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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같고 싶은

‘친구사이’ 20돌 맞아 ‘한국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설문조사’…
성적 정체성은 확고한데 차별 탓에 공개는 꺼려
등록 2014-05-29 16:50 수정 2020-05-03 04:27
나영정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 상임연구원(왼쪽)과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이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설문조사’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사회적 욕구조사’는 친구사이가 기획하고, SOGI 법연구회가 조사와 분석을 진행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나영정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 상임연구원(왼쪽)과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이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설문조사’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사회적 욕구조사’는 친구사이가 기획하고, SOGI 법연구회가 조사와 분석을 진행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20년을 몰랐던 우리를 아는 데 2년여 세월이 걸렸다. 올해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20주년을 맞았다. 남성 동성애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친구사이의 ‘오래된 언니들’(성별 구분을 가지고 노는 그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은 궁금했다. 우리는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고 외치는데, 도대체 그런 우리들은 어떤 우리들인가. 한국에서 LGBTI(Lesbian·Gay·Bisexual·Transgender·Intersexual)는 ‘아직’ 공인된 시민이 아니므로 정부가 하는 조사에서 이들의 존재는 누락돼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누락된 우리를 찾는 작업은 시작됐다. 마침 성소수자 인권 관련 연구자와 변호사가 모인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가 만들어져 연구 작업을 맡았다.

비공인 시민들의 ‘우리’ 찾기

5월22일 서울 종로의 친구사이 사무실 칠판에는 ‘돼지저금통 모금 현황’이 붙어 있었다. 아직 모금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연구기금을 모으는 일부터 도전이었다. 친구사이 활동비 1천만원이 종잣돈이 됐고, 친구사이 회원들이 특별회비를 냈으며, 주변의 성소수자들이 기부금을 냈다. 당초 조사를 제안한 재경씨는 “인터넷 콩을 모아서 몇백원, 몇천원씩 후원한 청소년도 있었다”며 “모금을 하면서 미안하기보다는 자랑스러웠다”고 전했다. 그렇게 이들은 3천만원 연구비를 자급자족했다. 재경씨는 “사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성소수자가 조사 작업을 통해 공적인 집단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종로의 기적’은 현실이 되었다.

조사 작업도 기적처럼 진행됐다. 당초 1천 명 조사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설문지가 공개되자 하루 만에 1천 명이 설문에 응했다. 그렇게 3208명(설문조사 3159명, 면접조사 49명)의 성소수자들이 참여한 ‘한국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설문조사’ 결과는 지난 5월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에 공개됐다. LGBTI를 아우르는 한국 최초의 조사이자 커뮤니티의 힘으로 만들어진 결과였다. 13~62살이 조사에 참여했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19~24살(26.6%)이었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분포로 보면 게이 31%, 레즈비언 29% 등이었다(표 참조). 여기엔 짐작과 다른 결과가 있었을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을까. 나영정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연구회’ 상임연구원과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이 ‘LGBTI 사회적 욕구조사’에 대한 해설을 더했다.

사회- ‘우리가 몰랐던’ 것이 있었다면.

나영정(이하 나)- 바이섹슈얼 여성들의 참여율(22.1%)에 정말 놀랐다. 지금까지 바이섹슈얼이 커뮤니티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아 유령 같은 존재라고 여겨졌다. 짐작으로만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이 여성들의 존재를 확인했고, 이들을 제대로 몰랐던 우리를 많이 반성했다.

이종걸(이하 이)- 하루 만에 1천 명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것에 놀랐다.

자 그러면, 가장 기초적인 질문. ‘LGBTI라는 점이 인생에서 중요한가’에 대해 46%가 ‘매우 중요하다’, 40%가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한편으로 ‘LGBTI 정체성 때문에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LGBTI 정체성이 나를 다르게 만들어주고, 그 점에 대해서 나는 편안하게 느낀다’는 생각에 대해선? 응답자의 70%가 전자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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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LGBTI 정체성이 나를 압도하지만, ‘다르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은 이중적 욕구 아닌가.

