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으로 몸이 다져진 (태권도) 관장·사부들이 엄마 혼자 기른다고 무시하고,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무시하고, 때려도 전화도 못하게 무시하고, 얼마나 협박을 당했으면 도망갈 엄두도 못 내고 무자비하게 맞아 죽었을까요.”
지난 12월17일 오전 서울 동부지방법원 1호 법정은 태권도 관장에게 맞아 숨진 고아무개(25)씨의 어머니 김아무개씨(55)씨의 눈물 어린 절규로 가득 찼다. 이날은 고씨의 틱장애(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근육의 움직임을 보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증상)를 고쳐주겠다며 정신지체 3급인 고씨를 두 달 동안 감금하고 각목 등으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구속 기소된 태권도 관장 김아무개(48)씨의 재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고씨의 어머니는 김 관장을 ‘살인자’라고 불렀다.
“시신이 살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에 의하면 고씨의 몸에는 얼굴, 몸통, 팔, 다리 할 것 없이 끔찍한 폭행으로 인한 상처가 깊이 새겨져 있었다. 국과수는 “가슴과 배, 허리, 엉덩이, 팔, 다리 등 전신에서 발생 시기가 다른 다수의 피하출혈이 있다”고 했다. 고씨가 오랫동안 지속적인 폭행에 시달렸다는 의미다. 여러 개의 갈비뼈가 부러졌고 이미 부러졌다가 붙은 갈비뼈가 또다시 부러진 흔적도 있었다. 부러진 갈비뼈 조각이 고씨의 폐를 찔러 찌그러뜨렸고 염증을 불러일으켰다. 근육은 파열됐고 무릎관절엔 고름이 차 있었으며 엉덩이에는 욕창이 생겼다. 국과수는 고씨의 사인에 대해 “변사자는 심각한 다발성 손상 및 이에 합병된 감염증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키 182cm에 몸무게가 78kg이던 아이가 56kg으로 죽었습니다. 살인 의도 없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요. 시신이 살인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씨 어머니의 외침이다.
고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어가는 줄도 모른 채 매일같이 아들과 아들을 돌보던 태권도 관장·사범들이 함께 먹을 반찬을 해날랐다. 고씨의 어머니는 “(구속된 김 관장이) 아들이 태권도 3단 자격증이 있으니까 4단을 취득하면 사범이 될 수 있고 자기가 나중에 고용할 수도 있다면서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7월부터 체육관에서 숙식을 했는데 처음 두 달은 아들을 볼 수 있었지만 8월23일부터는 ‘엄마에게 너무 의지를 많이 한다’면서 당분간 연락을 끊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9월21일 고씨가 막내이모에게 “보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을 마지막으로 휴대전화 연락마저 끊겼다.
고씨의 어머니는 연락이 끊긴 뒤에도 매일같이 관장들에게 반찬을 전달했다. 체육관의 총책임자인 김 관장 밑에서 일하며 고씨를 돌보던 6명의 다른 관장·사범들은 고씨가 죽기 전 두 달 동안 고씨의 어머니에게 아들을 보여주지 않은 채 반찬만 받아갔다. 어머니는 매일 어떤 반찬을 했는지 적어가며 반찬이 겹치지 않게 신경 썼고 관장들이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양도 넉넉히 준비했다. 그는 “아들이 죽기 5일 전에 김 관장에게 아들 얼굴을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보고 싶다고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하니 펄쩍펄쩍 뛰면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 걱정 말라. 생활습관이 좋아지고 있다’고 해서 믿었다”고 말했다.
