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특별법안 제출로 본격 존폐 논란… 범죄예방 효과 미미해 폐지론 공감 추세
얼마 전 한 지상파 채널은 ‘사형제, 폐지냐 존속이냐’를 놓고 생방송 심야토론을 내보냈다. 지난 10월30일 여·야 국회의원 155명이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사회적 이슈를 안방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한 시청자 ARS 여론조사 결과는 ‘존속’(69.5%)의 압도적 우세로 판가름났다. 국회 정원(273명)의 과반수를 훌쩍 넘는 의원들이 ‘폐지’에 서명한 것에 견줘보면 매우 뜻밖의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결과만 놓고 볼 때, 국회의원들이 민심을 잘못 읽었거나, 적어도 토론에 나선 사형제 폐지론자들이 졸전을 펼쳤다고 해야 옳다. 아닌 게 아니라, 토론이 처음 시작됐을 무렵 40%에 육박하던 ‘폐지’ 의견이 끝에 가서는 30%를 가까스로 넘겼다. 하지만 이 조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래도 섣부른 판단이다. 전혀 다른 결과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인터넷 한겨레’가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는 60% 이상이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공론의 장에서 폐지·존속 논의 부족
어떻게 된 일일까. 양쪽 모두 과학적인 표본추출을 할 수 없는 ‘엉성한’ 여론조사였기에, 어느 쪽의 신뢰도나 타당성이 더 높은지는 판단할 수 없다. 독자나 시청자의 성향 차이도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터이다. 그렇더라도 백중세는커녕 엄청난 격차로 찬반이 뒤집어진 것에는 뭔가 다른 원인이 있을 법하다. “경험에 비춰볼 때 대다수 사람들은 극단적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 양쪽 사이 어디쯤에 넓고 유동적으로 분포해 있다. 조금만 다른 변수가 주어져도 조사 결과는 상당히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이영우 신부의 분석이다.
어찌 보면 비전문가들에게 대뜸 ‘폐지냐 존속이냐’를 묻는 건 무리인지도 모른다.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전문가나 집단들조차 대놓고 ‘사형제 존속’을 외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자신이 ‘존속론자’보다 ‘시기상조론자’ 또는 ‘신중론자’로 불리기를 바란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흉악범들을 영구격리해야 한다는 견해도 많고, 사형제의 범죄억제 기능도 크므로 폐지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여러 사법제도 개혁안을 번번이 반대해왔던 법무부조차 특별법안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펼치는 데 그쳤다.
그만큼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일까. “법학자들 가운데에도 사석에서는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하지만 사형제 폐지론으로 글을 발표하는 학자는 많아도 존속론으로 글을 발표하는 학자는 아직 못 봤다. 기껏 신중론일 뿐이다.” 허일태 동아대 교수(형법학)는 “이런 현상은 사형제문제가 학문 분야에서만큼은 폐지쪽으로 기울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문제는 사형제 옹호자들의 침묵이 결코 ‘금’이 아니라는 데 있다. 허 교수는 “공개적인 논쟁이 뜨겁게 이뤄지지 못하는 것 자체가 사형제 폐지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논쟁이 없는 곳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고정관념이 위력을 떨친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형법학)는 “사형제의 구체적 실체를 접할 기회가 없는 국민들은 사형제가 폐지되면 흉악범이 날뛰고, 심지어 살인범이 풀려나 다시 살인을 저지를 것으로 믿는다”며 “그런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형수 생명의 존엄성을 얘기해봐야 ‘피해자 생명의 존엄성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라는 얘기밖에 들을 게 없다”라고 말했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사형제 존속’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논쟁을 벌이되, 형이상학적인 논쟁 대신 실증적인 논쟁을 벌여야 할 때”라는 게 한 교수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실증적 논쟁이 필요한 건 사형제에 범죄 예방과 억제 효과가 있느냐를 검증하는 것이다. 사형제 존속론자들이 사형제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주요한 근거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사형제를 폐지하면 흉악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는 ‘상식’ 수준의 믿음과는 달리 사형제와 범죄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들이 많다는 게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미국에서는 문화적으로는 비슷한 인접주가 각각 사형제를 폐지하고 존속했으나 살인율에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 오완호 사무국장은 “유엔인권위원회는 1988년 ‘모든 증거들을 지속적으로 조사한 결과 국가가 사형제도를 존치시켜도 범죄율 감소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고, 1950년대 ‘사형제도에 관한 영국왕립위원회’는 유럽과 영연방국가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거쳐 ‘우리가 검토한 어떤 자료에도 사형 폐지 뒤 살인율이 증가했다거나 사형 부활로 살인율이 감소했다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억울함은 제도적 장치로 풀어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연구결과가 없다. 