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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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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깊은 임대주택 ‘이음채’를 소개합니다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공임대주택 설계한 건축가 이은경 소장

담장 밖 이웃들과 소통하는 임대주택 될 수 있길
등록 2014-12-12 15:48 수정 2020-05-03 04:27

결혼 5년차인 장운석(37)씨네 가족은 최근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새집으로 이사했다. ‘하늘의 별 따기’라는 공공임대주택이다. 2012년 말 입주가 확정된 뒤 이사를 하기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이미 지어진 집에 사람들이 들어가는 기존 공공임대주택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일정 소득 수준이 넘지 않으면서 만 3살 미만의 자녀를 둔 세대에게만 입주 자격이 주어졌다.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과 면접을 거쳐 최종 24가구 입주민이 정해졌다. 장씨를 포함한 모든 입주민은 ‘공동육아’를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 조합원이다. 조합원들은 매달 한 번 이상 얼굴을 맞댔고, 설계 과정에 참여했다. 주택 관리도 직접 한다. 이들은 새집에 ‘이음채’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는 뜻이다. 이음채는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공임대주택이다. 6층짜리 복도형 아파트와 유사한 생김새로, 1층은 공동육아를 위한 공간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다
입주민과 함께 이음채를 설계한 건축가는 EMA건축사무소 이은경(39) 소장이다. 서울시 공공건축가이기도 한 그는 익명의 개인들이 홀로 살아가는 도시 안에서 소통의 여지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이음채는 화려한 브랜드명이 붙은 여러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다. 일부 이웃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진다며 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해 공사가 지연되기도 했다. 올해 첫눈이 휘날리던 12월1일 이음채 앞에서 이은경 소장을 만나 지난 2년간의 우여곡절을 들려달라 청했다.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공임대주택 이음채가 서울 가양동에 들어섰다. 지난 12월1일 입주민들과 함께 설계를 완성한 EMA건축사무소 이은경 소장이 이음채 마당에서 웃고 있다. 류우종 기자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공임대주택 이음채가 서울 가양동에 들어섰다. 지난 12월1일 입주민들과 함께 설계를 완성한 EMA건축사무소 이은경 소장이 이음채 마당에서 웃고 있다. 류우종 기자

-이음채는 기존 공공임대주택과 다르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시범사업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임대주택은 양적 측면만 강조돼왔다. 누가 함께 사는지 모르는 내부적 소외뿐 아니라 외부적 소외 문제도 심각하다. 가양동에는 초등학교 두 개가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임대주택에 둘러싸인 학교로는 아이들을 보내지 않으려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은 없을까. 소통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고민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협동조합형 공공임대주택이란 개념이 생소하다. 입주 신청자들도 당황했을 것 같다.

=‘성미산 육아 공동체 같은 개념이 공공부문에도 들어왔구나’ 알고 오신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극과 극이었다. 입주 신청자들이 먼저 설계도면을 보여달라고 하더라. 분양사무소에서 팸플릿을 보고 집을 선택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 의견을 제시하고, 집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일을 생소해했다. 커뮤니티 코디네이터가 입주민들이 서로 알아나가고 대화하는 과정에 개입했다. 공동텃밭이나 주방처럼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선 이견은 별로 없었다. 사적 공간에 대해선 요청 사항이 많았는데, 특히 집 면적이 48㎡(약 14.5평)이다보니 최대한 넓게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하시더라.

방범창은 왜 꼭 설치해야만 할까?

-이음채는 밝고 산뜻한 느낌이다. 설계할 때 어떤 부분을 신경 썼나.

=주민 주차장에 잔디 블록을 깔아 마당처럼 만들었다. 마당은 이음채의 구심점이다. 마당을 내려다볼 수 있게 복도를 배치했다. 집 내부를 더 넓게 쓰기 위해 발코니를 없앴다. 대신 복도 통로를 공용 발코니처럼 만들었다. 보통 아파트처럼 복도를 높은 콘크리트 벽으로 막는 대신 투시형 난간을 이용했다. 안전 문제를 감안해 중간중간 화분을 놓을 수 있는 플랜트 박스를 설치했다. 집마다 창문 두 개가 복도 쪽으로 나 있다. 하나는 주방 창문이다. 도마를 놓는 지점에 창을 터, 요리를 하다 마당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나머지 하나는 아이 방 창문이다. 옛날엔 아이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창을 두드려 친구를 불렀잖나. 그런 기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복도로 난 창에는 창살이 설치돼 있지 않다. SH공사는 방범창 설치를 요구했고, 방범창이 필요하다는 입주민 의견도 있었다. 그런데 누가 옆에 사는지 모르니까 방범창이 필요한 것이다. 안전망을 이웃과 함께 구축하지 못하기 때문에, 각자 스스로 집을 지켜야 하고 남을 경계하는 규제만 강화된다. 이음채 주민들은 서로를 아니까, 일단은 방범창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현관문 옆 벽엔 동물 캐릭터를 그렸다. 일부러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작업한 부분이다. 동물들도 내가 사는 집을 공유한다는 스토리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모여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시도해보고 싶었으나 결국 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자랄 테니, 집 구조를 바꿀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임대주택 건설 비용은 정해져 있고 사는 사람들이 달라질 수도 있어서 가변적인 구조로 만들기가 어려웠다.

-협동조합형 공공임대주택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려면 어떤 부분이 보완돼야 할까.

=이음채를 지으면서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일까’라는 고민이 많았다. 살고 있는 사람이 주인인가? 아니면 땅 주인인 서울시? 건축주인 SH공사? 세금을 낸 서울시민? 이러한 개별 주체가 각자의 위치에서 집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음채에 대한 그림도 다 달랐다. 어떤 쪽에선 저렴하게 빨리 짓는 임대주택이라 생각하고, 어떤 쪽에선 입주자 의견을 반영하면서도 내 집을 짓는 것과는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후 관리 문제를 고려해 기존 임대주택과 다르게 설계하는 걸 반대하는 입장도 있었다. 서로 다른 그림을 하나로 종합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이웃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지 않고 공사를 시작하다보니 중간에 문제가 생겨 입주 시기가 지연됐다. 이 과정에서 입주민들이 바뀌기도 했다. 조합원들에게 선분양 리스크를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임대주택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은 누그러졌는지 궁금하다.

=그런 반감은 여전히 있다. 시범사업인 만큼 이음채를 건축적으로 잘 만들자고 했다. 이음채가 지어진 터는 서울시 소유의 공영주차장이었다. 주차장을 지하로 넣어 자투리 땅을 활용했다. 공영주차장이 있었을 땐, 트럭도 많았고 길에 늘 차가 주차돼 있었다. 이음채가 들어선 뒤 주차 차량이 줄고 보행로가 확보됐다. 결과적으로 주거환경이 개선된 것이다. 처음부터 주변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주변 이웃과 어우러지는 공간 됐으면

-이음채가 앞으로 어떤 집으로 자리잡길 바라나.

=이음채는 장기 수선 문제를 제외하고, 청소·관리비 문제를 입주민들이 직접 고민하고 해결한다. 임대주택 관리는 보통 SH공사가 맡고 있다. 집에 대한 애착이 없으면 관리를 안 하게 되고, 집 수명도 떨어진다. 주민들이 직접 관리할 경우 비용 혜택을 볼 수 있고 그만큼 애착을 가질 여지가 생긴다. 이러한 선순환이 확산되면 좋겠다. 1층 공동 육아시설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선 협동조합이 논의 중인데, 이음채 아이들뿐 아니라 주변에 사는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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