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8일 충남 홍성군 충남교육청사 대강당에 교사와 학부모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올해 처음 도입하는 ‘충남형 혁신학교’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도교육청 대강당 좌석(380석)이 모자라서 접이식 의자를 200개 더 놓았는데도 일부 참석자는 서서 설명회를 들었다. 188개교에서 600명 가까이 참석했다. 도내 학교(725개교) 4곳 중 1곳이 혁신학교에 관심을 보인 셈이다. 이진철 도교육청 혁신학교지원센터장은 “높은 관심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새로운 학교 교육에 대한 열망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충남도 내 학교 4곳 중 1곳이 관심충남교육청은 매년 혁신학교를 25곳 지정해 100곳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이는 김지철 충남교육감이 ‘꼭 지키겠다’고 약속한 제1공약이다. 혁신학교에 선정되면 학교별로 평균 4천만원 예산과 인사, 행정, 연수, 컨설팅 등을 지원받는다. 첫 혁신학교 공모 신청은 11월18일까지다.
부산교육청이 역시, 처음 도입하는 ‘부산형 혁신학교’ 공모에 25개교가 신청서를 냈다. 유치원 5곳, 초등학교 13곳, 중학교 3곳, 고등학교 2곳, 특수학교 2곳 등이다. 시교육청은 학교 운영계획서 심사와 학교 방문 실사를 동시에 벌여 10곳을 최종 뽑는다. 인천시교육청은 첫 ‘인천형 혁신학교’ 예비교 15곳(초등 10개교·중등 5개교)을 최근 선정했다. 인천 지역 초·중등 교사 900명을 대상으로 혁신학교 연수를 시작하고 학부모 설명회도 잇따라 열고 있다. 세종교육청은 내년에 초등학교 3곳과 중학교 1곳에 처음 ‘세종혁신학교’를 운영한다. 2017년까지 관내 학교의 10% 수준인 13곳으로 늘릴 방침이다.
‘혁신학교 전성시대’가 오고 있다. 2009년 진보 교육감인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처음 도입한 혁신학교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파일럿 스쿨’(본보기 학교)이다. 학교 공교육 체제 전체를 한꺼번에 바꿀 수 없으니, 우선 변화가 준비된 학교를 지정해 그 성과를 점차 확대해나가자는 취지다. 1기 진보 교육감 6명은 전국 625곳에 혁신학교를 세웠고 지역에 따라 혁신학교(경기도·전북), 서울형혁신학교(서울), 무지개학교(전남), 빛고을혁신학교(광주), 행복더하기학교(강원) 등으로 다르게 불렀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3곳에서 2기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서 내년부터 인천·부산·세종시와 경남·충북·충남·제주도에 처음으로 혁신학교가 들어선다. 중도·보수로 불리는 설동호 대전시교육감도 대전형 혁신학교(창의인재 씨앗학교)를 해마다 5곳씩 선정·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혁신학교를 이미 도입한 경기·강원·광주·전남·전북 등에서는 ‘혁신학교 일반화’에 이어 혁신학교와 지방자치단체, 지역공동체로 묶는 ‘교육공동체’로 진화하려 한다. 혁신학교의 미래는 ‘장밋빛’일까? 그렇지 않다. 지난 5년간 눈에 띄는 성과를 냈지만 외부의 공격이 여전히 거세고 새로운 과제도 생겨나고 있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예산 확보다. 여당이 장악한 시도의회는 혁신학교 예산을 전액 삭감하거나 그렇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충북도의회의 경우 지난 7월 충북교육청이 제출한 학교 혁신 및 혁신학교 운영비 3억1009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인천시의회는 지난 9월 인천교육청 추가경정 예산안을 심의하며 혁신학교 예산 2억4천만원을 모두 깎았다. 이유는 이렇다. “혁신학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추진 타당성이 부족하고, 교육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규 사업을 추경에 방영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삭감된 예산을 학부모가 되살리기도예산 삭감은 오래된 관행이다. 혁신학교가 시작된 경기도에서도 그랬고 전북이나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삭감된 예산을 학부모가 되살려내기도 했다. 2010년 전북 혁신학교 학부모 대표들은 예산을 삭감한 도의회로 몰려들었다. 의장 면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기자회견, 성명 발표 등을 활발히 펼쳤다. 우여곡절 끝에 예결위에서 일부 예산이 되살아나고, 추경에서 다시 일부가 확보됐다. 4년간 전북 혁신학교는 평균 5500만원 정도를 지원받았다.
가장 비중이 큰 항목은 행정업무 경감을 위한 보조 인력 채용비였다.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려면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혁신학교 지원금은 특목고 등에 지원하는 예산이나 창의인성모델학교 등 여러 목적사업의 지원금과 비교해도 결코 많지 않다. 게다가 그 지원금도 해마다 줄어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선이 곱지 않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장의 말이다. “혁신학교에 두려움과 시기심이 상존한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일이 폭주할 것이라는 두려움, 재정·행정 지원을 받고 싶다는 시기심이 있다.”
둘째, 양적 확대다. 혁신학교의 성패는 열정과 능력이 있는 교사들에게 달려 있다. ‘아래로부터 개혁’이기 때문이다. 혁신학교의 모형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초등학교다. 폐교 직전의 학교에서 몇 명의 교사가 ‘수업 혁신’을 이뤄냈다. △2개 과목·교시를 묶어 통합 교과에 집중하고 쉬는 시간을 늘리는 ‘블록수업’ △4~6명이 책상을 마주 대고 토론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모둠·토론 수업’ △체험활동·독서활동·동아리활동 등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 수업’ 등을 했다. 핀란드·스웨덴·덴마크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수업 장면을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창조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사, 학교 간 연대가 만들어져 유사한 모델이 전국으로 조금씩 퍼져나갔다. 밤낮, 주말을 가리지 않고 수업을 연구한 헌신적인 교사가 있기에 가능했다.
