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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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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친절해서 김종철은 못 말려

‘사랑과 평화의 인간’
등록 2014-08-06 15:22 수정 2020-05-03 04:27

정치인 특유의 허풍이나 권위가 없긴 하다. 올곧음이 지나치다. 제3자가 지켜봐도 답답한 데가 있다. 물론 모든 정치인이 어느 정치철학자의 말처럼 “능숙한 기만자이며 동시에 위장자”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 중 하나가 권력을 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정치인 김종철(전 노동당 부대표)은 도무지 정치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노회찬 후보 현수막이 좀 가려지는데, 노 후보 것을 약간 올려주심 어떨까.” 지난 7월26일 동작을 지역 재보선을 준비하는 선거대책본부 카카오톡방에 올라온 김종철의 당부다. 당원들이 새로 나온 펼침막을 설치한 뒤 올린 인증사진을 보고 내놓은 반응이다. 과연 노 후보 쪽의 펼침막 아랫부분이 5cm쯤 가려져 있다. 대세엔 지장이 없는 수준이다. 땡볕에 펼침막을 내건다고 땀을 쏟은 지지자들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개 그런 식이다.
‘마지막 발언권은 상대에게’라고 적은 카카오톡 프로필이 그의 지론을 반영한다. 그는 좀처럼 남의 말을 가로채지 않는다. 공격적인 언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당원들이 상대 후보를 비방하면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공보물에 내가 좀 센 표현을 쓰면 후보 본인이 다 삭제한다니까.” 김준수 노동당 성북당협 공동위원장의 말이다. 그런 김종철을 노동당의 일부 당원들은 ‘사랑과 평화의 김종철’이라고 부른다. 욕망보다 가치를 좇는 ‘인간’ 김종철에 대한 절반의 애정, 가치를 좇느라 욕망을 지켜내지 못하는 ‘정치인’ 김종철을 향한 절반의 불만이 뒤섞여 있다.
유세 중에도 ‘사랑과 평화’ 정신은 그를 떠날 줄 모른다. “너무 시끄럽지 않게 하겠습니다. 교통에 조금 방해가 되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유세 전엔 항상 사과를 잊지 않는다. 유세를 마치고 나면 인근 상인들에게 찾아가 다시 고개를 숙인다. 주요 유세 지점의 상인들이 김종철 지지자가 된 이유다. 1번·4번 후보들의 유급 선거운동원들도 늘 김종철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한다.
소수 정당의 후보로서 자연스럽게 취하는 저자세이기도 하겠지만,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면 어려울 일이다. 김종옥 노동당 동작당협 부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남에게 부탁을 잘 안 해요. 부탁할 일이 있으면 굉장히 오래 뜸을 들이다가 아주 힘겹게 은근한 말투로 말을 꺼내죠.” ‘사람이 너무 친절해서 못 말린다’는 게 당원들의 평이다. 왜 저렇게 순한 사람이 정치를 한다고 나서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을까. 내가 다 안타까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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