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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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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부정의’ 뿌리뽑기엔 모자란 법

세월호 참사 관련 주요 피고인들 1심 선고 마무리돼… 안전 조처 미흡해

일어난 사고의 경우 기업에 무거운 책임 묻는 제도 필요
등록 2014-11-26 14:21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1월20일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임직원과 화물고박업체 관계자 등 11명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이날 광주지방법원 형사13부(재판장 임정엽)는 청해진해운 김한식(72) 대표에 대해 “세월호 복원성 문제를 부하 직원들로부터 보고받았음에도 시정하지 않았고, 범죄행위로 조성한 비자금을 유병언 일가에게 전달해 회사 자금난을 가중시켰다”며 업무상 과실치사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등을 인정해 징역 10년에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유병언 일가에 돈 빼돌린 죄, 징역 10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좀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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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안전관리 담당자로 지정된 안아무개(60) 이사에겐 징역 6년에 벌금 200만원 및 추징금 5570만원이, 세월호에 화물을 실은 하청업체 문아무개(58) 항만운영본부장에겐 부실 고박의 책임을 물어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금고형을 받으면 징역형과 마찬가지로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노역은 하지 않는다. 4월15일 세월호 출항 당시 화물 과적 및 부실 고박 여부를 점검한 한국해운조합 소속 운항관리인 전아무개(32)씨에겐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앞서 11월5일 인천지방법원 형사12부(재판장 이재욱)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유대균(44)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로써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회장 가족, 구조 의무를 다하지 않은 선장과 선원 등 해경을 제외한 세월호 참사 관련 주요 피고인들의 1심 선고가 마무리됐다. 판결문을 중심으로 1심 재판부가 인정한 범죄 사실을 정리해보았다.

1. 무리한 증·개축, 부실 고박·과적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2012년 8억엔(약 115억원 상당)에 수입됐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세월호 구입 자금 등으로 총 100억원을 대출해주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부실대출 의혹이 거듭 제기됐지만 이에 대한 조처나 처벌은 11월20일 현재까지 진행되지 않았다. 여객실 및 화물 적재 공간과 유병언 개인 전시실을 만들 목적으로 세월호의 증·개축 공사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선수 오른쪽 카램프(차량 진입문) 40t가량이 철거됐다. 좌우 불균형이 발생해 복원성에 영향을 미쳤다. 공사 전 청해진해운 안아무개 이사는 배의 안정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증·개축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후 복원성 문제가 제기됐을 때 운항 정지나 화물 적재량 감축 등을 건의하진 않았다. 오히려 세월호 공사 과정에서 나온 고철을 팔아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

묵살된 화물 과적 문제제기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전남 목포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오고 있다. 한겨레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전남 목포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오고 있다. 한겨레

세월호가 투입된 인천~제주 항로에는 이미 청해진해운 소속 오하마나호가 운항하고 있었다. 세월호 운항에 따른 적자가 누적되자 청해진해운 간부들은 2013년 11월 세월호 매각을 논의한다. 당시 논의 사항에는 세월호가 복원성 문제로 오하마나호처럼 화물을 적재할 경우 과적 시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러한 보고에 유병언은 “선령이 25년을 초과하는 오하마나호를 먼저 매각하라”고 지시한다. 세월호가 적자를 면하려면 화물을 최대한 많이 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청해진해운 대표는 주간회의 등을 통해 화물을 많이 실으라는 취지로 실적을 독려했다. 세월호 적재 화물량이 많으면 화물고박·하역업체의 수익도 늘게 된다. 과적에 대한 선장의 문제제기는 묵살됐다. 참사 당시 휴가 중이었던 세월호 선장 신아무개(47)씨는 2014년 2월께 청해진해운 간부에게 “화물이 많이 실리고 있으니 조치를 취해달라”는 말을 전한다. 후속 조처는 없었다. 되레 간부에게서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면 그만두게 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말을 들었다. 경비 절감을 위해 이준석 선장같이 나이가 많거나 능력이 부족한 선원을 채용했다. 비상시를 대비한 훈련 역시 규정대로 실시하지 않았다.

2. 유병언 가족에게 건너간 회삿돈

이렇게 얻은 청해진해운의 회삿돈 가운데 일부는 유병언 가족에게로 흘러갔다. 청해진해운의 주요 주주는 (주)천해지(39.4%), 김한식 대표(11.6%. 이 중 약 10%는 유병언 차명 보유 주장), (주)아이원아이홀딩스(7.1%)다. 천해지의 주요 주주는 (주)아이원아이홀딩스(42.81%)로, 이 회사는 천해지를 비롯해 1997년 부도를 맞은 세모의 사업을 이어받은 여러 계열사들의 지주회사다.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주요 주주는 유병언의 장남 대균(19.44%), 차남 혁기(19.44%)씨다. 배임·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혁기씨는 여전히 도피 중이고, 역시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장녀 섬나씨는 프랑스에서 체포됐으나 아직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았다. 유대균씨는 상호 사용 명목으로 청해진해운에서 2005년부터 2013년 말까지 약 35억원을 받았다. 그가 상표등록한 상호나 로고는 시장에서 인지도가 없었다. ‘오하마나호’라는 상호를 상표등록한 뒤, 청해진해운으로부터 상호 사용료를 받는 식이다. ‘오하마나’라는 이름은 선박 구조나 연혁과 관련이 없어, 다른 상호로 충분히 대체 가능했다.