- 어제(5월21일) 군형법 토론회에서도 이런 얘기를 했는데, 성소수자 이미지가 과잉성애화돼 있다. 이렇게 성적인 욕구로 가득 찬 존재라는 편견이 있으니,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 더욱 부담이 된다. 그래서 동성애 없는 동성애자 전략을 취하게 된다.

- 커밍아웃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면 다른 존재로 받아들이기를 원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아직은 적고, 과잉성애화 이미지와도 싸워야 하니까 나온 결과 같다.

파트너 만족도는 높지만, 행복도는 낮아

그러면 연애는? ‘현재 연애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45%였다. 평균 연애 기간은 30개월. 연애 중인 사람의 26%가 동거도 한다. 동거 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81%로 나왔다. 이는 통계청의 2012년 사회의식조사에서 ‘결혼생활을 하는 배우자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남성 71.8%, 여성 59.2%인 것에 견줘 높은 편이다.

사회- 연애 기간이 생각보다 길다.

- 연애라고 보면 길 수도 있지만, 부부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포함되니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김조광수 감독도 ‘아직 안 헤어졌느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우리 잘 살고 있어요’ 하더라. 특히 FTM(Female to Male Transgender)은 사랑과 연애의 승리자다. 연애 비율이 높고 기간도 길다. 남성 동성애자가 짧은 편이고.

- 게이 친구들과 웃으면서 ‘정말 이래?’ 하기는 했다.

사회- 파트너 만족도는 높은데 행복도 지수는 한국인 평균보다 낮다. ‘행복하다’고 응답한 40%를 ‘무려’로 볼 수도 있겠지만.

- 행복은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과의 관계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포함된다. 그것이 없는 영향도 있지 싶다.

결혼제도처럼 사랑도 제도가 뒷받침해야 지속 가능성이 커진다. 결혼과 파트너십의 권리가 없는 성소수자들이 현재 가장 간절히 원하는 제도는 뭘까. ‘파트너 관계 및 공동 생활을 유지하는 데 가장 시급히 필요한 제도’(복수응답, 3개 선택)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수술 동의 등 의료 과정에서 가족으로서 권리 행사’(68%)였다. ‘국민건강보험 부양-피부양 관계 인정’(45%)이 다음이었다.

사회- 의료 문제가 조사를 관통하는 열쇳말로 읽히더라.

- 국민건강보험 혜택은 한국에서 부양 관계 인정을 상징한다. 당장 세금·보험 문제가 실익이 더 클 수도 있지만, 건강보험을 가장 많이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아닐까. 수술 동의는 더 그렇다. 도대체 내가 파트너에 대해 이걸 못하면 무엇을 할 수 있나, 인간적으로 부당하다고 느낀다.

사회- 성전환 수술을 위한 의료비 부담이 크다고 조사에서 확인됐다. 그런데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7%가 ‘병원에서의 차별이 두려워 병원에 가지 않거나 미룬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돈 쓰고 무시당하는 현실이다.

- 성형외과에서는 돈이 되니까 VIP 대접을 받는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감기에 걸리면? 사진이 왜 성별과 다르냐고 접수대에서부터 모욕을 당한다.

혐오, 차별, 폭력. LGBTI를 괴롭히는 3종 세트는 역시나 확인됐다. 응답자의 87%가 공공장소에서 LGBTI를 향한 증오와 혐오 발언이 ‘종종 또는 자주’ 일어난다고 답했고, 55%는 물리적 폭력과 괴롭힘도 ‘종종 또는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응답자의 42%는 직접 차별이나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데, 연령이 낮을수록 차별·폭력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18살 이하 45%, 19~29살 43%, 30~39살 37%, 40대 이상 35%). 학교 안에서 조롱과 차별, 폭력이 ‘종종 또는 자주’ 일어난다는 응답도 84%에 이르렀다.

