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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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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돌, 같이 정을 맞아준 당신들

입시부정을 고발할 때 아무도 해주지 않은 말을 해주었던 전교조…

‘해직교사’가 될지 모르는 교사가 전교조에 보내는 편지
등록 2014-07-08 15:36 수정 2020-05-03 04:27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6월21일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무봉산청소련수련원에서 전국대의원대회를 열고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6월21일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무봉산청소련수련원에서 전국대의원대회를 열고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font color="#C21A1A">해직교사를 조합에서 배제하라는 정부 명령에 불응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정부와 법원은 ‘노조 아님’을 통보했습니다. ‘노조 아닌’ 전교조의 조합 전임자 71명은 즉각 학교로 복귀하지 않으면 징계를 받을 것이란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해직교사를 지키려, 더 많은 교사들의 해직을 감내하려는 전교조의 이 무모한 싸움을 세상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도 두려워합니다. 그들도 힘겨워합니다. 그럼에도 해직교사가 조합 전임자를, 조합 전임자가 해직교사를 물러섬 없이 지키려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강원외고 입시 비리를 세상에 알린 뒤 2013년 해임돼 복직 소송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 박은선씨가, 자신들을 지키려는 전임 조합원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해임을 무릅쓰고 전교조의 조합 전임자의 길을 가고 있는 유성희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기획국장이 해직교사들에게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_편집자</font>


지난 6월19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소식을 접했습니다. 얼마 뒤 교육부가 조합 전임자들에게 복귀를 명령했단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8개월 된 쌍둥이의 기저귀를 갈고 잠투정을 달래는 중에도 이 소식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아랫니가 슬쩍 올라온 딸아이가 방긋 웃고 이제 막 기기 시작한 아들 녀석이 강아지처럼 온 사방을 발발거리며 다닙니다. 그 모습에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감사해하다가도, ‘나 이렇게 마냥 즐거워도 되는가’란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선생님들 때문입니다. 제가 빚을 져도 참 많이 진 전교조 전임자인 당신들은 이제 곧 해직될 운명이니까요.

<font size="3"><font color="#C21A1A">“가만히 있어라, 세상이 다 그렇다” </font></font>

경제적 문제를 떠나더라도 해직은 크나큰 고통입니다. 당신들이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법원의 판단대로 ‘겨우’ 9명인 해직교사들을 포기하거나 교육부의 명령대로 학교로 복귀해 교사의 본분에 충실하면 됩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그 쉽고 빠르고 편안한 길을 가지 않겠다고 고집합니다.

참 답답한 당신들입니다. 저를 한없이 미안하게 만드는 당신들입니다. 저는 어쩌면 전교조가 껴안는 또 다른 해직교사가 될지 모릅니다. 소속 사립학교의 재단으로부터 해임돼 복직 소송을 진행 중이지요. 학교의 입시부정을 교육청에 고발했다는 이유로 학교는 해직을 통보했습니다. 분명 보복성 징계였습니다. 내부고발자가 어떤 식으로 보복받을지 예상 못할 정도로 순진했던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건 당신들 덕분이었습니다.

3년 전, 입시부정을 비롯한 학교의 여러 문제들을 바로잡겠다고 결심한 뒤 저는 믿고 지낸 은사님과 동료들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그분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답을 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라. 세상이 다 그렇다.”

생각 끝에 무작정 전교조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어느 일요일 당신들은 무작정 찾아온 저를 보호하기 위해 사무실 문까지 걸어잠그고 너무도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러곤 제가 믿었던 어떤 이들도 저에게 하지 않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명백한 불법이고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제가 그토록 듣고 싶던 말이었습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해주는 이가 제 주변엔 왜 그렇게 없었던 걸까요. 당신들은 제가 처벌받고 보복당할 것도 걱정해주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날 “나서서 세상에 알리는 건 위험하다”고 걱정해주는 당신들을 통해 오히려 깊이 깨달았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삼켜버리면 교사가 아니라는 것도요.

