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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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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쌤들도 우리처럼 학교에서 무시당해요

10대 청소년 눈높이에서 가상으로 재구성한, 학교 비정규직 선생님들의
낮은 처우와 부당한 차별의 현장
등록 2014-11-26 15:23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1월20~21일 서울역 광장에 2만여 명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모여들었다. 37만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오랜 바람인 방학 중 생계 대책 마련, 호봉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선 것이다. 학교 비정규직 가운데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급식조리원들의 파업 참여로 학생들이 급식 대신 도시락을 먹게 되자, 일부 언론은 “학생들 피해는 누가 보상하냐”며 파업을 비난했다. 학생들의 일상에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의미일까. 비정규직 ‘쌤’(선생님)들과의 하루를 10대의 눈높이에서 가상으로 재구성했다. 이를 위해 10대 청소년 3명, 초·중·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 7명 등 10여 명과 인터뷰했다. _편집자


초·중·고등학교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국 교육의 밑바닥을 헐값의 임금으로 지탱한다. 그 수가 37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학교 현장의 갑을 관계가 사기업에 못지않다고 입을 모은다. 류우종 기자

초·중·고등학교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국 교육의 밑바닥을 헐값의 임금으로 지탱한다. 그 수가 37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학교 현장의 갑을 관계가 사기업에 못지않다고 입을 모은다. 류우종 기자

우리도 알 건 알아요. ‘비정규직’이라는 말, 방송에서 자주 나오잖아요. 언제든 회사에서 잘릴 수 있는 사람들, 많이 일하고 돈은 적게 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비정규직 아닌가요. 그거 아세요? 학교에도 비정규직 선생님이 많아요. 우리들은 어떤 쌤하고는 담임 쌤보다 친하고요. 어떤 분들과는 한 번도 얘기 나눠본 적이 없어요. 솔직히, 비정규직 쌤들하고 다른 쌤들은 달라요. 어떻게 다르냐고요? 그 쌤들도 우리처럼 학교에서 무시당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말했잖아요. 우리도 알 건 안다니까요.

쉴 때 쉬지도 않고 과학실을 지켰어요

【1교시】 앗, 종 쳤어요. 과학 시간이에요. 얼른 과학실로 가야 해요. 과학실에 가면 늘 쌤이 먼저 와 있어요. 이선영(39·과학실무사)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은 우리가 과학 실험 하는 걸 도와주고 실험이 끝나면 위험한 실험 재료들을 치워주세요. 예전에 선생님은 학생들한테 과학 실험만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회사에 다녔대요. 이렇게 학교로 오게 된 건 4년 전이라고 해요. 대학교에서 화학 공부를 했고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교원자격증도 따셨대요.

쌤은 원래 늘 과학실에 있었어요. 점심시간에도 5교시 수업을 준비한다고 다른 선생님들은 쉴 때 쉬지도 않고 과학실을 지켰어요. 우리들이 안전하게 과학 실험을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대요. 우리는 괜히 갈 데가 없고 심심하면 상담실이나 과학실에 가서 쌤들한테 고민도 이야기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과학실에 가도 쌤이 없어요.

“쌤, 왜 요새 수업에 자꾸 안 들어오세요?” 선생님한테 물어봤어요. 선생님이 “실험 수업 말고 다른 일들도 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학교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동영상도 만들어 올린대요. 선생님은 그런 일들을 할 줄 모른대요. 학교에서 가르쳐준 적도 없대요. 얼마 전에는 교내 방송을 제시간에 못 내보내서 우리 엄마·아빠들하고 선생님들이 모인 장소에서 교장 선생님한테 크게 꾸중을 들었대요. 선생님이 맡은 일도 아닌데 시켜놓고 잘 못했다고 혼낸다는 게, 우리들이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눈치 없는 어느 친구가 선생님한테 물어봤어요. “쌤은 도대체 뭐하는 분인데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선생님 얼굴이 금방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슬퍼졌어요.

