 그쳐서는 안 되며 프라이버시 문제는 강력한 사회세력들과 연관된 공적 이슈”(데이비드 라이언, )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망치는 대신, 싸우는 일을 선택한 이들이 있다. 이요상(63)씨도 그중 한 명이다. 정진우 부대표의 카톡 대화방에 참여했다가 검찰에 개인정보가 노출된 피해자다. 2014년 12월23일 이씨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 섰다. 국가와 다음카카오를 상대로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다. “이 나라에 살고 싶지 않아서 떠나고 싶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떠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권리가 보장되는 날까지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각종 집회에 꾸준히 참여해온 이씨지만 그는 정 부대표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제3자에 의해 밀양 송전탑에 반대하는 이들이 모인 카톡 대화방에 초대됐을 뿐이다. 정 부대표의 카카오톡이 압수수색됐고 그 대화 목록에 자신도 올라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이씨는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집회 현장에서 사복경찰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귀갓길에 괜스레 두리번거리고 집에 오면 창밖에 누가 있는 게 아닌가 살피게 됐다. “검찰이나 국가정보원이 다 서로 통해 있다고 하니 별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씨와 함께 피해를 입은 이들이 모두 2368명이다. 정 부대표의 변호인단은 2014년 11월27일 수사기록 열람을 통해 비로소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개인정보가 제공된 이들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했다. 피해자의 압도적인 수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압수한 자료는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정 부대표가 세월호 참사 관련 불법집회를 주도한 혐의를 입증하는 데 증거로 삼을 만한 내용은 애당초 카카오톡 대화엔 없었던 셈이다.
변호인단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검찰이 다음카카오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는 47개 방에 모인 2368명의 연락처와 대화 내용이다. 그 가운데 2186명은 해당 카톡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정진우 부대표와 같은 방에 초대됐다는 이유로 2천여 명의 개인정보가 제공된 것이다. 해당 대화방들은 철도, 유성, 밀양, 재능, 삼성 등 다양한 투쟁 현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이었다. 정 부대표는 “검찰이 (나처럼) 이런 사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잡아내 압수수색함으로써 그들을 감시하려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압수수색을 통해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186명은 해당 카톡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이와 관련해 피해자들은 국가·다음카카오를 상대로 3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한편, 검찰·법원의 카카오톡 압수수색영장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것은 헌법 제12조 영장주의와 청구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종로경찰서가 압수수색을 집행하면서 대화 상대방이 아닌 청구인들의 전화번호와 대화 내용까지 압수해간 것 또한 위헌”이라고 덧붙였다.
카카오톡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단체 대화방을 통해 수백 명이 참여하는 다자간 대화가 가능하고, ‘초대’라는 형식을 통해 서로 모르는 이들이 대화방에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영장에 적힌 ‘대화 상대방’의 범위를 엄격히 제한해 해석하지 않으면 ‘포괄영장 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김지미 변호사는 “피해자 중 100여 명을 제외하면 전혀 정 부대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영장을 발부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대화하지 않은 대다수 사람의 정보도 압수수색됐다. 범죄 혐의와 전혀 무관한 이들의 정보까지 넘겼다는 점에서 위법하고 위헌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압수·수색·검증을 집행한 경우 ‘수사 대상이 된 가입자’에게 그 사실을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한 통신비밀보호법 제9조 3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요상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정확히 어떤 이들의 정보가 압수수색됐는지 알기 위해 검찰과 카카오톡에 문의했지만 2014년 11월27일 4차 공판기일까지 어떤 정보도 구할 수 없었다. ‘수사 대상이 된 가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 2300여 명은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알려지고 이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이는 청구인들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말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참여하는 피해자는 정진우 부대표를 포함해 24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이버 망명을 택한 200만 명, 카카오톡 사용자 2900만 명에 견주면 턱없이 적지만 검열 논란에 대한 저항은 이들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반격은 전방위적이다.
인권위 폐지 권고하고 캐나다 대법원 위헌 판정[%%IMAGE3%%]모든 저항은 실태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사무소가 2014년 12월3일 시작한 ‘한국 인터넷 투명성 보고’ 사업은 하나의 닻이 될 듯하다. 한국 인터넷 투명성 보고에는 입길에 오른 다음카카오를 비롯해, 구글·네이버 등 모든 인터넷 사업자뿐 아니라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사에 정부가 요청한 통신자료(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가입·해지일자·전화번호 등), 통신사실확인자료(상대방 전화번호·통화시간·통신위치추적 등), 통신제한조치(전자우편의 내용·비공개 게시판의 게시 내용·SNS 내용·메신저 내용) 등이 공개될 예정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는 연구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지만 앞으로 국가가 자발적으로 감시 행위에 대한 통계를 모아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적인 방향”이라고 밝혔다.
관련 입법도 진행되고 있다. 2014년 12월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간사인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사단법인 ‘오픈넷’과 공동 작업을 통해 ‘사이버 사찰 방지법’을 발의했다. 카카오톡 검열 논란처럼 온라인상에서 정부의 무분별한 사찰을 막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이와 관련된 통신비밀보호법·전기통신사업법·개인정보보호법·형사소송법 등 4건의 법률 개정안이다.
개정안의 내용을 보면, 먼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는 수사기관이 감청·통신사실확인·통신압수수색을 집행할 경우 90일 안에 당사자에게 집행 내역을 통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법은 기소 또는 불기소 처분을 한 날부터 30일 안에 통지하게 돼 있으므로 처분을 하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당사자에게 통지하는 절차를 유예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역시 공공기관을 비롯한 모든 개인정보 처리자가 개인정보 이용 내역을 당사자에게 주기적으로 통지하도록 개정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강화했다.
“일일이 양해 구해 동참 구할 예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는 전기통신사업자가 법원, 검사 등 수사기관의 자료 제출 요청에 따를 수 있도록 규정한 제83조 3항을 삭제해 법원의 압수수색영장을 통해서만 통신자료를 제공하도록 절차를 강화했다. 오픈넷은 “이는 영장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많아 그동안 많은 지적을 받아왔으며, 2014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도 폐지 권고를 한 바 있고 2014년 6월 캐나다 대법원에서도 위헌 판정을 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전기통신사업자가 감시 협조 현황을 국민에게 공개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다음카카오도 현재로선 정부보다 ‘사용자’ 편에 서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는 2014년 10월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일자 기자회견을 통해 “수사기관의 메신저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 감청 불응이 실정법 위반으로 문제가 된다면 제가 벌을 받겠다”고 밝힌 데 이어 12월17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프라이버시정책 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여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류광현 변호사 등 1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앞으로 다음카카오의 모든 서비스에서 개인정보 보호 절차·현황을 검토하고, 2015년 초에 발간할 투명성 보고서에 조언을 제공할 계획이다. 불매운동 성격인 ‘사이버 망명’이 거둔 일정한 성과다.
그러나 ‘감시국가’는 사이버 망명으로 뒤집을 수 없다. 감시국가에 대한 공동체의 감시가 유일한 출구다. 검찰의 카카오톡 검열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꾸려진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사이버사찰긴급행동’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피해 당사자들 24명이 소송하는 것은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소장을 들고 있는 우리들이 함께 싸우지 않으면, 정부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적은 수가 참여하지만 2300여 명의 사람들에게 직접 일일이 전화해 양해를 구하고 같이 싸우자고 얘기할 것입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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