당시 전 전교조 조합원도 아니었습니다. “조합원도 아닌데 상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당신들은 말했습니다. “전교조가 왜 존재하는데요? 전교조는 교육을 위해 존재합니다. 교육 문제인데 당연히 상담해드려야죠.” 그 일요일의 긴 상담을 마치고 나오며 저는 전교조 조합원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진짜 교육이 무엇인가.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 저는 당신들을 만난 뒤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전교조 교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너그럽지 못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제가 전교조 조합원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그 뒤의 여정에서도 당신들은 저에게 큰 힘이 돼주었습니다. 때론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우리 학교 문제인데 저보다 더 많이 자료를 분석하고 연구해주었으니까요. 그때 저는 교사들의 조직이, 전교조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함께 모여 고민하고 답을 찾는 조직이 있을 때 개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힘을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 그것은 교육 영역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배웠습니다.

<font size="3"><font color="#C21A1A">드러난 사실, 경미한 처벌 </font></font>

제가 세상에 알린 입시부정은 교육청 감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사립학교라는 이유로 너무도 경미한 처벌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학교는 제게 파면 통보를 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일지 모릅니다. 교실에서 내가 가르치던 정의가 이토록 무참히 짓밟힌 세상에서 내가 더 이상 교사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다 그만두고 다른 길로 가고만 싶어졌습니다.

그때 저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든 것도 당신들이었습니다. 저보다 더 아파하고 분노하며 또 다른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주었지요. 결국 저는 소송을 통해 ‘해직교사’의 오명을 벗고자 힘을 내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에게서 힘을 얻어….

많은 이들이 전교조가 변했다고 합니다. 최고권력자인 박근혜 대통령도 전교조가 초심을 잃고 변질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전교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 역시 학교 현장에서 전교조 조합원의 지위를 악용해 불성실한 학교 생활을 하는 이도 보았고, 기간제 교사 시절엔 학교 내 비정규직을 껴안지 못하면서 거대 담론만 외치는 전교조 교사들이 원망스러워 ‘전교조 교사가 더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곡된 소수의 전교조 교사들만을 이유로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이제 당신들은 해직교사 9명을 버리지 못해 해직을 감수하려 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을 말리고 싶습니다. 그냥 한발 물러서라고, 학교로 돌아가라면 그렇게 하고 법외노조 하라면 그렇게 하고, ‘해직교사를 포용해도 합법노조’가 될 수 있도록 천천히 법 개정 노력에 힘을 기울이라고요. 지금 전교조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애먼 희생을 하느냐고요. ‘진보 교육감 시대 4년은 짧다’고 하는 말들에 기대 저 역시 애원하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법을 개정해 올바름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동화 같은 얘기인지를 알고 있기에 저는 당신들이 감수하려는 불법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전교조를 통해 스스로 가담했던 입시부정을 반성하고 고발을 결심했고, 해직 뒤에도 그곳을 통해 힘을 얻으며 언제나 빚지고 있는 저로서는요. 제가 입시부정을 알릴 때, 학교로부터 보복을 당할 때 아픔이 덜했던 것은 당신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런 당신들이 해직되고 전교조가 단체협약권을 비롯한 여러 권리들을 잃게 된다면 도대체 누가 소속 학교의 부정이나 잘못된 교육 시스템 문제에 대해 ‘모난 돌’이 되겠다 자처할 수 있을까요?

<font size="3"><font color="#C21A1A">당신들이 희생하는 그 길이 맞습니다</font></font>

이렇게 해직되면 당신들이 다시 ‘합법적으로’ 교육 현장에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요. 일상과 육아가 바쁘다는 핑계로 현재 아무런 참여도 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저 ‘죄송하다, 감사하다, 그리고 견뎌달라.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돕겠다’는 무책임한 말밖엔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당신들에게 미약하나마 작은 응원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감히 편지를 띄워봅니다.

당신들은 저에게 옳지 않은 교육은 옳지 않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반성하고 불의를 알리려 할 때 저와 함께해주었습니다. 제가 그로 인해 아픔을 겪을 때도 제 곁에 있었습니다. 아마 해직교사 9명도 당신들의 그런 모습에 힘을 얻어 ‘전교조 교사’로 살아오고 있겠지요. 그러니 저는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희생하시는 그 길이 맞다고, 당신들을 지지한다고. 올바른 교육을 구하다 부당하게 해직된 교사들을 껴안지 못하는 교원노조는 ‘모난 돌은 정 맞는다’는 잘못된 상식을 바꿔놓을 수 없으니까요.

박은선 전 강원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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