14개 교육감들이 앞다퉈 혁신학교 수를 늘리려고 하지만 ‘혁신적인 교사’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이미 많은 자원이 기존 혁신학교에 모여 있고 몇 개월의 교사 연수로 열정과 능력, 헌신을 키울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실패하는 혁신학교가 하나둘 나오게 된다. 그 징후가 이미 눈에 띈다. 안상진 ‘사교육 걱정 없는세상’ 부소장은 “성과 없는 혁신학교가 꽤 있다. 사막에서 꽃을 피운 것은 교사의 자발성인데, 이것은 하루아침에 확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혁신학교의 한 교사(45)는 “실질적으로 내용을 채우고 있는 혁신학교는 많지 않다”고 털어놨다. “어떤 인센티브도 없이 교사가 끝없이 공부하고 상담해야 하는데 모든 교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혁신 고등학교 교장은 “양보다 질을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학교 구성원들이 혁신학교 정책을 내재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했으면 한다. 혁신학교를 깊이 있고 완성도 있게 만들어가야 한다.”
교육감에 따라 바뀌는 운명교사의 자발성을 이끄는 데 한계에 부닥쳤다면 ‘위로부터의 개혁’은 어떨까? 혁신학교의 교과과정을 매뉴얼로 만들어 교육청이 모든 학교가 실시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이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고개를 저었다. “혁신학교가 이룬 소중한 가치와 성과들을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다른 학교에 강요하면 안 된다. 교사와 학부모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배우게 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느리더라도 수평적 전이 방식으로 모든 학교의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 혁신학교가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법제화다. 혁신학교는 교육감에 따라 운명이 뒤바뀐다. 서울교육청은 2011년 혁신학교 정책을 시작했지만 이듬해 교육감이 바뀌어 위기를 맞았다. 서울형 혁신학교인 서울 구로구 천왕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오인환(42)씨가 당시 상황을 전했다. “천왕초 옆에 천왕중학교가 2013년 3월에 개교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학교도 혁신학교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혁신학교 지정을 촉구하는 2천 명의 서명을 받고 릴레이 1인시위도 해봤다. 하지만 단칼에 거부당했다. 문용린 교육감 아래에서 서울형 혁신학교가 맞게 될 불운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2013년 1년 내내 혁신학교에 대한 표적 감사가 반복됐다. 2013년 8월 서울시의회에서 정책의 안정적 실현을 위해 서울형 혁신학교 지원 조례를 제정했지만, 문 교육감은 재의 요구를 통해 거부했다. 서울형혁신학교학부모네트워크는 표적 감사 반대 서명운동, 1인시위 및 기자회견 등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혁신학교 지원 예산이 마구잡이로 깎였다. 2013년 67곳에 97억원의 예산이 지원됐는데 2014학년도에 40억원으로 줄였다. 급격한 예산 삭감에 학부모와 교사는 분노했다. 1만 명이 서명했고 1인시위를 나갔다. 교사, 학부모, 시민 약 500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도 열었다. 하지만 문 교육감은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혁신학교 괴롭히기’는 혁신학교 폐지 선언으로 다다랐다. 2014년 3월 문 교육감은 “평가 결과와 상관없이 지정되는 혁신학교는 없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오인환씨는 “혁신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아서 정상적인 평가가 진행되면 혁신학교는 당연히 지속될 것이라는 학부모의 순진한 생각이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고 했다.
교육감이 혁신학교 운명을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하려면 법제화가 필요하다. 혁신학교지원 조례가 대표적이다. 홍석노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펴낸 논문 ‘혁신학교 일반화를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 방안’을 보면, “자율학교(혁신학교) 지정 권한 등을 떼어내 조례로 제정하면 재정 지원 확보를 중층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기관 상호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강화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지원 조례 감시·감독하는 덫으로법제화의 유용성은 분명하지만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 전북은 혁신학교 추진 2년차인 2012년 6월 혁신학교 운영 조례를 제정·공포했다. 혁신학교에 대한 예산이나 인사 지원에 대해 교육부와 도의회가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발목을 잡자 교육청은 조례 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조례는 도의회를 거치면서 혁신학교 ‘지원’보다 ‘통제’ 내용으로 바뀌었다. 당시 칼자루를 쥐고 있던 도의회 교육상임위원들의 혁신학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혁신학교 운영위원회를 신설해 혁신학교 지정, 운영, 평가, 지정 취소 등 모든 중요 사안을 심의하도록 했다. 운영위원 9명 중 3명은 도의회에서 추천한다. 혁신학교 지정 기간도 4년에서 3년으로 줄였다. 혁신학교를 추진한 6개 시도 중 유일하게 전북만 그렇다. 여기에다 3년마다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종합평가를 받도록 했다. 혁신학교를 지원하려고 제정한 조례가 혁신학교를 감시·감독하는 덫이 돼버렸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참고문헌: (에듀니티·2014) (맘에드림·2014) ‘혁신학교와 공교육패러다임 변화 토론회’(2014) ‘혁신학교 일반화를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 방안’(2013) ‘공교육의 새로운 표준을 향한 혁신학교의 기능과 과제’(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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