사진 7점에 11억, 어이없이 쓰인 비자금

청해진해운은 컨설팅 능력이 없는 지주회사 아이원아이홀딩스에 경영자문 수수료로 4년간 2억6천여만원을, 유혁기씨가 운영하는 미국 법인에 2년간 2억6천만원을 지급했다. 유병언의 사진 7점을 11억원에 사들였고, 사진 작품의 국내 총판회사에 5억4천여만원을 출자하기도 했다. 유병언의 친형 유병일씨는 청해진해운에서 약 4년간 고문료 명목으로 합계 1억3천여만원을 수령했다. 유씨 역시 1심에서 횡령죄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유병언 가족은 청해진해운 외 여러 계열사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수백억원대의 돈을 횡령했다. 천해지, 다판다, 아해, 세모, 헤마토센트릭라이프연구소 대표 등은 사업성이 불투명한 유병언 사진 사업에 돈을 투자하거나 경영자문료 명목으로 지출해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3. 운항관리자는 무엇을 했나

한국해운조합 소속 운항관리자는 여객선이 안전하게 출항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점검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시정 조치를 명하거나 출항 정지를 요청할 의무가 있다. 4월15일 출항 당시, 이준석 선장은 자신이 해야 할 안전점검보고서 작성을 3등 항해사에게 위임했다. 3등 항해사 역시 점검을 실시하지 않고 선체 상태 등에 ‘양호’를 표시했다. 현원란·여객란·일반화물란·자동차란은 비워두고 선장 서명을 해 보고서 2부를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 운항관리실 소속 운항관리자 전아무개씨에게 제출했다. 출항 뒤 3등 항해사는 2등 항해사가 알려주는 대로 승선원·자동차 수를 다시 안점점검보고서에 기재하고, 이를 운항관리자에게 무전기로 알려주어 동일한 내용이 기재되게 했다. 참사 당시 전씨는 선내로 들어가 과적 여부나 고박 상태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 세월호를 점검하면서 운항관리규정과 다르게 화물이 적재된다는 사실, 세월호 출항 하루 전 같은 방식으로 화물을 적재하고 고박한 오하마나호가 과적 문제로 출항이 지연된 사실도 알고 있었다.

세금 받는 운항관리자, 안전은 몰라라

운항관리자들이 받는 월급은 전액 여객선을 타는 승객이 내는 운임 및 국고보조금에서 충원된다. 그러나 여객선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해운조합이 운항관리자를 채용한다. 여객선사들과의 관계나 운항관리자 부족 등으로 출항 전에 점검보고서를 형식적으로 제출받아 서명하는 것은 관행으로 계속돼왔다. 2011년 부산항을 출발해 제주항으로 향하던 현대설봉호 화재 사건 이후 해운조합은 출항 전 승선 인원과 화물란을 비워놓은 채 안전점검보고서를 제출받아 출항 뒤 무선통신을 받아 운항관리자가 기재하지 말 것을 지시했었다. 재판부는 전씨에게 적용된 유리한 양형요소로 “선박의 안전 운항에 관한 해운조합 시스템과 업무 관행이 선박 안전을 담보하기에 불충분하고 운항관리자들에 대한 교육 및 훈련 역시 안전 점검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추도록 하는 데 부족한 것으로 판단되는 등 안전 운항을 감독하지 못한 과실을 전적으로 피고인에게만 묻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처벌은 현장에서 구조 의무를 다하지 않은 선장·선원에 대해 가장 강하게 이루어졌다. 반면 경비 절감이라는 구조적 원인을 제공한 자본이나 자본 감시를 소홀히 한 국가 공권력에 대한 처벌은 미약한 편이다. 형량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과연 누구를 더 강하게 처벌해야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위원회는 청해진해운 임직원에 대한 선고가 있던 11월20일 논평을 내어 “세월호 참사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처벌이 됐다. 여론 집중이 안 되는 다른 사건을 보면 경영책임자는 기소조차 되지 않는다”며 “세계 많은 나라가 기업의 형사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에 대한 안전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서도 높은 벌금을 물리는 등 범죄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규제 완화시 영향, 국가 차원서 검토·처방 필요”

회삿돈을 빼돌린 경제사범에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관용적이다. 1993년 서해훼리호 사건 당시 수사 검사였던 김희수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를 ‘구조적 부정의’라는 말로 설명했다. 사람보다 돈을 좇는 풍토 위로 비리와 관행이 모이고 또 모여 충격적인 참사가 일어났다. 그렇다보니 선장·운항관리자·해경 등 참사 현장에 있던 어느 한 사람에게 전적인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선사 대표에게 선고된 징역 10년이나 선장에게 선고된 징역 36년은 상당히 엄한 처벌”이라며 “처벌 수위가 적절했느냐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기업 규제를 풀었을 때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국가 차원의 검토와 처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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