[과학실무사] 학교장이 고용해 학교회계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하루 8시간 한 달을 채워 일하면 13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방학 중에는 급여가 없다. 4400여 명(2013년 기준)의 과학실무사들은 대부분 과학 전공자임에도, 교육부가 2012년부터 ‘효율적 인력 관리’라는 명목 아래 행정·교무·과학·전산 업무를 아우르는 업무통합 정책을 내세우면서 학교 현장에서 전공과 무관한 업무에 배치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충북 청주에서는 업무 통합 뒤 스트레스와 지병 악화에 시달린 한 50대 과학실무사가 학교 운동장에서 목을 매어 숨졌다. 과학실무사 이선영씨는 “낮은 처우에도 과학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라는 긍지를 갖고 일해왔는데 민주적 합의 없이 폭력적으로 진행된 절차에 절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방학 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대요

【2교시】 2교시는 사회 시간이에요. 선생님이 스마트패드에 만들어온 자료를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뭔가 설치가 잘 안 되나봐요. 선생님이 전산 쌤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박호근(32·전산실무사) 쌤이에요. 요새 전산 쌤도 과학 쌤처럼 자꾸 자기 일이 아닌 일을 맡게 되어서 고민이시래요. 쌤은 4년 전부터 학교에서 일하셨어요. 그전엔 일반 회사에서 서버를 관리하는 일을 하셨고요. 전산 선생님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오신 분들이래요.

사실 전산 선생님은 우리하고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어요. 학교에 있는 수백 대의 컴퓨터, 스마트패드 같은 기계들을 관리하고 우리 학교가 사용하는 서버에 문제가 안 생기도록 보안을 지키는 일을 하거든요. 우리는 거의 모든 수업에서 컴퓨터를 활용하기 때문에 여기에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 수업을 계속할 수 없대요. 방학 중에도 컴퓨터를 돌봐야 하는데요. 학교에서는 방학 때 전산 선생님한테 돈을 한 푼도 안 주면서 자꾸 “잠깐 나와서 봐달라”고 한다지 뭐예요. 전산 쌤은 월급이 너무 적어서 방학 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대요. 우리 선생님, 장가도 가야 하는데 어쩌나요.

[전산실무사] 1998년 컴퓨터 활용 교육을 위해 처음 도입됐다. 2012년 이후 ‘교육실무사’로 업무가 통합되면서 감원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전국의 전산실무사는 2135명에서 2013년 1710명으로 20% 줄었다. 교육부는 전산 업무를 외부 업체에 맡길 요량이지만, 수시로 일어나는 사소한 오류들을 해결하려면 상근자가 필요하다는 게 전산실무사들의 의견이다. 서영조(35)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산분과장은 “시설 예산은 늘리면서 정작 그걸 채울 사람을 위한 예산은 돈 없다고 줄이는 것은 교육의 질을 고려할 때도 옳은 방향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3교시】 오늘은 줄넘기를 배우는 날! 체육 시간엔 우리 담임선생님 말고도 체육 쌤이 함께해요. 홍선욱(38·가명·스포츠강사) 선생님이에요. 우리 담임선생님은 체육 전문이 아니잖아요. 원래 홍 쌤의 역할은 ‘보조강사’래요. 하지만 실제로 수업시간엔 홍 쌤이 담임선생님이나 마찬가지예요. 체육 선생님은 초등학교 때부터 기계체조를 했대요. 국가대표로 뛰신 적도 있고요. 기계체조 코치를 하면서 선생님이 되려고 준비도 하셨대요. 다른 선생님들처럼 교원자격증도 있고요. 스포츠강사 쌤들 중엔 석사·박사까지 하신 분도 많대요.

저는 원래 체육 시간을 싫어했어요. 운동을 잘 못해서 창피했거든요. 하지만 홍 쌤이 우리 학교에 오신 뒤 체육 수업을 무지 좋아하게 됐어요. 훌라후프나 줄넘기를 가지고 놀다보면 1시간이 훌쩍 가버려요. 줄넘기 수업을 하면서 서먹했던 친구와도 사이가 좋아졌어요. 그래선지 일부러 선생님을 보려고 찾아오는 졸업생 언니도 있더라고요. 선생님은 그럴 때가 가장 행복하대요.

[스포츠강사] 초등학교 스포츠강사는 학교체육 활성화를 목표로 2008년 처음 도입됐다. 학생·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자 정부는 2011년 “모든 초등학교에 스포츠강사를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정부가 예산 절감을 위해 강사 인건비 분담률을 기존 30%에서 20%로 낮추면서 올해 초 1천여 명의 강사가 일자리를 잃었다.