다만 한인섭 교수가 올해 발표한 논문 ‘무기수형자의 시설 내 적응과 사회복귀에 관한 연구’(성곡논총)는 사형제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논문에 따르면, 무기수들 중 대다수가 검사로부터 사형을 구형받았고, 그 가운데 일부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또 많은 무기수들은 우발적 또는 사소한 시비 끝에 범죄를 저질렀으며, 무기형 판결을 받았을 때는 ‘사형을 면해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보다는 ‘사형받은 거나 다름없었다’는 생각과 ‘차라리 죽고 싶었다’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에 대한 한 교수의 분석은 △무기수와 사형수간에 죄질에 거의 차이가 없고 △무기수들이 사형을 피하고 무기형을 받기 위해 범행내용을 조정할 가능성이 없으며 △선고시점에서는 무기형이 사형에 비해 경미한 형벌로 인식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 교수는 “이는 사형이 무기형에 비해 사전적 범죄예방이나 범죄경미화 효과가 높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없음을 뜻한다”며 “무기형은 교정의 사회복귀 목적에 기여할 수 있지만 사형은 삶의 희망을 영구히 빼앗아버릴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형제에 ‘범죄예방 신화’보다 더 질긴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피해자 인권론’이다. 아름다운 인간으로 변해가는 사형수의 미담 사례나 실증적인 범죄예방 무용론도 ‘피해자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주란 말인가’라는 반문 앞에선 맥을 못 추고 만다. 이른바 사형제의 ‘응보적 정의론’이다. 하지만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국가에 의한 제도적 보복살인’으로는 피해자에게 아무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범죄자를 사형시키는 것보다는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정신적·물질적 지원제도를 마련하는 게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좋든 싫든, 사형제는 세계적으로 보편적 형벌로서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지난 6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사형제 폐지를 위한 국제총회에서는 지난 10년간 캐나다와 폴란드, 우크라이나, 칠레 등 30개국 이상이 합류해, 현재 사형제도를 폐지하거나 10년 이상 형집행을 중단하고 있는 나라는 109개국에 이르는 반면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87개국인 것으로 보고됐다. 또 해마다 2∼3개국씩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사형제 폐지를 필수가입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9년 5월 사형폐지협의회(이하 사폐협·회장 이상혁 변호사)가 발족한 이후 사폐협과 종교계를 중심으로 사형제 폐지운동이 꾸준히 진행돼왔다. 1996년에는 사형수 정아무개씨가 사폐협을 통해 사형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으나 ‘합헌’ 결정이 나기도 했다. 지난 1999년 15대 국회에서는 의원 91명의 서명으로 특별법안이 제출됐으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되기도 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사형제 폐지운동은 가장 중요한 인권운동인데도 나 같은 대중운동가들이 제대로 참여하지 못해 대중화에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올해 사형제 폐지운동은 예전과는 분명히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상혁 변호사는 “사폐협과 모든 종교계가 역할을 분담해 정해진 시나리오에 맞춰 단계적으로 운동을 진행해왔다”며 “지금이 바로 결정적인 국면에 들어서고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법안이 제출된 뒤, 곧이어 서울에서 ‘제2회 사형제 폐지 아시아포럼’(11월9∼11일)이 개최되고, 이를 전후해 각종 문화행사가 펼쳐지는 것도 올해 말이나 내년 초 특별법안 통과를 겨냥한 시나리오의 일부다.
상임위 통과 불확실… 사형제 신화 깨뜨려야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인 특별법안은 상임위 통과가 불확실한 상태다. 과반수가 넘는 상임위원들이 이 법안에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반대 근거도 역시 국민 법감정에 따른 시기상조론이다. 최근의 여러 여론조사들은 여전히 사형제 존속 의견이 높지만 폐지 의견이 40%를 넘어서는 등 폐지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사형제 폐지의 세계적 흐름 속에 우리 국민의 법감정도 시기상조론을 뒷받침하기에는 매우 유동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셈이다.
“나도 예전에는 흉악범들을 보면 ‘저런 죽일 놈이 있나’라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교정사목을 시작한 뒤로 우리 사회가 영구히 포기할 만한 범죄자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영우 신부는 “우리 국민들이 사형제와 사형수들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다면 나처럼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 속에서 한번도 사형제 폐지를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도 이젠 “저런 놈은 사형시켜야 해” 대신 “저런 놈은 무기형(혹은 종신형)에 처해야 해”라는 낯선 악다구니를 익혀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사형제에 관한 한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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