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9일 밤, 근무가 끝나갈 무렵 김영(23)씨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롯데호텔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일부터 남자 아르바이트가 필요 없게 됐다더라. 넌 더 이상 나가지 않아도 된다.”
석 달 넘게 몸담은 일터에서 잘리는 건 이토록 간단했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김씨는 1년 전 학업을 위해 서울로 왔다. 고시원에 살면서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일자리 선택 기준은 소박했다. 하루 두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최저임금 이상의 시급을 받을 수 있는 곳. 구인광고 사이트에서 한 인력공급 업체가 올려놓은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롯데호텔 뷔페 식당에서 장기간 일할 주방 보조를 구한다는 광고였다.
취업규칙 보여줄 의무가 없다?출근 첫날, 김씨는 초단기간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관리자는 앞으로 매일 출근할 때마다 계약서 두 장을 작성해 한 부는 본인이 갖고 한 부는 담당자에게 제출하라고 했다. 계약서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본 계약은 1일 단위로 체결되는 일용직 계약이다.” 근무기간 3개월19일 동안 하루짜리 근로계약서를 84번이나 썼다.
정작 그는 ‘당장 오늘 잘릴 수 있는 일용직 계약’이란 걸 인식하지 못했다고 했다. 계약서 내용과 실제 근무 여건이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계약서엔 1주당 15시간 미만을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라고 돼 있다. 김씨는 9~10시간(1시간 휴게시간 제외)을 일했다. 매주 이틀간의 휴무일을 받았다. 근무 스케줄도 일주일 단위로 나왔다. 정규직·인턴사원과 같은 근무 형태였다.
김씨는 성탄절과 설날 연휴 등 법정 공휴일에 꼬박 일을 했다. 정규직이나 인턴사원은 단체협약에 따라 휴일 가산임금을 받는다고 했다. ‘이러한 단체협약이 내게도 적용될까?’ 근로계약서엔 단체협약 적용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대신 “계약에 명시하지 않은 내용은 사용자가 별도로 정한 규정 및 근로기준법 등을 적용한다”는 문구가 보였다. 취업규칙을 보고 싶었다. 3월26일 회사 영업지원팀을 찾아갔다. 회사 쪽에선 아르바이트 근로자에겐 취업규칙을 보여줄 의무가 없다고 대응한다. 이틀간 휴무일을 보내고 출근한 날, 느닷없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억울했다. 여자 아르바이트가 필요하다는 회사의 주장이 납득되지 않았다. 지난 6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요청했다. 롯데호텔은 “보조적·한시적 업무를 수행하며 하루 단위로 임금을 받는 일용직”이라며 “하루 단위 근로계약이 끝났으므로 정당한 계약 만료”라고 주장했다. 지노위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에 김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지난 11월 중노위는 “김씨에 대한 해고는 부당하다”며 “근로자를 원직에 복귀시키고, 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계약 형식만 일용직 근로자였을 뿐, 실제로는 계약 기간의 제한이 없는 상용직 근로자라고 본 것이다. 중노위는 “경영상 판단이 있었더라도 업무 전환 배치 노력 없이 유선상으로 해고 통보를 한 건 근로기준법 제27조(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를 위반했다”고 덧붙였다. 호텔업계에서는 일용직 계약을 거듭 갱신해 장기간 일하게 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 예약 현황에 따라 하루 단위로 인력을 쉽게 정리할 수 있으면서도, 업무에 숙련된 사람을 계속 쓸 수 있는 방식이다. 주말을 포함해 닷새 동안 약 47시간을 일한 김씨가 받은 월평균 급여는 130여만원이었다.
“일하고 싶습니다”김영씨는 12월16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롯데호텔 송용덕 사장 앞으로 쓴 편지를 읽었다. “그저 호텔로 돌아가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용직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함께 고민해주십시오.” 회사는 12월19일 현재까지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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