고씨가 죽은 채 발견된 날인 10월28일 아침 9시20분에도 어머니는 아침 도시락을 태권도장 앞에 가져다두었다. 불과 1시간 뒤인 10시30분, 경찰로부터 아들이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체육관에 누워 있는 주검을 본 어머니는 두 달 만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아들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주검 옆에는 전날 저녁에 싸다준 김밥이 이를 받아간 관장 몫만 사라진 채 놓여 있었다. “지옥 불구덩이에 자식을 던진 줄도 모른 채 관장 말만 들은 제가 우리 아들에게 너무나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
상해치사와 유기치사 혐의로 고소체육관의 총책임자인 김 관장은 고씨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인정하고 구속 기소됐지만, 그 밑에서 고씨를 돌보던 6명의 관장은 경찰 조사에서 ‘자신들은 고씨를 때리지 않았으며 고씨가 죽을 줄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관장 대신 체육관을 운영하는 등 여전히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을 보다 못한 고씨의 어머니는 이들을 상해치사와 유기치사 혐의로 고소했다. 김 관장은 고씨가 숨지기 닷새 전에 동남아로 출장을 떠났고, 고씨가 숨졌을 때 해외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 관장이 출장을 떠난 닷새 동안 고씨를 관리했던 관장·사부들에게도 고씨를 때렸거나(상해치사), 최소한 죽어가는 고씨를 방치한 죄(유기치사)를 물어야 했다. 이들은 고씨의 어머니가 반찬을 전해주며 “우리 OO이 잘 있느냐, 우리 OO이 잘 먹느냐”고 물을 때마다 한결같이 웃으며 “잘 있다”고 대답했던 이들이다. 고씨의 어머니는 “OO이가 끙끙 아파할 때 이들이 병원에만 데려갔어도 죽음을 면할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죽어가는 OO를 방치해놓을 수 있느냐”고 했다.
이들은 무죄를 주장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은 이들의 주장을 납득하기 힘들게 한다. 고씨는 죽기 전 얼굴을 포함해 온몸에 멍 자국이 있었으며 몸무게는 20kg 가까이 빠져 있었다. 외상만으로도 고씨 몸 상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다. 또 김 관장은 구속되기 전 유가족과 한 전화 통화에서 “(내가 다른 관장들에게) 이 ×××들아. OO이 오줌 싸고 그러면 병원에 입원을 시키든지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게 맞는 거 아녜요. …돈이고 뭐고 이런 건 다 둘째치고 병원에 가야지 이게 말이 됩니까”라고 말했다. 자신이 출장을 간 사이 다른 관장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도 고씨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냈다는 주장이다. 유가족들은 “백OO 사범이 장례식장에서 우리한테 말해준 게 있다. ‘죽기 전날 OO이가 누워서 물이 마시고 싶다고 해서 갖다 마시라고 했더니 OO이가 잘 기어가지도 못해 물을 가져다줬다. 그러자 OO이가 물을 마시지 못하고 노란 물을 토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는 나머지 관장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언들이다.
부검 결과서에는 이들이 폭행에까지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 담겼다. “우측 늑골 아래에서 비교적 신선한 피하출혈이 있다. 발생 후 4~8일 정도 경과된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한 대목이 그것이다. 김 관장이 해외 출장을 떠난 뒤에도 다른 관장들에 의해 폭행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고씨가 죽기 전에 남긴 ‘반성문’에도 “(이아무개) 관장님께 두들겨맞고도 정신을 안 차렸습니다”라고 쓴 대목이 있다. 모두 김 관장 외에 다른 관장들도 폭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담긴 증거들이다. 경찰은 현재 일부 관장들에 대해 상해치사와 유기치사 혐의점을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죽음에 대한 애도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장애인 지도자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던 김 관장은 폭력으로 장애를 고칠 수 있다며 장애인을 때려 숨지게 했고, 다른 관장들은 “아프다”는 장애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죽음을 방치했다. 고씨의 죽음 이후 일부 관장들은 지인들과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며 서로 웃고 떠드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들에게서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 12월16일 아들이 죽은 지 두 달이 다 되도록 고인의 방을 정리하지 못한 어머니는 아들이 남긴 그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알면서도 참아야 하는 부모 심정,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는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세상”이라고.
글·사진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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