체육 전공자인 초등 스포츠강사의 80% 이상이 중등교사 2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비롯한 방과후 교과·특기적성 강사, 영어회화 전문 강사 등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도 고용 형태가 가장 열악하다.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은 매년 3~12월까지 10개월 단위로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 스포츠강사 홍선욱씨는 7년의 강사 생활 동안 일자리를 3차례 옮겼다. 벌이가 적어 야간 편의점과 주말 스포츠센터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해야 하는 선생님

저기 보세요. 아이들 모두 줄넘기를 하며노는데 한 친구만 선생님의 도움으로 줄을 돌리고 있죠?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돌봐주시는 정미숙(55·가명·특수교육실무사) 쌤이에요. 정 선생님은 혼자 움직이기 어려운 친구들이 움직이는 걸 도와주시고 이렇게 체육 시간에는 친구들이 할 수 있는 활동을 상황에 맞게 정해서 지도해주는 분이에요. 5명의 장애학생들을 하루 종일 선생님이 돌보고 계세요.

그런데 정 선생님은 가끔 다른 일도 하세요. 지난번 학예회에는 선생님이 강당에서 몇 시간 동안 풍선을 불고 있는 모습도 봤어요. 특수교사 선생님이 강당을 꾸미라고 했대요. 정 쌤 같은 분(보조인력)은 교장 선생님 마음 먹기에 따라 학교에서 잘릴 수도 있대요.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정 쌤이 해야할 일이 아닌데도 쌤한테 청소를 하고 유리창을 닦으라고 시킨대요. 이렇게 선생님들끼리도 괴롭히고 ‘왕따’시키면서 우리들한테 사이좋게 지내라고 할 수 있나요.

[특수교육실무사] 특수학교 또는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서 장애학생의 식사·용변 보조, 이동 지원을 비롯해 수업 지원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7200여 명(2013년 기준)이 근무 중이다. 장애학생과의 신뢰관계 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안정적 고용이 필요하지만 교육감 직고용 후에도 실질적인 인력 수급은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어 언제든 전보될 수 있는 처지다. 배동산 공공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특수교육실무사의 학교 배치에 있어 당사자의 의견 반영과 교육청 단위의 객관적인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점심시간】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시간! 저는 조리사 선생님들하고 친하게 지내요. 친구들 중에는 ‘아줌마’라고 부르는 애들도 많지만 저는 선생님이라고 부르지요. 급식실 쌤들은 정말 용감해요. 엄마 같아요. 뜨거운 기름이 이리저리 튀어도 다 견뎌내잖아요. 우리가 먹고 남긴 반찬들을 모은 잔반통에 손을 쑥 넣어서 주무르는 것도 봤어요. 정경희(45·조리실무사) 쌤은 그런 거 하나도 안 더럽고 안 무섭대요. 튀김 기름에 화상을 입어도 감자 썰어 붙이면 끝이래요. 쌤들이 눈물 나는 일은 따로 있대요.

우리들에게 밥 지어서 먹여주는 분들인데 정작 이분들은 밥값도 못 받고 있다고 해요. 우리 담임선생님 같은 선생님들은 급식비로 13만원이 나오지만 급식실 쌤을 비롯한 비정규직 선생님들한테는 식비를 주지 않는다니, 어른들의 셈법은 참 이상해요. 그래서 급식실 쌤들은 “급식비를 달라”면서 지난 주말에 서울에 다 같이 모였대요. 쌤들이 서울에 가면서 어떤 어른들은 “아이들이 빵과 우유로 점심을 때우게 됐다”고 손가락질했지만 우리들 생각은 달라요. 장관님, 대통령님. 우리에게 날마다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지어주는 조리사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세요.

‘교육의 장’ 학교에서 벌어져선 안 되는

[조리실무사(조리사·조리원)] 조리원 4만8999명, 조리사 7336명으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평균 나이 47.5살, 평균 근속연수 5년 이상의 숙련노동자들이지만 다른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로 호봉제가 인정되지 않는다. 고열·다습·소음 과다·부적절한 조명·위험한 기계 조작 등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각종 산업재해에 노출된다. 다쳐도 대체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병가를 낼 수 없다. 지난 5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조리 중 화상을 입은 조리원이 치료 끝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구 장동초등학교에서 7년 동안 근무한 정경희씨는 “선생님들보다 급여를 적게 주는 것은 이해하지만 신분의 차이를 두고 비정규직이라고 차별하는 일이 교육의 장인 학교에서 벌어져선 안 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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