국가는 보호자 아닌 차별의 주체
서대문구청이 혼인신고 접수를 거부하자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은 지난 5월21일 서울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동성부부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대문구청이 혼인신고 접수를 거부하자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은 지난 5월21일 서울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동성부부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사회- 어릴수록 자긍심은 높지만 차별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은 딜레마가 있다.

- 갈수록 주변에 정체성을 드러내는 나이가 낮아지는 것을 느낀다. 부모가 자녀의 휴대전화 기록을 본다든지 해서 눈치채는 경우도 많아졌다. 커밍아웃은 많이 하는데 차별은 여전하니 아이들이 위험하다.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교사용 지침서도 만들고 했지만, 학교 당국이 현장에서 바로 도움을 주는 사람을 두어야 한다. 가장 개입이 시급한 것이 10대 학교 문제다.

- 조사를 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대목이 10대가 차별당한 경험이 가장 많은데 신고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차별과 폭력을 당해도 5%만이 경찰 등에 신고한다고 응답했다. 어릴수록 신고율은 더 낮았다(18살 이하 3%, 19~24살 4%, 25~29살 6%, 30~39살 6%, 40대 이상 13%). 그렇다면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복수응답을 해서 나온 결과는 첫째가 ‘나의 정체성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67%)였고, 다음이 ‘신고해도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62%)이라고 생각해서다. 공적 기관이 사적 영역보다 차별을 더 한다고 느낀다는 결과도 있었다. 정부, 국회, 사법부가 LGBTI에게 비우호적이라고 느낀다는 응답자는 각각 83%, 82%, 75%였다. 이는 사적 영역에 속하는 기업(74%), 학계(65%), 언론(65%)이 비우호적이라는 응답자 비율보다 높았다.

사회- 성소수자에게 국가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정도가 아니다.

- 언제나 국가에 정정을 요구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군형법 계간 조항 개정같이 말이다. 진정 국가는 보호자가 아니라 차별의 주체였다.

- 기업에 대해선 소비자로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느끼지만, 국가에 대해서는 더 높은 권리가 있음에도 피하고 싶게 만든다.

자해와 자살은 심각한 수준이다. 응답자의 28%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고, 35%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 특히 18살 이하 중 46%가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가족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응답자의 68%가 직장 내에서 조롱이나 차별, 폭력이 ‘종종 또는 자주’ 일어난다고 답했고, 혈연가족이나 친족에 의한 폭력이나 학대, 방임이 ‘종종 또는 자주’ 일어난다는 응답도 66%에 이르렀다. 성정체성은 오히려 가족에게 더욱 비밀이었다. 어머니에게는 22%, 아버지에게는 11%만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혔다고 응답했다.

아들의 커밍아웃에 못 견디는 부모들

사회- 아주 한국적인 결과로 보인다.

- 요즘엔 부모의 상담 전화가 많아졌다. 그런데 게이단체라고 하면 ‘여기는 안 되겠네요’ 하며 끊는 경우가 있다. 다른 상담기관에서 소개해서 전화는 했는데, 게이단체는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다.

- 남성들의 커밍아웃에 대해 더 부정적이다. MTF(Male to Female)의 커밍아웃은 부모들이 정말 못 견딘다. 남자를 낳았다고 생각하니까. 아들딸에 대한 성별 규범이 작동한다.

이렇게 차별하는 사회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안전망이 된다. 사회적 욕구 보고서는 “같은 정체성으로 엮인 LGBTI 커뮤니티가 사회적 관계의 일부를 형성한다”고 분석했다. 응답자의 90%가 온라인 커뮤니티 가입 경험이 있고, 69%가 오프라인 커뮤니티 참여 경험이 있었다.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이유도 ‘친교’(79%)가 ‘연애’보다 높았다. 커뮤니티가 대안 가족 기능의 일부를 하는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 발표는 총론 격에 해당한다.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6월14일 LGBTI 정체성별 결과가 발표되고, 8월 말 친구사이 20주년 행사에 즈음해 최종 보고서가 발간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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